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이스파한과 쉬라즈에는 길거리 환전상들이 있다.
공식환율과 비공식 환율의 괴리가 크기에 달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은행이 아닌 각 도시의 환전상 거리를 찾아간다.
개인적으로 알게 된 은행직원조차 개인 환전상들을 찾아가라고 권할 정도이니, 그 차이가 매우 큰게 틀림없다.
이란의 백만리알 지폐. 이 지폐 한장의 가치는 현재 기준으로 약 1.25달러이며(1달러에 80530토만 -1 토만은 10리알),
저렴한 한끼 식사나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돈이다.
은행 같은 공식 환전소가 아닌 비공식 환전소나 길거리의 개인 환전상들을 대할때는 항상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오는 이들의 눈에 어리숙해보이는 외국인이란 좋은 먹잇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때 이란에서는 드라마 주몽이 굉장한 열풍을 가져왔기 때문에, 중년 나이의 사람들에게 있어 한국사람 하면 떠오르는것은 '주몽'이었다.
그들은 연신 코리아! 주몽!을 연발하며 나에게 다가왔고 다양한 환율을 제시했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전 당시 환율은 1달러에 57000토만이었는데,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환율은 6만을 넘어 7만.. 그리고 지금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8만리알을 돌파한지 오래이다.
밑장빼기부터해서, 약속했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 이체해주기를 모두 당해봤지만, 다행히도 현지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두 회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현지인들과 동행했음에도 말도 안되는 환율을 제시하는 환전상들의 뻔뻔함에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들이 꽤나 양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조금씩 빼먹으려는 금액은 불과 200~300달러중에서 2~3달러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내가 그런 모습을 일일히 눈감아준다면 한국인이 쉬운 먹잇감이라는 인식이 씌워질까봐 단호하게 대처했다.
환전상거리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문화유적지나 공원 근처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환전을 하고 난 후 어렵지않게 문화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즐겼고, 대부분의 문화유적지들이 질 좋은 풍부한 석재들을 이용한 석조건물로 되어있어서 그런지
유적지들은 견고하게 수백년에서부터 천여년 넘게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비록 폐쇄적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유럽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현지인들과 입장료가 다소 상이했지만 몇 천원 수준으로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수 천년 전부터 외침을 받아왔음에도, 페르시아인들은 항상 다시 일어나 부흥을 일으켰고 주변국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했다.
고대에는 마케도니아 제국에게 이후에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이스칸다르(알렉산더)조차도 페르시아 문화에 흠뻑 빠져들었음을 잊지 않는 그들에게 있어 페르시아의 유적과 문화는 그들의 피와 같은 명예이자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공화국의 토대로서 감히 부정하거나 지워낼 수 없는 과거의 찬란한 영광 그 자체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들조차도 "페르시아인들은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우아한 자태를 지녔다. 그들은 사치를 좋아했고 화려한 의복을 즐겨 입었다"고 묘사하며 그들의 화려함과 부유함, 광대한 영토에 대한 칭찬과 부러움에 관한 여러 표현들을 남겼을 정도로 화려했던 나라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란인들은 먼 나라의 이국에서 제작한 영화 300에서 묘사된 자신들의 모습에 경악했으며 결코 씻겨질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않는지 노심초사하고 있을 정도로.
이스파한과 쉬라즈의 궁전들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유한 이들의 저택들은 당시 페르시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며
매일같이 수백, 수천명이 방문함에도 매우 깨끗하게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관리자들이 정성들여 유적들과 주변 시설들을 깔끔하게 정비해오고 있었고 실내에는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았기에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예술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기질을 가지고 있던 이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듯한 여인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으며
젊은 사람들은 다소 답답하고 보수적인 문화에 반발하듯 이따금 감시인이 없는 곳에서는 히잡을 벗곤 했다.
이를 단속하는 종교경찰들이 수십미터마다 배치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이 히잡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씩 웃는 모습을 보며
비록 엄격한 종교국가임에도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유머를 즐기는 사람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란사람들에게는 진담반 농담반으로 이런 말이 존재한다.
"이란 여성과 말싸움을 하지 마라, 너희들의 상대로서 이란 여성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될 테니까"
수백년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전통시장에는 화려한 공예품들과 악세서리들, 그리고 카페트를 볼 수 있었다. 장인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진 목재 조각품들과 악세서리들을 구경하던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건 페르시안 카페트였다.
