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 조선은 로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는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조선은 물류가 발달하지 못해서 해안에서는 거름으로 쓰는 청어가 한양에서는 한줌에 한냥이나 나간다는 한탄이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는 한양에서 부산까지는 보름, 두만강 까지는 편도로 3주나 걸렸다고 하니, 유통의 발달이 상당히 더뎠다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동시대 다른 동아시아 국가인 중국이나 에도막부에 비해서도 조선왕조는 유독 유통이 약했죠. 혹자는 이렇게 약해진 유통이 물류의 교류를 약화시켜 중앙 재정을 빈곤하게 만들고, 상공업을 정체하게 만들어 조선의 쇠퇴를 불러 왔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논란거리지만요. 그런데 왜 유독 조선왕조는 도로유통이 약했을까요? 그건 아래의 사진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조선왕조, 아니 한반도는 예로부터 유독 산맥이 많고 강이 자주 형성되어 있는 지형이었습니다. 부산이나, 목포, 두만강, 의주 등 사방 어디서든 중간인 한양에 오려면 산맥이나 강 둘 중 하나는 거쳐야 했습니다. 평야나 숲이라면 모를까, 산줄기를 따라서 도로를 내거나 큰 하천을 건널 가교를 만드는 것은 상당한 비용과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었겠죠. 일본도 산맥이 많기는 하나, 평야지대에는 한반도보다 큰 강이 적어 도로를 만들기가 비교적 용이했습니다. 지형상 차라리 물줄기를 조절하고 작은 연결운하를 여러개 파서 강을 따라 배로 물자를 수송하게 하면 모를까, 굳이 다리놓고 도로 포장할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운하파고 물길 조정하던 기술은 고구려 시대인 수나라에, 물길 조정 등 정교한 기술도 전부 명나라때는 있었던 기술입니다. 화약이 그러했듯, 운하파고 물길 정돈하는게 기술적으로도 포장도로 만들기 보다야 더 쉬었을 겁니다.

게다가, 중앙집권이 고려때부터 시작된 조선왕조와는 달리, 에도막부는 최초로 중앙집권을 시도하던 차라, 정권 안정 차원에서도 좀 더 강하게 지방-중앙 간의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죠. (그게 참근교대) 조선왕조는 지방관을 파견하면 그럭저럭 중앙 (임금)의 권력이 안정적으로 지방 행정에 알아서 반영이 되었으므로, 굳이 지방의 향리나 유지들을 중앙으로 부르려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방의 유지들이 과거시험, 상소, 교육/문화 자원 접근 등을 위해 알아서 한양으로 진출하려고는 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은 농본유교국가라, 대규모 토목공사를 매우 꺼려해서 경복궁 조차도 몇백년간 수리를 안하고 내버려 두기도 한 정권입니다. (민중의 부담과는 별개로) 중앙 조정의 재정도 낮은 세율 때문에 꽤 부족했고요.

이명박 정권 때 한반도 대운하라는, 뭔 말도 안되보이는 계획이 발표되었다고 언론에서 한창 난리 법썩일 때가 있었습니다. 몰론 경인운하에서 보듯, 현대국가에는 큰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게 자명해 보입니다만, 이걸 조선왕조때 만들었다면 얘기가 조금 다를 듯 합니다. 위에 지도와 비교해 보면, 한반도의 강줄기와 한반도 대운하의 지도에 거의 차이거 없습니다. 강변을 다듬어 정리하고, 중간중간의 지점들만 운하를 파거나, 도로를 만들어 연결해 주면 거의 완벽한 자연 물류망이 완성됩니다. 강원이나 함경도, 남해안과 서해안 등은 해안가를 통해서, 내륙지방 물류는 강줄기를 따라서 서로 유통하게 하면, 굳이 도로 따위 안 만들어도 물류의 원활한 교통이 가능했을 듯 합니다.

