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바람과나라 : 이고갱] 6화. 장터에서 데이트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제 6화
        장터에서 데이트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저 59단이 됐어요..."
서유는 몸을 타고오르는 금빛 휘광을 보며 말했다.


"오~ 축하해."
어느새 말을 놓은 태환이 축하해주었다.


"이상해요. 저 승단한지 1주일밖에 안 됐는데."
예진은 가을뫼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 그건..."
"내가 천제의 축복받은자라서 그럴 거야."
예진이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태환이 먼저 대답했다.


"네?"
"엣?"
예진은 태환이 대뜸 그렇게 말해 버리자 당황했다.


"나도 정확한 명칭은 몰랐었는데, 여기서 그렇게들 말하는 것 같더라.
 나랑 있으면 레벨... 아니 승단이 빨라."


"... 정말요...?"
서유는 태환과 예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예진은 실은 다른 이유를 대려 했지만 포기하고 솔직히 말했다.


"그래 사실이야. 나도 같이 사냥하면서 굉장히 빠르게 승단하고 있어."
그러곤 힐끔 태환을 쳐다보았다.


"이거 비밀로 해 줄래? 괜히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좀 귀찮아질 것 같아서."
태환이 입가에 검지를 올리며 말했다.


"네...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세 명이서 사냥을 하자 평소보다 몹들이 더 많이 나왔고, 레벨업도 하고 도사의 힐을 받는
태환은 그전보다 훨씬 강해서 [투혈영식 -마염시]한 방에 두 세 마리의 자호들을 잡으며 엄청난 속도의
사냥을 이어갔다. 


서유의 등장으로 예진의 포지션이 조금 애매해졌지만 예진은 서유가 동동주를 마시느라 힐을 못 해주는
시간을 주술사의 회복마법으로 메워주었고 또 태환과 서유가 가까운 자호들을 잡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나는 자호들을 몰아오는 역할도 잘해주었다.


 다음날부터 서유는 매일 아침 자호굴 앞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자연스럽게 셋은 계속 같이 사냥을 했고 4일 만에 서유는 61레벨, 태환과 예진은 52레벨이 되었다.


그 4일째 오후, 사냥과 정산을 마치고 예진은 서유와 주막 근처 도랑에 다녀온다고 했다.


"그동안은 목욕다운 목욕을 못 했는데, 같은 여자 일행이 생겼으니까 같이 멱 좀 감고 올게요.
 기다렸다가 저녁같이 먹을래요?"


"배고픈디... 해지기전엔 돌아오는 거야?"
"그럼요!"


태환은 그렇게 둘을 보내고 혼자 먼저 주막에 왔다.


오랜만에 이른 저녁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태환은 방정리와 소지품 정리하기로 했다.


'어디 보자 돈이 총... 8500전쯤 갖고 있네. 흠 아무래도 그룹 사냥만해서 그런지 돈은
 빠르게 안모이는구나. 이렇게 매일 주막에서 숙박비 내며 살게 아니라 집을 마련하면 좋겠는데...
 여기 읍루성은 변두리고 발전도 덜된 것 같아서 좀 그러니까, 동부여성이나 부여성으로... 
 근데 거긴 수도니까 땅값, 집값이 비싸겠지?'


그런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마침 주모가 주막 복도를 지나 태환의 방 앞을 스쳐 갔다.


"엇, 저기, 주모!"
"네?"


"혹시 부여성이나 동부여성 쪽 집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아요?"


주모는 손가락을 턱에 대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음... 그거야 워낙 위치나 집마다 천차만별이라 딱 이렇다는 힘들지만, 
 동부여성이라면 싼 집은 50만전에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부여성은 아무리 싸도 100만전은 넘을 것 같네요."


주모는 대답해주고는 태환을 빤히 쳐다 봤다.
"왜요? 혹시 이제 주막에서 나가시는 건가요??"


"아뇨, 지금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걸요. 하하하."