수십년째 페르시안 카페트를 판매해오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라지 아저씨는 이곳의 모든 카페트를 마음껏 구경하다 가라며 따뜻한 사프론 차 한잔을 건네 주셨다.
"카페트의 색깔과 문양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보는 이 문양은 부부가 된 이들에게 주로 선물해주던 문양이죠. 특히 오래된 카페트일수록 좀더 희귀한 문양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우리가 가진 것들 중에는 정말 오래된 것들도 존재합니다."
오래될 수록 더욱 값어치를 발휘한다는 페르시아 카페트의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면서 그는 50여년전에 만들어진 카페트를 보여주셨는데 독특한 문양과 패턴들을 보면서 눈이 참 즐거웠던걸로 기억한다. 또한 그가 보여준 방명록에 적혀있는 여행객들의 후기를 살펴보는것도 재밋거리중 하나였다.
수제 카페트의 경우 작은 것은 150달러부터, 성인이 누울 수 있을만한 사이즈는 그 두배의 가격에
천연 실크로 만들어진 제품은 3000달러의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외국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할수 있었다. 두바이를 통해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한 그는 원한다면
한국에도 합당한 배송비만 지불하면 카페트를 모두 보내줄 수 있다고 단언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보았던 수백만원짜리 페르시아 카페트를 이곳에서 배송비포함 몇십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건 정말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사프란도 3g에 30달러에 살 수 있었기에, 나는 환전한 돈을 가지고 친구에게 선물하고 맛볼 사프란을 몇개 구입했다.
걸어서 멀지 않은 곳에는 부유층과 귀족들이 살던 저택들도 구경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는데
궁전보다도 화려하게 느껴지는 옛 귀족들의 저택을 보며 결코 유럽과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사치의 끝판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울의 방을 둘러보며 그 화려함에 말을 잃은 채 그곳을 거닐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쉬라즈의 환전상 거리에 들러 환전을 마치고 마실 물을 사러 가게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공사장에서 만난 청년들과 담소를 나누다 근처에 작은 마트가 있어 그곳에 들어갔더니 마트 주인 아저씨가 나를 자신의 자리에 앉히고는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며 청년들을 쫒아내셨다.
내가 잠시 그들과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여러번 말하고 나서야 그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저씨도 몰래 따라나와서 사진을 같이 찍으셨었다.
다시 마트 주인 아저씨의 손에 끌려와 마트를 감상하고 이런 저런 선물을 받으며 얘기하다가 아저씨가 자신의 취미는 그림그리기라며
그동안 그려오신 수백장의 그림을 보여주셨고 그가 손수 그린 이런 저런 그림들을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그 소중한 그림중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하시며 하나를 꺼내시더니 친필 서명을 적어 나에게 건네주셨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도 그 아저씨가 준 선물 몇개는 부서지고 말았지만 이 그림만큼은 소중히 집으로 챙겨왔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첨부용량때문에 모두 첨부할 수 없었지만 그곳의 길거리 근처에서 만난 사람들은 글을 쓰는 지금에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활발하며 호기심 많고 이야기하는걸 좋아했던 사람들.
수천년 전에도 역사가들에 의해 묘사된 페르시아인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랬기에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고 공원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로 가득했던게 아닐까.
아마 수 백년전, 수 천년 전에도 이곳을 지나던 여행객들의 기억속에는 페르시아인들의 그러한 모습들이 남아있었을것이다.
드립은개드립
포민
드립은개드립
커미커밋
항상잘보고있다 책내라니까 잘팔릴듯
포민
여행기를 모두 쓰고 나면 한번 생각해볼게. 부족한 글인데 항상 잘 봐줘서 너무 고마워.
커미커밋
여행수필 자주보는데 사진이랑 좀 다듬어서 내면 시중에 나온거보다 괜찮을듯
북극곰의눈물
낭-만
포민
아름다운 장소도 좋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낭만.
Renaissance
제국의 숨결이 스며있는 유적들은 내 가슴을 뛰게하네
포민
그러게 이집트 피라미드나 왕가의 계곡같은곳은 얼마나 웅장할까
Iimeofovn
중간에 마트 주인아저씨가 자리에 앉혀놓고 청년들 쫓아낸거는 무슨상황이야? 몇번 다시읽어봤는데도 잘 이해가안됨
포민
아저씨가 자기랑만 얘기하자고 청년들 내보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