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모든 게 가벼운 때

 죽음이란 말이 너무나 가벼워 일곱살 때에도 농삼아 가볍게 말하던 나는

계란 한 판 만큼의 나이가 되자 이제 죽음은 삶의 목표가 됐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족에게 떨어져 자취를 시작했고, 처음 사들였던 가구들도 하나 둘씩

정리하여 언제 떠난다 한들, 남은 사람들이 처리하기 쉽도록 가벼운 물건들만

공간을 차지하도록 놔뒀다.

 10년. 내가 다닌 회사의 길이는 10년이었다. 자로 재면 까마득한 63빌딩이요,

리터로 확인하면 저 보이지 않는 깊숙한 동해바다 어딘가 쯤 이리라.

그 길이만큼 살았음에도, 나에게 남은 건 입에 풀칠할 정도 밖에 없는

생활비 정도와 다음으로 이사갈 월세 보증급 정도이다. 내가 죽음을 가볍게 여기듯,

이유도 하찮다. 그렇게 난 잠을 자듯 죽음을 생각한다.

 매일, 직접 내 목을 조르기 무서워 잠을 자다가 조용히 갔으면 어떨까 소원을 빈다.

혹은 불치병에 갑자기 걸려 손도 못쓰는 건 어떨까. 그럼 그때 나홀로 여행을 떠나는거야.

그리고 조용히 죽어야지. 빵집을 지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1년 6개월 뒤, 가는 거야.

전세 계약도 끝날 시점이고, 뭐든 게 마무리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 딱 좋았다.

봄에 태어난 내 생일에 맞춰 봄에 가자. 따뜻하니 기분 좋겠지. 추위에 떨며 가기는 싫으니까.

 그렇게 1년 6개월을 곱씹으며 그날 하루를 버티던 날에 

 

2개의 댓글

2022.11.02

그 언젠가 “10년 살았으면 오래 산 거지” 라며, 철없게 세상 다 산 어른들 흉내를 내던 즈음이 있습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 어느 몇이나 진지하게 그 놀음에 어울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때에 저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지요.

 

한편 고등학교 시절에는 첫머리부터 스무 살로써 삶을 끝내자고 다짐했던, 3년 여 어치 일기 겸 유서를 쓴 적도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끝낸다면, 채 꽃피우지 못한, 가능성 많았던, 그 나이에 가기엔 아까웠던 이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이 삶의 고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그 모든 끝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럭저럭 살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파괴적인 생각들이 지나간 지금에도, 저는 가끔씩 스물 일곱살 정도가 삶의 끝자락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천재는 스물 일곱살에 죽는다지요?

 

그 나이에 끝낸다면 그나마 먼저 간 사람들 틈바구니에나마 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 원해서 태어난 삶이 아닐진대, 그 끝은 내 뜻대로 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입니다. 아직도 철 없을지는 몰라도, 가끔 드는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나이에 이르르면, 또한 지금처럼 이럭저럭 살고 있겠지요. 또 다른 어느 마지막의 즈음을 생각하면서요. 그 때에, 그리고 지금에는 차마 생각지 못한, 다른 곳에 서서 말입니다.

 

누구나라고 할 순 없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삶에 빗금을 긋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고, 그 날의 글쓴 분이 그랬고, 다른 먼저 간 모든 이들이 그랬듯 말입니다.

 

그럼에도 늙어죽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어쨌든간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겠죠. 그 삶에 만족했던, 아니면 체념했던 간에요.

 

그 형태야 어찌됐건, 삶에 빗금을 그어둔 이들이, 또 다른 어딘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그럼으로써 새 빗금 그을 곳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찌됐건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목숨줄은 질기디 질긴 것 아니겠습니까? — 직접 해보니 질긴 것을 끊어 없애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랍니다.

 

그런 질기고 긴 삶, 공연히 힘 뺄 일이야 없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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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J
2022.11.03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했던 너는 죽음이란 말을 농담삼아 입에 담곤 했었지

그 의미를 모르던 꼬꼬마 너였지만 그 말이 와닿게 너는 용기있는 아이였어

그런 꼬맹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지금은 자기 앞가림도 할 줄 아는 꽤 든든한 어른이가 되어버렸네

누구나 겪는 힘듦이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그 무게를 스스로 더 무거워 할 필요는 없을진데,

그럼에도 너무 무겁다면 괜찮아, 내게 어리광 부려도 지금은 그때의 꼬꼬마처럼 응석을 받아줄게

누가 그러더라, 사람은 누구든 언제든 죽으니까 그 순간을 자신이 정하겠다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어

그러니 너의 마지막을 너가 정해도 괜찮을 것 같아

다만 그 순간이 홀로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얼어붙은 땅이 사르르 녹으며 따듯한 봄볕에 꽃 피는, 너가 태어난 그때처럼

1년 6개월 뒤에 너의 모습이 너 스스로 만족할만 한지 나는 모르겠지만, 네 옆에 활짝 핀 분홍 매화 한 송이가 놓여 있을 거란 것은 알아

왜냐면 봄바람에 기대어 졸고 있을 너의 옆에 내가 갖다 놓을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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