"휴우... 모험가님이 계셔서 참 든든 해요. 나중에 집을 마련해서 나가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전까지는 여기 계셔주면 좋겠어요."
주모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젊고 예쁜 주모가 이렇게 말하다니, 나 요즘 불안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거 아니야? 
 아냐 아냐, 당연히 손님은 붙들어 두려고 하겠지. 정신 차리자 김태환.'


"네. 당연하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주모는 싱긋 웃고 지나갔다.


'하... 이곳에 와서 하루도 안 쉬고 사냥을 했는데 돈을 이것밖에 못 모았다라.. 좀 지치는걸...
 내일은 하루 쉴까...'


잠시 후 노을이 질 무렵 뽀송뽀송해진 예진이 주막으로 돌아왔다.
"서유도 데려와서 같이 밥 먹으려 했는데, 집에 돌봐야 할 동생이 있다고 해서 못 데려왔어요."


"호오, 서유가 동생이 있구나, 그 나이에 동생을 돌본다고 저녁도 거절하고, 기특한걸."


"그쵸? 참 소심해 보였는데, 또 은근 강한구석도 있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너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돼?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없네."
태환은 주모에게 국밥을 주문하며 예진에게 물었다.


예진은 질문을 듣고 잠시 가만히 태환을 바라보곤 대답했다.


"동생이 하나 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구, 어머니가 동생을 키우고 계세요."
"아... 미안."


"아니예요. 뭘... 요즘 같은 세상에 어머니라도 살아계시는 게 다행인걸요. 가을뫼씨는요?"
"..."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음....'


"나는 형이 한 명 있어.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셨지만 너무 멀리계시고..."


"비슷하네요."
둘은 잠시 조용히 막 나온 밥만 먹었다.


"근데 요 앞에 어디로 가서 씻은 거야? 나도 제대로 목욕 좀 하고 싶은데."


"헹. 제가 간 곳은 여자들만 가는 곳이라 비밀이구요. 아까 가는 길에 보니까 요 바로 앞 
 강줄기로 가는 냇가 같은 데서 남자들이 씻고 있던데요?"


"우리 내일은 하루 만 쉴까?"
태환이 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왜요?"


"우리 여태껏 거의 하루도 안 쉬고 쭉 사냥만 해왔잖아. 하루 정도는 쉬고 정비하는 게 어떨까 싶더라."


"흐음... 하루 쉬긴 했지만, 그것도 그러네요. 그런데 그러면 내일 서유가 아침부터 기다릴 텐데."


아 그렇겠네...


"아... 그러면 내일 아침에 자호굴에 들려서 서유보고 하루 쉰다고 하자. 난 내일 목욕도 길게 하고
 하루 정도 쉴래."


"그래요. 그럼 저는 서유랑 마법 좀 배우면 되겠네요."




 이튿날. 아침 태환은 출발할 때부터 갈아입을 옷과 수건 등 목욕할 채비를 챙기고 예진과 함께
자호굴 앞으로 갔다. 과연 서유는 오늘도 자호굴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유야, 미안한데 나, 오늘 좀 쉬려고 하거든? 시간 괜찮으면 예진이 마법 배운다는데 같이 가 줄래?"
서유는 뜻밖의 소리에 다소 당황해했으나 곧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고 태환은 곧장 냇가로 향했다.


"히야. 이게 얼마만의 목욕이냐." 
그동안 태환은 주막의 우물 옆 작은 세면장에서 대충 씻고 물에 젖은 수건으로 방에서 마무리를 하곤했다.


태환은 드디어 물에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이곳저곳 씻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엥???'
자기 얼굴이 '김태환'과는 영 딴판이었다. 
물가에 비친 얼굴은 반반한 훈남이었다.
태환은 못 믿기는 듯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몸도 달라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이쪽 세계엔 거울이 없어서 그동안 몰랐는데, 
 이게 가을뫼의 얼굴이구나... 왠지 여자들이 대하는 태도가 저번 생이랑 영 다르다더니 핫...'


태환은 그렇게 한참 동안 자기얼굴의 이곳저곳을 뜯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마저 씻었다.


