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처음 극장에서 본 건담 시리즈인것 같네요.
이전까지는 넷플릭스, 유튜브 등 모바일 기기로만 보던 건담을 큰 화면, 큰 음향으로 보니 확실히 재밌었습니다.
썬더볼트, 디오리진, 그리고 기타 다른 시리즈도 스크린으로 봤으면 더더욱 재밌었을텐데, 앞으로는 국내 개봉이 더더욱 많았으면 싶습니다.
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요약해보자면, 건담 시리즈로도, 한 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굉장히 재밌게 보았습니다.
아마도 건담 시리즈 신작이니만큼, 그리고 우주세기를 다루는 만큼 호불호의 갈림은 당연한 말이겠습니다마는,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저는 굉장히 재밌게 보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표값 16,000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요.
원래는 다른 커뮤니티에 올릴 용도로 써서 존댓말인데요, 구태여 반말체로 바꿔서 쓰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
전체 구성은 패러렐 월드 소개인 1부와, 오리지널 스토리인 2부로 나뉘어있습니다.
후일 공개 예정인 TVA편에서는 이 1부가 없고, 극장에서 선공개된 2회분의 스토리에 이은 1쿨 분량을 방영할 예정입니다.
만일 본가 시리즈에서 뒤바뀐 지쿠악스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2020년대의 감각으로 다시 쓰인 일년전쟁을 보고싶으시다면, 극장판을 보시는 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이하의 내용은 본편의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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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퍼스트 건담을 되새기며...
평화로운 사이드6에, 지온공국군의 모빌슈트가 침입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다름 아닌 연방군의 기밀 작전 V작전을 저지하는 것.
기기 고장으로 출격하지 못한 소대원 진을 대신하여 샤아 아즈나블은 직접 사이드6에 침입하게 되고, 거기서 연방군의 최신 모빌슈트 '건담'을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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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스트 건담 다시 쓰기, 넘치는 존경을 담아
효과음 하나, 명장면, 구도, 심지어 에피소드 가이드까지 철저하게 기동전사 건담 TVA를 오마쥬하고 있습니다.
아마 본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극 초반의 "비기닝"부터 반가움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실 듯 합니다.
단지 자쿠가 고장나 진이 나오지 못했을 뿐인데, 그로부터 모든 스노우볼링이 굴러갑니다.
샤아는 뜬금없이 놓여있는 건담에 탑승하고, 원작에서 아무로가 자쿠를 학살하던 장면을 여기선 건캐논 학살로 재현하죠.
콜로니에 구멍이 날까 콕피트만 살살 쑤시는가 하면, 또 그런 샤아를 뒤쫒아 나온 건담 01 (이 세계관의 프로토타입 건담.)에게 손수 건담 킥을 먹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철저히 TVA 기동전사 건담의 언어로 묘사됩니다. 구도 한 장면, 효과음 하나까지 말입니다.
단지 차이라면, 액션신이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점, 메카 디자인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액션을 샤아가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아마 많은 팬분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장 저부터가 그랬으니까요.
하여간 굉장히 재밌습니다.
• 일년전쟁 다시 쓰기, 최신 연출을 담아
극 내내 돋보이는 점은 훌륭한 연출과 뛰어난 작화입니다.
디오리진이나 시드 극장판처럼 확 튀는 3D 작화도 아니고, 섬광의 하사웨이처럼 너무 어둡지도 않죠.
동화와 인물도 굉장히 역동적이고 자연스럽습니다. 연출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마냥 슝슝 날아다니는 기체를 쫒아다니는 정도는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건담 40주년 OVA보다 덜 구수하고, 디오리진보다 더 원작 친화적인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딱 좋은 지점이죠.
특히, 본격적인 오리지널 스토리가 시작되는 솔로몬 작전은, 아예 드라마 5공화국 같은 전쟁극 시퀀스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작개에서부터 작전 시작, 침투, 위기, 그리고 작전 결과까지 흐름별로 긴박하게 풀어나가고 있는데요, 이 부분이 몹시 재밌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란하게 날아다니는 비트와 빨간 건담, 그리고 그런 건담을 원호하는 브라우 브로에서 환호를 참을 수 있는 팬분들이 있을까요?
