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끼야... 야이 멍청한 새끼야... ㅠㅠ

집에서 잉여롭게 개드립질 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선거철이니 해서 후보 이야기나 여론조사 (실제로 여론조사는 오늘부터 하지 않습니다.) 인줄 알고 무심하게 받았더니

 

군대 간 내 동기였다.

 

나는 사실 군대 문제에 별 생각이 없었기에 3학년 1학기나 2학기에 갈 생각으로 남아있었고

 

친구는 1학년 2학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가버렸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순한 인상.

 

그리고 녀석은 얼굴만큼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문득 아무런 귀띔도 없이 연락이 왔다.

 

"OO야... 어디서 뭐해?"

 

"어? 나 집인데? 야 너 휴가나왔냐? 말이라도 하지 애들 모으게 ㅋㅋㅋㅋ"

 

"아니 나 약속 있어서 잠깐 왔어. 온김에 너 얼굴이라도 볼려고. XX로 와."

 

"에이 야 우리 동기들 몇 남지도 않았는데 ㅋㅋㅋ 지금 부르면 거의 다 올수있을걸?"

 

"나 약속 곧이라서 ㅋㅋㅋ 너만 잠깐 보고 약속 다음에 집에 내려가봐야돼 바로왔거든"

 

 

정말 급한 약속인가보다... 싶어서 대충 차려입고 친구녀석을 만나러 갔다.

 

밖으로 나오니 흐릿한 세상에 빗방울이 하나 둘 땅에 붙고 있었다.

 

썩 내키지는 않는 날씨였지만 둘다 재학할 때 친하게 지냈었고

 

바쁜 와중에도 굳이 나만 찾아서 부른 녀석이 기특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갔다.

 

 

만나기로 했던 장소 근처에 가니 검은 우산 밑으로 노골적인 군복 하나가 초조하게 왔다갔다 거린다.

 

"야! 군바리!"

 

화들짝 놀라더니 소심하게 나를 쳐다보곤 씩 웃었다.

 

"어, 왔어?"

 

"새끼 ㅋㅋㅋ 나오면 나온다고 이야기라도 해주지 애들 모으게."

 

"아니 ㅋㅋㅋ 나 그런거 좀 불편하기도 하고..."

 

"야 그래도 나왔는데 애들이 너 못봤다면 서운해할걸? 지금 시험기간이라 다들 도서관에 있는데. 보러갈래?"

 

녀석은 계속 초조한 듯이 시선을 맞추지 못했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군복이잖아 ㅋㅋㅋ 군복입고 돌아다니는거 쪽팔려 ㅋㅋㅋ"

 

"아 그러냐 ㅋㅋㅋㅋ 군바리가 군복 입고 다니는게 뭐 어떻냐 ㅋㅋㅋㅋ"

 

 

그리고 우리는 잠깐동안 서로의 근황, 최근 있었던 일들, 군대생활이나 학교생활같은 시시콜콜한 일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던 도중 녀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여보세요. 네. 누나. 어디에요? 저 XX인데. 아 아니에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녀석이 전화를 끊고는 이제 약속시간이 다돼서 가봐야겠다고 했다.

 

"누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AA누나랑."

 

 

 

그 순간 밝고 화기애애하던 순간은 무너지고 내 멘탈은 소리없는 붕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AA누나는 같은 과 2학번 선배로, 녀석이 1학년 군대가기 전 둘이서 자주 함께 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밖의 관측자에 있었던 우리의 견해로서는 그것은 썸이 아니라 (그리고 실제로도) AA누나는 단지 녀석이 철저하게 귀엽고 착한 '좋은 후배'였으며

 

연애경험이 전무한 녀석은 누나와 있으며 어쩔줄 몰라하며 나에게 진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모두가 안타까운 그의 순애보를 지켜보기만 하며 그래도 용기내서 고백해보라고 몰아붙였지만

 

소심한 녀석은 결국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좋은 선후배'로 입대해버리고 만 것이다...!

 

뼈아픈 고통을 겪었던 녀석이었지만 누나에게는 그저 친했던 후배 한명이 군대에 간 것과 같았고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건, 누나는 2주 전쯤에 남자친구가 생겼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누나 소식을 이 놈이 알 리가 없다.

 

 

"너 지금 휴가 나와서... 누나 만나러 집에도 안가고... 동기도 안만나고..."

 

"아 그냥 잠깐 볼려고 왔어 ㅋㅋㅋ 그런 김에 너도 만나고. 누나랑 헤어지고나면 바로 집으로 내려갈거야."

 

 

안돼 새끼야! 안돼!

 

가지마!

 

너를 놓아주기엔 이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하다!

 

가면 안돼! ㅠㅠㅠㅠ

 

그렇게 비참한 절규를 하고 있던 나였다. 하지만

 

"아... 오랫만이네 ㅋㅋㅋ"

 

하고 모자를 깊숙히 눌러쓰며 고개를 슬쩍 돌리는 녀석의 모습은

 

그의 치명적일 정도로 멍청한 순애보를 넘어서서 무언가의 종교적인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그에게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고, 그를 말릴 수도 없었다.

 

"그래... 잘 있다 들어가고... 다음번에 나올땐 꼭 연락해라... ㅋㅋ"

 

"응 ㅋㅋㅋ 그래도 얼굴이라도 봐서 좋았네 나 가볼게 ㅋㅋㅋ 담 휴가때 꼭 연락할게!"

 

 

 

그래 새끼야...

 

다음에 나오면 한번 진탕 마셔보자...

3개의 댓글

2012.12.14
힘내세요 친구분....
0
2012.12.14
..ㅠㅠ
0
금요일 오후에 가슴을 후벼 파누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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