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단편] 그 소년은 거짓말을 좋아해

오늘도 간신히 ;학주;한테 얻어맞지 않고 등교 성공했다. *학생주임의 준말

 

"헤이 기수 기수 1기수 2기수 3기수 빙신새끼 맨날 이 시간에 올 거면 그냥 지각비 1000원 내 임마"

 

내 이름 가지고 놀리는 새끼는 저 새끼밖에 없을 거다. 좀 내 이름대로 불러보지 꼭 저 지랄을 한다. 우리 반 총무 역할을 맡고 있는 찬우는 오늘도

 

나를 갈군다. 씨바 내가 원래 잠이 많은 걸 지가 나 대신 잠을 더 자 줄 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맨날 저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말은 좆같이 해도 늘 나 생각해주고 가끔 내가 1~2분 좀 걸려 등교해도 가끔 눈치볼 애들이 없다 싶으면 묵인해주는 착한 놈이다.

 

그러면서도 이 놈은 우리반 정보통이기도 하다. 총무 역할을 맡고 소위 인싸이다 보니 이런저런 소식통이자 어떻게 보면 사교에 능하면서 능글능글하달까.

 

생각을 하던 와중 찬우가 말을 덧붙인다. "오늘 우리반에 전학생 온댄다. 담탱이한테 들었는 데 여학생이래. 우리 여학생이랑 단교되어 있잖아."

 

"병신새끼 뭔 단교야. 뭔 여자애들이랑 우리랑 외교 관계 맺고 있냐? 좆같은 말 할 거면 그냥 1~2분 씹고 지각비 걷던가 아침부터 염병이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기대되기도 했다. 남녀공학이면서 남녀분반이 아닌 합반이라 여자애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지만 왠지 좀 내 아는 선에서

 

고급지게 표현하자면 내가 00년생이니까 한참 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관계와 같다고나 할까? 여자애들이 미국이고 우리가 소련같은

 

 여자애들이 택택대는 것도 우리는 그냥 으레 그렇듯 약간 광대질을 하는... 어디까지나 내 주관이 섞인 생각일 뿐이다. 아무튼 합반이긴 한데

 

묘한 긴장감과 말 한 마디를 여자애에게 건네도 그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다음 날부터 이상한 헛소문이 퍼질까 두려웠다.

 

 얼마 안 되어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고 담임 선생님 뒤로 뽈뽈대며 걷는 것 같은 키 작은 여자애가 들어왔다.

 

"자 오늘 전학생 왔다. 이름은 박수정. 충청남도에서 전학왔다고 하고... 야 니 자기소개하고 자리는 저어기~ 쟤가 김기수거든? 야 기수. 니 옆자리 비었으

 

니까 앉히고 우리 학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1교시는 시청각실에서 진행하니까 니가 손 붙잡고 잘 안내좀 해줘라."

 

순간 애들의 우우우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개새끼들 괜히 사람 꼽주고 앉아있어. 쪽팔리게. 괜히 얼굴이 붉어지지만 나도 남자 새끼라 잠깐 그 박수정이란

 

여자아이를 잠깐 눈길로 봤는 데 키는 확실히 작았다. 키는 작고 얼굴은 마치 요즘 TV에서 볼 수 있었던 문채원의 얼굴이 더 작고 갸름해진 얼굴에

 

나도 지금 성장기라서 작을 뿐이라고 자위할 뿐이지만 그런 나보다도 작은 좋게 봐봐야 160cm에 턱걸이 할 수 있는 여자애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 자리에 앉았는 데 먼저 하는 말이 귀에 울렸다. "야 니 이름이 뭐여?"

 

"야 니 충청도 사람 맞냐? 이건 충청도 사투리가 왠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서울에만 살았지만 이건 충청도랑은 거리가 멀잖아."

 

"아 우리 부모님이 여기저기 돌아다녀. 최근에 있던 데가 충청도고. 좀 헷갈릴 수도 있겠네. 하하. 이 거 저 거 섞여있어."

 

"음.... 그래 알았다. 시청각실부터 가자." 쭈볏쭈볏 일어나 걸어가고 있는 데 수정이는 교과서 품에 앉고 또 뽈뽈뽈 따라왔다.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너무 귀엽잖아!!! 하지만 이 걸 표내는 순간 다음 날 난 좆됀다. 이 마음을 유지한 채 시청각실로 들어왔다.

 

시청각실 수업이었던 영어 수업 도중 나는 수정이가 처음 전학 온 수업 자리인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영상에 틀어진 영어를 듣자마자 직역하여

 

발표하고 순간 의역까지도 해서 쟤 뭐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너 뭐야. 이런 걸 다 바로 알아들을 수 있어?"

