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두부를 찌다

 

----------------------------------------------------- 두부를 찌다 -----------------------------------------------------

냉장고에 있는 두부

뭉텅뭉텅 썰어 접시에 물과 함께 담았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다섯 번 누른다.

2분 30초, 꽤나 높은 소리가 울리고

뜨겁게 김이 올라오는 두부가 있다.

냉장고에선 꺼낸 김치와 두부가 있다.

 

1989년, 겨울 밤,

창문에 한 글자씩 써진 메뉴들

창밖에 가격은 없다.

 

드르륵, 옆으로 열고 들어간 술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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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김치 위에는 깨가 뿌려지고

20대의 고민거리, 여자 이야기, 직장 이야기를 술잔에 뿌린다.

붕붕 뜨는 기분에, 술이 쓴지도 모른채

황금색 백열전구의 빛을 담아 한 잔, 한 잔 들이킨다.

 

다른 사람의 눈도 중요했지,

활짝 편 어깨엔 농사를 짓는 형님과 돌아가신 아버지,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손길을 담았다.

 

아들이 그 시절 나의 나이가 된 지금,

두부김치를 먹으려면 만오천원은 줘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야망 있던 그의 눈엔 아들, 딸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고

고생한 아내의 눈물자국은 그의 심장에 새겼다.

 

20대의 맛은 그의 아들로밖에 느끼지 못하게 된 지금,

아니 그의 아들로도 그 시절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어느새 그리운 그곳,

전자레인지에서 슬쩍 꺼내 입 안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어본다.

어느새 술잔을 들고 다가온 그의 아들,

그가 아들의 나이일 때 두부김치는 얼마였냐고 물어본다.

말없이 소주 한 잔 따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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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에 글 처음 써보는데 여기에 가장 먼저 쓰게 되네요.

혹시 수정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이 보인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3개의 댓글

2021.04.04

제가 지금 한 잔 걸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요

 

추천 진짜 두 번 못 주는게 아쉬워요

 

저는 1년 넘게 글쪼가린지 뭔지 싸질러도 이런 느낌 죽어도 안 나오는데

 

이런게 이른바 감성의 차이고 재능의 차이인가 싶어요

 

하ㅅㅂ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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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Plasir

두부김치 먹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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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Plasir

과찬이십니다... 저도 시쓰기 시작한 건 올해로 5년은 되었고 최근에도 만족할 만한 놈들 잘 안 나오더라고요 이건 웬일로 굉장히 잘 나왔길래 올려봤습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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