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느시

가진것이 없을수록 불안을 덜어내려 말이 많다. 그녀는 잠깐 나갔다. 창 밖엔 비가 나리는데 소나기인듯 했다. 나는 어둠을 더듬었다. 손 끝 지문의 홈 사이로 석탄가루 같은 어둠이 묻어났다. 완연히 나를 달랬다. 지금 이 순간 외로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시달리는 내게, 이것은 순간의 느낌일 뿐 결코 영원한 아픔은 아닐것이라 일러주었다. 그러자 나는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 진정하였고. 이내 부드러운 면 이불의 감촉이 피부에 미끌리는것을 느끼며 이부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내렸다. 물은 천천히 끓었으며 장판은 눅눅한 냉기를 내뿜었다. 발바닥에 모래알이 거슬렸다. 등줄기엔 가끔씩 소름이끼쳤고 벼락도 몇 번 내리친듯했다. 빛이라곤 먹구름 사이에서 가끔 어나오는 달빛뿐인 방 안이 점멸하듯 훤해졌다 다시 단숨에 어둠에 잠겼다. 나는 잔을쥐고 밖을 응시하다(밖이라고 해도 가로등 불빛 뿐이었다) 다탁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탄 원두의 쓴 커피맛이 목구멍을 넘어가며 온기를 불렀기에 아랫입술을 핥았다. 거슬거려 살아있었다.

이내 잔이 식었다. 피어오르던 연기가 멎기 전 까지 달 아래 선 듯 했고, 내부지만 외부인듯했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비가 몸을 때렸다. 몸이 눅눅히 젖고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껴 기쁘게 울었지만 습윤했다. 제습기가 가동되며 내는 소음이 작은데도 요란하여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울고싶었으나 손바닥은 건조했다. 미묘하게 웃었다.

얼마간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으나 내게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기에 나는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그녀가 내 말에 답하였지만 정작 나는 어디까지인지 듣지 못했다. 다만 환청처럼 들렸다. 고양이가 가끔 우는 소리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귀앳가에 들린 듯 했다. 무섭고 두려둬 거울을바라보니 얼굴이 부었다. 알고보니 살이 찐 쉬운 이유인데 이처럼 남는것이 없었다. 현실이 무서워서 등을 돌리면 무섭게 사실만 남는다.

나는 소름이 끼친다. 유리를 밟은듯 깊은 창상에서 진득한 피가 쏟아질 때 비린냄새가 나면 나는 얼른 거즈를 덧대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수채구멍을 피로물든 수건 4장이 덮고있을땐 빨래 걱정을했다. 도대체 어떻게 빨아야하지, 삶아아햐나. 생각하며 119를 부르겠다고 말했고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거절이었다는 것 만큼은 기억한다. 나는 이제 조금 지친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새의 이름이 생각난다. 언제인가 들어서, 언제인가 검색해보았고, 언제인가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내게 물었다. 동물원에 가면 그 새를 볼 수 있느냐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멸종위기 종이고 철새이므로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다고 답했고, 연이어진 그럼 어딜가면 그 새를 볼 수 있느냐는 그녀의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보러 갈 것도 아니고 봐도 그다지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그랬는데. 느시였다. 본 적도 없고 볼 이유도 마음도 없지만, 부르는 발음이 좋아서 머리속에 오래 이름이 남는 새의 이름은. 느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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