 목욕을 마치고 주막에 돌아갔더니 주막은 한창 점심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태환은 이 시간엔 항상 사냥하고 있었고 점심은 늘 조금 늦게 먹던터라
이렇게 붐비는 점심은 처음이었다. 
혹시 예진이 돌아왔나 방을 살펴보았지만 아직 안 온듯하였다. 
그래서 주막 구석쪽 탁상으로 가서 점심밥을 주문했다.


주모는 밝게 미소 지으며 뜨끈한 육개장 같은 것을 내 왔다.
태환은 주모의 미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흠.. 과연 내가 옛날 모습이어도 주모가 날 이렇게 대해줬을까?'
낮에 본인의 변한 외모를 보고 갑작스레 현타가 온 태환이었다.


태환은 밥을 다 먹고는 자기방에 드러누워 옛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저녁 즈음, 태환의 방을 두드리는 소리가났다.


"가을뫼씨~ 가을뫼씨 안에 있죠?"
예진이었다.


『드르륵』
태환은 문을 열며 대답했다.
"어. 이제 왔나 보네."


"에이, 한참 전에 왔죠. 저녁 먹자고 부른거예요."
"그래. 읏 차"
태환은 돈주머니를 집어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


"있잖아. 내 첫인상이 어땠는지 기억나냐?"
밥 먹다가 뜬금 태환이 예진에게 물었다.  
예진은 의외의 질문을 받고 잠시 태환을 바라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음...내 뱀고기를 앗아가려던 나쁜 사람?"
"아니 그런 거 말고, 아니 그리고 그 뱀고기는... 아유 됐다. 마 밥무라."


"가을뫼씨한텐 어땠든 제 처지에서는 제 고기였거든요? 아무튼 갑자기 왜 그래요?
 가을 되려면 멀었는데 가을 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뭐 쫌... 나는 너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 왔거든, 아까 냇가에서 씻다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쫌 그랬다."


"흐음..."
예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마저 밥을 떠먹는 가을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예진이 집에서 나온 지 몇 개월 안 되었을 때, 너무나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고향이 그리웠고, 어머니가, 동생이 그리웠다. 
그 와중에 타지 생활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진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길을 지나다 산적무리를 만나 겁탈 당할 뻔하기도 하였고, 근처 술사의 길로 길을 안내해 준다는
꼬맹이에게 속아 금전을 조금 잃기도했다. 
그때는 매일 사냥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잊은 채 숙소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 
그런 예진이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가을뫼씨."
예진이 부르자 태환은 예진을 바라보았다.


"내일 하루 만 더 쉬죠. 아까보니까 남문 앞에서 장을 열었던데, 내일 우리 장보러 가요."
"응? 갑자기?"
"기분전환에는 돈 쓰는 거 만한 게 없죠."


'하하 그러니까 날 처음 봤을 때 빈털터리였겠지... 그래도 나름 신경 써 주려는 것 같으니 뭐..'


"그래 외출 한번 하자."
그 말을 듣자, 예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왜냐하면 '외출'이라는 말은 이 세계에선 '데이트'라는 
말로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태환은 예진이 수줍어하는 것도 모른 채 밥을 마저 먹었다. 




다음날 아침. 
간만에 일찍 일어난 예진은 오랜만에 귀걸이도 끼고 쥐꼬리만큼 남은 화장품으로 옅은 눈화장도 했다.
그렇게 단장을 마치고 옷 메무새를 다듬는데 문득 서유를 깜빡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맞다. 서유! 서유는 오늘도 기다릴 텐데.. '
예진은 주모에게 글 쓸 목판 하나를 사서 서유에게 남길 글을썼다.


[미안, 오늘도 우리 둘 다 사정이 있어서... 내일 볼 수 있길 -예진]
예진은 서유가 늘 서 있길 좋아하는 자리에 목판을 두고 돌아왔다.


주막에 돌아오자 가을뫼도 준비를 끝내고 방문 앞에 나와 있었다.


"가을뫼씨, 궁복 말고는 다른 옷이 없는 거예요?"
예진이 물었다. 가을뫼는 평소 사냥가는 복장에서 딱 활과 화살만 뺀 상태였다.


