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걸어서 땅끝마을까지_18화

주의! 감성적이고 사적인 여행담이므로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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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땅끝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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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저녁

 

집에서 완전히 뻗어있었다. 그렇게 뒹굴뒹굴하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쯤 엄마가 와서 집 주변에 있는 족발집에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엄마는 이미 주차되어 있던 차를 꺼내와 집 앞에 대놓고 계셨다.

 

창문을 내리고 타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 있어서 어떤 경우라도 차를 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엄마는 간곡하게 차에 타라고 하셨지만, 절대로 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엄마의 눈에는 실망감과 슬픔이 얼굴에 그득하게 나타났다.

 

엄마는 차를 타고 나는 걸어서 족발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앞에 도착해서 같이 들어갔다.

 

맛있는 반반족발과 냉면을 시켰다. 엄마는 배가 부르다고 하셔서 중간 사이즈를 시켰다.

 

그리곤 이제까지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특별한 해프닝들에 대해서 말해줬다.

 

음식이 나올때쯤 아빠가 도착했고 가족들끼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제껏 만났던 자전거, 주차장 아저씨 특별한 인연들과 첫날 개고생한 일 또는 건물에 몰래 들어가 걸렸던 일, 교회에 부탁해서 잠을 청했던 것까지 썰을 이래저래 풀어 놓았다.

 

엄마는 꽤나 흥미가 있어 보이는 눈치셨고, 때로는 내가 아무생각 없이 찍은 사진에 좋다고 하시며 관심을 보이셨다.

 

아빠는 오늘에서야 내가 휴학을 하고 국토종단을 하고 있다는걸 아시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마도 엄마는 이에 대해서 말을 안하신 것 같았다.

 

오늘 집에 도착한다고 했을때, 아빠에게 통화를 했는데 그때서야 아시게된 것이다.

 

보통이라면 분명 한 소리를 하셨어야 했지만, 왠일로 아무말 없으셨다.

 

족발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아빠와 동생은 자리에서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와 나만 남았을때,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첫 날 휴학한 사실을 갑자기 알게된 엄마가 나에게 전화해서 서로 언쟁을 할때, 나는 이제껏 엄마에게 있어서 '악세사리'로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라고 말했을때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이제껏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해온 것이지, 일체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시절엔 받아쓰기 포함 시험에 100점을 못 받아가면 항상 혼났고, 1등을 하지 못하면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그에 대가로 '시험' 이라는 것을 볼때면, 심장이 대략 2배는 뛰곤 했다. 거기에 머리가 깨질것 같은 스트레스도 포함되었다.

 

그렇게 매번 시험을 볼때마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현재는 중, 고등학교 시절에 비해서 부담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씻어지지 않는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다른 취미를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에 자연스럽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준비물도 필요 없이 그냥 컴퓨터만 있으면 됐으니깐. 그리고 인터넷에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삐삐의 시대가 져가고 휴대폰이 보급화되기 시작했을 무렵에, 버디버디와 학교 홈페이지는 친구들과 대화의 장이었다.

 

어느날 별로 할 일이 없어서 학교 홈페이지에 내 멋대로 소설을 적어서 올렸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항상 재밌게 읽었다고 댓글로 달아주곤 했다.

 

그래서 즐겁게 정기적으로 소설을 써서 올렸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 홈페이지를 활성화 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며 문화상품권과 함께 상을 받았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주는 상에 비해서 훨씬 기뻣고 또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기억속에서 지워져 갔다. 내가 즐겁게 글을 써가는 과정과 그 반응들에 대한 즐거움이 점차 흐릿해져갔다.

 

지금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 내가 좋아했고 즐거웠던 것들이 점차 사라져 갔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무렵 성적을 위한 공부를 억지로 많이 했었다.

 

매일매일 피아노, 컴퓨터, 영어, 수학, 미술, 합기도 등 학원을 많이 다닌 기억이 난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서 끝나면 저녁 8~9시쯤이었다. 모든게 끝나면 허락을 맡고 딱 30분 정도 게임하거나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숙제를 하고 자면 11시 12시쯤이었다.

 

좋은 성적을 위해 시험을 볼때 컨닝도 하기도 했고, 결과가 좋지 않아 성적표를 위조해 보기도 했다.

 

물론 성적표를 어설프게 위조하다가 엄청 혼났지만 말이다.

 

 

중학교 시절은 원래 집 주변에 있던 중학교를 다니다가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기숙사에 들어가니 마치 천국 같았다. 학교가 끝나면 재미있는 친구들과 놀고 같이 라노벨을 읽거나 애니를 보곤 했다.

 

지긋지긋한 학원과 엄마로부터 벗어나니 학교생활이 매일 매일 즐거웠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성적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셨는지 통학을 시키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또 다시 학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물론 시간이 부족해서 내신 위주로만 했었다.

 

또 다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을 하다 새벽에 몰래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잠귀가 굉장히 밝으셨고, 거의 대부분 컴퓨터를 몰래 할때마다 걸리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는 더는 못 참으시겠는지 다음 날 등교를 시키지 않고, 500만 원을 주면서 나에게 집에서 나가라며 소리를 치셨다.

