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돈의 갈망이 스멀스멀 자라는 것 같다.
내가 90년대 생이라 내 기준으로 회고하자면 초등학교 들어가고나서부터 동네마다 오락실 없는 곳은 손에 꼽으리만큼 오락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
생겨났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 보급률도 떨어지던 때라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나서 오락실에 가거나 미니카 레이스 시합을 하곤
했다. 그 때 애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말해봤을 뻔한 멘트가 있다. "엄마 백원만." 엄마한테 백원 달라고 징징거리다 엄마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백원짜리 동전 하나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게임 실력이 좀 있다 싶으면 백원 동전 하나로 꽤 긴 시간을 게임을 하며 오락실 그 이름답게
킬링타임용 오락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미니카 레이스를 하고 싶었지만 난 주머니에 든 돈이 개털이나 다름없어서 당시 골드모터, 실버모터같은 미니카 레이스 게임에 현질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부유한 동네 형들이나 혹은 나와 나이가 같은 애들과는 달리 기본 모터인 소위 똥모터로는 미니카가 레이스를 지나는 도중
360도 회전하는 구간을 지나지 못 하고 그 구간 도입부에서 추진력이 없어 바퀴만 헛돌았었다.
그렇다. 어렸을 때 돈에 눈이 띄인 건 돈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컸다. 백원짜리 동전 하나로 즐기는 오락실 게임. 롯데리아에서
사먹을 수 있는 불고기버거를 살 수 있었고 당시에는 꽤 비싼 음식인 피자도 먹을 수 있고 양념통닭도 먹을 수 있고 한 숨만 나오는 내 싸구려 미니카의
똥모터도 골드모터 실버모터로 갈아끼우고 미니카의 바퀴 미니카의 겉면 카울 등 아주 미니카를 내 마음에 맞게 커스텀마이징 할 수 있고 그 외에도
돈이 있음으로 인해서 즐길 수 있는 인생 컨텐츠가 많다보니 돈의 마력에 물드는 건 어린 꼬마아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당연한 일인 듯 하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가 나에게 주는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하여 돈에 대한 갈망이 엄청 컸다. 해서는 안 되는 부정행위였지만 버스를 탈 때도
동전소리만 들리게 하고 내야 하는 요금 양을 은근슬쩍 줄이고 탑승하곤 했다. 가끔 들켜서 대차게 혼이 나곤 했으나 내가 잘못한 게 맞으므로
그저 죄송합니다 하고 부족한 돈을 더 채워넣었다. 그리고 정말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도 엄마가 안 사준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난감 가게에서 한동안 박스 안에 투명 플라스틱으로 감싸져 보이는 장난감의 외형을 응시하다가 네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돈에 대해
극심하게 민감한 엄마였지만 적어도 나에게 기본적인... 되돌아서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자전거를 그래도 사줬다는 게 감사할 뿐이었다.
지금은 이룰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나는 어렸을 때 한강 변 대교를 지날 때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연회장같은 화려한 인테리어를 한 패밀리 레스토랑
TGI 프라이데이에 그렇게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어필했지만 부모님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 했다. 먼훗날 내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프라이데이에 데려갔지만 어렸을 때 그 한강 변 대교에 위치한 화려한 파티장의 프라이데이도 아니었고 이미 그 프라이데이는 폐업한지 오래됐고
실내에 있는 프라이데이 지점에 데려갔지만 이미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갔으므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했다.
지금도 엄마는 나한테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며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애는 낳아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개좆같은 얼척도 없는 황당한 논리가 팽배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그 끈질긴 알뜰살뜰이면서 절반 이상은 극도적 짠돌이인 성정을 유지하여
자가 아파트와 억의 두 자릿수 정도의 현금자산을 보유하셨으니까. 그리고 그 덕을 나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차츰 지난 뒤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나선 나는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아픔을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길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대부분 사람이 삶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돈 관련 문제였다. 열심히 살았지만 순간의 선택 실수로 인해 지갑 사정이
꼬여버리고 그 것은 곧 자신의 인생을 망하게 하는 상황을 야기했다.
