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4. 낭만 속에 숨겨진 불편함, 「비더마이어 시대」 1/3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혁명 프랑스를 꺾은 유럽 열강들은 전후 유럽 질서의 개편을 논의하기 위해 181491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 모였습니다. 빈 회의를 주도한 것은 단연 승전국인 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였으며, 프랑스도 참여하였습니다. 프랑스 부르봉 가문의 경우 동맹군 덕분에 다시 프랑스 왕위에 되찾은 것이나 다름없어 처음에는 발언권이 낮았지만, 외무상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1754~1838)의 뛰어난 외교술 덕분에 단숨에 입지가 올라갔습니다. 특히 탈레랑은 바르샤바 공국과 작센 왕국(라이프치히 전투당시 라인 연방군이 모두 나폴레옹을 배신하고 동맹군에 합류할 때 홀로 마지막까지 나폴레옹에게 충성함.)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두고 생긴 갈등을 교묘히 파고들어 프랑스의 국익을 지켰습니다.

 

 

the-congress-of-vienna-after-the-drawing-by-jean-baptiste-isabey.jpg

<「빈 회의」를 묘사한 장 밥티스트 이자베이의 그림. 벽면에 걸린 초상화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이자 동시에 멸망한 신성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였던 「프란츠 요제프 카알(1768~1835)」이다. 그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그가 나폴레옹의 강요로 내려놓은 신성 로마제국의 황관과 황홀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원했던 것이 바로 신성 로마제국의 세속화된 부활이었음을 고려하면 그림의 이러한 배치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긴 힘들다.>

 

 

 

이처럼 빈 회의참가국 모두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부 유럽에서 거세게 시작된 민족주의 열풍과 그에 따른 통일 국가 형성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 구상, 빈 체제가 실현되어야만 각국 지배층이 자기들의 권력을 지키고 유럽 평화도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국가, 오직 프로이센만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빈 체제당사국들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의 경우 이미 신성 로마제국 시절부터 중부 유럽의 독일 지역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대신 이탈리아와 발칸 반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이해관심 지역이었죠. 이 시기 이미 오스트리아 제국은 다민족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제국 내에서 독일인의 비율도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는 구태여 직접 독일 지역을 통일했다가 주변 강대국의 거센 압력을 받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프로이센이 독일 지역을 통일하고 주도권을 가져가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다 포기하고 전부터 그래왔듯 분열된 제후국 간의 느슨한 연방 체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둘 중 누구의 지배도 없이 자기들만의 자치를 원했던 기타 독일 국가들이 가담하게 됩니다.

 

 

Prince_Metternich_by_Lawrence.jpeg

<오스트리아 대표이자 재상이었던 「빈 체제」의 구상자, 클레멘스 벤첼 폰 메테르니히 후작(1773~1859). 그는 회의가 오스트리아 제국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흘러갈 성 싶으면 초호화판 무도회를 열어 회의의 전개 양상을 바꿔놓았다.>

 

 

러시아 제국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오랜 동맹관계였고, 중부 유럽에 대한 이해 역시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이용해 독일 지역을 분열된 채로 놓아두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으며, 심지어는 간첩을 파견해 독일 내의 민족주의 통일운동을 방해하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곧 설명할 코체부 암살사건의 배경이 됩니다.

 

 

Count_Nesselrode.jpg

<러시아 대표이자 러시아 제국 외무상이었던 카알 로베르트 폰 네셀도레-에어레스호펜 백작(1780~1862).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독일계 러시아인이었고 러시아 제국을 위해 충실히 일했으나 정작 노어는 하나도 할 줄 몰랐다. 당대 러시아 제국의 심각한 자국어 경시를 보여준다.>

 

 

프랑스

 

프랑스는 국내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중부 유럽의 새로운 통일 국가를 바라지 않는 입장이었으나 아직 직접 개입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다만 정치적 혼란이 수습된 직후인 1840년대부터 바로 국경 부근의 독일 영토를 집어삼킬 야욕을 드러낼 정도로 결코 독일 통일을 곱게 지켜보진 않았습니다.

