중국 정부는 몽골을 자국에 편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 했다. 후레[울란바토르]에 주재하던 중국 도호사 천이는 1917년 7월에 600명의 중국군을 후레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중국은 몽골의 자치국 지위를 박탈하지 못했다. 그러자 1919년 11월 초엔 쉬수정이 이끄는 군대를 후레에 진입시켰다. 쉬수정은 몽골의 집권자들에게 말하기를 중국의 지배를 원하다는 탄원서를 1911년 11월 14일 오전 8시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복드 칸을 체포하여 베이징으로 압송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리고 복드 칸이 머물러 있던 사원을 무장 병력으로 포위하고 그곳에서 총리 바담도르지의 자택 정문까지 대규모 병력을 정렬해서 위협했다. 복드 칸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중국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복드 칸은 "이번에 한 번 중국의 지배에 들어가지만 2~3년 내에 주권을 회복할 때가 반드시 오리니 맘대로 하라"고 하였다. 중국은 1919년 11월 22일에 공식으로 외몽골의 자치국 지위 철폐령을 내리고 쉬수정은 몽골 군대를 해산하여 무기를 회수하고 복드 칸에게 중화민국 대총통이 사진에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다. (강톨가 지음, 이평래·김장구 옮긴, 2009, 『몽골의 역사』, 동북아역사재단, 265~267)
복드 칸은 체포됐다. 그러나 1921년 러시아 군주주의자 운게른과 티베트인, 몽골인으로 구성된 운게른의 군인들이 몽골을 중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복드 칸을 구조한 후 법적 권력을 되찾아줬다. 운게른과 복드 칸 정부는 이후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소통을 했다. 운게른의 군대는 붉은군대에게 패배하자 티베트로 가려했으나 미처 가지 못 하고 볼셰비키에게 처형되고만다.
1919년~1920년, 중국인들은 불법으로 몽골을 점령하고 복드 칸을 퇴위시키고 체포했다. 1921년 러시아 군주주의자 R.F. 운게른스테른베르그 남작이 그의 부대와 함께 몽골을 중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복드 칸의 법적 권력을 되찾아줬다. 후자[복드 칸]는 티베트인, 몽골인, 부랴트인으로 구성된 운게른의 반혁명세력들에 의해 중국인들의 체포에서 해방되었다. 티베트인들은 Saji 라마가 이끌었다. 중국인에 대한 투쟁이 티벳에서 활성화되었다. 운게른과 복드 칸 정부는 달라이 라마와 소통했다. 운게른은 달라이 라마 13세로부터 편지와 몇가지 종교적인 물건을 받은 사절단을 받았다. 볼셰비키에게 패배한 운게른은 티베트로 이주하고 싶었으나 너무 늦었다. 그는 체포되어 reds[볼셰비키]에게 총살됐다.
Sergius L. Kuzmin, 『The Tibeto-Mongolian Civilization』, The Tibeto-Mongolian Civilization. The Tibet Journal, 37(3), 43쪽
Mr. Gilbert, 그의 서류, 'North China Daily News'에서. 특히 dockray의 전보를 바탕으로, Gilbert는 운게른스테른베르그가 우르가[울란바토르]를 공격하기 전에 친 전보 '중국의 군인들이 특히 불쾌한 가게 약탈, 여성 강간, 몽골 약탈, 많은 러시아인과 몽골인을 살해'
James Boyd, 2010, 『'A Very Quiet, Outspoken, Pleasant Gentleman [sic]': The United States Military Attaché's Reports on Baron von Ungern-Sternberg, March 1921』, Inner Asia, Volume 12: Issue 2, 373
[어느 몽골 무역회사(미국 회사)가 회사 사장에게 제출한 보고서 중] 남작의 군대에서 온 70여 명의 기병대가 복드 칸의 궁전 주변에서 중국 경비병들을 습격하여 150명 이상을 죽이고 나머지는 궤멸시켰다. 보고서의 저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Ungern- Sternberg’s의 명령에 따라 구조가 수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동시대의 관찰자인 Larson에 따르면 운게른-스테른베르그는 '살아있는 부처에 대해 큰 존경을 보냈으며 그와 몽골 귀족들을 공정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의 저자는 복드 칸의 구조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증인하고 싶은 기병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라며 구조가 신중하게 계획되었고 우발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을 덧붙힌다.
James Boyd, 2010, 『'A Very Quiet, Outspoken, Pleasant Gentleman [sic]': The United States Military Attaché's Reports on Baron von Ungern-Sternberg, March 1921』, Inner Asia, Volume 12: Issue 2, 373~374
기타_참고로 운게른 왜곡은 티벳불교에 대한 왜곡과 관련되어있다. (Sergius L.Kuzmin, 2013, 『How Bloody was the White Baron? Critical Comments on James Palmer's" The Bloody White Baron: The Extraordinary Story of the Russian Nobleman who Became the Last Khan of Mongolia"(Faber & Faber 2008. 274pp. ISBN 0-571-23023-7)』, Inner Asia, 15(1), 177-187.) 이 사실은 한국에 알려져있지 않다. 사실 운게른 군대에 티벳세력은 빼먹을 수 없는 중요세력이다. 몽골과 티벳부터 중요하게 연결되어있다.
주의_운게른이 몽골 독립이란 공로가 있지만 유대인들은 잔인하게 죽여서 미화 할 인물은 아니다.
사진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D%8B%B0%EB%B2%A0%ED%8A%B8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von_Ungern-Sternberg
웬만하면붐업안줌
이 사람이 뺑뺑이로 고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들 윤회시킨 사람임?
은빛달빛
운게른이 독재자인건 사실이지만 미쳤다거나 사람 막 죽이고 댕겼다든가 그런건 과장된 면이 많다 하데.
웬만하면붐업안줌
방금 꺼무위키 읽어보니 죽인 사람은 약 800명 학살자 소리 듣기에는 무리가 있네
도시전설인가
지조재은의개붕이
적백내전 당시 백군였어서 그런지 폄하가 더 심해진듯 애초에 엄청난 괴짜였고
Volksgemeinschaft
전부터 궁금했는데 닉네임이 왜 안티파굳임?
제육덮밥
별명이 미친남작 아닌가 ㅋㅋㅋ
다다다12
티벳으로 가는데 성공했으면 중국이 더 흥미진진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