전 못 참지 싶습니다.
• 진이 없는 세계관이란
'겨우 진 하나 빠진' 걸로, 스노우볼이 어디까지 굴러갈 수 있을까요?
그 거대한 눈덩이가 구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요.
• 붉은 건담
처음 봤을 때의 소감은 "벌레인가?" 였습니다. 영화관 들어가기 바로 직전까지도, 이건 뭔가 선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은 그대로였죠.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반다이 매직은 여전했습니다.
초반 내내 역동적으로 날아다니는 비트와, 그 사이로 날아오는 붉은 색의 압도적인 기체. 어느새 기괴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뽕이 채웁니다.
역시 반다이 메카는 움직이는 장면을 봐야합니다.
• 친절한 샤아 소령
이렇듯 굉장히 재미있게 본 1부지만, 걸리는 부분이라면 바로 스토리 전개겠네요.
아무래도 변경된 일년전쟁 전체 내용을 1부, 약 40분에 걸쳐 설명해야 되니 휙휙 넘어가는 부분은 있습니다.
세계관을 안다면 충분히 흐름을 잡을 정도는 되겠습니다마는, 우주세기를 이전에 접해보지 못하신 분들이나, 아예 건담 시리즈가 처음이신 분들에게는 자칫 '뭔 소리 하는거야?' 는 느낌일 수 있겠네요.
더해서, 그런 세계관 해설을 상당수 샤아의 독백으로 처리하다보니 저는 좀 몰입이 깨지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친절한 샤아 소령은 관객 분들의 이해를 위해 생각하는 바를 모두 입으로 읊어주십니다.
물론 토미노 영감님처럼, 아예 정보를 건네주지 않고 휙휙 넘기는 '불친절한' 스타일도 호불호가 갈리겠습니다마는,
이런 작법에 익숙하신 기존 팬분들에게는 이 샤아 소령의 친절함에 외려 거슬림을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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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건담, 2020년대를 맞아...
한편 시간은 지나 U.C. 0085년.
독립 콜로니 사이드6의 주민 아마테 유즈리하는, 등교길에 부딪힌 묘한 소녀에게서 정체불명의 전자부품을 얻게 됩니다.
그 물건의 정체는 바로 전투 디바이스. 모빌슈트의 전투용 프로그램이 담겨있는 기기로, 이 기기를 사용하면 모빌슈트의 무기 제어 시스템을 비롯한 전투 프로그램이 부팅됩니다. 당연히 민간인이 이를 다루는 것은 불법이죠.
이를 알게된 아마테, 혹은 '마츄'는 그 수상한 소녀를 뒤쫒게 되고, 마침내 다다른 한 빈민가의 아지트에서 그녀의 운명을 뒤바꿀 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
• '건담같지 않은 건담'
모든 신건담의 가장 큰 딜레마는 이 지점입니다.
그리고 신건담이 거꾸러지는 부분도 이 지점일테지요.
요즈음의 건담을 보다보면, ‘건담같음’과 ‘건담같지 않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챙기려는 시도가 간간히 눈에 띕니다.
비단 철혈의 오펀스, 수성의 마녀와 같은 비우주세기 뿐만이 아니라, 건담 NT, 문 건담, 건담 발푸르기스와 같은 차세대 우주세기 작품에서도 보이는 점이죠.
문제라면, 이런 상반되는 두 목표를 너무 의식하다보니 '건담의 저주'에 빠지고 만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가장 건담 같아야 할 부분은 건담 같질 않고, 반대로 기존 건담을 벗어나야 할 부분에서는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점이죠.
물론, 이것은 고릿적 기동신세기 건담 X 때부터 터져나온 문제이긴 합니다. 오죽이나 했으면 '건담은 어렵다', '건담은 하고싶지 않다'는 신세대 감독들의 고충이 신작 발표때마다 돌아다닐 정도일까요.
그러나 지쿠악스는 그런 강박에서는 이제 좀 벗어난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만듦새가 굉장히 깔끔하고, 또 표준적입니다.
