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에 있는 미학

보통 사람의 평균키로는 아무리 한 걸음 딛어봤자 1m가 채 안 된다. 이토록 별 볼 일 없는 고작 한 걸음일 뿐인데 계속 걷다보면

 

걷는다는 행위를 유지하면 천리길도 어느새 다다르게 되어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다. 꼭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자동차보다 훨씬 보잘 것 없는 속도

 

이지만 몇 시간 걸었을 때 도착한 장소와 출발한 장소의 거리는 벌어지며 그 과정 속에서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을 때와는 달리 많은 광경들을

 

목격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즐기며 어딜 그리 바삐 가는지 그리고 수많은 건물들과 한강에 놓여진 다리를 걸으면서

 

많은 걸 피부로 겪고 육안으로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은 인간의 이족보행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 하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싶으면 그냥 집에서 의미없는 유튜브 숏츠 영상보는... 단편적인 도파민 갈구 행위에서 벗어나 평소에 자신이 가보지 않았던 곳을

 

걷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딱히 목적지없이 자신이 평소 올 일이 없었던 장소에 하차해서 걷다 보면 멘탈 힐링도 되고 그 장소에 있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이 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굳이 해외까지 여행갈 필요 없이 한국에도 내가 아직 가보지 못 한 명승지가 굉장히 많다. 아니.... 한국이 아닌 서울로 좁혀봐도 아직 서울에서 즐기지

 

못 한 꿀잼 컨텐츠가 꽤 많다는 사실은 나에게 오래 살고 싶다는 그리고 더 많이 걸어다니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걷는다는 행위는 무조건 빨리빨리와 효율성의 극대화만 요구하는 도시적 삶에서 벗어나 느리게 사는 삶으로 회귀하는 마력도 지녔다.

 

차나 지하철에 비할 바 없이... 너무나도 느리지만 빠른 속도 안에서 너무 빨리 장면이 지나가 보지 못 했던 장면들의 구체적인 면면들이 눈에 속속들이

 

보이게 된다. 공원에 앉아 여유롭게 바둑과 장기를 두는 노인들의 모습... 동네마다 있는 먹자골목에 모인 군중들... 과거에는 상권이 살아있어

 

많은 유동인구가 오가는 곳이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게 없듯 어느새 상권이 죽어버려 폐허가 된 동네들... 그 외 기타.

 

걷다가 가끔은 멈춰서서 그런 장면들을 세밀하고 꼼꼼하게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글로 쓰든 썰을 풀든 아니면 개인방송을 하든 소재가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되고는 한다.

 

인생을 걸음에 비유하자면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여러 갈랫길을 걸음으로 가는 여행인 것 같다. 본인의 의지도 반영되겠지만

 

목적지 없이 지도없이 오직 한 걸음씩 딛어가며 우연과 필연이 적용되어 겪게 되는 사건들을 경험하며 우리는 심경에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된다.

 

인생에 꼭 좋은 것만 있을까? 걷다보면 재수없게 개똥을 밟을 때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순간 물웅덩이에 한 쪽 다리를 적시게 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걷다보면 보게 되는 예쁜 코스모스 길들, 반딧불이들, 꽃향기 진한 아카시아나무들, 가끔씩은 내가 걷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온 사람과 마주하여 겪게 되는 좋은 경험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을 걸으니 다들 불안함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을 걷기에

 

인생이 묘하게 재밌기도 하다.

 

오직 내가 만든 필연이 아닌 우연이 어느 정도 개입된 인생길을 걸으며 각자 노인이 되었을 때 가끔 과거를 회고하면 뜨거운 눈물 한 줄기 흘릴만한

 

소중한 사랑섞인 경험을 모두가 갖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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