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오랜만에 가보니 사창가도 없어지고, 기찻길 옆 판자촌이고 뭐고 그냥 삐까번쩍한 아파트 들어섰더라.
다들 일어선거 같은데 나만 못 일어난거 같아. 늘 달달이 세식구 먹고 살리다보니… 요즘 많이 심적으로 힘들다.
저당시 나는 어릴적이었는데 세상이 험해서 그런지 세들어 살던 집 할매가 세들어 살던 남자 백수 아저씨한테 월세 달라고 닥달하다 맞아 죽은 것도 기억난다. 울고 불던 손자 손녀 둘 끌어안고 내가 112신고 했는데, 정말 그 뒤로는 기억이 새하얗게 날아가서 여전히 기억이 안 남.
아빠 엄마 둘다 대기업다녔었는데 엄마는 남편 회사닌다고 먼저 짤리고 몇달안지나서 아빠는 과장이라고 간부급이라 짤림 그나마 아버지가 영업하시던분이라 원래 영업하던 거래처 잘 뚫어서 사업 시작하셨는데 처음 시작할때 집팔고 시작한거라 집없이 아빠 사업하는곳 창고에딸린 조그만한 쪽방(1~2평)에서 가족들끼리 같이살았음 4명이 누우면 그냥 꽉차는크기에 화장실도없어서 샤워도 건물화장실에서 문잠구고하고 쪽방에서 자면서 학교가고그랬음 친구들이 집 놀러오고싶다고해도 못부르고 힘들게 살았는데 하필 거기가 잘살는동네여서 가끔 내가 학교친구집놀러가면 망하기전 우리집보다 훨씬 넓은곳살면서 친구엄마가 치킨사주시고 하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음
그땐 별 체감을 못했지만 아버지가 속해있던 대기업 계열사가 계열분리되면서 공장 통합하며 경상도에서 경기도로 이사함. 그것도 최외곽으로 ㅎㅎ 동네에 나처럼 갑다기 온 외지인들이 좀 있었는지 학교 갔더니 누구는 서울서 오고 누구는 강릉서 오고 그랬음. 딱히 돈벌이 할만한 것도 없는 동네에 전국 애들이 모여들었음ㅋㅋ그 뒤로 해당 기업이 아예 철수하면서 고등학교 즈음에 퇴사하심.
도서관지기
당시에 울 아버지가 일해주고 1억 정도 못받음
울 아버지 돈 떼인 새끼는 위장이혼하고 그랬음
이름이 황인철인가 황인천인가 그랬음
결국 서울 쪽에서 주로 사업하셨던 것 지방으로 옮겨짐
흐즈믈르그
아버지라 군인이라 잘 넘어갔는데 imf 조이기로 소령월급이 90몇만원 수준이었다고
허미닉네임스
수원역 개발되기 전 기찻길 판자집에서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새언니는 도망갔고, 오빠는 평생 우울증에 걸려 지금도 약먹고 살고 나 혼자 세 식구 먹여 살게되었지.
금주하자
밑에댓글쓰고새로고침하니 딱 이 글이..... 내가 96년 수원역~쎄류동부터 고색동, 우시장쪽(소똥맞아봄)부터 참 출동 많이 나갔었는데...
허미닉네임스
세류동 ㅋㅋㅋㅋ 오랜만에 들어본다. 추억이네.
거기 오랜만에 가보니 사창가도 없어지고, 기찻길 옆 판자촌이고 뭐고 그냥 삐까번쩍한 아파트 들어섰더라.
다들 일어선거 같은데 나만 못 일어난거 같아. 늘 달달이 세식구 먹고 살리다보니… 요즘 많이 심적으로 힘들다.
저당시 나는 어릴적이었는데 세상이 험해서 그런지 세들어 살던 집 할매가 세들어 살던 남자 백수 아저씨한테 월세 달라고 닥달하다 맞아 죽은 것도 기억난다. 울고 불던 손자 손녀 둘 끌어안고 내가 112신고 했는데, 정말 그 뒤로는 기억이 새하얗게 날아가서 여전히 기억이 안 남.
나 혼자 세들러 올때, 박카스 내밀어주던 할매였는데.
앤디드와이어
가장 의미있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선생님. 존경합니다 때때로 삶이 고단하실때 개드립 와서 웃긴거 보고 하셔요 지금처럼요 화이팅예요
GS순살맛
참 속상한 이야기네... 당시에 정말 나라가 망한거나 다름 없던 상황이라... 믿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 다들 좀 잘사는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집값 또 폭등하거나 다들 살기 어려운 상황이아니라...
찬란20년대
고생끝에 낙이 올거야, 힘내고 화이팅해!
