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확립한 체계를 우리가 몇 번이고 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뉴턴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천재이고 가장 엄청난 행운아다.
-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
아이작 뉴턴 경 Sir Isaac Newton
1642년 12월 25일 ~ 1726년 3월 20일
왕립학회장 President of the Royal Society
루카시안 수학 교수 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
뉴턴 경께서 미적분 개념을 만들어내시기 전, 그는 그 당시 최신 수학이었던 지수/로그, 무한 급수, 해석기하를 공부하셨다. 특히 이 셋 중 해석기하를 늦게 공부하셨는데, 이는 그가 트리니티 칼리지에 부임한 그리스어 교수 아이작 배로(Isaac Barrow)로부터 수학 수업을 받은 후에 공부하셨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해석기하의 철학적 구조
지금은 철학자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직교 좌표계를 도입하여 기하 문제를 대수 문제로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데카르트는 기하 문제에서 방정식을 세우는 과정을 '분석(analysis)'이라 불렀고, 방정식을 풀어 원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종합(synthesis)'이라 불렀다.
데카르트 시절에는 유클리드에서 이어지는 논증기하의 방법론을 "종합적" 스타일이라고 불렀기에, 데카르트는 자신의 환원론과 수학을 연결하기 위해 "분석적" 기하학이라는 의미에서 "analytical geometry"라고 불렀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관점에서, 대수적 구조가 더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구조이며, 기하는 그것이 어떤 (잘 정의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몇 개의 변수에 관한 방정식으로 기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보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한소 개념과 무한 급수를 이용하는 데 실패했고, 그 당시 수학의 난제였던 접선 문제와 넓이 문제의 일반화된 풀이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아이작 배로 교수의 영향
아이작 배로(Isaac Barrow) 교수는 제1대 루카시안 수학 교수이면서 주전공은 그리스어였다. 이 당시에는 대학 커리큘럼에 수학은 마이너 과목으로 존재하던 시절이라, 수학 전공자보다 고전 전공자가 교수로 임용되기 유리했다. 그럼에도 아이작 배로 교수는 수학을 공부하였고, 루카시안 수학 교수로 재임용되어 수학 강의를 개설하였다.
배로 교수는 주로 논증기하 수업을 개설하였지만, 당시의 수학에 전혀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뉴턴 경께서 그에게 빌리신 책들을 보면, 그 당시에 가장 널리 쓰였던 수학 교재들이 발견된다. 이 책들은 대개 무한 급수와 지수/로그에 대한 문제들을 담고 있었다.
다만, 지수/로그에 대해서는 이미 뉴턴 경이 앞서고 있었고, 무한 급수에 대해서는 (주로 계산법이 연구되던 때라) 뉴턴 경이 이미 그 책들의 내용을 따라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적어도 기하학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사실, 데카르트는 좌표계 도입만을 보여준 게 아니었고, 논증기하는 뉴턴 경이 공부한 적이 없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학은 엄밀성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는 뉴턴 경께도 마찬가지였다. 경의 연구에서 지금은 기본적으로 배우는 해결가능성(solvability), 무한 급수의 수렴성, 극한의 존재성, 미분가능성 등은 보이지 않는다. 뉴턴 경께서는 후에 미적분 테크닉의 엄밀성에 대해 고민하셨으나, 정작 지금의 해석학으로 이어지는 아이디어를 남기는 데에는 실패하셨다.
배로 교수는 뉴턴 경께 논증기하를 공부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권유인지는 알려진 바 없으며, 이 에피소드 역시도 뉴턴 경의 노년 때 지나가는 얘기로 진술된 것이라 전후 스토리도 남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공리로부터 명제를 증명하는 방식을 뉴턴 경께서 이때 익히셨음은 확실하며, <프린키피아>의 원고를 작성할 때에도 이 스타일을 고수하셨다.
그러나 배로 교수가 단순히 논증기하 수업을 진행하고 책을 빌려주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뉴턴 경의 미적분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배로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많다. 배로 교수는 곡선을 점의 운동 궤적으로 취급하였고, 접선 문제도 대단히 짧은 시간 동안의 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로 접근하였다. 또한 넓이 문제에 대해서도 곡선 위의 점과 좌표축을 잇는 최단 선분이 쓸고 지나가는 것으로 보고 근사적인 계산법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뉴턴 경이 <프린키피아>에서 운동 문제를 기하 문제처럼 취급한 것도 배로 교수의 영향 아래에서 수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근데 이게 자연의 신비한 수학적 성질 때문일까? 라그랑주는 역학 문제가 기하 문제와 유사하다고 말하였고, 지금도 기하학을 역학에 응용하려는 시도들이 많다.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 FTC)는 미분과 적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정리이다. 이것은 다음 두 명제로 나타낼 수 있다.
정리 (FTC). 함수 f : [a,b] → R이 구간 [a,b]에서 연속이라고 하자. 그러면
(1) 함수 F 가 F = ∫ f dx (x ∈ [a,b])를 만족하면, dF/dx = f 이다.
(2) 함수 F 가 dF/dx = f 를 만족하면, ∫ f dx (a to b) = F (b) - F (a)이다.
뉴턴 경께서는 둘째 명제를 1665년에 증명하셨고, 첫째 명제를 1669년에 증명하셨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증명 자체는 어렵지 않다.
뉴턴 경의 기본적인 증명 모티브는 지금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당시 수학이 수학적 엄밀성보다 직관에 더 치중했음을 염두하면, 엄밀성에 결함이 있더라도 혼자서 자신의 미적분 테크닉으로 수많은 수학, 역학, 광학 문제를 해결하였음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끝내며
뉴턴 경께서는 혼자서 무한 급수 테크닉을 익히시고, 그의 스승 배로 교수로부터 논증기하와 무한소 개념을 배우셨다. 그리고 기적의 해에 미적분학의 제2 기본 정리를 증명하셨고, 그로부터 4년 후에는 미적분학의 제1 기본 정리를 증명하셨다. 이는 뉴턴 경이 다른 수학자들이 별개로 보았던 접선 문제와 넓이 문제가 사실은 서로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뉴턴 경께서는 그런 "신과 같은 정신력으로" 수학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역학과 광학의 문제도 해결하셨다. 그리고 그의 탄생 375주년을 맞아, 그의 수학은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를 어떻게 증명하셨는지를 간략히 정리를 여러분도 할 수 있을것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이자 뉴턴탄신일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1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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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엉덩이찰싹때려
달빛민들레
내엉덩이찰싹때려
달빛민들레
테플로탁슬
개정은 1500년대에 했는데, 뉴턴이 살던 영국이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인 게 1700년대임
따라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문제라 둘 다 맞다고 본다
달빛민들레
시카다
달빛민들레
시카다
달빛민들레
시카다
달빛민들레
달빛민들레
시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