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스포) Lorelei and the Laser Eyes 리뷰

 

<Lorelei and the Laser Eyes>

 

 

  여기 절제된 색으로서 플레이어를 압도하는 게임이 있습니다. 붉은색은 혈흔일까요, 아니면 페인트에 불과할까요? 등장인물인 'Renzo'는 "둘 다"라고 답합니다. 정확히는, "인간의 혈흔은 예술의 붉은색 페인트로서만이 의미가 있다."이죠. 

 

첫 등장부터 플레이어를 압도하는 'Renzo'

 

  <Lorelei and the Laser Eyes>(이하 <LATLE>)는 훌륭한 사운드와 멋진 아트웍으로 플레이어를 긴장 상태에 몰아 넣습니다. 2024년 게임 최고의 연출력을 자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 내내 가득찬 암시와 은유는 플레이어의 흥미를 돋구며, 복잡한 그들의 세계를 멋드러지게 풀어냅니다. 

 

 

 

하지만 퍼즐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전통적인 자물쇠

 

  <LATLE>은 아주 전통적인 퍼즐을 선사합니다. 퍼즐 장르에서 많은 인상을 남겼던 <Outer Wilds>, <Return of the Obra Dinn>, <The Witness>, <Baba is You> 등과 같이 무릎을 탁 치는 창의력을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놀라운 연출과 은유로 가득찬 게임이지만, 퍼즐 자체는 그에 비하면 밋밋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각 방의 호수나 문양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도에는 그런 정보가 없습니다.

 

  특히, 퍼즐 게임은 퍼즐을 푸는 플레이어를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Outer Wilds>, <Return of the Obra Dinn>은 훌륭한 방식으로 플레이어들에게 단서를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고, <The Witness>는 그런 것들이 필요없을 정도로 단순한 퍼즐로 멋진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LATLE>은 명백하게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리볼버 방'이 어디있는지 까먹었다면, 플레이어는 복잡한 호텔을 다시 돌아다녀 볼 수 밖에 없죠. <LATLE>은 플레이어들에게 펜과 종이를 사용하라고 권장합니다. 불편함은 게임의 특징이 아닙니다.

 

 

슈퍼 컴퓨터에 로그인하는 방법은?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마지막은 솔직히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았나요. 단서는 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게임에 집중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의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게임 곳곳에 하찮은 퍼즐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니까, 들쭉날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드한 퍼즐 플레이어들을 위한 선물이었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줄 당근을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단 하나뿐인 엔딩의 목전에서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LATLE>의 예술

 

인벤토리의 탐폰.

 

  <LATLE>은 아주 역설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혹시 다른 게임을 하면서 자동차의 문을 잠가본 적이 있습니까? 화장실을 사용하고 손을 씻어본 적이 있나요? 여성 주인공의 인벤토리에서 탐폰이라는 아이템을 본 적이 있나요? 글쎄, 이것들이 뭐가 중요할까요? 곱씹어 보면, 그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지 않나요.

 

 

와인 저장고. 2020년대 이후의 빈티지 와인들로 가득 차있다.

 

  게임의 배경은 2014년이지만, 2022년에 발간된 기사를 게임 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호텔 와인 메뉴에는 2020년 이후의 빈티지 와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뜬금없이 미래에서 온 무언가들. 이들은 게임 개발자들이 바보같이 연도를 고려하지 못한 설정 오류일까요? 아마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는 <LATLE>의 핵심적인 은유 중 하나입니다. 바로 "상호작용으로서의 예술"입니다. 주인공인 'Lorelei Weiss' 역시 청중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 한 예술가로 그려집니다. 게임에서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죠. 1982년 인도네시아 대지진을 암시하는 게임 내 1982년의 사건이 존재한다거나, 퀴즈 클럽 장면에서 뜬금없이 게임 설명서의 내용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즉, '게임 내 허구', '게임 내 현실', '(플레이어의)현실' 3가지를 잘 버무리는 것 또한 <LATLE>이 의도한 연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컴퓨터를 통해서 게임을 저장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레이저 눈

 

  'Lorelei'는 레이저 눈을 지닌 인물입니다. 'Renzo'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레이저 눈은 진실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입니다. 하지만 <LATLE>이 마지막에 말하는 진실은, 레이저 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레이저 눈은 'Lorelei'가 'Renzo'와 일을 하게 만들었던 달콤한 허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LATLE>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미신들, 예언을 하는 마법 수정구, 별자리 점성술, 카드 점, 인상학, 그리고 이것들의 끝에는 레이저 눈이 있는 것이지요. "절대적 가치를 표상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이 <LATLE>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연출에 찬사를. 8/10 점.

*필자의 플레이 시간: 17.3 시간. (드러낸 진실 99.8%, 마지막 시퀀스에서 약간의 공략을 참고함)

 

2개의 댓글

2024.12.28

해보고싶어서 글안읽고 쭉 내렸는데

연출 말고 스토리는 몇점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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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8
@채첨단

개인적으로는 게임이든 영화든 스토리라는 것은 연출에 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연출을 똑 떼어 놓고 스토리를 평가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음. 나는 시나리오 전문가가 아니라서 조심스럽긴 한데 굳이 평가하자면, 스토리의 구성 자체는 탄탄하고 훌륭함.

 

다만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일반적인 액션 장르 게임처럼 선형적이고 직관적으로 풀어나가는 게 아니라 사후적으로 단서를 모아 기억을 되찾아 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복잡도도 높고 호불호는 있을 것 같음. <Disco Elysium>을 해봤는지 모르겠는데, 이런류가 재밌었다면 괜찮을 듯.

 

이런 관점에서, 게임 플레이를 천천히 구석구석 음미하는 스타일이라면 추천, 그렇지 않은 스타일이라면 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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