극 전체에서 ‘건담같음’에는 거리를 좀 두고,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인상을 많이 느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호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예 건담같지 않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건담'을 지쿠악스의 언어로 세련되게 풀어내고 있죠. 너무 무겁지 않게, 일상극의 형태를 빌어서.
주인공 마츄는 하루하루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또 노을을 지나쳐 집에 돌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공의 어깨 너머로 비춰진 콜로니의 '일상'은, 지극히 스페이스노이드의 그것입니다.
살기 팍팍하고, 전투경찰들은 난민촌을 마구 파헤치고, 간혹 사람의 머리 위로 모빌슈트의 잔해가 떨어지는, 어쩌면 본편 세계관보다도 어두운, 그런 일상 말입니다.
이렇듯 지쿠악스는 '건담같지 않은 건담'에서 성공을 거둔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포인트는, '이것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입니다.
요컨대, 지금 이 분위기를 계속 극 끝까지 유지하느냐, 혹은 수성의 마녀처럼 각본가가 극에 잡아먹힌 끝에, 마지막 3화 남짓에서 모두 말아먹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만일 지쿠악스가 지금 이 정도의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서 성공적으로 엔딩을 낸다면, 앞으로의 건담 유입은 이 작품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요즘 애니, 요즘 건담
어쩌면 우주세기 팬이면 으레 그러하듯이, 글 쓰는 본인도 모에요소나 미소녀 쪽에는 흥미가 그다지 없습니다.
요컨대, '홍대병 말기 우주세기틀딱' 정도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게 봤습니다.
극 전체적으로 발랄한 일본 애니 감성과 건담물의 액션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데요, 크게 거부감 없이 '애니' 보는 감성으로 볼 정도는 될 것 같네요. 위의 ‘깔끔함’이 이 지점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바보털이 뻗친 여자 캐릭터들이 둔감한 남주인공 곁에 서성이며 빚어내는 시츄에이션을 즐기는 편이라면, 좀 심심하실 것 같긴 합니다.
인물의 분위기로만 보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보면 되시겠습니다.
• 영상미 GOAT
단지 이것으로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16,000원 값어치를 충분히 합니다.
섬광의 하사웨이와는 다른 의미로 눈이 즐거운데요, 묘사의 수준으로 보면 그에 뒤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특히 새롭게 짜여진 뉴타입 연출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음향, 화면 연출 등)
• 불친절한 마츄씨
앞번 파트의 샤아가 너무 친절해서 문제라면, 이번 파트의 마츄는 반대로 너무 불친절합니다.
스토리의 맥락에서, 마츄가 어째서 그러한 선택을 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보를 주고 있지 않죠.
마츄는 극 내내 어떠한 상황에 처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떠한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마츄는 어느새 불법 우주 모빌슈트 투기장에 뛰어들어 실탄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그저 마츄 본인만이 알 뿐입니다.
극장판이라 축약해야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극에서 본 것으로만 판단해보면 마츄는 적어도 카미유나 쥬도에 뒤지지 않는 '불도저'입니다.
빡쳤다는 이유로 지하의 갱 비슷한 애들 아지트까지 따라가고,
빡쳤다는 이유로 그 갱들의 자쿠에 억지로 올라타 전투경찰의 자쿠를 들이박고,
빡쳤다는 이유로 지온군 특수요원이 잠깐 주차해놓은 정체불명의 군용 모빌슈트를 훔치고,
또 빡쳤다는 이유로 갱들의 불법 우주 모빌슈트 투기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번 보지도 않은 하수구에 사는 남자애와, 던지기 알바하는 여자애와 칭긔칭긔를 먹죠.
이 부분은 제작진이 의도한 건지 (즉, 마츄라는 애가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극장판이니 축약한 뒷배경이 있는건지, 아니라면 그냥 스토리 연출을 실패한건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뭐 사실 카미유의 급발진이나, 쥬도의 깽판을 생각해보면 그저 시리즈 전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마 TVA, 혹은 설정집에서라도 풀어줄 부분일 것으로 알고, 좀 더 두고 봐야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 캐릭터 디자인?
예쁘고 귀여운 카툰 느낌의 요즘 애니 캐릭터입니다.