실제로 조선의 물류는 수레가 아니라 거의 조운선이 담당했습니다. 세금을 걷을 때도 조운선을 썻고, 경강시장 등 큰 시장들도 강변에 생겨났었죠. 조운선은 한번에 1000석을 보통 욺기지만, 수레는 한번에 10석을 욺기는게 고작이니, 효율성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육상교통의 속도가 해상 교통을 능가한것은 19세기의 철도나 자동차의 발명 이후입니다. 그 이전에 배들은 보통 시속 10Km 정도는 낼 수 있었지만, 짐을 실은 우마차는 시속 6~7Km가 고작이었습니다. 보부상 등 사람의 걸음은 아예 시속 4~5Km 정도가 고작입니다. 이러니, 속도의 측면에서도 육상교통을 고려할 필요성은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치안이 완벽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육상교통의 경우 산적이나 호환을 걱정해야 했지만, 배 타는 건 왜구나 풍랑만 만나지 않으면 훨씬 안전했습니다. 안정성, 속도성, 효율성 모든 면에서 해상교통은 육상교통에 비해 우월한게 근세까지의 전 세계적 현상이었습니다. (애초에 대항해 시대와 대서양무역도 해상운송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지형적인 요소 마저도 해상운송에 최적화 되어 있었네요. 물자의 운송 자체도 조세나 지역내 교류를 제외하면 별로 없었지만, 만약 전국적인 물류망을 개척할려고 했더라도 강가를 정비해서 해상운송을 장려하지, 굳이 내륙에 고속도로 처럼 도로를 깔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비싼 수고를 들여 도로를 깔아봤자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그걸 활용할 수단이 없었으니까요. 몰론 행정상 이동이나 기본적인 이동 자체는 가능하게 만들어 놓을 필요는 있었고, 그래서 역참이나 주막이 그 역활을 충실히 해주었습니다. 즉, 문경새재 등 사람이 걸어서 다니면 될 수준의 산길과 중간 기착지들만 있으면 육상로는 그걸로 충분했겠죠.

몰론 흉년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왕조가 해상 물류망을 좀더 정비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이 사실을 모르는게 아니라서, 육로라면 모를까, 조운선에 대해선 여러가지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조정에서 각 지역에 조창을 지어 일종의 물류창고를 신설하고, 신숙주 등 관료들도 각국의 배들을 비교해 보고나서 조운선을 유사시 맹선으로 쓰게 하는 등, 제도적 개선을 많이 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조선왕조의 배만큼 효율적인 선박이 당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드물 정도였고, 선박 제조기술 또한 상당이 뛰어나서, 나중에 판옥선이 일본의 세키부네를 1:10으로도 상대할 수 있게 만드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조선 중후기에는 민간 상인 들의 조운업 활성화 등이 일어나기도 하는 등, 조선의 경제와 물류의 중추망으로 이미 자리잡아 왔습니다.

몰론 조선왕조는 상공업의 발달에 별 관심이 없는 농본정권인지라, 아무래도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 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권 차원에서의 무관심 및 억제 정책이 원인이지, 조선의 물류 자체의 후진성이나 육로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애초에 서구의 패권을 가져다준 산업혁명은 "공업" 혹은 제조업의 혁명이지 상업과 물류의 혁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서양을 횡단하고 주식회사가 생겨난 17세기에도 서구의 국력은 무굴제국이나 오스만 투르크, 청나라 등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들 국가에 교역지를 확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몰론, 막대한 국력의 향상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단순한 상공업을 통한 이윤축적이 아니라, 아메리카, 호주, 인도네시아등 당시 유라시아 문명권에 알려지지 않았던 신대륙의 발견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서양이 신대륙의 발견 없이 단순히 아프리카나 대인도 무역을 통해서만 부를 축적했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이상의 국력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건 상업과 교역을 귀중히 여기지만 제조업은 약했던, 예를 들어 유럽과 맞먹을 수준의 노예무역을 해왔던 아랍국가들이나, 포루투갈이 전 세계를 정복하는 국력을 보유하지 못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티무르제국등 아랍의 왕조는 중동을 벗어나지 못했고, 포르투갈은 교역지의 건설 이상은 하지 못했음)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고, 호주나 아프리카, 북미 등 중앙 집권적 국가가 부재했던 지역만이 아니라, 청나라, 페르시아등 기존 문명권까지 전 세계적인 제국주의의 박차를 가한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시초였고, 이들은 단순히 상업적 발달이 아니라, 증기기관과 철기선 등 공업적 발달로 이러한 확장을 견인한 나라들입니다.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스페인, 엘리자베스 1세의 영국 등의 상업/무역 기반의 제국주의는, 당시에는 거의 빈땅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을 정복하거나, 신규 진입자로써 기존의 왕국들을 분열시켜 정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접촉이 없던 지역에서 온 만큼, 신대륙에는 없던 전염병이나 화기등을 사용해 좀더 손쉬운 정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중앙집권적이고, 유럽이 가지고 있던 문명의 이기는 왠만큼 다 가지고 있던 기존의 다른 유라시아 제국들에는 써먹기 힘들었죠.

