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잠수 좀 탈게요

잠수 좀 탈게요.

데이지의 진짜 마지막 말이었다.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한 "연락 안했으면 좋겠어" 이후로
다짜고짜 뭐라고 해서 미안해라는 말과
부재중 메신저콜 하나. 메신저는 연락 안했으면 좋겠단 말 직후에 삭제해서
이틀 뒤 이메일을 통한 알림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연락해서 들은 말이 짧은 사과와
잠수 좀 탈게요.

내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이미 나빴다.
미안해서 잠수라니. 애도 아니고.
데이지는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했었다. 직접적으로 했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글이 팔리더라며 웹소설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쓴 글을 읽으면 내가 더 좋아진다고도 하였다.
나는 데이지에게 몇 가지 선물을 했지만 그 중에 데이지가 제일 좋아한 것은
공백 없이 만팔천 자에 달하는 데이지에 관한 긴 글이었다.
엄청 거액까진 아니어도 나한테 돈 빌려줄 수 있을만큼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2천 자 정도를 나중에 더 써서 주었다.
탈고 한번 하지 않은 글인데,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한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미술작가는
글 쓰는 건 도구나 장소가 필요하지 않은데
글을 쓰라며 종용했다. 작가에게 나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 얘기를 데이지에게 하니 네가 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어서라고 했다. 나를 나타내는 최신 정보는
10년도 더 전에 졸업한 '문예창작전공자'인 것이다.
그때 든 기분이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라고 하기엔
이제라도 무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데이지는 내가 10대 때부터 그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당시에는 msn이 널리 쓰이고 있었는데 데이지가
자신의 닉네임을 하나 정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무성의했고 마침 그의 프로필사진이 msn 기본 사진 중 데이지꽃이어서
그냥 데이지 해요, 라고 말한 것이 지금까지 데이지이다.
지금 무심코 데이지의 꽃말을 찾아봤는데
innocence

purity

true love

한글, 영문 비슷하게 이런 의미였다.
천진난만한, 순수한, 이런 형용사들이 데이지와 퍽 어울린다.
데이지의 예전 애인은 비글미라고 표현했다지만
천진난만하다는 말이 내게는 더 어울려보인다.

 

늘 밝고 명랑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울할 때에도 어딘지
특유의 명랑함이 꺼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헤헤거리고 잘 웃었다.
그런 사람이 자기는 떠나지 않는다던 사람이 역설적으로
나보고 떠나지 말라면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다시 예전처럼 친구로 돌아가자면서.
반평생 넘게 데이지를 알았지만 나는 한번이라도
그를 진짜 친구로 생각한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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