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알려진 비극



 “저는 검술을 가르칠때,"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기고,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사내가 가볍게 검을 피하면서 말했다. 요운 이언의 찌르기 공격은 이어 하단 베기로 이어졌고, 중년의 사내, 시리오는 예상하기라도 하듯 그 공격을 뛰어 넘은 뒤, 다가온 그의 어깨를 밟고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아 다시 거리를 벌렸다.


“배우는 이의 가능성을 판단할 때, 딱 한가지를 봅니다.”

“그게 뭐지?”


이언의 얇고 날카로운 칼날은 재빠르게 시리오의 목을 노렸고, 가볍게 허리를 젖혀 피한 시리오는 동시에 이언의 팔을 가볍게 차올려 이언이 검을 놓치게 만들었다.


“말을 듣느냐 안 듣느냐죠.”

“그럼 가능성이 좋은 쪽은 어느 쪽이지?”

“어떤 쪽인 것 같습니까?” 시리오가 공손하게 검을 건네며 물었다.

“듣는 쪽이 아닐까?”


시리오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부정의 의사를 표하고 말을 이었다.


“말을 안 듣는 쪽이 보통은 높은 수준까지 도달합니다.”

“왜지?”

“보통 말을 안 듣는 쪽은 자기 생각이 확실하게 있는 놈들인 경우가 많더군요.”

“하지만…” 이언이 다시 자세를 잡으면서 말했다.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잖아? 그건 그냥 고집 아니야?”

“검술에 있어서는…” 시리오가 연습용 목검을 빼어들고 말을 이었다.

“맞다 보면 고집은 꺾이기 마련이죠. 하지만 생각은 꺾이지 않습니다. 올바르게 자랄 뿐이죠. 틀린 생각은 없습니다. 미숙한 생각만이 있을 뿐이죠. 도련님은 너무 정답만을 찾으려고 하십니다.”

“그런가?”

“3년 동안 사사받으시면서 한번도 절 맞춘 적이 없지 않습니까. 왜 그런지 생각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실력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있지요. 하지만 실전에서 상대를 꺾는 것은…”


시리오는 말을 마치지 않고 곧바로 목검을 내질렀고, 유려한 몸짓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거두고, 찌르고 들어오고, 긋고 자세를 고치고, 공격과 동시에 다음 수를 생각하는 움직임이 바로 시리오의 스타일이었다. 몇 번 공격을 받아내다보면 자연스럽게 급소에 검이 올려져 있다. 이렇게 되기를 알기라도 했다는 듯 공격하는 시리오의 눈은 항상 고요했다.


“나의 강함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입니다. 실수의 원인은 여러 군데서 나오죠. 실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입니다. 도련님은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검술은… 교양 같은거라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은 항상 반박을 불러오고, 정답은 반박과 합쳐져 다시 답이 됩니다. 그 끝없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검술입니다.”

“그거 경영학에서 말하는 파괴적 혁신 이야기 하는거야?” 듣던 중 반갑다는 투로 이언이 이야기하자, 시리오가 살짝 웃으며 답했다.

“만류귀종이라지 않습니까? 기왕 하시는 검술, 의미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리오는 가볍게 목례한 뒤 수업의 종료를 알렸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지시로 운동 삼아 시작한 검술에서 이런 가르침을 얻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이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새뮤얼은 언제 왔는지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보고회의에서는 특별한 일 없었어?”

“다른 건 문제 없었는데.. 이전의 공장 폭발 사건 있잖습니까,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모양입니다.”


이언은 수건으로 땀을 꾹꾹 눌러 닦아냈고,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 난 뒤의 상쾌함에 개운함까지 더해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새뮤얼은 더러워진 수건을 받아들고 이언과 맞춰 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람이 꽤 많이 죽었는데, 그날 따라 또 인근 고급학교에서 공장 실습이 있었답니다.”

“고급학교?”

“네.. 일반적으로 졸업 후 근로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밟는 학생들이라..”

“안타까운 일이네… 대처는 잘 되고 있어?”

“일단은 잘 되고 있다고는 하는데…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꺼림칙한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꺼림칙한 구석이라고?”

“예, 이전에 공장 시찰 나가셨을 때도 그렇고… 저희가 파악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도는 어때?”

“보도는 문제없습니다.”

“정부쪽은?”

“별 반응 없습니다. 딱히 정부와 관계없는 사건이기도 하구요.”

“타 공장 가서 원인파악 확실히 하고 재발 없게 하고 또… 학교 학생들 죽은거에 대해서 좀 알아봐. 그리고.. 음.. 내가 얘기 안해도 알아서 다 뭐 해야 하는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새뮤얼은 다른 시종에게 이러저러한 지시를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다른 시종이 엘레베이터를 작동시키고, 복잡하게 설계된것처럼 보이는 계기판이 돌아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며 이언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              #              #


수도 엘 수를 둘러싸고 있는 예고인(Yeggoin) 지방, 메소 기업 소속의 나우냇(Nownad) 공장. 공장장 삭원 무관(Sag’won Mugwan)은, 안펙 공장 폭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쥴스(Joules) 녀석 꼼짝 없이 죽었겠군.. 끌끌…”

“공장장님! 사구언 공장장님!”

“뭐야?”

“보..본사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누구?”

“새뮤얼 총무이사님이..”

