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계절

 

나이가 다섯살도 체 되보이지 않는 어린 남자 아이가 그녀의 손을 꽈악 잡고 있었다.
하얗고 작은 손으로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 성현이는 뭘 하고 싶니?"
그녀가 아이의 시선에 맞춰서 쭈그리고 앉은 체 쳐다보았다.
"이게 좋아."
그녀는 그 말을 듣고는 살며시 미소 짓고는 아이를 껴안았다.
그러자 아이는 살며시 눈을 감고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뺨을 타고는 아이의 어깨로 떨어졌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새 멈추었다. 
그녀는 다시 미소 짓곤 아이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래, 엄마도 이게 좋아."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는 살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따듯한 햇빛이 비추는 길로 걸었다.
이제는 그 둘이 길을 걷고 있었다.

 

 

여름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는 그 곳에 둘은 있었다.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고 길을 걸었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지만 잘 정돈된 그 길을,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갔을법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걷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아이가 앞서 걸어간다.
우거진 숲길에는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청바지에 흰 반팔티를 입은 남자아이 뒤를 두발자국 뒤쯤에서 뒤따르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앞서 걷다가 멀어지는거 같으면 속도를 줄였다. 여자아이는 그런 그의 뒤를 천천히 뒤 따르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가끔씩  한쪽 손과 팔을 살며시 뒤로 두다가 앞으로 두는것을 천천히 반복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도 그것을 힐끔힐끔 쳐다보는것 같았다.
어느덧 더운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고 있었다.
길 옆 도랑에선 개구리 우는 소리가 간혹 들리고 있었다.
그 들이 걷는 곳 앞 저 멀리 작은 다리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 곳엔 집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들의 옆으로는 들꽃들이 피어있었다.
머지 않아 다리 앞에 도착했을 무렵 남자아이는 팔을 뒤로 둔채 멈춰섰다.
그러자 여자아이도 그걸 보았는지 잠시 멈추곤 그를 쳐다보았다.
"좋아해."
그 말을 듣자 붉게 볼이 상기된 여자아이가 말없이 그의 손을 잡더니 그의 앞으로 사뿐사뿐 걷고는 말하였다.
"나도 그래."
싱긋 웃고는 여자아이는 자신의 입을 한쪽 손으로 살며시 가리곤 남자아이의 손을 잡은 체 다리를 건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불어왔다.
상쾌한 바람이.

 

 

 

가을

 

이 맘 때 쯤이 였을거라고 그 남자는 생각했다.
그는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왔었다.
아직도 그 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초저녁에 그는 자동차를 몰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집.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이 간혹 보인다. 앙상한 가지에 갈색으로 변해버린 잎들이 나무에 붙어있었는데 강한 바람이 불자 떨어지는게 보였다.
나무 밑부분에 낙엽이 잔뜩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그 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한 이 곳에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자동차 움직이는 소리도 들린다. 그 뿐이다.
자동차 뒷좌석에는 사과박스와 외투가 실려있다. 그리고 좌석 밑에는 너저분하게 운동화, 그리고 우산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어딘가를 잠시 응시하였다.
산이였을 것이다. 갈색으로 물들고 붉은 색으로 물든 산이였을 것이다. 그가 응시한 곳은 산이였을 것이다.
새 한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기줄에 앉는다.
좁은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며 그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운전하긴 불편한 복장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회색 정장, 타이트한 와이셔츠, 정장 바지, 검정색 가죽구두. 가죽구두에 접히는 부분이 미세하게만 보이는걸로 보아 그는 가죽구두를 자주 신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동차를 멈추었다.
작은집이다. 그는 그 곳 앞에서 자동차를 주차하였다
오래된 집이다. 붉은 기와로 된 지붕과 시멘트와 갈색 벽돌과 적갈색 벽돌로 지어진 집이다.
드문드문 시멘트 부분에 금이 가 있지만 미세하다.
자동차에 있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에 운전석에서 내렸다.
사과박스를 한 손에 들고는 움직였다.
다른 한 손에는 열쇠를 쥔 채 움직였다.

그 작은 집에는 초저녁이라  곧 어두워질텐데  전등이 하나도 켜져있지 않았다.
장식이 된 검정색 문을 열쇠로 열었고, 문을 삐걱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열렸다.
차가운 바닥. 오랜기간 난방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그는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 씽크대 밑에 사과박스를 한 상자 놓았다. 열쇠는 손에 꽈악 진 채 거실 바닥에 앉았다.
전등도 키지 않은채 그는 전등이 있는 곳을 바라보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방으로 연결된 문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말하더니 멍하니 거실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미세하게 주름진 눈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주름진 손으로 미간을 살며시 잡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부엌으로 가 박스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들고 천천히 베어물었다.
한입, 한입 천천히 베어물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과를 다먹은 후 문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 곳은 많이 편해?"
그의 물음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삼킨 울음소리도 조용히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든 여인의 사진 한장이 책상에 놓여져있을 뿐이였다.
하염없이 사진을 쳐다보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겨울

