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장편] 파란 이불 -5화-

-너 자신에 대해 알라-

 

현기는 최지욱한테 먹인 한 방 이후로 잠잠해져버린 이불이 자신이 이제 잠에 들려고 이불을 몸에 덮자 그제서야 이불의 음성이 들림에 놀랐다.

 

"속으로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길래 이제 너와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줄 알았어. 이불아... 힁....."

 

 어린 현기는 반가움 반 절망하다 피어난 희망 반인 감정을 추스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정도 도박이었지. 니가 워낙 사람을 때리는 행위 자체를 겁내는 걸 아니까 나의 에너지 배터리의 전부를 그 한 방에 올인했었어. 그 후 방전되어

 

밖에서 서로 소통할 수 없었어. 방전된 배터리는 너가 비로소 내 본체인 파란 이불과 접촉해야 그 때서부터 충전되니까. 다만 이번 계기로 최지욱은 물론

 

대부분 휩쓸리던 애들도 너를 쉽게 만만하게 보진 못 할 거야. 이 정도로만 해둬도 너희 국민학교 생활에 큰 장애물은 어느 정도 걷어낸 셈이야.

 

물론 너는 앞으로도 너의 미숙함과 멍청함 덕분에 수도 없는 인생의 위기를 많이 만나게 될 테지만 내가 어떻게는 너를 캐리해서 대성까지 이끌어내야

 

해."

 

"이불아..."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끝까지 들어.

 

넌 지난 생 40년에서 배운 게 크게 없는 것 같애. 과거를 회상해봐도 그 무능함의 한 단면이 드러나지.

 

개인방송이라는 건 명과 암이 너무나도 뚜렷이 나뉘는 분야인 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자신이 

 

진의제국의 왕이라고 거들먹거리기만 했지. 우선 왕에 대한 너의 비뚤어진 인식부터 바로 하자. 왕은 그저 왕관 쓰고 거들먹거리고 자기 권위 앞세우고

 

세금 많이 뜯어가서 자기 호위호식하는 자가 왕이 아니야. 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살피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존재야. 너 한자 들을 청을 실제로 쓰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聽이야. 귀 이와 은혜 덕 임금 왕이 조합된 모양을 하고 있어. 임금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라는 거야.

 

니가 전생에 지껄였던 헛소리나 니 마음에 안 든다고 방송 시청자들을 강제 퇴장시키는 짓거리가 과연 왕이 보일 행동에 적합하냐고 이 등신아.

 

너가 전생에서 방송 켜두고 돈 떨어지면 구걸만 하는 걸 왕이라고 할 수 있어? 그건 그냥 병신 떨거지 저능아일 뿐이야.

 

40년동안의 인생을 살고 다시 생을 살면 좀 변해야 되는 거 아니냐? 결론은 고작 8살짜리 애한테 휘둘린다는 것부터가 넌 발전이 전혀 없다는 걸 방증하

 

는 거울인 셈이야."

 

"아니야. 난..."

 

"아 넌 역시 말로만 해서는 안 돼. 채찍질이 필요하겠군." 말이 끝나는 동시에 현기의 몸에 엄청난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지나가며 현기가 짧은

 

비명을 외쳤다.

 

"으악! 아프잖아."

 

"넌 이렇게해서라도 좀 행동방식 사고방식을 교정해야 돼. 앞으로도 니가 모지리 짓을 하면 난 가만있지 않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고통을 채찍질의 수단으로 활용할 거야. 갈 길이 멀다. 나도 내 떨어진 에너지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자야 돼. 당분간은 널 괴롭히는

 

적은 등장하진 않을 테지만 넌 입학식 전 엄마가 학교에서 똥 마려우면 어쩔 거냐는 물음에 집에 와서 싸겠다는 대답을 할 정도로 경우가 없는 놈이기

 

때문에 내가 항상 본체를 분리해 따라다니면서 널 관리 감독할 거야. 내일부터 다른 생각같은 거 하지 말고 학교 수업에 충실해. 어차피 수업 시간도

 

다 합해봐야 그리 길지 않잖아? 너의 잘못된 부분을 세세히 뜯으면서 뜯은 부분 하나하나씩 고쳐가기로 하자. 현기야 자기 전에 마지막 한 마디

 

덧붙이자면 너 자신부터 알도록 해. 넌 너에 대해 너무 모르고 헛바람만 잔뜩 들어갔었으니까."

 

다음 날 현기가 등교했을 때 최지욱은 평소에 하던 것처럼 현기를 때리거나 윽박지르지도 못 했다. 그저 혼자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은 현기를 동물원 울타리 안에 구경하는 동물인 것인 양 취급하는 눈치였지만 어찌 됐든 직접적인 괴롭힘은 면하게 된 현기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학교 수업을 충실히 들었다. 지난 과거였으면 계속 주변 애들 눈치를 보느라 학교 수업도 제대로 못 따라가고 알림장 하나 제대로 못 써서

 

늘 문제아 취급을 당했지만 위험 요소가 사라졌다고 느끼니 수업을 따라가는 것과 알림장 받아적는 것은 그럭저럭 잘 따라갔다. 물론 수업 중간중간

 

집중력이 떨어져 딴 짓을 할 때에는 파란 이불이 몸소 전기충격을 가해서 반강제적으로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말을 한 음절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국민학교 수학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천천히 내가 가르쳐줄 테니 따라와. 선행학습 및 선행학습한 내용을 다지는 복습으로 일종의 과외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해. 수학은 여러모로 너한테 유용한 데 너의 쓸데없는 망상을 줄이고 집중력과 직관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데 아주 좋아. 생각을 키우는 것이고

 

너의 먼 훗날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우선 기본 사칙연산과 사칙연산을 긴 문장으로 표현한 긴 글 문제에 익숙해 지는 것부터 시작하자."

 

학교 수업 외 하루 2시간 정도는 파란 이불과 같이 수학을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도 전생 40세까지 산 게 아주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국민학교 산수 과정은 매우 수월하게 따라갔다.

 

얼마 안 되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리고 겨울방학 얼마 뒤 바로 온 봄방학 이후 현기는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친구없는 아웃사이더였지만 그를 괴롭혔던 최지욱은 반이 달라 딱히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얼굴을 볼 일이 없었고 일거수일투족 붙어있는

 

파란 이불 덕분에 현기는 전혀 외로움과 심심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불이 말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기객관화를 위해 항상 자신을

 

화장실의 거울에 비춰보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88올림픽이 끝나는 것을 라디오 뉴스로 들은 지 얼마 돼지 않아 2학년이 되었고 현기의 운명은 최지욱을 시작으로 하여

 

슬슬 변할 조짐을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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