 

서양의 국력이 "신대륙" 정복을 넘어 동양을 능가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부터라는게 정설이고, 이것은 상업의 발달이 아니라 공업의 발달 덕분이었습니다. 조선왕조가 서구에 뒤쳐지고 후일 일본에 뒤쳐저 식민화 된것이 상업발달의 미숙함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현대에 들어서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열강과 맞먹을 만한 국력을 가지게 된것도 제조업의 부흥과 기술의 발전 덕분이지, 오로지 무역과 금융의 발달로 강대국이 된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강소국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51개의 댓글

2019.07.04

실제로 미국이 급속발전할수있던 이유가 강을 이용한 물류운송이였다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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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대일본제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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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어... 읽판도 ㅇㄱㄸ 있지 않니? 수정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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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얼마나 답이 없는지 임진왜란때 제해권 밀리니 더이상 올라가지를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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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엔터좀 쳐주면 안되냐 논문 읽다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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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키이읍

논문은 엔터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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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아이오아이

그게 아니라 이글이 마치 논문처럼 엔터 없이 빽빽하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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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아이오아이

위에 사람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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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같은 주제로 글 쓰려고 있는데 이렇게 올라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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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소름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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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한번 써보셈

 

니 생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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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까망볼

비슷한 요지에 이게 더 잘 써서 보론이나 사족에 가까운 글이 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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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4

ㅇㄱㄸ가 경부고속도로 하나만으로 평가가 좋을수 밖에 없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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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ㄹㅇ 우리나라처럼 지형 박살난곳도 드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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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호엉

산지가 70%인데

한반도를 전부 평평하게 피면

중국대륙만해진다고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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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입수

힘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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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선장입수

개솔 ㄴ

해저부터 채워야지 으딜 해저 무시하고 채우려고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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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선장입수

그런 식의 계산이면 중국은 운남이랑 신장-티벳 쪽만 다 펴도 지구만해질텐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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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 되었습니다]
2019.07.06
@일본에간마오쩌뚱

ㄹㅇ 상공업이 있기에 산업화가 생겨난거지 상공업 없이 산업화가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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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산모기

모기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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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조선은 왜 로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는가?

정복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마 가도는 정복용이기도 했으니까.

 

로마는 다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군용도로가 필요했다.

즉, 로마가 깔기 좋은 곳에만 가도를 깐것도 아니었고,

수운을 싫어해서도 아니었다.

 

꼭 상거래를 위한것만도 아니었고,

조세를 걷기 위한것만도 아니었지.

정략적으로 깔 필요가 있어서 깔았던거지.

 

조선은 그럴필요가 크게 없었고, 고려 이후 향리도 제대로 휘어잡은데다,

반도에 갇혀서 나갈 수 없다고 인지하고 있었고,

고려 이후 두만 압록을 천연 경계로 삼아 국경을 확정지은 세종의 공로에 따라

거의 국토로서 내적 완성을 지었다고 볼 상황.

 

나갈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쓴 것 처럼 수운을 이용하면 되니까 굳이 육로 개발을 하지 않았지.

 

중세때 도로가 왜 로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까?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즉 세계 어디나 지형이 그지같으면 수운을 먼저 썼지.

육로망을 굳이 완비하려 한 민족은 없다.

 

정복민족이 아닌 이상 말이다.

 

조선의 도로가 왜 발달하지 않았는가?는 지형이 그래서가 아니라

정략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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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Miracle31792

추가로 조선은 반역이 무서워서 육로 증축을 안한 면도 있지.. 왜란 당시 의병장들 죄다 역모로 엮어서 사후처리당한거 보면 진짜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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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역모로 얽혀서 죽은 의병장 2명밖에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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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Asdf06

사후처리가 사사만 뜻하진 않잖아.

애초에 역성혁명으로 세운 나라라 더 지방호족들이나 명문거족들 동향에 민감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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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선조가 왕권강화때문에 민감하긴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죽임. 어디 쫓아낸것도.. 기억에 없는데. 예시좀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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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Asdf06

죽은건 이산겸 김덕령이 대표적이고, 최담령 최강 홍계남 고언백 같이 조용히 바짝 엎드려서 연명한 케이스도 많고. 살아남은 의병장들 태반이 중사(내시)들의 감시대상이었으니까.

