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삭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두 해 전에 처음으로 즐긴 비주얼 노벨 '우리 언니, 사실은 오빠에요.'의 베스트 리뷰였다. 생전 야겜이나 비주얼 노벨은 할 생각도 없었는데, 게임 커뮤니티에서 많은 추천글이 올라옴으로써 화제였다. 올라온 글의 감상평은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내 안의 중요한 게 빠져나가는 게임이다.'. 다들 성적 자극이 남성 호르몬을 펌핑시킨다는 늬앙스로 알아듣고 구매하였지만, 이승에 미련이 남은 망자들의 사연이 다 비슷하듯 이들 또한 비슷한 평이 남겨졌다. 미연시라면 마지막으로 해본 게 내 중학생 시절인데. 그때가 13년 전이니. 13년 묵힌 야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호기심에 아래 주머니가 불끈해지면서 게임을 구매한 게 화근이었다. 옆집 소꿉친구와 10년만에 만난 주인공이 그녀와 썸을 타는 이야기. 사귀듯 말듯 관계 속에서 친구의 언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도 애정어린 관계를 맺지만 알고보니 남자라는 쉽게 접할 스토리였고. 소꿉친구와 언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멀티엔딩이 지원되지만, 일러스트와 사운드가 평범해 이게 회자될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일 핵심적인 장면.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만큼은 실제 거사를 치르는 고양되는 기분과 흥분되는 감정, 곁에 있는 것과 같은 보드라운 여자 가슴의 살갗, 운동을 할 때 살짝씩 풍겨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는 은은한 땀냄새와 그녀 특유의 향기 등이 느껴졌다. 분명 허구인데, 실체가 있는 대상 같았다. 뭐에 홀리듯 일을 치르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입방아처럼,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곧 깨달았다. 그 게임에 매료 되었다는 걸.
그 이후 게임 제작사에서 후속을 내지 않고 소식도 없는 체 2년이 지났다. 신년을 두 번 볼 동안 아직까지 심심하면 그 게임을 켰고, 굳이 거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플레이했다. 이제는 단순히 야한 게임을 떠나, 내 안의 신념이나 목표와 같은 핵심적인 무언가로 자리잡았다.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취미로 아침 새벽에 작은 공원에서 러닝을 시작으로 틈틈이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못해보았던 게임들을 플레이 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직 경력과 포트폴리오, 자기소개서 따위를 정리 중이라 공고는 뒤져보지도 않았는데, 메일에 익숙한 회사명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소프트서큐버스'. '우리 언니, 사실은 오빠에요.'의 제작사였다. 1년 전에 후속작에 대한 문의를 한 적은 있었는데, 답변은 없었다. 그거에 대한 메일이 이제 온 것일까? 호기심에 열어보니 문의 했던 답변이 아닌, 작가를 구한다는 공고였고 내 이력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사에서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면젭을 제안하는 형식적인 메일이었다. 업계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도 못했고, 아직 커리어를 수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면접 제의를 하는거지? 의문과 경계심이 함께 나타났지만, 건재함과 동시에 후속작을 준비 중이라는 안심감이 들면서 면접 제의를 수락하였다. 내일 모레, 15시 30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인 동네였다.
"그래서, 요즘은 서큐버스가 먹고 살기 힘들다고요?"
한숨을 푹 쉬며 울상을 짓는 그녀는 내 물음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짜 먹고살기 힘들어..."라는 말을 되풀이 하더니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예전보다 먹고살기 좋지 않아요? 앱도 많아졌고, 남자 꼬시기도 쉽고."
"너가 몰라서 그래. 봐봐. 앱 있지? 그것도 초반 반짝이었어."
"이제는 매칭 좀 하려면 돈을 내야해. 결제 안 하면 매칭도 안 잡아줘. 이런 일련의 수고 끝에 만나잖아?"
"그럼... 수지가 안 맞아. 적어도 세네발은 빼거나 좀 알맹이 든든해야 하는데, 얘들이 실속이 없어.
하자있는 건 아니지만, 금액에 맞지 않는 품질이랄까?
진짜 굶어 죽기 전이 아니라면 굳이 안 해."
서큐버스는 그저 남자의 정기만 가져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기에도 품질이 있나보다.
하긴, 한우도 A가 끝이 아니라 A++이 있는데.
"그러면 꼬시는 건요? 원하는 대상 만나서 유혹 좀 하고 그러면 되지 않아요?
서큐버스면 매혹? 그런 거 있잖아요."
"이거 찐따 아니랄까봐 또 모르네.
정기의 품질은 남자의 건강에 연관이 있어.
상위 티어의 남성일수록 건강과 외모에 신경이 쓰이지."
"그러면, 꽃이 먹음직스러우면 뭐가 꼬여?"
"벌이요?"
대답에 여자는 내 허벅지를 두번 타악 탁 치며 웃기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미친 발정난 벌이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이미 그런 남자 주변에는 벌집 단위로 있어요.
근데 그게 또 말벌이야.
서로 기싸움에 SNS 탐색하고. 치정싸움은 멀리 있지 않다니까?"
"매혹? 그래 매혹. 근데 그거 쓰잖아?
걔들이 가만 있을 거 같아?
그냥 남자를 자빠트려서 뽑아내.
석유는 한 곳에서 나는데, 시추는 막 다섯개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렇게 서로 달려들면 정기도 쓸 게 못 돼.
한 번 먹고 끝나는 거야.
그러려면 결국 공식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서큐버스가 미쳤다고 그렇게 하니?"
"그래서... 야한 게임에 마력을 넣었다고요?"
"그래! 진짜 배 쫄쫄 굶으며 그날도 골드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지....
그러다 길드원이 유급생? 해봤냐고 하더라고?"
"이번에 리메이크 나왔다고.
꼭 해보라는데, 찾아보니 뭔 이상한 춘화야.
요즘 새끼들은 남성성이 퇴화해서 이런 걸로 욕구를 해소하나 생각했어, 나도!"
"근데 감동이 있는 거야.
절절한 스토리와 감정 묘사로 이게 야한 게임이란 생각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로 생각했지.
그러다... 미츠코가 하나다를 위해 시험지를 바꿔치고 이걸로 유급이 확정되어
둘이 껴안고 울다가 서로 입을 맞출 때...."
한참을 말하던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이내 풀고는 올라갔던 눈썹과 즐겁게 종알거리던 입술이 잠잠해지더니, 검은 색이었던 동공이 노란색으로 물들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이거다. 생각이 들었어.
이제 정기 흡입에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언제까지 남자 정기 빼앗으려고 발품 팔아가며,
인간 여자랑 서로 쌈박질이나 하는 시절은 이제 끝났다고.
이제는 온라인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러면... 리뷰에 올라온 그 뭔가가 빠져나갔다는 건...?"
이상하다. 이년은 미친 게 틀림없다. 제정신 아닌 줄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 고혹적인 목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너희가 빠져나갔다고 생각한 건, 그 알량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진짜 정기야.
너희의 힘이요, 생기이자
진짜 생명말야."
잘못됐다는 판단이 들고 어떠한 변명으로 이 제안을 거절할지, 그리고 이 미친 면접을 후기로 커뮤니티에 올릴지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 결정적인 제안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후속작을 또 만들어야 해.
전작은 이제 흡수되는 정기가 너무 적거든.
차기작의 시나리오, 당신이 만들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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