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쌓이는 과거가 거울의 각도를 서서히 바꿀 뿐이다-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고 난 뒤 현기는 파란이불과 서로 교신하며 오늘 할 일들을 머리에 집어넣으며 갈 때였다.
"현기야... 오늘 우리집 놀러갈래? 과자 먹으면서 같이 게임하자."
수업이 끝나고 모두들 자리를 뜨는 사이, 최유진이 현기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아니... 난 게임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에만...... 진의제국 황후 으악~"
'병신아. 니의 전생에서나 지금에서의 문제가 뭔 줄 알아? 넌 전생에서 게임이나 스포츠는 관심없고 사람한테만 관심이 있다고 했지만 그 것은
너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지표밖에 안 돼. 결국 게임, 스포츠, 예능 이런 것들은 인생의 축소판이야. 게임에서 어떻게 승패가 갈리는지 과정은 어떻게
전개되어서 인생에 비유된 흥망을 가리는지... 만약 진짜 인생에 관심 있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면 인생의 축소판인 게임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당연
해. 하지만 너 같은 녀석이 뭘 알겠어? 40년 인생... 아니, 이제 41년이지. 헛바퀴 굴리는 건 이제 그만둬.
그리고 니가 끝까지 개선 안 될 때에는 너와 나는 같이 동귀어진하는 거야. 알아들어라. 니가 대성하는 건 아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데 니가 이전 생애에
해온 많은 것들을 대부분 반대로 하기만 해도 성공이나 다름없을 거다.
그리고 진의제국 황후같은 개소리는 그냥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고 그 쓰레기통을 소각한
뒤 소각한 잔여물도 모두 분자 단위... 아니 분자 단위를 넘어선 원자 단위로... 그 것을 넘어서 아예 원자단위가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어. 넌 꼭 니 꼴리는
대로라는 너만의 꼴통 관념으로 대충 지 취향 맞는 여자에 진의제국... 좆도 병신같고 찌질한 너만의 망상으로만 세워진 왕국에 니가 그냥 꼴렸다 하면
황후로 강제로 지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 여자가 진짜 진의제국 황후로 봉해진다면 그 건 그 여자에게 재앙이야. 니 주제좀 파악해. 넌 아직도 옛날의
병신 찐따 무지성 똘추에서 나아진 게 없냐? 이제 좀 개념 탑재좀 하자.
진의제국의 황후에 봉한다? 그 여자가 바라는 일도 아니며 진의제국이 본인 망상으로서만 만들어진
제국에 불과한 데 그 본인만의 뇌내망상에 전혀 인연도 없는 여자를 황후에 또 본인의 내뇌망상을 결부지은다라...
너 자신좀 알아. 씨발 좆같은 병신새끼, 진짜 좀 적당히 해라. 어쨌든 그 말을 이번 시점 이후로 또 뱉는 순간 나는 너와 동귀어진할거야.
어차피 니가 그런 꼴을 보이면 미래에 보일 모습도 뻔하니까 너의 대성 따위는 있을 일도 아니니까 그냥 둘 다 뒤지는 게 낫지.'
현기는 무협 용어로 비유하자면 한 마디로 타고난 오성이 너무 개병신이고 40년 인생을 살고 회귀 1년도 살았지만 여전히 모지리였다.
이불이 고문섞인 조언을 들음으로써 본인의 행동 방정식을 급선회하여 유진이에게 응답했다. "그래.... 맛있는 것좀 줘. 과자는 맥주사탕? 50원? 하하"
유진이의 제안과 이불의 조언을 수용한 현기는 유진이의 집으로 놀러갔다.
유진의 집은 본인의 집과 너무나도 달랐다. 현기의 집이었던 매우 좁은 두 방에 딸린 아주 좁은 공용공간에 딸린 가스레인지 1대와 너비가 길지
않은 싱크대에 겨우 간신히 마련된 화장실이었지만 유진이의 집은 매우 넓은 공용공간에 넉넉히 마련된 주방과 가스레인지 4대, 넓직한 화장실...
그리고 현기는 본인의 화장실에서 처음 물을 틀어두면 일정 시간만큼은 녹물이 나와서 곤란했는데 유진이의 집에선 틀자마자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으며
거실에 해외에서 수입해온... 한국말로 되어 있지 않은 과자들이 종류별로 정리되어있는 찬장을 보고 이질감을 느꼈다.
유진이의 집에서 일본 센베이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같이 당시 유행했던 닌텐도 패밀리컴퓨터 종합게임 모음에서 한 타이틀을 골라서
같이 플레이하게 되었다.
플레이 게임의 제목은 "덕 헌트"였고 TV에 비춰지는 첫 화면에서 사냥개가 뛰어들면 그 반응으로 인하여 날뛰는 오리들을 풀 바깥 반경에서 날뛰었을
때 사냥꾼의 시점에서 바라보며 총으로 사격하여 몇 마리를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는데 유진이는 현기보다 수학 실력이 달릴 뿐 집에서부터
혼자 경험하면서 쌓은 노련한 사격 실력과 어떻게 할 때 사냥개가 어떤 표정과 리액션을 나타내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현기를 많이 배려해서
현기가 총을 TV화면에 나타난 오리를 잘 맞추지 못 할 때도 친절히 설명해주고 여러 힌트를 던져주며 사냥개의 반응에 대한 피드백을 주곤 했다.
현기는 한 편으로 즐거웠으면서도 자신의 과거가 오버랩되며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금
전생을 떠올리자 그는 스스로 죄 많은 남자였다고 생각했다. 그가 인터넷방송으로 진출하면서 처음 맺은 이성친구... 훗날 진짜 여자친구이자 결혼을
염두에도 두었던 박선희, 이후 박선희와 결별 후에도 여러 여자들과 단발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결국 끝은 좋지 않았다. 마지막 자살할 때는 그 어떤
여자도 곁에 없었으며 물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수학 공식처럼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관계가 안 좋은 끝을 나타낸 것은 자신
본인.... 진현기에게 귀책사유가 적어도 절반을 차지함을 본인도 언틋 알고 있기 떄문에 그 부분에선 의기소침했고 그 것이 연결되어 여자들과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어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험으로 인해 그는 또 시야가 트였다. 전생에 빈둥거리면서 본인은 사람에만 관심있다고 게으
른 변명만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을 비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임과 스포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든 스포츠와 게임은 분명 의미가 있다.
스포츠의 형식적인 구조, 그 구조 안에서 펼쳐나가는 승리의 조건, 패배에 승복하는 미덕. 어떻게 해야 이기고 지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결국 그 것은 비디오 게임에서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기는 유진이와의 경험을 통해 차츰 눈을 떠가는 계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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