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2)


#0 


 이런 독특한 분위기가 미친 영향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청교도 문학 가운데서 가장 널리 읽혀진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보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인공인 기독교인이 ‘타락한 도시’에 살고 있다는 각성을 하고 하늘의 도시로 순례를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은 뒤에 했던 행동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충분할 것이다.

 주인공은 처자식이 붙잡고 매달리며 말리지만 귀를 막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생명, 영원한 생명”하고 외쳤다.


-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길가메시여,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 주었지요.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 두었습니다.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밤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줄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안에 꼬옥 품어주세요. 왜나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 바빌론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1 


 잠시 눈을 감는다. 고민으로 부은 머리가 웅얼댄다. 녀석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뭔가에 중독된 탓이다. 약을 먹으려 일어섰지만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어제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약이 싫다면 물 한 모금이라도 마셔야지. 먼지쌓인 책상에 찐득한 검은때가 묻어있다. 상 위 불투명한 약봉지에는 하얀 알약이 들어있다. 다시 창문을 올려다본다. 틈 사이로 내리쬐는 빛이 눈을 아프게 한다. 눈을 감으면, 윤곽들이 없어진다. 빨간 어둠뿐이 보인다. 머리는 지근대다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어제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헤어졌다. 그러나 이 이별로 나는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ᅠ

"음.. 그렇지"


ᅠ"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좀 비인간적인게 아닙니까? 그렇게 나의 앞에 있는 모든 고난.. 그런것들이 나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준다고, 눈물흘리며, 비탄치 않고 기뻐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스스로를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나 보군."ᅠ

"예 저는 이상합니다. 모든 것들이 어설퍼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는 슬펐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슬펐던 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은 이 글을 우편으로 보낼 것이며 언젠가 누군가는 이 글을 읽게 될 것이다. 어쩌면 글감이 생기던 그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으니 난 사실 슬프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들 과일 먹어라.” 중독자의 방 안으로 어머니가 들어온다. 그녀는 상 위에 과일을 내려놓고 그를 붙들며 말한다.

 ‘넌 행복해서는 안돼. 그러면 멈춰버릴테니깐. 넌 더 크고 무서운 괴물이 되어야돼. 그만큼 너도 나와 같아졌으면 해. 네가 충분히 자랄때까지 네게서 행복을 유보한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지. 성장에는 끝이 없어. 삶에 지칠 수는 있어도 만족할 수는 없게 될거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방문을 닫고 나간다.


 ‘어머니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굳이 얘기하지 않아 주셔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창 밖의 싱싱한 사람이 그립다. 몸이 간지러워 그는 방안에 갇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새햐안 백지 위로 그림을 그리려 한다. 하지만 뭔가 그리려해도 그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늘도 습작만이 남았다. 종이뭉치가 바닥을 구른다.


 가득한 책장에서 한 권을 빼내든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채로 빙글빙글 돈다. 주위는 돌고 책만은 그대로다. 활자는 명령한다. ‘선은 긋는 만큼 제한한다. 내가 그 어떤 마음도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말한다. 입을 닫아라 아무도 변하지 않을것이다.’ 책장을 매운 저 책들, 난 태어난 이후 계속해서 책을 읽어왔다. 나는 본 것보다 읽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난 책의 내용을 암송할 수 있으며 누구보다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다.


 ‘내가 사랑하던 너는 그때의 너지 지금의 너는 아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난 계속해서 그때의 너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너는 아니다.’ 나는 약을 먹으려 의자에서 일어난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 것이고 난 슬프지 않았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알약이 목을 긁으며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꿈속에선 현실이 뒤죽박죽 섞여 나타난다. 가족의 소중함 비극 과외 돈 피. 결박당한 아버지의 죽음과 냉혈한 어머니의 무관심한 외도. 가정부 아주머니의 자살. 나는 철문을 씹어먹고 들어갔다. 창문 밖 난자한 피와. 도깨비망토. 라쇼몽. 돈 돈 돈 그놈의 돈. 난 흐느끼며 짐승처럼 헐떡이며 잠에서 깼다. 부르주아 가정의 비참한 몰락. 몸을 억지로 잡아끌어 문안으로 들어서려 했으나. 그 곳에 돈이 있었다. 돈 돈 그놈의 돈. 찐득해보이는피. 울음과 눈물.



[광탈] 마광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1개의 댓글

2015.10.25
넌 내 눈알을 뽑을 생각이냐...안구 수집가여 뭐여!? 글씨 크기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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