남명 조식 이름값 아니었으면 정인홍, 김면, 곽재우를 포함해서 그 문하에서 배출된 의병장들 태반이 다 비슷한 꼴 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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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죽은건 그 둘이 전부고.. 솔직히 이산겸만 무죄. 홍계남은 선조가 봐준거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뭐 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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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반역이 무서우면 반역 빨리 진압하려고 도로를 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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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치도 병가지대기(治道兵家之大忌: 길을 고쳐 닦는 일은 병가가 크게 꺼리거나 싫어함) 라는 숙종의 말이 그 단적인 사례로, 군사적 측면에서 도로의 역기능이 강조됨으로써 도로 건설은 곧 외적의 침략을 부른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런 도로들은 적군, 특히 주적이었던 북방 기마민족들의 주 기동 경로가 되어버리고 평지 특성상 방어에도 매우 취약해진다. 때문에 침략전쟁을 주로 수행하는 나라에서는 도로를 잘 닦아 놓을 필요가 있었지만 작은 예방전쟁 이상의 국가간 전쟁은 직접 일으키려 하지 않았던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위는 도로고의 나무위키 내용인데, 저거 말고도 지방도로 정비 반대하는 기록들이 꽤 있어.

외적이든 내적이든, 성향 자체가 크게 군사를 움직이고 보급하는 경로를 키우는 자체를 경계했나봐. 밑에 같이 읽어보면 재미있는 블로그 링크 남긴다.

 

https://m.blog.naver.com/alsn76/2202797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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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그러니까 외적침입 내적침입이든 그걸 경계해 도로망 발달시키지 않은게 조선만의 특수성이 아님.

그게 조선만의 특수성이면 썼겠지.

즉 어느 민족이나 외적 침입을 꺼리는 지형과 폐쇄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도로망 확충에 신경을 안써.

게다가 도로망 대신 수운까지 이용할 수 있으면.

 

내가 결론난 정략적으로 필요가 없으면 만들지 않는다는것이라는 것은

환경결정론이 아니라 정략적, 임의적 측면을 강조한거라

조선의 특수성이 있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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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처음에는 반역이고 근거는 외침인데 서로 다른 이야기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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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도로가 잘 닦여있으면 적 도당이 한성부 도성까지 거침없이 올라올 수 있으니 군부에서 그걸 싫어한다는 이야기지 .그 적이 외적이든 역적이든 도로 타고 오면 대비가 어렵다고.

근데 저 말은 병자호란까지 다 겪어서 길 닦으나 안 닦으나 왜놈이든 오랑캐든 막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게 증명된 이후의 왕인 숙종의 말이거든.

결국 외적보다는 내부의 반란을 조기에 잡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역참이니 봉화를 운용한 셈. 세조 때야 병적으로 역모에 대해서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지만 그 이후로도 내적에 대한 경계구조는 변하지 않은걸로 알고 있어.

해서 굽이굽이 산길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이라는 관문들을 두고 수레 한두대도 제대로 못 다니는 소로만 남겨두고 도로를 통제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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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선의 군사 시스템이 군대 자체를 적게 양성하고 지방군도 작게 유지하면서 병권을 나누어 둠으로써 지방세력의 발호를 견제하는 체계였던만큼 외적에 대한 경계로 인한 도로미가설과 내적 반란에 대한 위기감으로 도로미가설 한 것은 차이가 분명히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만약 반란에 대한 위험으로 지방 세력이 올라오는 것에 대해서 걱정이 있다면 강력한 중앙군과 중앙군 파견을 위한 도로나 시스템이 있었어야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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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관문만 막아서도 그 사이에 중앙군 모아서 방비할 시간은 버니까 점점 더 방만해진 것도 중앙군의 강화나 도로정비 필요성을 못 느낀 이유 중 하나일거야.

길이 원체 좁아서 보급도 각자 짊어진 봇짐 수준을 못 넘고 말이나 노새도 겨우 서로 빗겨지날 정도였다고 하니. 신립이 귀신에 홀려서 관문지키는걸 포기하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군에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관문의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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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방어적 목적으로 그렇지만 지방 통제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란 평정을 위해서 행정력과 군사력의 투사가 필요하니까 다르다고 본다. 조선이 반란군에게 수도가 함락된 건 이괄 정도이고, 이괄의 군대는 조선의 정예를 다 때려부은 조선 역사상 몇 없는 강력한 지방군이었으니까. 이괄의 난의 사례를 볼 때 근본적으로 지방 통치를 위해서 군사력을 쪼갠 게 핵심이지 반란군의 한양 입성을 경계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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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글쎄.. 세조 때부터 시행되던 지방통제를 위한 진관체제는 방군수포제의 악용으로 인해 무너졌고, 그거 보완한다고 도입한 제승방략체제도 결국 파견된 중앙군의 순변사나 방어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가 후방군까지 다 끌어다가 싸우다 죽거나 패하면 그 뒤는 아예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어버려서 임진왜란 이후 폐지된 후로는 결국 지방의 군사력은 천출들로만 꾸린 속오군과 그 재정을 담당하는 각읍에 책임을 미뤄버린 셈이니 군사력을 쪼갰다기보다는 한성부와 왕실의 보전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둔 (족친위, 친군위, 충의위 등의 친위군과 어영청이나 훈련도감부를 포함한) 중앙군 육성 및 관리에 올인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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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식탐반장