"응... 그래서 늘 저녁에 빨래해가지고 밤새 말리고 그랬는데."


"에휴... 진작에 장을 봤어야 했네. 가요"
둘은 남문으로 떠났다.


"아 맞다. 신서유, 걔 오늘도 자호굴앞에서 우리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걱정 말아요. 내가 다 말 전해놨으니까. 참 이런 미인을 앞에 두고 다른 여자 걱정을 하다니."
 
'아니...그건 인간으로서,, 아니 근데 얘가 지금 뭐라는 거냐? 뭔가 여친같은 멘트에...
 그러고 보니 화장도 하고 묘하게 꾸민 느낌이네. 이건... 데이트...?'
아무 생각이 없었던 태환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예진은 태환의 옆에 바짝 붙어 팔을 붙잡더니 말했다


"가요. 우선 옷 파는 곳 부터 둘러 봐요."


태환은 3번의 삶을 통틀어서 여성과의 첫 데이트에 다소 얼어 붙었지만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먼저 도착한 남자 옷을 파는 상인 앞에서는 예진이 이것저것 가을뫼에게 대보더니
위아래로 한 벌 주문하곤 자기가 결제했다. 
그러고는 뭔가 옛시절 불량 식품 같은 것을 파는 좌판 앞에서 가을뫼에게 
과자를 사달라고 졸랐다.


한쪽 손은 가을뫼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밀과자 같은 걸 손에 든 예진은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걸었다. 
곧 여자들의 장신구를 파는 좌판이 나왔는데 예진은 반색하며 그곳을 떠날 줄을 몰랐다. 


"아저씨 저 나비 모양은 얼마예요? 헤에..비싸네... 그럼 저기 저거 신기하게 동글동글하게 생긴 건요?"


장신구들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50전짜리부터 시작해서 비싼 건 800전도 넘었다.


"흐음... 이 동글동글이 30전만 깎아줘요." 
상인 100전을 부른 귀걸이를 들고 예진이 흥정을 시작했다.


"허이구. 참, 누군 땅팔아서 장사하남요? 아가씨 예쁜걸 봐서 특별히 90전에 드릴게요."
"으으음 80전!"
"허이! 정말 90전 밑으로는 제가 밑져요."
"85전! 이 이상으론 안살거예요."
"에이, 그래요 85전! 거저네 거저."


상인은 작은 목각상자에 담아 주었다.
그렇게 귀걸이를 겟한 예진은 가을뫼를 붙들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거 날 위로해주려 했다는 건 내 착각이었던거 아닐까...'
태환은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다음 발걸음을 멈춘 곳은 여자 옷만 파는 옷 가게였다. 그곳에선
평한복 부터 꼭 주모가 입은 것과 같은 땡땡이 한복까지 다양한
의류를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던 예진은 적홍색 땡땡이 소복 같은 걸 들고 가을뫼에게 물어 봤다.


"이거 어때요?"
태환이 살던 시대의 원피스와 가운, 그사이 같은 그 옷은 허리춤에 복대가 있어 허리라인을 강조하는
옷이었다. 예진이 늘 통치마만 입고 다녀서 정확한 몸매는 모르지만 예리한 궁사의 눈으로 보건대
예진은 몸매가 좋았다. 즉 저런옷도 잘 어울릴 것이다.


"그게 좋겠네. 딱 너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아."
그 대답이 옳은 대답이었는지 예진은 "헤에~"하고 웃더니 옷을 사고는 
바로 갈아입겠다며 상인이 준비해 둔 탈의실로 들어갔다. 


예진이 탈의실로 들어간 사이 태환은 조금 전 예진이 귀걸이를 샀던 가게로 갔다.


"아까 그 나비 모양 귀걸이 180전에 살게요."
상인은 가을뫼의 얼굴을 보더니 방금 왔던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는 처음부른 값보다 20전 적지만
그 가격에 넘겨 주었다.


태환이 귀걸이를 사고 돌아왔을 딱 그때 예진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과연 예진은 늘씬했고, 생각보다 글래머였다.
예진은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옷맵시를 자랑했다.






