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날 할일없어서 쓰는 첫사랑이야기

읽판에서 쓰면 본인이야기여도 썰은 창판으로 유배된다길래

 

걍 창작판에 쓰기로 함

 

 

 

ㅡㅡㅡ

 

0. 문학적인 미를 살려 폼나게 쓰는 건 그럴 기분도 아니고 귀찮고 능력미달이라

 

그냥 가독성을 고려해서 편하게 씀

 

 

ㅡㅡㅡ

 

1. 이게 고등학교 2학년때였을거다.

 

고3때 졸업여행은 어디로 갔는 지 기억이 안나는데

 

고2때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에 잊혀지기가 힘들다

 

18년인생 비행기 한 번 타본적없는 촌놈들이 비행기 뜬다고 죄다 '우오오아ㅏ아ㅏ' 하던거도 다 기억난다

 

지금생각하면 어휴 핑쉰...그래도 다시 생각하면 그 땐 순수했던 거겠지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나는 그냥 공부 조금 잘 하는 내성적인 남학생이었고

 

그녀는 문과 여자반 3반중에 한 반의 반장이었다

 

 

2박3일이었던 수학여행의 일과중 첫날엔 아예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 땐 걔랑 사귀게 될 거라곤 생각도 없었겠지

 

 

그러다가 둘째날 저녁쯤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지하강당에 밖아놓고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A팀 B팀 나눠서 별짓 다시키며 대학생 알바들한테 애들 시간이나 떼워주는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거지같은 짓을 하는 중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마냥 응원소리에 점수 퍼주고

 

막판에 잘하면 점수 와장창따서 이겨버린다는

 

애들 희망고문이나 하면서 에너지 뺀 다음 잘 시간 되면 지쳐서 자게 만드는 그런 거.

 

 

근데 이 대학생 알바 조교놈이 말을 안듣는다고

 

얼차려를 시켰다. 아마 엎드려뻗쳐였나. 응원을 열심히 안했든 애들이 지들끼리 수다를 떨었든 뭔가가 됬던걸로 기억한다.

 

끽해봐야 10살차이도 안나는 애들인데 자기들 말 안듣는게 아니꼬왔던거겠지

 

 

그와중에 나는 불의를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당시 수학여행비로 20만원가까운 돈을 내고 온 것이었고

 

우리가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명목으로 구르는동안 선생들은 술판을 벌인다는 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부조리에 화가났다.

 

 

문득 생각났다. 내 삼촌의 여자친구의 남동생이 경찰이었다는 걸

 

그 여자친구(지금은 숙모가 되신)의 언니는 또한 중학교 교사라는 걸

 

무슨 깡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엎드려뻗쳐있다가 나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나가서

 

휴대폰으로 삼촌에게 전화를해서 이러쿵 저러쿵 사정을 말했다.

 

삼촌은 20만원가까운 돈이 400명이 넘는 학생에게서 걷혀지면

 

그런 숙소나 일정보다 훨씬 좋은 걸 받아야한다고 말해줬다.

 

교사와 업체간의 일종의 리베이트가 있었을 거라고. 여자친구쪽 가족에게 말해볼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가 끝날 때 쯤 그 여자반 반장이 나를 찾아왔다.

 

조교가 나 찾는다고. 안오면 기합 안끝난다고 나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여자애랑 조교를 찾아가서 '씨1ㅍ놈아 20만원주고 왔으면 이딴짓은 안해야~~~' 정도의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나보다 연장자인 걸 알았지만 개빢쳐서 아마 사리분별을 못했겠지. 후에 여자애가 내가 상당히 무서웠다고 얘기해줬다.

 

중학교때까지 당연하게 겪었던 게 그런 심각한 부조리일 줄은 몰랐지. 상당히 화가났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비속어만 빼서 혼자 교사동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했다.

 

교육청에 이거 찌르면 징계안먹을 자신 있냐고도 했다.

 

 

 

내가 그런 기행을 저지른 덕분에 9시도 안되서 레크리에이션은 해산하고

 

다음날 일정 다 취소되고 비행기시간만 맞춰서 귀국했다. 다음 날 등교할 땐 양해를 바란다는 가정통신문을 주더라. 씹쌔끼들

 

귀국전에 각 반 반장이랑 나랑 불려가서 입막음을 바라는 훈계를 듣고 나는 담임과 꽤 긴 상담을 했던걸로 기억한다.

 

뭐 어떻게 그런 내용을 들었건 사실이 아니라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나서 귀국하고 다시 등교하는 날

 

여자반 반장이가 나를 찾더라

 

너 수학여행 이틀째에 뭐 했었냐고 니가 갑자기 위로 올라가고 나서 20분정도 지나고 갑자기 해산하고 자러가라고 해서 궁금하다고.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니 이런 행동을 한 내가 되게 크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가 꽁냥꽁냥하다 보니 그 친구랑 사귀게 됬고, 18년인생에서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들게 된다.

 

ㅡㅡㅡ

 

2. 그렇게 이 친구랑 여름에 사귀기 시작해서 다음 해 봄까지 꽁냥꽁냥한다.

