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나는 아주 건강한 간을 타고났다.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게 태어났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마셨던 때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아버지께서 거의 매일 술을 드시면서도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출근을 하시는 걸 보고

저게 뭐가 그렇게 맛있어서 매일 드시나 싶어서 학교를 마치고 집앞 슈퍼로 가서

소주 한 병과 담배를 한 갑 사서 놀이터에 앉아서 마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난 주말마다 술을 사마셨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처음으로 내 방에서 술을 까마시다가 엄마한테 걸렸는데

지금까지 내가 술마시고 돌아다니는 걸 눈치채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모두 알고계셨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날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말로 태어났으면 뛰어다니는 거고 내 아들로 태어났으면 술 마시는 거지.

타고난 걸 못하게 하면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 주말마다 술먹고 돌아다녀도 지 할 거 다 하고

공부 잘해서 외고까지 간 놈인데 걍 내비둬. 대신 엇나가는 순간 맞아죽을 줄 알아."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술 때문이 아니라 여자친구 때문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술 때문이라고 오해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 모의고사 점수에 관심을 두시지 않는 걸로 보였는데

매번 체크를 하시고 주기적으로 선생님들과 술자리를 하시던 걸 후에 알았다.

 

담임은 아버지께 "몽실언니가 토요일 밤마다 술을 마시고 일요일 아침이면 학교에 와서

방송실에서 커튼 깔고 한 잠 푹 자고 일어나서 짬뽕 시켜서 해장하고 오후에나 교실에 들어가는데

아버님만 동의하시면 제가 호되게 한 번 혼내겠습니다."라고 일러바쳤는데

 

아버지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극대노를 하셔서 거실에 앉아서 술을 드시다가

내가 들어오자 준비해둔 몽둥이를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자새끼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죽기 직전까지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거야. 앉아."

라고 하셨고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교복이 등짝에 달라붙을 때까지 맞았다.

등이 피떡이 됐고 난 그 다음 날 학교를 가지 못하고 병원에 엎드려 있었다.

 

나도 참 이상한 놈인 게 술을 끊지 않고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도저히 술을 끊지는 못하겠는데 여자친구는 없어도 되겠다 싶더라.

그리고 내 성적은 다시 올랐고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사실 제 성적이 떨어졌던 건 술 때문이 아니라 여자친구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한테 혼나고난 뒤에 여자친구랑은 헤어졌습니다. 다시 성적도 올랐고요.

이대로면 대학은 제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금주령 풀어주세요."

 

아버지께서는 "토요일에 술 안 마시고 공부하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거라고 학년부장이 그러더라.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참을 수 없겠냐. 아빠가 힘 있고 밀어줄 때 치고나가란 말이야."

 

하지만 나는 술을 마셨고 결국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

뭐 어쨌든 돈 잘 버는 아버지를 믿고 대학을 가서도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졸업해서

하고싶은 거 하겠다고 이십대 중후반을 낭비하고

이십대의 마지막에 정신차리고 취업을 해서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고있다.

 

근데 희한한 게 결혼하고 애가 생기니까 술 마시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더라.

애가 아빠 술냄새 나는 걸 싫어하니까 밤에 누워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도 먹질 못하겠더라고.

9개의 댓글

실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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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상쾌하게기분드럽게

음.... 시간 들여서 이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 치고는 너무 디테일 하지 않니.

실화야.

0

100살이 넘어도 계속 담배피는 할머니도 있는데 뭐 ㅎㅎ 잘읽었다

0
2019.10.03

좋겠다 난 일탈 한번도 없이 대학도 잘갔는데

아빠는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개지랄중임

아버지가 화끈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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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시계꾼

화끈하시지.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집에 있는 경운기 끌고나가서 읍에다가 팔아먹고

서울 가서 짜장면 배달하면서 지내시다가

모아놓은 돈 전부 금성전자 주식에 넣어두고 해병대 들어가셨으니까.

 

그 주식 오른 것만 해도 돈 만 해도 얼마야...

금성이 삼성으로 사명 변경한 건 알지?

그런데 누구한테도 큰 돈 벌었다는 자랑 안 하시고

짜장면집 사장님 소개로 육삼빌딩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일하면서

밑바닥부터 바득바득 올라와서 지금처럼 되셨으니까 굉장하시지.

 

아버지의 유일한 한이 배우질 못한 거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어찌 보면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천하의 불효자일테지.

집안의 큰 재산인 경운기를 가지고 나가서 팔아먹고 10년 동안 연락 한 번 없었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딱히 큰 말썽없이 공부 잘하고 다녔으니 별 말씀 안 하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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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랑 맥주 좋아하는데..

얼마전 건강검진에서 지방간 뜬 이후로 싹다 끊음....

평일도 닭가슴살이랑 샐러드로 대부분 배채워 쉬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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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건강한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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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Alike

간은 좋은데 혈압이랑 당뇨가 가족력이더라.

지금 난 혈압약만 먹는데 당뇨는 아직 발병 전이다.

당뇨 걸려서 죽을지, 당뇨 걸리지 전에 죽을지 궁금한데

걸리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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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몽실언니

헉...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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