“올 것이 왔군…”


삭원 공장장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구두로 갈아신고, 최대한 헐레벌떡 나가는 양 공장장실을 나섰다. 곧이어 수행원과 함께 온 건장한 체구의 중년 흑인 남성을 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묘사하던 메소 기업의 실세, 새뮤얼이 바로 저사람이구나... 검둥이로 성공하기 힘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새뮤얼은 간단히 목례로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공장장실로 가서 말씀 나누시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삭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검은 피부가 평소에 그로 하여금 떠오르게 했던 건 천박하고 더러운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그 검은 피부 모두가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제길… 검둥이 따위에게 이렇게 긴장하다니...’ 라는 생각을 하며, 폭발 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 미리 정리해뒀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공장장실 상석에 새뮤얼을 앉히고, 미리 정리해둔 정보를 묶은 서류철을 꺼내면서 삭원 공장장은 말했다.


“왜 오신지는 짐작이 갑니다.”

“그렇다면 말해보게. 왜 공장이 폭발한 건가?”

“....모르십니까?”

“왜 내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건….”

“마력로에 과부하가 일어난 것이 사고가 아니었나?”
“지난 3개월동안 가동률을 늘리라고 본사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만.. 총무이사님은 모르셨습니까?”

“알...고 있었네만…”


새뮤얼은 그제서야 머릿속에 뭔가가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삭원 공장장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본사에서 가동률을 올리라기에, 위험성 보고를 올렸는데 받지 못했단 말인가? 중앙 보고계통에 당연히 올라가야 할 보고 아니었나?’

“위험성 보고는 언제 했나?”

“가동률 지시 받자마자… 영업부, 총무부 유관으로 올렸습니다만..”

“... 우리부서로?”

“예.. 가동률 지시는 아시다시피 영업부에서 왔구요.. 공장 위험성은 자산관리와 관련있기 때문에 총무부도 참조로 보냈습니다만..”

“난 받아본 적 없는데 확실한가?”


삭원 공장장은 준비한 서류를 뒤적이며 보고서 사본을 보여주었고, 분명히 결재 라인에는 총무부도 찍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왜 이 공장은 터지지 않았지?”

“아시다시피 단순히 가동률과 인풋이 늘어난다고 해서 마력로가 터지진 않습니다. 물론 너무 험하게  공정을 굴리면 사고가 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일반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공정이 정지되도록 설계가 되어있는데..  왜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이 공장은 문제가 없나?”

“몇 번 가동이 정지가 되긴 했었습니다. 가동률을 올린다고 해서 생산량이 늘어나진 않는다고몇 번을 건의를 했는데도 묵살되더군요.. 총무이사님 이대로는 공장만 상합니다.”

“자네 혹시 본사에서 일한 적 있나?”

“모르시지 않습니까? 이사님이 모르시면 없는 거지요..”

“알겠네. 혹시 안펙 공장 쥴스 공장장에 대해선 아는가?

“킨(Keen) 공장장입니다. 안 푸스(An Pus) 출신이고.. 그쪽에서 사업부 상무하다가 좌천되서 이 자리 저 자리 흐르고 흐르다 공장장까지 간 인물입니다. 그렇게 모범적인 회사생활을 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인물이죠.. 본사 출신도 아니다 보니 마지막 자리라는 인상이 강했죠….”

“사고 내기 딱 좋은 인물이었군.”

“사실 그렇습니다… 공장장 되고 1년만에… 위안이라면 아쉬워  할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정도가 되겠네요..”

“가족이 없나?”

“예… 뭐 상무까지 오르긴 했지만 능력으로 올랐다기보단...”

“사내정치인가?”

“줄을 잘 댔죠.. 밑에서 ‘줄의 쥴스’라고 비아냥 댈 정도였으니까요”

“그 줄은?”

“회장님 돌아가시고 피바람 한번 불었지 않습니까.. 그때 정리됐습니다.”

“알겠네. 공장 점검 한번 하고 돌아가겠네.”

삭원 공장장은 전화기를 들어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불렀고, 그 모양을 멍하니 보면서 새뮤얼은 수집된 정보들을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자기 몸통만한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그는 눈짓으로 여기에 두면 되냐고 공장장에게 물었고, 통화중이던 공장장은 거기다 두라는 몸짓을 했다. 그는 낑낑거리며 상자를 탁자 위에 두었고, 주섬주섬 포장을 풀었다. 새뮤얼은 그 상자를 보고 물었다.


“그게 뭔가? 처음 보는 기계인데?”

“라디오라는 기계입니다. 판매꾼이 이야기하길 저희 회사 관련 소식이 나온다고 해서…”


어느새 통화를 마친 삭원이 말했다.


“우리 회사겠지..그나저나 나온다니? 이 기계에서 신문이 나온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소리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소리가?”


삭원은 설명서를 펼쳐 들고 한참 동안을  기계를 만지더니, 이윽고 뭔가를 제대로 건드린 듯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새뮤얼은 그 괴음에 미간을 찌푸렸고, 삭원의 손길은 당황한 듯 더 바빠졌다. 희미하게 뭔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조그다이얼을 돌리던 삭원의 손이 느려졌다. 괴음은 점점 형태를 갖추더니 말이 되었다.


“......... 근, 안펙 공장 폭발 사건에 대한 증언이 잇따르면서, 메소기업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정황은 속속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은 한 시간 뒤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정의와 진리의 소리, 자유청년연합 알리미 바이였습니다.”


조그다이얼을 잡고 있던 삭원은 주먹을 꽉 쥐고 조용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새뮤얼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고,  그 광경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어야 하는 죄 없는 직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공간 속에 난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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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성실연재 하고 싶은데 전개가 느려지는 부분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쓰는 속도도 느려져


좋은 반응 감사해 그럼 다음 화에서 만나 안뇽

1개의 댓글

오올 불이 좀 붙기 시작하는 듯?

그런데 --그렇게 모범적인 회사생활을 했다고는 보기 운 인물이죠--

보기 어려운 인물이죠 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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