앞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 많길 바란다~
개호루스키
대단하다
금주하자
허구헌날 뉴스에 뭐가 망했다나옴(근데 그게 대우부터 별게 다 망함. 그때 대우는 삼성,현대급) // 은행들도 망함(예금자보호법없음. 인터넷뱅킹도 없던시절이라 통장에 찍힌 돈만 줬음. 그나마 줬으면 다행. 안줌...) // 군대가기전 자가용갖고다니던 동기들이 제대해보니 호프집알바중(그거도 자주 뗘먹힘) // 군대 자원입대신청해도 줄선인간 많아서 못가고 기다림 // 일단 뭐 아부지들은 회사 ㅈㄴ 짤렸음(그전까진 평생직장인줄...)- 멀쩡하던 아저씨들 야간 파출소 순찰 같이 댕기는 공공근로같은거로 연명 -> 내가 95학번 96군번 의경이라 실제 다 겪은일임. 은행이 진짜 많이 망함. 내돈달라고 울며 오는사람들 많아서 중대장이"그냥 때리면 맞어라 뭐 어쩔수없다 미안하다" 교양시키고 출동나갔음. 말그대로 지옥도였음
AMUMU
아빠 엄마 둘다 대기업다녔었는데 엄마는 남편 회사닌다고 먼저 짤리고 몇달안지나서 아빠는 과장이라고 간부급이라 짤림 그나마 아버지가 영업하시던분이라 원래 영업하던 거래처 잘 뚫어서 사업 시작하셨는데 처음 시작할때 집팔고 시작한거라 집없이 아빠 사업하는곳 창고에딸린 조그만한 쪽방(1~2평)에서 가족들끼리 같이살았음 4명이 누우면 그냥 꽉차는크기에 화장실도없어서 샤워도 건물화장실에서 문잠구고하고 쪽방에서 자면서 학교가고그랬음 친구들이 집 놀러오고싶다고해도 못부르고 힘들게 살았는데 하필 거기가 잘살는동네여서 가끔 내가 학교친구집놀러가면 망하기전 우리집보다 훨씬 넓은곳살면서 친구엄마가 치킨사주시고 하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음
무뭍춥
결국 힘든 사람이 더 힘들어지는거
졷냥이킬러
솔직히 체감 안됬음
키이읍
우리집은 아버지가 돈 많이 벌적에 아파트를 매매해놔서 다리뻗고 잘 공간은 있었음
그런데 98년도에 회사에서 잘리시고. 아버지 말로는 나왔다고는 하는데 이런 저런이유가 겹친것 같음
그 이후로 10년을 취직못하고 집에서 쉬셨음 자존심접고 이것저것 해보셨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
아버지 회사 다닐때는 진짜 동네에서 무조건 1등으로 장난감사고 신상품 입고 들고다녔었는데 ㅋㅋ 후
김치교주
개드립 틀딱커뮤 다됐다는게 트루였네 ㅁㅊ
뷰르르릇
IMF 때가 지역 최고 호황기 시절이었어서 크게 변한건 없었음.
다람쥐귀여벙
소규모 단지 되는 정도의 아파트에서 살았었는데 자살만 3건 있었음
어렸었는데도 분위기 진짜 안좋았던게 기억남
혼세마왕
아버지 공장 운영이 어려워서 공장 점심에 음식을 시켜먹는 것을 없애고 어머니가 매일 직원 도시락을 만들어 가셨음.
하루는 소세지 케챱볶음을 아침에 해서 보냈는데 방학중에 일찍 깼던 내가 소세지 케챱볶음을 보고 점심에 먹을 줄 알았는데 한국자도 남은거 없이 직원도시락으로 보냈던거임.
그게 아쉬워서 어머니한테 투정을 부렸는데 어머니가 그런 나를 꽉 끌어안고 펑펑 우셨음.
나중에 커서 어머니랑 술 한잔 하며 알게된건데 사실 직원도시락을 준비하는 돈도 아슬아슬해서 공장 직원들 모두가 적당히 먹을 수 있을만큼도 아니었을 뿐더러 때문에 우리 가족이 먹을만큼 만들기가 어려웠던거임.
그런데 남인 직원들에겐 소시지 반찬을 만들고 가족에겐 동네 나물할머니한테 산 싸구려 나물무침만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미안했대.
그때는 피자,치킨은 커녕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도 한달에 한번 먹기 어려웠었음.
토마토굴소스볶음
아부지가 공무원이셨는데, 뉴스에서 권고사직 관련 내용 너무 많이 나오니까 아버지께 아빠는 괜찮지? 물어봤던거 기억남..
