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빛나지 않는 별

문득 바라본 탁상 시계가 오후 4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 시간이 아닐 텐데 라는 생각에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사물이 정지한 듯 멈춰있는 초침만 보더라도 잘못된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망가진 시계였다.

건전지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부품이 고장 난 것일까? 뭐가 됐든 시계로서 기능할 수 없는 것은 확실했다. 고칠 수 없다면 쓸모가 없어 버려야 할 테다. 더는 시계가 아니라 쓰레기일 테니까.

그런가...... 시계로 작동해야 할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면 더는 시계가 아니구나. 그렇담 사람은 어떨 때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게 될까?

부족한 나에게도 최근 몇 번 소개팅 제의가 있었다. 딸의 회사 언니 만나볼 생각이 있냐, 조카 아는 사람 만나볼 생각 있냐, 30살 공무원 소개받을 생각 있느냐. 감사하지만 나는 모두 다 거절했다. 이 얘기를 주변 사람과 대화하다가 전하게 되면 다들 의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보라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내 나이 30대 초반, 이 시기 직장인이라면 많이들 소개받고 만나 보곤 한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소개를 받지 못하겠다. 나는 사람이 무섭고, 관계가 두렵고, 세상이 겁난다. 난 망가진 시계였다.

생태계에서 도태는 죽음을 뜻한다. 죽음, 말 그대로 생이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도태란 생의 마감을 뜻하진 않는다. 대신, 인간 관계망에서의 소외를 뜻한다. 바로 살아 있는 시체, 산송장을 뜻한다. 어떠한 측면에선 인간 사회가 참으로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힘 없고 약한 자들을 챙기는 관계망은 없다. 전해줄 이익이 없는 사람을 챙기는 관계망은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다. 나조차 엮이고 싶지 않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런 현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잔인하다. 잊혀지고 소외된다.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인간적 도태는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중학생 때 같은 반 17명의 여자 아이들 대부분을 좋아했었다. 사람은 각자의 매력이 있고, 고유의 매력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 나는 대부분을 좋아하게 되곤 했다. 사실 이는 성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동성도 만나보면 그 사람의 매력을 느껴서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은 각자 고유의 색깔을 지닌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더 큰 비수가 되어 나를 갈기갈기 찢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색이 없는 백지로 느끼기 때문이다.

백지. 아무런 색이 없다. 나는 매력이 없다. 나는...... 매력이 없다......

이성과의 만남이든 인간 관계망 속에서의 관계이든 그 궤만 다르지 본질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모두 각자의 색을 발산한다. 고유의 매력을 드러낸다. 서로의 것을 확인하고 맞춰보며 알아간다. 하지만 색깔이 없는, 매력이 없는 나는 나를 드러내기가 두렵다. 서로의 것을 맞춰보기가 무섭다.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가 없는, 인간 관계망에서 축출된 나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남자니까 고유의 색이 더 짙어야 한다. 더 밝게 빛나야 한다.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남자니까.

자신의 빛을 더 밝게,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빛을 밝혀나가면 필시 없던 매력도 생겨난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하지만 나는...... 색이 없는 나는, 더욱이 빛을 밝힐 자신이 없기에 두렵다. 이 험난한 세상에 내 빛을 잃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극복하고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나를 집어 넣지 않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망가진 시계, 산송장, 인간적 도태 이것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다.

살아는 있지만 잊혀진 존재, 생을 이어가지만 인간적 죽음이 선고된 존재. 시간을 흘려보낼 순 있어도 시간을 소비할 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두렵고 막막하다. 잔인한 세상. 잔인한 세상 속에서 나는 끝없는 소외감과 고독감에 빠져 걸음을 멈춰 섰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이 글쓴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저 살아만 있는 나는 시간을 소비할 수 없기에 멈춰진 초침이 변화가 없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도 나라는 존재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1개의 댓글

2022.12.02

색 하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 소설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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