다만 그 정도가 과해서 괴상한 속성이 떡칠된 정도는 아니고, 딱 보기 좋은 정도입니다. 혀짤배기 유아퇴행도, 과도한 모에어필, 섹스어필도 없습니다.
더해서 원작의 캐릭터들도 이러한 터치를 받아 상당히 호감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샤아는 코스튬에 가까운 군복을 입고 있고, 키시리아는 음험하며, 드렌과 우라간은 칙칙한 아저씨들입니다마는, 향상된 그림체로 말미암아 드디어 '80년대 빌런 캐릭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죠.
즉, 원작 캐릭터 쪽은, U.C. 인게이지 정도의 리파인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 리터칭 수준입니다.
다만 샤리아 불만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콧수염이 중후한 나이스 가이 미중년 캐릭터가 되었는데요, 반쯤 드립이긴 합니다마는, 그 정도가 지나쳐 언젠가 샤아에게 '넘치는 존경과 전우애'를 고백할까 두렵습니다.
중간에 야릇한 조명이 켜진 방에서 샤아와 단 둘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상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어쩐지 씬 내내 조마조마하더랬어요.
뭐, 백합 건담도 나왔으니 그 반대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겠습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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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하나의 극, '지쿠악스 비기닝'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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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로써...
바로 이 지점에서, 지쿠악스가 ‘최신 건담’임을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콕핏이나 조종계통 디자인, 모빌슈트의 UI, 콜로니 내부의 묘사 등 SF적인 묘사에서 말입니다.
의외로, 기존 건담 영상 시리즈들은 이런 미시적인 부분은 그냥 대충 ‘건담스러운’ 묘사로 퉁치고, 세세한 설정은 각종 설정집으로 풀고 마는 정도입니다.
스타크 제간 정도를 제외하면, 파일럿이 어떤 인스트루먼트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빌슈트의 무장은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뭉뚱그리고 지나갈 뿐이죠.
심지어 확정된 설정도 없어서, 요즘 나오는 자쿠에는 터치스크린이 달려있기도 합니다. 80년 당시 원작의 슈퍼로봇식 콕피트도 별로지만, 기름 냄새 나는 자쿠에 웬 최신식 홀로그램 화면이 달려있는 것도 좀 깨는 모습이긴 하죠.
지쿠악스에는 핍진성과 건담스러움이 잘 녹아있습니다. 요컨대, 미시적인 디자인에도 충분히 신경을 썼다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자쿠의 UI는 현대적이지만, 동시에 너무 화려하거나 번쩍거리지 않습니다. 딱 군용/산업용이라는 느낌에 걸맞습니다.
민간 정비공이 모빌슈트에 물려둔 스캐너는, 현실 세계 속 자동차 정비소의 진단기와 같이, 딱 BIOS같이 생긴 간단한 UI를 보여주죠.
반면, 최신형 지쿠악스의 콕피트에는 사람 손 모양의 조종간이 달려있고, 또 전방위 모니터는 식별한 적에 맞게 실시간으로 HUD를 갱신합니다. 망원 센서로 포착한 적의 이미지는 픽셀 수준으로 뭉그러져 있고,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화질이 개선됩니다.
이런 쪽의 묘사 수준은, 섬광의 하사웨이와 비슷한 수준인 성 싶습니다. 거기서도 현대 공중전을 연상케하는 콕핏 시점 장면으로 현실감을 더했죠.
사실 이런 SF 설정 부분에서 큰 진보를 이룬 것은 Z건담부터고, (리니어 시트, 전방위 모니터 등) 그런 '리얼 로봇'의 전통에 따라 후대 시기를 다룬 작품들은 저마다 테마로 잡은 '표준 콕핏'을 제시하긴 합니다. 역습의 샤아의 암 레이커식 조종간이나, UC에서 묘사되는 애너하임 표준 조종계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년전쟁 시기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표준 설정'이 없던 것도 사실이죠. 아마 지쿠악스의 묘사 쪽으로 정리가 된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사이버펑크로써...
