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손을 붙잡습니다. 문득 가까운 미래를 약속하고 싶어집니다. 내일 또 놀자. 다음 겨울에도 같이 있자. 나는 잔뜩 격양되어 속삭입니다.
인생 최대의 무모함이 가슴 한 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입가에서 적당한 양의 김이 흘러나옵니다. 아직 입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내 뜻이 훌륭하게 전해지는 것이 무언가의 섭리 아닐까요. 그런 편한 의사소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들 하지만, 저는 무언도 침묵도 훌륭한 대화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춥네."
그녀는 설핏 웃어 보일 뿐입니다. 그 순간이었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봄이라는 계절이 오질 않기를 바라게 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제 머릿속을 분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 천둥번개가 내리 꽂히는 심상의, 진득하고도 강렬한 충동입니다.
시냅스와 뉴런을 돌기 돌기 도려내서 현미경 아래 낱낱이 분석해 본다면, 감정이라는 이름에 번호를 매길 수 있지 않을까요. 안드로메다도 M31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에게는 양쪽의 어느 이름도 똑같이 낭만적입니다.
들뜬 섬망 속에서, 짐노페디 3번을 듣습니다. 어렵게 구한 LP를 재생시키고 홀로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어릴 적 천장에 형광 별을 달아 놓은 것이 기억납니다. 창문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비보다는 눈이 낫지요.
사람의 체온은 비슷비슷할 터인데, 오늘 만난 그녀는 유난히 따뜻합니다. 닳아 빠진 솜 장갑을 빼고 그녀의 볼을 조심스레 스쳐봅니다. 내가 따뜻한 만큼 그녀가 차가움을 느낄 것을 알기에 금세 손을 뗍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제 볼을 만져 봅니다.
장갑이 없기에 그녀는 맨손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등에 눈이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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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메모한거 바탕으로 샥샥 풀어내봤음.
뒤에 여자 시점으로 더 있었는데 한번에 못 옮길거 같아서 천천히 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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