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서양사상 간단하게 알아보기(1): 르네상스와 기독교의 신.

0. 들어가며.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서양의 문화에 대해 평소보다 더 큰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선진국이라는 측면을 더 들여다봤다면, 이제 부정적인 측면 혹은 좀 더 대중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들은 주로 극단적으로 단편적입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사에 집중된 교육을 받기 마련이고, 방대한 분량 덕분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마저 파편화되어 살아남은 것들뿐입니다. 읽을 거리 판에 서양사와 관련된 책들이 추천되어 있지만, 개론서는 특성상 중요한 사건들을 나열해줄 뿐 우리에게 유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들은 제한적이고 표면적으로만 보여줍니다.

 

연합국이 일제를 패망시킨 후 우리의 삶에는 유럽의 유산이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민국가, 민족주의, 중상주의, 근대 경제학과 같은 키워드들이 우리 삶에 자주 보이고 대입 논술 전형은 일부 학생들이 서양 사상가들을 접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들을 단편적으로 접하는 것은 더 큰 오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근대 서양사상 간단하게 알아보기는 이런 키워드들을 통해 현대의 모습을 만들어낸 사상들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고 저 스스로도 공부해 보고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주로 ‘르네상스 시기’부터 ‘근대 초기’까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며, 공간적으로는 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습니다.

먼저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양 사상들의 뿌리는 르네상스의 변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별로 관련이 없어 보여도 배경을 아는 것은 맥락상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르네상스적 인간과 르네상스의 중세적 특징.

르네상스를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 암흑기에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간 중심주의로의 회귀라고 주장하던 것이 주류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주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는 단순히 종교의 세력이 세속을 압도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암흑기라고 보기도 힘들며, 인간 중심주의로의 회귀라고 보기도 애매합니다. 

이번에 집중해서 살펴볼 것은 인간 중심주의라는 부분입니다.

 

(르네상스 설명에 자주 나오는 그림. 가운데에 인간이 있고, 인간 중심주의라 하니 왠지 근대랑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Q. 르네상스가 재발견한 유산의 주인이었던 그리스-로마는 인간 중심적인 사회였나?

A. NO…?

 

스스로를 무교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서 다신교는 만화책이나 이야기로나 즐길만한 소재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영원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전지전능한 것도 아닙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스가르드인의 미개한 버전에 가깝죠. 그저 강력하고 오래 살뿐인 인간이 아닌지? 우리는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에서 다신교는 정도만 다를뿐 조선의 유교 성리학처럼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종교였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편의상 비교해 보자면, 그리스-로마 사회를 보다 인간중심적이라고 종교를 은근슬쩍 빼고 생각하는 건, 성리학적 유교가 현세적 경향이 강하다고 조선에서 은근슬쩍 성리학을 빼고 현세적 측면만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말이 안되죠. 

 

예를 들어, 2세기 즈음, 로마의 전통 종교(편의상 이교도) 신자들의 많은 숫자가 기독교인들을 로마가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아직 기독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시기입니다.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신 이외에 다른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불경한 무신론자들(기독교인들)에게 신들께서 분노하셔서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보다 인간적인 면모에 보다 더 집중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르네상스를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의 전환같이 극단적인 변화가 있던 시기라고 묘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르네상스에 종교와 신은 여전히 중요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개혁으로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죠.

그보단 이교도의 것이라 비교적 경시했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고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좀 더 적합할 것입니다.

 

르네상스적 인간(Renaissance Man)의 예시를 통해 이 시기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2. 르네상스적 인간(Renaissance Man):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 ~ 1519 AD)

 

르네상스적 인간이라는 어휘를 스치듯이 접해 본 분이라면, [①다방면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위키피디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고 합니다. 르네상스에는 두 가지 조건이 더 붙어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힐 수 있었습니다.

[②뛰어남의 원인이 교육이 아니라 재능이어야]합니다. 다 빈치는 사생아에 왼손잡이라는 패널티를 가지고 10대 초반에 피렌체의 미술가의 견습생으로 들어갔지만 곧 스승을 뛰어넘어 스승이 붓을 꺾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학교 교육을 수료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스스로 자연을 탐구하고 기계를 구상합니다. 평생을 수양해서 결과를 얻는다는 것과 반대되는 관점이죠.

한편, [③그런 재능은 신에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재능의 원천은 민족적 우수성이나 혈통의 우월함과 같은 다른 내재적 요소도, 교육과 같은 외부적 요소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가장 르네상스적인 인간은, 신의 손끝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르네상스를 편의상 콘스탄티노플의 함락(1453년)으로 본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정말 완벽한 예시가 아닐 수 없네요.

 

3. 중세와 르네상스, 성경과 고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유력하지만, 한동안 인터넷에 신채호 선생이 했다고 떠돌던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잘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비슷한 실수를 합니다.

역사를 반면교사삼아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죠.

 

중세에는 성경과 교회의 말씀이 역사책을 대신할 훌륭한 물건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자체가 역사책이기도 하고요.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유대인)들의 잘못들이 적혀 있고, 온갖 이교도들과 신의 자녀여야 할 다른 인간군상들의 잘잘못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사회에서 군주부터 가장 낮은 신민에 이르기까지, 성경만큼 좋은 사례집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지상의 군주들은 천년왕국에 대비하여 성경적인 덕목을 체화하고 자신의 왕국을 성경에 근거해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실과 완벽히 부합하지 않았지만, 중세인들의 정신세계는 인간이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현대인도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죠.)

 

그리고 그런 주장을 반박한 사람이 르네상스 시기에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행동의 근거를 성경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답인 성경을 통해 연역적으로 유추해내던 관행을 부수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제국인 로마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귀납적으로 올바른 통치법을 도출하려 노력합니다. 그 결과가 『로마사 논고』입니다.

시기적으로는 그 전에 쓰였지만, 군주의 행동 원칙을 서술한 저작이 『군주론』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키아벨리가 반종교적 태도를 보이거나 가톨릭에 정면으로 도전하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저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 같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와 유럽의 계급의식등 르네상스의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개의 댓글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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