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하지만 나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날 기다리겠어요? 10년이고 20년이고 날 기다릴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날 기다리겠어요? 10년이고 20년이고 날 기다릴 수 있어요?"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기가 버림받을까봐, 실망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기를 기다리는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며 얽매이지 말라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투명한 눈 뒤에는 정체불명의 두려운 미래가 나에게 포기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녀가 끝내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 마음이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두라고, 고생만 할거라고, 실망만 할거라고. 내 머릿속도 포기하라는 목소리로 가득찼다. 젊은 시절은 1년도 소중하다고, 불확실성에 소모해버릴 가벼운 시간이 아니라고, 그녀 말고도 여자는 많다고...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눈물이 약간 배어나왔다. 속에서부터 폭발할 듯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두려운 미래의 협박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목소리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용기를 내어 단호히 거절해나갔다. 잠시 눈빛을 숙이며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녀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손을 잡는 짧은 순간동안 여러가지 말을 생각했다. 너는 너무 겁먹고 있어, 걱정하지 마... 이런 말로는 부족했다.
 
그녀의 손을 감싸잡으며 다시 눈을 마주보았다. 괜찮아요,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려는 듯 아주 희미하지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눈빛에서 난 마지막 확신을 얻었다.  그 눈빛 뒤에는 여전히 두려운 미래가 그녀를 포기하라고 종용했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녀에게 해줄 짧은 말 한마디가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부지불식간에 입이 열렸다.

 

"100년도 기다려주지."

 

일그러질것 같은 얼굴을 애써 담담히하며, 배어나온 눈물로 그녀의 모습이 흐려졌지만, 눈을 깜빡여 눈물을 밀어내고 더욱 눈에 힘을 주어, 조금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 노르웨이의 숲 한 장면을 모티브로 쓴 것을 수정해서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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