 둘은 장터국밥집에서 새로운 국밥도 먹고, 장터 씨름대회도 구경하고,
또 길가에서 싸움닭 내기에 참여해 보고 이것저것 다해 보며 해가 저물 무렵까지 장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활까지 매고 있는걸 보니 영락없이 사냥 중인 것 같네요."
장터에서나와 주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진이 말했다.


방금 전, 장터에서 무기상점도 발견한 태환은 거기서  화살도 소량 파는 것을 보고 바로 사려 했다.
하지만 상인은 활을 사야지만 화살을 반통이라도 팔거라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아무 활과 화살 반통을 샀다.


"너도 알잖아. 새로 산 화살도 거의 다 써가는 거. 이거라도 어디인지... 아 맞다!!"
태환이 갑자기 소리치자 예진은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그 죽은자의 온기 저주라는 거 그거 얼마 지나면 사라져?"


"헐 설마 당신... 온기저주는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고 하긴 하는데... 설마 무덤파헤치는 
 그런 걸로 우리의 첫 외출을 마무리 지으려는 거 아니죠?"


'엇... 잠깐만 이 녀석.'
뜨끔하기도하고 심쿵하기도 한 태환은 잠시 아무 말 못했다. 열심히 변명을 준비하던 태환은 아까샀던
나비 귀걸이를 줄 절호의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니지. 우리 첫 외출은 이걸로 마무리하자."
태환은 품속에서 아까샀던 나비 모양 귀걸이를 꺼내 주었다.
그걸 받은 예진은 멍하니 잠시 바라보더니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다.


"이 능구렁이!"


그렇게 '외출'을 마무리 짓고 태환은 예진을 설득해서 주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호굴 6굴까지만 빠르게 갔다.


비철단도는 대충 얕게 묻어 놨었기 때문에 혹 누가 발견해서 가져갈까 신경 쓰였다.
태환은 6굴에 도착해 봉분옆에 묻어둔 비철단도를 잽싸게 꺼내고는 돌아가는 길에 덕쇠에게 맡겼다.


그런데 태환은 그 좋은 눈으로도 자신과 예진이 자호굴로 들어가는 것을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설레는 마음과 해질녁의 어둠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환과 예진이 자호굴로 들어가던 그때는,
예진이 남긴 목판을 보고도 혹 다른 사람이 사냥하러 오지 않을까 하루 종일 기다리던 
서유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먼발치에서 두 사람이 자호굴로 들어가는 것을 본 서유는 마저 돌아가는 길에 무언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밥을 먹고 두 사람은 같이 산 것들을 품평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늦어지자 예진은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고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옆집 여자랑 사귄다면 이런 기분일까? 태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 한번, 예진 방에 가 볼까...?'
태환은 고민하다가 결국 소심한 자기맘을 못 이긴 채 혼자 부스럭부스럭 해결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곧 잠에 빠지려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가을뫼님. 찾으시는 분이 있습니다. 혹시 주무십니까?"
주모의 목소리였다.


"네? 저 아직 안 잡니다."
태환은 겉옷만 다시 입고 방문을 열었다.


"앞에 탁상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은 늦어서 돌아가라 말씀드렸는데 꼭 봬야 한다네요."


'... 누구지? 내가 여기 세계에서 그 정도의 관계가 없는데...'
태환이 나가 보니 탁상에 누가 기대어 있는지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였다.


"서유?"
"가을뫼님..."
서유는 일어나 태환에게 다가왔다.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 방에 들어가도 될까요?"
서유는 평소처럼 말을 버벅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 그래 뭐 일단 들어와."
태환은 방에 들어가 가운데 깔아 놓았던 이불을 반으로 접어 가장자리로 밀고 사람이 앉을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호롱을 찾아 불을 키려는데.


『스르륵』
무언가 옷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겉옷을 벗고 옅은 소복만 입은 서유가 서 있었다.
옅은 소복의 서유는 창가에서 내리는 달빛에 비쳐 알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보였다.
서유는 태환에게 점점 다가왔다.




"서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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