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처음 본 건, 중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작은 학원에서였다.
항상 웃음을 머금고 다녔던 아이.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남자아이들 틈을 자유롭게 오가며, 여자아이들보다 더 씩씩하게 어울리던 말괄량이 소녀.
학교에서는 같은 반도 아니었고, 인사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학원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한쪽 구석에서 반짝이던 그 눈빛이 있었다.
그 반짝임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이름도 몰랐고, 얼굴도 흐릿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나에게 다가와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눈 엄청 예쁘다. 볼도 말랑말랑하고 귀엽네.”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던 나는, 그 말 한마디를 어쩌면 좋을지 몰라 허둥댔다.
감정이란 건 언제나 늦게 도착하는 편지 같아서, 그 말의 의미를 나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자주 내 곁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의 존재는 내 일상 속에서 점점 더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가곤 했고, 그 아이가 웃을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뛴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내 눈은 언제나 그 아이를 쫓고 있었다.
활동적인 걸 싫어하던 내가, 교실 창문 밖 운동장을 바라보며 축구하는 너를 가만히 지켜보던 날이 있었다.
땀에 젖은 얼굴로 내게 달려와 장난스럽게 팔을 휘감던 그 아이.
나는 겉으로는 짜증을 내며 팔을 뿌리쳤지만, 마음속엔 작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즐겁기만 한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너를 좋아했던 감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은 제멋대로 흘러갔다.
너의 장난은 이제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다정함은 누구에게나 향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마음이 닿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많이 늦어 있었다.
말없이 멀어졌고, 조용히 잊혀졌다.
우리는 다시 스쳐 지나가지 않았고, 오직 내 기억 속에만 너는 살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를 마지막으로 본건 고등학교 2학년 스승의 날 이었다.
나는 그 학원으로 발길을 옮기며 혹시 그때의 너를 또 만날수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고있었지만, 사실 그저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간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도 너를 다시 마주했다.
너는 여전히 익숙한 얼굴로, 조금 더 자란 모습으로, 놀란 눈을 하고 내게 달려왔다.
장난스럽게 손을 잡아당겨 나를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너 여기 어떻게 왔어?”
그 순간, 설렘보다 먼저 밀려온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볍게 인사하고,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날의 기분은, 너를 처음 좋아하게 된 그날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와 너무 닮아 있었다.
시작도, 끝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도 어느새 어른이 된 지 오래됐어.
지금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의 마음은 어쩌면, 내가 가진 감정 중 가장 서툴렀지만 가장 맑았던 감정이었다는 걸.
첫사랑은 너로 시작해, 너로 끝났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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