근본적으로 지방군 육성 특히, 육군을 두느냐 문제 있어서 전체적으로 조선이 어던 방향이든 소극적이었다는데 촛점을 맞추고 보는거라서 중앙군에 더 촛점을 맞추었다는 것도 맞는 시각임. 다만 도로 미가설이 내부적 통제의 용이함의 목적이 아니었고 강력한 지방 세력이 자리잡을 수 없도록 하는데 내부 통제에 중점을 두었다는 게 생각이고, 그 자원을 중앙군 육성에 더 투입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음. 하지만 그 중앙군도 사실 훈련도감 정도가 최정예고 나머지는 점점 질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조선은 군사력을 지방에 투사하거나 지방의 견제로 군대를 육성하면서 도로 미가설했다고 보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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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소름

관점의 차이가 상당히 크구나. 이야기 재미있어서 더 하고 싶은데 술을 진탕 먹고 와서 자야겠어...내일을 위해서 ㅠㅠ ㅂ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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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요소 포함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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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
2019.07.05

상업의 발달이 없이 어떻게 공업이 발달합니까.

왕실납품을 목적으로하는 육의전 거리 외에는 상설시장이 없다시피한 조선에서 애초에 발달이란

어떤 면에서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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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로마처럼 국력이 강하면 길이 발달해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한데

조선은 길 예쁘게 뚫어 놓으면 "강간해 주세요"하고 엉덩이 벌리는 꼴이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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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여기 또 역덕후들 많네ㄷㄷ 시간나면 고대사로 하나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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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조선이 물류에 관심이 없던게 아닌게 굴포운하를 파서 안면도를 만든게 조선때고 경인운하 계획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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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운하가 더 편하니까 육로는 발달하지 않았다는게 결론인데, 결국 운하조차 개발을 제대로 안했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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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근데 우리는 강수량의 분포가 고르지 않아서

해운도 태풍과 조류에 영향 많이 받았고

영월에서 서울 오가던 뗏목도 홍수 때문에 일정하지 못했잖아

우리나라 강이 세계적으로 계절별 유량차가 크고 서해안 조차도 세계적 수준이라 한계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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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윗부분 내용은 공감이 가는데 아랫부분은 글쎄...

상업 발달과 그로인한 산업화 등의 기술 혁신으로 공업화가 이뤄지는 현상은 각각 독립된 두 현상이 아니라,

상업 발달을 통해 축적된 자본이 기술 혁신에 유용될 수 있었던 만큼 하나의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 사건 아님?

이말인 즉, 상업의 발달이 미진한 우리나라에선 자체적인 기술 혁신의 가능성은 없었다라고 보는게 맞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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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그리고 안보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적의 기동로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도로망을 안 닦아놔서

침략이 가시화되서 정작 자기네들이 빠르게 수비군을 결집시켜야 할 때도 병력을 규합하지 못하고 각개격파 당하거나

방어군임에도 수적으로 열세에 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잖아.

맥락을 보면 볼수록 조선 조선대로 특화해서 발전했다기 보다는 그냥 발전 자체를 안한 느낌인데

뭐 기본 세율은 낮았다니 사람들 살기에는 어느정도 장점이 있었을 지 모르지만

그럼 뭐해, 국가가 필요할 때 제역할을 못하고, 물류가 통하질 않아서 어제나 그제나 발전이 없었는데

암만 봐도 잘못된 국가 운영의 표본으로 보인다.

현재에 안주하는 정책을 펼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미래에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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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늘 침략받는나라라 도로 잘닦으면 한번에 다뚫린다고 도로 안뚫어서 지도도 만들면 처벌받았다면서. 김정호도 그래서 대동여지도 만들고 곤욕치뤘다고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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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산악지형인뎁쇼? 화페유통도 제대로 안되던 조선은 무슨말을 하던간에 쉴드가 안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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