 

 

Charles_Maurice_de_Talleyrand-Périgord_by_François_Gérard,_1808.jpg

<프랑스 대표이자 패전국 프랑스의 지위를 단숨에 끌어올린 외교천재, 탈레랑 공작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1754~1838). 메테르니히가 무도회로 회의에 변화를 줬다면, 탈레랑은 프랑스인답게 음식으로 변화를 줬다. 당시 그와 동행한 요리천재 앙투안 카렘(1783~1833)과 외교천재 탈레랑의 기가 막힌 호흡은 「음식 외교」라는 별명으로 회자된다.>

 

 

영국

 

영국은 영국대로 대륙이 안정되어 영국을 위협할만한 제 2의 나폴레옹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한편 프랑스와의 오랜 적대감정 때문에 프랑스가 잘 되는 모습도 보기 싫었기 때문에, 프로이센이 그저 프랑스의 발목을 붙잡을 정도로 성장하는 선에서 만족한다면 굳이 프로이센을 방해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역시 프로이센이 민족주의를 동원해 독일 통일을 꾀한다면 가만 놔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의중에서 차후 글에서 설명할 1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의 결과가 결정됐습니다.

 

 

Lord_Castlereagh_Marquess_of_Londonderry.jpg

<영국의 대표이자 외무상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또 하나의 외교천재였던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 경(1769~1822).>

 

 

프로이센 지배층

 

프로이센의 경우는 지배층인 호엔쫄레른 가문 및 귀족들과 국민들의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당시 프로이센 지배층이 바란 것은 어디까지나 프로이센의 세력 확장이었으며, 독일 통일은 그 과정에서 같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하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정도로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민족주의 통일운동을 주도하던 교양시민 및 부르주아 계급은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동시에 자유주의를 주장했는데, 프로이센 지배층은 이 자유주의를 매우 탐탁지 않게 여겼죠. 당시 독일에서는 민족주의자 치고 자유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드물었으며, 또 자유주의자 치고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드물었는데, 만일 민족주의자를 등용한다면 이것은 곧 지배층이 혐오하는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가 되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 프로이센 지배층은 섣불리 통일을 위해 나서기보다는 일단 빈 체제를 수용하고 사태를 관망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프로이센 국민

 

프로이센 국민들로서는 빈 체제에 극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곧 독일 통일이 실현될 것으로 여겼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나폴레옹 시대를 겪으면서 형성된 교양시민과 부르주아 계급들의 자유주의 정신은, 유럽 전역에 다시금 절대 왕정을 복고시키려는 빈 체제를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독일 통일에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프로이센 지배층에 대한 반발심이 커졌습니다. 시민들, 그중에서도 대학생을 중심으로 독일의 통일과 자유주의 헌법 제정, 의회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갔으며 이러한 배경 역시 코체부 암살사건의 배경이 됩니다.

6개의 댓글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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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자유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보통 대립하는 현재에서 저 시절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발상을 보면 재미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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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글 읽다가 드는 궁금증

글 내용에서 탈레랑은 나폴레옹에게 충성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역사에서는 한 국가가 외세에 의해 변화가 이뤄나게 되면 거의 측근들이 죽거나 축출당하는 경우가 일어나는 데 이 탈레랑이라는 인물은 오히려 외무상에서 활약을 했다는 게 조금 의외입니다. 타국에서 탈레랑이라는 인물(또는 나폴레옹 측근들이었던 사람들)을 축출을 하려고 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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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키시구루

탈레랑이 최초에는 프랑스 대혁명에 가담하고 곧 혁명 프랑스에서 요직에 앉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에 탈레랑은 이제 전쟁을 멈추고 영국ㆍ러시아ㆍ오스트리아와 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은 탈레랑의 주장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탈레랑은 곧 사임하게 됩니다.

 

이 시기 이미 탈레랑은 반동하여 어느 정도 왕정 복고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사임 후에는 몰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나폴레옹을 몰락시킬 계략을 꾸미죠. 이후 부르봉 왕가가 복고한 후에는 그 치하에서 다시 외무상을 지냈으며, 동맹군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재기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준 탈레랑을 굳이 축출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프랑스 혁명 정부나 나폴레옹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탈레랑에 대하여 「매국노」, 「기회주의자」 등의 비난을 가하는 반면 그럼에도 뛰어난 외교술로 「빈 회의」에서 프랑스의 실리를 챙겨온 인물이라고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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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키시구루

그런데 독자 여러분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탈레랑의 파란한 일대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으므로, 탈레랑이 나폴레옹에게 충성하였다고 읽으신 부분은 아마 작센 왕국에 대한 괄호 안 설명을 탈레랑에 대한 설명으로 착각하심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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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Volksgemeinschaft

아 그렇군요. 새롭게 안 사실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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