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주재 미국 공사 아서 보프레는 조약에 대한 콜롬비아의 분노를 지속적으로 국무부에 전보로 경고했다. 그러나 워싱턴으로부터 받은 지침 때문에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4월 28일에 보프레는 콜롬비아 정부에 조약 조건의 어떤 수정도 미국 정부가 사실상 콜롬비아 정부의 “신뢰 위반”으로 간주할 것임을 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6월에 콜롬비아 의회가 특별 회기를 준비하고 있을 때, 존 헤이 국무장관은 콜롬비아 국민의 의사나 감정을 고려하려는 외교적 태도를 완전히 버렸다.
“콜롬비아가 이제 조약을 거부하거나 비준을 부당하게 지연시킨다면, 두 나라 간의 우호적 이해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콜롬비아의 모든 친구가 후회할 만한 조치를 다음 겨울 의회가 취할 수 있습니다.” 보프레는 이 내용을 콜롬비아 외무장관에게 구두로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한 저명한 외교사가 “우호적 외교 교류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공격적인 태도”라고 평가한 것이었다.
4일 후 윌리엄 넬슨 크롬웰이 대통령과의 “장시간 회의”를 마치고 백악관에서 나와 자신의 언론 담당자를 뉴욕 월드 지 워싱턴 지국으로 보냈다. 다음 날인 6월 14일, 뉴욕 월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콜롬비아 의회가 운하 조약 비준에 실패할 경우 파나마 주는 분리 독립할 것이다. ... 이 계획은 실행이 용이한 것으로 간주되며, 파나마 주에 주둔 중인 콜롬비아 군대는 100명을 넘지 않는다.
파나마 시민들은 분리 독립 후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이 정부에 운하 지대에 대한 절대적 주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파나마 시만이 이 지대에서 제외될 것이며, 미국은 그곳에서 경찰과 위생 관리를 담당할 것이다.
이 지대에 대한 미국 정부의 관할권은 최고로 간주될 것이다. 가격 인상이나 연간 임대료 증가는 없을 것이다. 그 대가로 미국 대통령은 신정부가 수립되면 즉시 이를 인정하고, 곧바로 운하 조약을 협상하고 체결할 공사를 임명할 것이다. ...
조약이 거부될 경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계획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콜롬비아 의회가 6월 20일에 소집될 예정이며, 그들이 행동하지 않을 경우 이 계획을 실행하려는 의도가 있다."
백악관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쿠바의 관타나모 만에서는 1903년 2월, 카리브해로 진입하고 지협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방어하기에 이상적인 위치에 미 해군 기지가 설립되었다.
4월 시카고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우리 국가는 서반구 국가들 중 가장 강력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고 선언했다. 먼로 독트린의 부속 원칙으로 알려지게 된 루스벨트의 이 정책은 루스벨트의 취임 직후 등장했다.
이제 미국은 유럽 열강이 이 지역에 발을 들이는 것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악행”이나 “무능”이 있을 경우 개입하는 “국제 경찰권”의 역할도 맡겠다고 선언했다. 콜롬비아인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공포스럽고 모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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