 

내가 잘못했다고 울고 빌면서하면서 어찌저찌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이 지나갔다. 그래도 친구들과의 많은 추억이 있어서 즐거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꽤나 힘들었다. 나 말고도 전국 곳곳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많이 왔었고, 열심히 해도 좋은 성적을 얻기가 힘들었다.

 

중학교때 배웠던 공부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나름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영 시원치가 않았다.

 

자율 학습실 가는 길에 모의고사 1등급 명단표를 걸어 놓았었는데, 내 이름이 없을때 항상 자책하곤 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열등감과 자책감이 늘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어느 정도 할만해서 괜찮은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2학년 때 언어, 수리, 외국어의 난이도는 1학년과 비교도 안되게 상당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녀도, 스스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를 기미가 안보이자 점점 방황하고 일탈하기 시작했다.

 

이젠 공부가 진절머리가 났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 엄마에게 혼나는 것도 질려버렸다. 

 

그래서 공부용으로 얻은 노트북으로 몰래 게임만 하게 되었고 악순환이 반복되어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이상 학교다니고 싶지도 않아서 수업을 째고 집으로 가서 문 잠그고 박혀있곤 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내가 더 망가질까봐 학교를 그만두는걸 허락해 주셨다.

 

 

나는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도 또한 나의 방황과 일탈 때문에 얻은 상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걸 매듭을 짓기로 했다.

 

서로 과거를 통해 배우고 용서하며 앞으로는 가족으로써 서로 돕고 위로하며 즐겁게 살자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차에 타지 않는 행동에, 이제는 아들이 아닌 한 명의 사회인으로써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간당간당하게 잡고있던 조그마한 아기라는 실줄이 완전히 끊어진듯한 기분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매듭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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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맑음

 

9.15.JPG

(예상 이동거리 28.26km)

 

2일 정도 집에서 쉬었다. 원래는 하루만 쉬고 다시 이동하려 했었다.

 

하지만 하루 쉬니깐 더 쉬고 싶었다. 현실에 안주 한다는 것은 참 유혹적이고 편안하다. 힘들지도 않고 말이다.

 

또 다른 변명을 하자면 감기가 꽤나 심하게 걸려서 조금 더 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15일 오늘 아침 어제 동생에게서 받은 소보루 빵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여행동안 쓸 비용을 주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도 충분히 비용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모든걸 해결하고 싶어서 괜찮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엄마를 안아드렸다.

 

꽤나 피곤해 보이는 모습과 슬픈 눈빛은 여전해 보였다.

 

엄마가 출근하고 나도 마저 짐을 싸고 이동할 준비를 했다.

 

오늘 거리는 평균적인 거리였지만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속도를 내야만 했다.

 

대략 11시쯤 전주에서 나가기 전에 아빠에게 연락해서 여행을 마저 하고 오겠다고 말을 전했다.

 

수정됨_IMG_1267.jpg

(전주에서 나가기 직전에 찍은 사진)

 

점심은 주변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상하이 세트를 먹었다.

 

그런데 컨디션이 별로인지 영 하루종일 속이 메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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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걷지 않아서 바로 김제시로 넘어왔다.)

 

큰 차량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아슬아슬한 구간이 많았다.

 

또 가로변이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고생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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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카페에 있던 정자에서 조금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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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시는 농부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찍어보았다.)

 

오늘도 큰 이변은 없었다. 때때로 보행자들에게 인사를 했을때, 비슷한 레퍼토리로 대화가 오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수정됨_IMG_1272.jpg

 

오늘은 '강함' 이란 것에 대해 짧게 고민을 해봤다.

 

'작지만 강한', 힘, 쇠, 철, 총, 무력, 칼, 정신력, 인내, 끈기, 조직력, 재력, 자본 등.. 무엇이 강함이라고 지칭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에서 일탈하고 도주하듯 시작한 이 여정 속에서 나는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혹자는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하기에 대단하다고 했었지만, 타인이 보는 시각과 내가 보는 시각은 아무래도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그냥 땅과 물 그리고 산과 하늘을 보고 걷다가, 노래를 듣고, 어쩔때는 사색을 하다 다리가 아파서 쉬는게 전부다.

 

어찌보면 굉장히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 그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긴하다.

 

 

'강함'.. 나는 강한지 약한지 잘 모르겠다.

 

걷는 행위 자체를 본다면 강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면하고 도주하듯 시작한 여행은 정말 약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든 항상 도중에 포기한 삶 속에서 '강함' 이란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내가 이 여행을 끝까지 마치게 된다면 과연 정답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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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 주의 시작이네요. 하루 빨리 주말이 다시 왔으면 합니다 ㅎㅎ

4개의 댓글

2019.08.26

잘 보고 있습니다

보면서 약간의 대리만족도 느끼고 있고, 나도 대학생때, 취업하기전에 저런걸 해볼걸 하는 후회도 드네요

1
2019.08.26

잘 읽고 있으니깐 포기말고 끝까지 다 써주세요

1
2019.08.26

ㅈ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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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고생하셨네요

잘 이겨내셨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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