아마 우주세기 내에서 처음 시도된 사이버 펑크 장르인 것 같네요. 이 점 또한 위의 풍부한 미시적 묘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보통 건담 시리즈에서 콜로니 내부에 대한 묘사는 대강 ‘우주정거장 안에 지구같은 건물을 지어놨어요’ 정도입니다. 그 안의 시설이나, 일상 묘사는 0080 이후로는 다뤄진 적이 별로 없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거리엔 나무가 심겨있고, 가게들이 있고, 차들이 다니고, 가끔 모빌슈트가 쳐들어와서 구멍이 뚫리는 정도에 그칩니다. 풍경들도 미래 시대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어쩐지 고색창연한 느낌이고요. 사실, 90년대에 제시된 디자인을 업데이트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당연한 바입니다.
지쿠악스에서는 사이버펑크의 클리셰를 기반으로, 콜로니 주민의 생활을 비춰줍니다.
휘황찬란한 건물 뒤에는, 전깃줄이 얼기설기 엮인 판자촌이 있고, 그보다 더 아래에는 하수구, 더 아래에는 에어록이 있죠.
사람이 살아야 되니 학교 시설이 있고, 지하철이 있고, 거리를 수놓은 가로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밤낮'은 그저 패널의 발광에 따라 정해질 뿐이고, 모종의 사유로 쳐들어온 군함은 보란듯 하늘 정가운데에 떠있습니다.
마츄가 말하듯, '그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닌 세상'입니다.
이렇듯 독립국가로써 군소 콜로니의 정치적 위치, 전선이 어지러이 얽힌 난민촌, 지하철 등 세세한 생활권, 기타 내부 시설 묘사까지, 콜로니 내부의 모습을 거주민의 덤덤한 시선으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물론 호들갑스럽게 일일이 해설하는 것은 아니고, 작중에서 이 모든 풍경은 배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더 인상깊습니다. 일상씬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비현실적 모먼트라고 해야 할까요?
요약하자면, 무심한 듯 풍부한 배경 묘사로 좀 더 실감나고, 몰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려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SF적 일상은 사실 제가 수성의 마녀, 철혈의 오펀스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자, 또 실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철혈의 오펀스 속 화성은 그냥 시골 황무지 1이고, 수성의 마녀 속 건물은 하나같이 철제 판넬을 발라둔 우주선 인테리어를 벗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기대치 않았던 지쿠악스에서 이 부분에 가장 큰 만족을 느낀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 메카디자인, 설정 등
사실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일 터입니다.
무슨 삼엽충 에반게리온 같은 건담은 물론이거니와, 하체비만 자쿠, 마찬가지로 뭔가 이상한 경캐논, 하물며 주인공인 지쿠악스도 턴에이 다음으로 호불호가 갈릴만한 디자인인데요,
근데 막상 이런 철골 엮어 만든 것만 같은 모빌슈트들이, 날아다니면서 빔 라이플을 쏘고, 히트호크를 휘두르기 시작하니 너무나도 멋지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쿠악스, 붉은 건담을 사지 못한 걸 후회할 정도로요.
물론 개인차가 있을 듯 합니다마는, 실제로 움직이는 모빌슈트들을 한 번 보시고 판단하셔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설정같은 경우에는, 역시나 인도귀신 뉴타입 슈퍼 파워가 걸리는 부분이죠.
어쨌건 시리즈 전통이기도 하고, 또 이걸 영상미로 아주 잘 커버하고 있어서 비교적 소화하기 쉬웠습니다.
적어도 UC 당랑권이나 NT 기공파처럼 몰입을 확 깨는 그런 정도의 연출은 아닙니다.
• 음악
https://youtu.be/1vCX3EkiD64?si=zxsH48uDdLN5z8yP
제가 박수를 치고 싶은 지점입니다.
2000년대 ~ 2010년대 시부야계를 좋아하시거나, 하우스 같은 일렉트로닉을 좋아하는 분들은 영화 내내 귀가 즐거우실 것이어요.
‘애니 음악’ 같은 데에 취향이 없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어필 가능할 듯 합니다. (저 포함이어요.)
처음으로 애니 보면서 수록 앨범까지 찾아보았네요.
***
• 마치며...
