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과학 ②

 

 

 

 

응용과학의 강조

 

국가사회주의 시대 과학의 또 다른 성향으로는 응용과학의 강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나치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독일을 다시 강대국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영국·프랑스·소련 등과의 격차를 최대한 빠르게 좁히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언제나 자원부족에 시달려 왔으므로 나치는 우월한 과학기술을 그 대안으로 삼았습니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자원난을 해소하고 타 강대국과의 격차를 순식간에 좁히겠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리하여 나치는 각지에 산재한 과학기술 연구소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매우 축소됐던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지원은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팽창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과학기술 연구자금의 70%가 개인이나 기업이 아닌 나치 정부의 지원금으로 충당되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막스 플랑크가 이끌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1938년 나치로부터 전달받은 자금은 무려 700만 제국마르크였습니다.

 

그런데 나치는 이들이 기초연구보다는 응용연구에 집중하길 바랐습니다. 물론 기초연구가 학문적 발전의 토양임은 분명하지만 수년 내로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아야만 한다는 나치의 조바심은 더 확실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산출하는 응용연구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나치 정부의 지침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연구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하르나크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간섭하지 말 것을 원했으나 이미 연구의 대부분이 나치 정부의 지원금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김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의 파트너나 마찬가지로 그동안 이들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기업가들이 나치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자세한 것은 이전 글 참조 https://www.dogdrip.net/222310222)에 매료되어 점점 친정부 성향을 띄게 되면서 독일의 과학기술 연구는 완전히 나치 정부의 주도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나치 정부는 연구소의 소장 및 휘하 연구원의 임명에 제국과학성 장관의 재가가 필요하도록 함으로써 과학기술 연구의 방향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1936년에는 헤르만 괴링의 주도로 제국경제성 산하에 원자재 및 외화 부서Rohstoff- und Devisenstab’이 신설됐는데, 이 부서는 독일에 부족한 필수 원자재를 국산화하기 위한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문제였던 독일 내의 석탄 생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츠기터 지방을 개발하고 공업지대로 만든 경험이 있는 헤르만 괴링이 이 부서를 맡은 것은 어울리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원자재 및 외화부서는 특히 무엇보다 심각한 석유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일에서도 얼마든지 채굴·생산할 수 있는 신연료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여겨, 석유의 대안으로 합성석유와 액화석탄연료(CTL)의 개발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뮐하임에 소재한 석탄연구소(Institut für Kohlenforschung)’에 연구용역을 맡겨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노벨 화학상 수상자)와 프란츠 피셔(피셔-트롭쉬 공정의 개발자, 1933년 나치당 가입)의 기술을 상용화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로이나 합성석유 공장이 건설되어 독일의 산업을 떠받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jpg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 1931년 노벨 화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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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피셔.>

 

그런가하면 나치 정부의 지원으로 뒤셀도르프에 소재한 철강연구소(Institut für Eisenforschung)’에서는 마텐자이트의 열처리 공법을 통한 마레이징강의 생산, 효율적이고 뛰어난 용접기술, 합금강을 사용한 튼튼한 균질압연강판의 생산 등에 대한 과학기술을 연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화학 연구에 매진한 에밀-피셔 연구원(Emil-Fischer Gesellschaft)’나 화학자들의 조직인 독일화학연합(Deutsche Chemische Gesellschaft)’ 등도 나치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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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가문화과학상.>

 

이렇듯 순수과학보다는 응용과학을 중시한 나치 정부의 면모는 나치가 수여한 독일국가문화과학상(Der Deutscher Nationalorden für Kunst und Wissenschaft)’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몇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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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마취법과 정맥 국소마취법을 개발한 외과의사 아우구스트 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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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수술용 음압실을 만들어 흉부수술을 집도한 바 있고 남은 근육만으로도 움직임이 가능한 사지 보형물을 개발한 외과의사 페르디난트 자우어브루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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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명한 아우토반 시스템을 개발하고 건설을 주도한 공학자 겸 행정가인 프리츠 토트(1922년 나치당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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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명한 자동차 개발자이자 폭스바겐을 개발한 공학자 페르디난트 포르셰(1937년 나치당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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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터보제트기관 및 제트기관 항공기를 개발한 항공기 설계자 에른스트 하인켈(1933년 나치당 가입),

 

빌리 메서슈미트.jpg

 

항공기 설계자 겸 항공기 제작회사의 경영자였던 빌헬름 메서슈미트

 

등 철저히 실용적인 성과를 거둔 이들에게 상이 수여된 것에서 나치 정부가 얼마나 응용과학을 중시했는지가 드러납니다.

3개의 댓글

2019.09.19

하버는 안나옴? 인공질소로 대량 생산의 아버지 아님? 물론 대량학살에도 기여했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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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9
@vxcfdhgsadsfz

프리츠 하버 역시 유대인이라서 팔레스타인으로 이민(나치와 시오니즘 단체가 맺은 하바나 협약에 의해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민이 장려되고 있었음. 나치는 유대인이 독일 밖으로만 나가준다면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었고 시오니즘 단체는 고토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이 이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묘하게 이해가 일치해서 맺어진 협약)을 준비하던 중 지병으로 죽었음. 당시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막스 플랑크가 이에 항의해 직접 히틀러를 만나 "유대인 중에도 (하버처럼)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묵살당했음. 한편 이 사례를 들어 막스 플랑크도 결국은 반유대주의자였다고 보는 견해도 많음. 어찌됐건 일단 유대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결여됐다는 말이니까

0
2019.09.19
@vxcfdhgsadsfz

도이치 물리학이 제기하는 비난은 부당하고 비과학적이라고 일갈했던 물리학자들도 어디까지나 '유대인 학자가 만들었건 말건 현대 물리학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는 얘기였지 유대인을 두둔하는 건 아니었음.

 

최고의 지성이라는 사람들조차도 유대인을 맹목적으로 미워하던 증오의 세기였지....유대인이건 아니건 독일을 위해 일하도록 장려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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