 

새하얀 눈이 서서히 쌓여간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이곳. 온 세상은 새하얗게 덮어져간다.
눈이 쌓인 언덕 저편에서 누군가 걷고 있다.
눈이 쌓인 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갈색털이 달린 모자를 푹눌러 쓴 그 사람, 그 남자는 천천히 확실히 어딘가로 걷고 있었다.
동물의 가죽과 털로 덧댄 외투를 입은 그 남자의 등에는 큰 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추위로 붉게 상기된 볼, 그의 작은 눈은 어느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곳엔 보였다, 작은 불빛이.
그리고 그의 뒤로 보인다. 그가 지나온 길이 새하얀 눈으로 조금씩 덮여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길이 길게, 언덕 뒤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 밖에 없을 것이다.
한발 한발 내 딛을 때마다 그의 발자국이 남는다.
굳게 닫힌 입. 미세하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작은 불빛이 아른거리는 그 곳에 불빛 말고도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꼬마 아이가 둘. 그 둘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집이 하나 보였다.
그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두 아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자기 키보다도 큰 빗자루를 든 채 문 앞을 쓸 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새하얀 볼이 빨갛게 변한 두 아이는 벙어리 장갑과 자그만한 장화를 신은 상태였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곤 크게 외쳤다.
"아빠 왔다, 얘들아!"
그러자 두 아이의 시선이 그를 향하였다.
그러곤 잠시 멈추더니 작은 발로 아장아장 눈길을 걸어 그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두 아이에게 가까워지자 두 아이가 동시에 말하였다
"다녀오셨어요!"
그러자 그는 장갑을 벗어 외투 주머니에 넣고는 두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두 아이는 남자를 쳐다보더니 한쪽 손을 각자 양쪽에서 잡고는 문 앞으로 이끌었다.
서서히 열리는 문 뒤로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보."
"많이 기다리게 했지, 미안해. 많은 일이 있었어."
그 말을 들은 여인 살며시 가로젓고는 그를 살며시 껴안았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큰 아이가 살며시 뒷꿈치를 든 채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작은 아이는 그런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이 닫힌 이 곳. 이 곳은 따듯한 곳이였다.
벽난로에는 따스한 불길이 있었고, 한쪽으로는 들짐승의 가죽으로 엮어 만든 넓은 카펫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잘 정돈된 식기와 옷가지, 포근해보이는 잠자리. 네 식구 편히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탁자.
살짝 칠이 벗겨진 커다란 흔들의자. 자그마한 소파. 요리를 할 수 있는 화덕도 하나.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어른 한명이 들어갈 수 있는 욕조도 보였다.
그 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따스한 미소를 지은채 부부는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자그만한 입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눈이 내린 가지에 자그만한 새가 앉아 있는걸 본 이야기, 식사 준비를 도와준 이야기, 예전엔 잘 먹지 않았던 채소를 먹은 이야기.
자고난 잠자리를 스스로 정리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들은 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두 부부의 입과 눈에는 따스함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예전보다 살짝은 더커진 여자의 배를 쳐다보며 아이들이 이야기 시작하였다.
"아기는 언제 나오는 거에요?"
그 말을 들은 여자는 편안하게 흔들의자에 앉고는 이야기 하였다.
"백번을 자고 일어나고 또 백번을 자고 일어나면 이 세상에 나올거란다."
그 말을 듣자 덩치가 좀 더 큰 남자아이가 말하였다.
"그럼! 오늘부터 세번 자고 일어날거에요!"
"나도 그럴거에요! 나도 그럴 거에요!"
그 말을 듣자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살며시 짓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곤 살며시 배를 어루만지더니 눈을 떴다.
"그래, 아기도 빨리 나오고 싶어할테니 잘됬네?"
"웅!"
"얼릉 자야겠다!"
그렇게 동시에 말하더니 잠자리로 두 아이가 쪼르르 가고는 웅크리고 누웠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입맞추고는 바라보았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아. 당신이 고생이 많아. 나도 당신을 많이 도울게. 멀지 않을 그 날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밝게 자란 두 아이와 함께 있어준 당신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뭐든지 할거야."
"고마워. 당신과 두 아이들과 있어서 너무 행복해. 뱃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면 더 행복할거야."
그 말을 들은 그는 그녀가 앉은 흔들의자 뒤로 가고는 살며시 껴안았다.

새하얀 눈이 쌓이는 이 언덕. 그 곳에 있는 작은 불빛과 집.
그리고 자그마한 생명 다섯. 겨울은 다가왔고 지나갈 것이다.

 

 

계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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