하나하나 인상깊었던 점을 복기하면서 적어보자니 상당히 길게 글이 써졌습니다.
요약하면, 저는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극장 2회차도 생각할 정도로요. 스스로가 극렬 우주세기파라고 생각해왔는데요, 생각외로 몹시 맛있었네요.
다만 ‘건담'을 기대하고 보시는 우주세기 팬분들이나,
반대로 기름 냄새와 땀냄새, 때려부수는 장면을 원하는 하드그래프 메카물 팬분들에게는 좀 호불호가 갈릴듯 합니다.
특히, 이케다 슈이치의 샤아 아즈나블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분이나, '요즘 애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팬분들,
무엇보다 우주세기 정사에 어떤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분들이시라면 충분히 불호를 표할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건 아쉬웠던 수성의 마녀나, 삐끗하다 못해 자빠져버린 철혈의 오펀스에 비교하면 순수 질적으로도 상당히 낫습니다.
앞의 두 작품을 재밌게 보셨다면, 정말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상 기나긴 후기(를 빙자한 영업글)을 마칩니다.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잔디머리
건담 하나도 안봤다가, 방구석 매니아 더빙으로 우주세기 접하고 넷플릭스로 쪼금 봤는데
바로 봐도 괜찮을까요?
휴대용티슈
방매로 봤으면 ㅈㄴ 웃길거다 ㅋㅋ
시발 나오는 장면들 전부 더빙에 나오는 장면들이고 나오는 인물들임 ㅋㅋ
위에 얘기한 2부는 걍 건담 몰라도 됨
Plasir
1부는 약간 ‘뭔소리 하는거야?‘ 하는 느낌일 수 있음 철저한 원작 오마주라서
방매더빙 1부 30분 짜리만 보고 가도 사실 그 부분은 해결되긴 함 한번 츄라이 츄라이
정상상태
콕피트만 살살~
댕댕이는긔엽긔
진이 출격하지 않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무로는 프라우 일편단심이 되는거임???
회색실패작
냐안이 너무 귀여웠음. 이렇게 귀여울 줄이야.
우디아빠
그래서 주인공이 하만이고
남주가 시로코임?
Plasir
아아.. 그것은 발푸르기스다..
일학습병행제
우주세기는 나무위키로만 봤는데 퍼스트 요약으로 볼 수 있는 방법 있음?
Plasir
방구석매니아 병맛더빙이 의외로 TVA에 충실함
스토리는 넷플릭스에 올라온 극장판으로 봐도 되고
러스티네일
백합 건담도 나왔으니 그 반대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니
철혈의 오펀스라는 훌륭한 똥두창전우애건담을 기억해주십쇼
Plasir
제로콜라는닥터페퍼가진리
존나 재밌었음. 건담도 영상으로 보니깐 생각보다 스타일리쉬하고 멋있었음
듀란셀
방매 더빙 보고 우주세기 관심이 생겼는데, 어디서 퍼건부터 볼 수 있어? 돈 내도 상관없으니 가급적 자막달린 정품?으로 보고싶은데
찬구
라프텔이나 애니 정품으로 가져오는곳 아니면
어둠의 경로 ㅇㄴ24 라던가
Hakat
건담인포에 극장판 3부작 올라와있을라나
건담은 유튜브 건담인포부터 가보면 좋음
tangle
극장에서 봤는데, 매우 만족했음.
마츄가 건담 강탈하는 장면은 근본 느껴져서 뿜음
피릉피릉
이거 어디서봐!!
MS08소대
아마 개연성이나 나오지않은 캐릭터 서사는 TVA에서 나올듯
감독이 일부러 궁금증을 유발하도록 편집했다고 언급했으니 1화 시청 견인역할로는 넘치도록 잘해줌
이미 극장 매출로만 1쿨 떼우고도 남을정도니까
개인적으로 에이지-> 철혈로 가는 ㅈ박아버린 시청률과 수익을 보고 절망했는데 수마는 용두사미긴 했어도 반다이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하며 주가 최고치 갱신에 기여했고 이젠 작품성만 잡으면 되는데 얘가 그걸 해결해주리라 믿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