어느 날 민감한 곳을 수술받고 재활을 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서 서울역까지 당도했을 때 평소 글로만 읽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현실은 비참했다.
서울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적십자 건물에서는 그 곳에 도착한 빈곤층에게 한 명당 진라면 순한맛 라면 한 봉지와
맥심 모카골드 스틱 커피 두 봉지를 베풀고 있었고 내 시점에선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라면 한 봉지와 커피믹스 두 봉지를 어떻게든 챙기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서울역 트인 광장에 모인 노숙자들이 낮부터 싸구려 막걸리와 소주에 새우깡 한 봉지 뜯은 걸 6명이서
나눠 먹는 걸 보고 돈의 가치는 진정 상대적인 것이구나 느꼈다. 주변에서 풍기는 구린 냄새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 하는 이유 중 주된 이유로 될 법
한 정도인 듯 싶다.
서울역 광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로 보이는 고가도로의 받침목 공간을 개조한 문 앞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니... 사람이 아닌 신문지 한 장이 바닥에 깔리고 그 신문지 위로 자신들의 가방으로 줄을 대신 세운 장면도 보였다.
문 앞에서 담배를 피던 할머니에게 여기에 왜 사람들이 줄 서 있냐고 여쭤보니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이라고 답변을 들었다.
서울역에서 머지 않은 곳에 쪽방촌도 있다고 들어서 서울역에서 배회하는 노숙자와 쪽방촌 사람들도 이 곳으로 무료제공되는 밥을 먹으러
이렇게 긴 줄이 서 있나 생각했다. 아무리 TV에서 나랏님들이 민생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만 최빈곤층의 극심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모든 걸 사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지만 한국은 유독 사회안전망이 없다시피하다. 남이 좆되도 어찌됐든
나 알 바는 아니다. 마치 중국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달까? 처음부터 노숙자 되고 싶어 된 사람은 없다. 사회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은
정신마저 붕괴되어 노숙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진정 사회안전망이 있다면 그들에게 무상으로 정신의료 서비스를 받게끔 하고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너무나 팍팍하다. 아주 당연한 걸 외쳐도 위정자들은 자신의 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로 저울질만 할 뿐이다.
나는 곧장 서울역 바로 근처에 붙어있는 다이소에 들어가서 천원어치 마이쮸를 샀다.
천원을 그냥 주는 것보단 차라리 이게 나을 행동이지 않을까 싶었다. 어차피 단발적인 효과에만 불과할 테지만 노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천원어치 산 마이쮸의 포장을 바로 찢고 서울역에서 내린 호주에서 온 관광객의 아들에게 미숙한 영어로나마 대화하며 코리안 캔디를 맛보라며
마이쮸를 몇 알 주고 나머지는 모두 노숙자들에게 돌렸다. 담배 꽁초를 찾는 노숙자에겐 내가 피던 담배 보헴시가 no.3 한 갑에서 3~4개비
꺼내어 그들의 새까매진 손에 부드럽게 손을 맞닿아 담배를 건네줬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사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적체되는 현상을 보이는 듯 하다. 단 돈 천원만 써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데도 우리는 그 방법을 망각한 듯 싶다.
돈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어떤 놈은 천원의 1/10만큼도 못 하는 만큼 쓰고도 욕먹는 상황을 만든다면 누군가는 천원짜리 한 장을 만원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생은 도대체 뭘까라고 고민할 필요 없다. 인생은 그저 기안84가 그랬듯 사람은 그저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며
인생을 굴러가게 할 때 필요한 게 돈이란 연료이다. 돈은 정말 중요한 요소이지만 역설적으로 돈에만 눈독을 들이면 돈은 도망가버린다.
돈은 소중한 것이 분명하지만 돈을 추종하는 것이 아닌 돈의 결과가 나오게 끔 하는 과정을 주안점에 두는 게 진정 돈도 벌고
인생의 행복도 챙기는 일거양득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0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