 

"아니 야.... 그게 별로 어려운 게 아녀. 예를 들면 I come from Chungcheong Province. However, I harbor a profound affection for you."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전혀 모른단 말이야. 그냥 한국어 써. 너 뭐...라고 하는거야. 충청도에서 왔다면서. 난 그냥 산골에서 산 애인 줄 알았는 데 그게 뭐야?"

 

난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수정이가 흘리는 미소인지 약간의 비웃음인지 모를 아리까리할 표정을 보고 교실로 돌아갔고 이후에는 별 특별한 일이 없었다.

 

하루의 수업이 모두 마무리되고 ;종례;를 마무리하고 난 수정이와 헤어졌다.

 

*조례는 아침에 학생들이 모여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필요한 사항을 전달받는 의식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선생님 말씀, 학생 전달 사항, 건강 확인 등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종례는 일과가 끝날 때 학생들이 모여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의 준비 사항 등을 전달받는 의식입니다. 보통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됩니다.

 

수정이와 헤어진 이후 난 그 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갔다. 여기 저기 왔다갔다고만 하고 자기 출신은 최근이 충청도라고 하고 여기 저기 왔다갔다

 

한 것과 영어 시청각 수업에서 선생님의 지도 없이 바로 나온 대사를 직역과 의역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고 신비롭다 느꼈다. 오늘은 이 의문스러움

 

때문에 잠을 좀 설치지 않을까 싶었고 영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다음 날은 잠을 좀 설친 건지 일찍 일어나서 찬우의 잔소리 없이 학교에 밀리지 않고 등교하고 기다리다 좀 늦게 온 수정이에게 대뜸 말했다.

 

"야. 너 과거좀 내가 물어봐도 돼? 너 예전에 뭐하던 애야?"

 

수정이는 아주 순간의 찰나 웃음을 짓는 듯 하다 순간 표정을 바꾸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별 거 아냐. 난 그냥 부모님이 장사하시는 데 따라다녔을 뿐이

 

야."

 

"아니야. 오늘은 너 내가 분명히 감시할거야. 너같이 수상한 여자애는 본 적이 없으니까. 너 너무 뜬금없는 거 알아? 괜히 사람 마음 흔들고 그러지 말아."

 

난 순간 주변의 눈치라는 걸 잊고 순식간에 내 말을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해보였다.

 

아... 말하고 나서 느꼈다. 분위기 조져버렸다고. 나랑 걔만 있을 때 말할 걸. 괜히 여러 명 있는데도 눈치라는 개념을 잊고 함부로 말을 내뱉은

 

나의 병신같음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같았다.

 

수정이는 금방 학교에 적응했다. 딱히 짝꿍인 나의 도움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듯 금방 기존에 있었던 친구들과 동화해 갔고 나는 그런 상황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더 이상 나의 필요는 없겠지. 나 없이도 잘 하는 애인 데 괜히 쓸데없는 기대감만 품었잖아. 괜시리 내 자신이 미워지는 감정에

 

빠져들었다.

 

 오늘의 종례도 끝나고 집에서 수학 숙제를 풀다가 뜬금없는 전화번호가 떴다. "예 여보세요?" "기수야 나야 수정이. 나랑 숙제 같이 할래?"

 

시작부터 지금까지 뜬금없는 여자애인 건 분명하다. 지 할 일 다 잘 하고 나는 더 이상 필요없어서 적당히 짜져있으려고 하는 데 뜬금없는 전화.

 

"야 의외로 가까운 데 사네? 근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너 그 거 알아. 넌 나랑 만날 때부터 뜬금없다는 거."

 

"아 ㅋㅋ 여자애들이 알려주더라고. 비상연락망 공유해주고 다 해서. 근데 내가 언어는 잘 하는 데 수학이 약해. 니가 좀 알려주라."

 

"아.... 알았어. 지금 니가 제일 어려움을 겪는 게 뻔하겠지? 오늘 숙제의 주제가 외심의 성질과 내심의 성질을 활용한 문제이니까. 우선 정의부터 암기해야

 

해. 외심은 삼각형의 외접원의 중심이며 그렇게 때문에 각 외심에서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 연결한 선분의 길이는 외접원의 반지름으로서 같을 수밖에 없

 

어. 그리고 내심은..."

 

 나는 수정이의 수학 숙제에 일종의 첨삭 수업을 해주고 수정이는 나에게 시원한 콜라에 얼음을 타서 최대한 내 기분을 맞춰주려 애쓰는 듯 보였다.