앵글러
엄마가 이웃집에 쌀빌리러갔었고
치약대신 소금으로 양치 했었지ㅎㅎ
성산물주먹
아퍄트 장만하자마자 터져서
엄마빠 다른지역으로 도망가고
빚쟁이들 저나 자주옴
아파트 경매 낙찰될 때까지 엄마빠랑 같이 못지냄
어린 나한테도 전화로 엄마빠 집에 있지! 다그치던 빚쟁이 목소리가 생각남
사실 그때 무너지고 부모님은 아직 재건못함
나만 보면 결혼도 하고 집도사고 중산층 문턱에 들어온 거 같은데 부모님 보면 한슘나옴.. 부양부담땜에
김꼬추의쎅끈빡끈딸딸이쑈
사회분위기로는 대충체감했는데 우리집에 직접적으로 체감은 못하긴함 아빠는 그냥 회사원인데 운좋아서 안짤리신듯
니꼬추짤림
난 어릴때 사촌들이랑 외할머니한테 맡겨졌는데
부모님들 다 돈벌로 가시고
정답을찾아서
IMF터질당시엔 시골살았는데 주변에 타격입은사람 아무도없어서
나라가 힘들다고 하니 아 그렇구나 했지 실질적으로 뭐 회사짤리고 이런사람은 없었음
물가가 오른것도 없었고 뭐 뉴스빼면 체감할만한 껀덕지가 없었음
개호루스키
한 참 회사 망할 시즌에 서울은행에 그 동안 저축했던거 어머니가 은행 망한다고 뽑아오라고 해서 동생이랑 돈 뽑으러감.
은행 누나가 ’우리 은행 안 망해요‘라고 했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20대였을텐데 통장해지하러 몰리는 고객들 보면서 무슨 생각이었을까
우리 집도 아버지 퇴사하고 외할머니댁에 2년 정도 얹혀 살았다. 위장이혼도 하고 어머니도 슈퍼마켓 나가시고
그 덕에 동생이나 나나 열심히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었는데
나는 마음 한 켠에 결혼해서 처자식 생기고 IMF 같은거 맞으면 너무나 무서울 것 같아 결혼은 못 할 것 같더라
귤밥
집 팔고 비닐하우스로 이사갔음
그때 팔았던 집이 할아버지 살아계셨을적에 땅 사고 직접 지으셨던 건데 그 땅하고 집을 다 팔아야 했음
13번째아해
그땐 별 체감을 못했지만 아버지가 속해있던 대기업 계열사가 계열분리되면서 공장 통합하며 경상도에서 경기도로 이사함. 그것도 최외곽으로 ㅎㅎ 동네에 나처럼 갑다기 온 외지인들이 좀 있었는지 학교 갔더니 누구는 서울서 오고 누구는 강릉서 오고 그랬음. 딱히 돈벌이 할만한 것도 없는 동네에 전국 애들이 모여들었음ㅋㅋ그 뒤로 해당 기업이 아예 철수하면서 고등학교 즈음에 퇴사하심.
즐아재
나 imf딱 터지기 바로전에 군대감 ㅋ
즐겁다콘땜에가입
내친구 3명 아버지 자살함
화장실 문고리에 수건으로 목매달고
아파트옥상에서 2명투신
초딩인가 그랬는데 기억이 생생함
하드코어미식가
자영업자들은 티안났음 이건 팩트임
통합물류
저때이후로 안정적인 직업군 슬슬 인기올라가지않았었나
우릉크릉
난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큰차이는 몰랐는데
먼 친척삼촌이 자주 우리집에 술먹고와서 아빠한테 울고 하소연했음. 돈빌려달라 그런건 아니였는데 그냥 주정부리러옴. 어디가서 얘기할곳은 없고 그냥 삼촌오면 엄마가 간단하게 음식도 주고해서 그런듯
그와중에 삼촌 만원씩 꼭 나주심
xkcd
외할아버지께서 지역여서 나름 부유하고 마당에 별채놓고 세까지 줄 정도였는데 저때 망하고 건강 급속도로 안좋아지셔서 결국 돌아가심
Illumina
IMF때 너무 어려서 모름 딱히 여쭤본 적도 없음
애룡이
등교할때 인터폰보니까 검은양복아저씨들이 있었음.
드라마에서 보던 경매로 빨간딱지 붙이러온 아저씨들...
등교하면서 울면서 학교갔던 기억이남..
가세 기운건 회복 안됐고 이후로 우리가 살던
서울 아파트 볼때마다 토쏠렸음ㅋㅋ
두봉
이사를 존나 다녀서 전학도 많이 함
전학가면 애새끼들 서열정리 들어와서 오지게 쌈박질함
그때 성격 다 버린듯
푸르동동
나랑 누나 돌반지 없어짐 시발 그 외에 금으로된 장신구들 다수 사라짐
아이스홍차라떼
일단 나도 내 돌반지는 없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