 

첫 연애라 보이는 거도 없었고, 철없던 시절이라 학원 핑계대고 야자째고 나와서 둘이 떢볶이먹으러 다니고, 코인노래방 다니고

 

그 나이라서 할 수 있는 걸 하러다녔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살았다.

 

그러다가 고3이 되고 3월모의고사라는 놈을 보는데 200명남짓한 문과에서 10~20등사이를 왔다갔다하던 내가

 

40등 중반정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담임은 나를 불러서 정신차리라고 훈계를 했고

 

4월모의고사에선 50등을 넘어갔다. 이번에 담임은 나를 더 크게 꾸짖었고 헤어지는 게 내 대학엔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나도 떨어지는 내 성적이 의식되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나의 떨어지는 성적을 질책했다. 5월쯤 그 친구랑 한 번 싸우고 나서 그걸 핑계로 헤어졌다.

 

사실은 내 성적의 안녕이 더 걱정되서, 이기적인 헤어짐이었지만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미안함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일부러 그 친구와의 어색한 눈마주침을 피하고, 어색한 인사만 하면서 수능을 치고, 대학을 갔다.

 

확실히 연애를 안 하니까 원래 성적대로 돌아오긴 했었지.

 

그 때 까지는 몰랐다. 그 친구의 마음은 여전히 나한테 머물고 있었다는 걸

 

 

ㅡㅡㅡ

 

3. 수능을 치고나서 한 계절이 지난 후

 

남자는 멋드러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여자는 어디서 비싼 옷 빌려와서 한 껏 꾸미고 졸업식을 치뤘다.

 

식이 끝나고 반친구들이랑 단체사진 찍고, 끝나고 뭐할거냐 저녁에 만나야되는데 낮에 할 게 없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친구가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잠깐만 볼 수 있겠냐고.

 

 

 

나는 미안하지만 안된다고 했다.

 

딱히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기까지는 크게 할 일도 없었는데.

 

아마 연애때문에 성적이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 그 친구와의 연애는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으리라

 

그 뒤로 계속되는 그녀의 연락에 나는 차갑게 반응했다. 그러다 말더라

 

 

 

그리고 대학생이 되서 5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혼자 스승의 날에 모교를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은 선생님이 2분정도 있었고, 선물용 미에로화이바박스를 손에 들고 나름대로 딱붙는 청바지에 비싼 티셔츠를 차려입고 찾아갔다.

 

거기서 그녀를 만났다.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도 그녀도 생각했을거다. 추억이 담긴 모교에서. 2년 전 학교에서 행복하게 사귀던 시절을.

 

잠깐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고 하기엔 내가 오후에 대학교수업이 있었다.

 

그렇게 만난 그녀와 오래 이야기는 못하고 카톡으로 밤을 지세우고 대학교를 갔다.

 

익숙한 듯 장난치는 말투나 서로 알고있는 별명이나. 모든 게 친숙하고 그리웠다.

 

 

 

연락한 지 이틀쯤 됬을 때 그녀가 아직 나에게 감정이 남아있으니까 다시 시작해보자고 했다. 

 

근데 나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나는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었고, 장학금 최저학점을 달성하기 위해선

 

연애를 하며 놀 겨를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2번의 거절 이후 그녀와 연락이 소원해졌고

 

그 다음해에 그녀가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윤종신의 '오래전그날'이라는 노래에 꽂힌 것도 이 때쯤이었을거다.

 

 

ㅡㅡㅡ

 

 

3. 대학교 2학년 2학기가 막 끝났을 쯤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가야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때 사겼던 그녀의 새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 장례식장에 갔다.

 

구두를 벗고 절을 하는 데 차마 그녀 얼굴을 빤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울고있는 옆모습만이 엎드린 나에게 힐끔힐끔 보여질 뿐이었다.

 

헌화를 하고서 차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간단하게 상차림한 음식을 먹고 화장실을 갔다가 나와서 갈 체비를 하는데

 

그녀가 내게 와서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코끝이 찡했다. 그녀 입장에서도 용기를 내서 말한 건데.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생각이 안났다. 머리속이 백지가 됬다. 그냥 측은한 마음에 그녀를 안아줬다.

 

몇 초간 품안에서 흐느끼는 그녀를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연락을 했지만

 

나는 곧 군대를 가야했고, 받아주지 못했다.

 

 

ㅡㅡㅡ

 

4. 군대에 있는 동안 친구를 통해서나 휴가를 나왔을 때 주변에 그녀 소식을 물어봤다.

 

2년동안 그녀는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아직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

 

 

그런 그녀가 작년에서야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만난 그녀는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 쥬시에서 알바를 하고있었다.

 

그녀가 건네는 잘 지내냐는 인사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웃으면서 잘 지낸다고, 너는 어떠냐고...

 

 

ㅡㅡㅡ

 

 

전 여친 지하철역 근처에서 봤다가 감성돋아서 써봄...

2개의 댓글

2016.06.25
그깟 숫자때문에 어린사랑을스스로버리게 만들다니 잘못됬어 이나라는
0
2016.06.26
포기하게 된 이유가 다 점수때문이야 에휴
나 탈조선 성공하면 닉 탈조선익스프레스로 바꾼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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