 

"어..... 수정아.... 그런데 너 진짜 뭐하는 애야 내가 물어봐도 돼?"

 

"아니 나 그냥 별 거 없어. 부모님이 장사하느라 여기저기 나 끌고다니고 귀찮기만 했어. 부모님이 바쁜데 난 뭐랄까? 그저 난 세상을 떠도는 게 부모님

 

닮아서 좋은 건지 모르겠어. 그냥 그래 ㅎㅎ 나 생각보다 단순한 여자야."

 

'시발 똘구같은 년 다 보겠네. 그냥 좀 다 말해주면 안 되나. 니가 지금 나랑 이렇게 있는 거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런 거 금방 소문나면 내 학교생활

 

어쩌려고'

 

난 그렇게 수정이네 집에서 숙제를 같이 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득 마음 속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수정이가 부모님을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따라다녔다면 만약 외교관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순간 찬우의 말이 생각났다. 내 머릿 속 상상일 뿐이지만 지금 현재 우리 학교의 남학생들

 

여학생들간의 미국과 소련의 냉전같은 상황에 수정이가 옮으로써 인해서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던 와중 시간은 또 가고 나는 하교를 하던 도중 수정이의 사생활의 일부를 목격하게 됐다.

 

"수정아. 너 이 것좀 더 받쳐들어. 아빠좀 도와줘야지."

 

갑자기 수정이 소리가 들리길래 내가 아는 수정이인지 아닌지 갈팡질팡해서 서있던 전봇대 반댓편에서 몰래 고개를 쏙 빼 보니 수정이가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의 박스 짐들을 트럭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사뭇 외모가 의외성이 느껴졌다. 남성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그 뒤에 박스 짐을 수레로 밀고 오던 좀 젊은 여성은 우리나라 여자

 

대략 나이로 봤을 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힘겹게 수레를 밀고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그냥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내 갈 길을 갔겠지만 수정이가 돕고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몸과 입이 동시에 움직였다.

 

"수정아 거기서 뭐해.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순간 정적이 오갖고 내 뇌내 온갖 병신같음이 샘솟기 시작했다. 난 왤캐 병신같을까?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고 그냥 거기서 짐짓 모른 체 가거나 아니면 찌질하게 내일 우리학교 소식통 찬우를 붙잡고 온갖 호사가들이 좋아할 법한 소문만 흘린 채로

 

지나갈 수도 있을 텐데 순간 3초 전에 내가 나를 패고 싶을 정도로 병신같은 반응이 나온 것이다.

 

"어? 수정아 너 벌써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서 친구 사귀었었나?" "아이고 우리 도와주면 고맙지. 그래. 밥은 먹었나?"

 

.......일이 끝난 뒤 나는 수정이랑 단 둘이 동네 언덕에 앉아 코카콜라 뚱캔을 원플러스원으로 사서 둘이서 나누어 먹었다.

 

"난 사실 기수 너가 내 사정을 알지 말길 바랬어. 우리 부모님이 한 분은 한국인이고 한 분은 외국인이시고... 물건 떼서 장사하신다고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면서 행상을 하셨고 난 그저 따라다니면서 일을 거들었을 뿐이야. 난 모든 세계를 다 돌아다녀봤지만 한국이 좋아. 내 어머니가 한국 분이라서

 

애착도 가고. 너가 날 도와줘. 나 사실 맨 처음부터 느꼈어. 너 수줍음 많지? 나 우습게 보지 말아.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겪다보니 니가 무슨 생각할 지는

 

내가 뻔히 알 걸? 니가 아무리 수학을 잘 해도 나보단 사람 마음 읽진 못할 거야."

 

"문디 가스나. 완전 ㅋㅋㅋ 나 맨 첨엔 니가 외교관 자식인가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랬구나. 아니 됐다. 오늘 콜라 맛있고 잘 넘어가네. 문디 가스나."

 

"문디 가스나?"

 

"그래 너한테 배웠다. 외국어도 외국어고 온갖 이상한 언어로 다 말하더만. ㅋㅋㅋ 월요일 학교가면 짝꿍 다시 정할 때 누구랑 앉을래?"

 

"바보야. 그건 모르는거지. 하지만 내가 수학을 못 하니까 나 수학 다 뗄 때까지만 짝꿍해줘."

 

아마... 월요일 찬우랑 얘기를 나누다 다 들통날 지도 모르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항상 여자애들 눈치나 살살 보며 기어다니던 나였지만

 

오늘은 왠지 누구의 눈치도 보고 싶지 않고 내가 꽂혔던 여자애와 손을 꼭 붙잡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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