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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폐급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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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것들 요약

 

1. 입대 1년 전 집 망함, 아버지 의처증으로 어머니 살인 위협

2. 그렇게 정신이 박살난 상태에서 보충대 입소

3. 보충대에서 물건 보내는 것도 아버지가 흥신소 써서 추적할까봐 고민, 결국 친구집으로 보냄.

4. 보충대에서 잠시 평온을 즐기다 훈련소 행.

 

-4-

 

저 새끼 운다... 와 씨발 좆됐다...”

 

이상했다. 나는 나름대로 잘 참고 있는 줄 알았다. 훈련소에 오자마자 받은 무의미한 신체검사, 중대장의 부대 소개를 듣는 동안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를 맞이했던 멧돼지 부사관이 내 부소대장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뭔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 했을 때 군대에서는 ?”가 아니라 잘못 들었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규칙에 적응을 못 해 이틀 내내 연달아 혼날 때도 고치면 되겠지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상처는 생각보다 매우 깊었던 것 같다. 특별히 서러운 일이 발생할 수 없는 훈련소 초기, 나는 소대장과 면담을 하다 집안 얘기가 나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꺽꺽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대장도 당황했던 것 같다. 짐 풀어놓고 간단한 검사 말고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개인 신상을 파악하는 자리였고 훈련병이 들어오자마자 말도 못 이어나갈 정도로 울고 있으니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울기를 10여 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나는 소대장에게 집안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입대하기 전 내 인성은 매우 미성숙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갈취하는 그런 미성숙은 아니었다. 보수적이며 강압적인 아버지, 그 악영향을 막아주려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눈치를 보고, 가족들 사이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만 터득했다. 눈치를 보고 적당히 행동할 때 결과가 달라진다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건설적인 생각을 했을 것이다. 행동과 결과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배려를 좀 더 빨리 익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기분 좋게 가족 여행을 갔다가도 갑자기 성질을 내며 집에 가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혼나는 것, 부부싸움, 음주 후의 행패만 예측가능했고, 그것이 매일의 결론이었다. 예측 가능한 것은 오직 불화였다. 그래서 집에 아버지가 있으면 선택지는 오로지 두 가지 뿐이었다. 아버지를 보고 용돈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가거나, 집에서 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방이 생긴 뒤엔 게임이 추가됐다. 바깥 상황을 모를 정도로 집중해버리면 적어도 그때만은 편했으니까. 어머니는 이런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나선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으니까.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육체적으로 괴롭힐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폭주는 모두 어머니가 받아내게 됐다. 내가 대학에 가는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우리 집의 불가항력이었다. 그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난 그렇게 눈치보는 이기적인 새끼가 됐다. 성장과정에서 가족은 나에게 돈을 주는 폭군이 있는 집단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폭군에게서 벗어나는 길은 그를 추방하거나, 내가 살림을 차려서 떠나는 방법 두 가지 뿐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그 방법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고시였다. 밖으로 보이는 체면을 중시하는 아버지는 반드시 돈을 대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무언가 힘을 갖는다면 더 이상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고시에 합격한다면 어머니와 이혼을 시키고 평온한 삶을 찾아 떠날 생각이었다. 그래서 함께 고시를 공부하던 친구들이 고위공직자로서의 야망과 청운을 말할 때, 나는 평온한 일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한지 단 1년 만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미래의 평화는커녕 당장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부터 무너져 내렸다. 동생은 친척 집으로 몸을 피했고 어머니는 3일마다 고문을 당했다. 3일마다 고문을 당한 이유는, 내가 보는 앞에서 화해를 한 후 다시 발광할 때 까지 3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3일은 내가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때려치우는 주기가 됐다. 난 이기적이었다. 고시로 얻을 수 있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서도, 아버지가 갑자기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서도 믿는 척을 했다. 그 난리를 겪으며 쳤던 두 번째 시험은 겨우 세 달 공부하고 봤는데도 합격선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물론 낙방이었기에 의미는 없다. 나 혼자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고서도 세 번째 시험을 준비했다. 도망다니는 어머니와 눈이 뒤집힌 아버지 양쪽에서 돈을 받으며 준비했다. 더 이상 공부를 이어갈 수 없다고, 온 세상이 빨리 다른 일을 하라고 알려주는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공부를 계속 할 생각이었다. 그때, 영장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는 소대장 앞에서 모두 토해냈다.

 

한 시간이 넘게 얘기를 한 것 같았다. 너무 울어서 바로 생활관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소대장은 내게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가라고 말했다. 나도 의문이었다. 생전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다 쏟아내다니. 정말 내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까지 그저 담담한 척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문제는 그 곳이 군대였고, 내 사정을 봐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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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3일 주기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불태워봤습니다.

5개의 댓글

2019.11.12

나랑 엄청 비슷하네 고시시작한 동기까지도 ㅋㅋ. 그나마 아버지는 60넘어가고 은퇴후에 별거하면서 고향 내려가서 잠잠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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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글을 어떻게 이리잘쓰나 햇더니 책을 많이 읽엇구만. 넘모잘보고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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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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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2 기다리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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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합격 하고 군대가지 ㅜㅜ 좀 미루고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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