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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작가가 드라마 대본을 쓰는 게 시간낭비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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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진스키의 장르문학 작가로 살기,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임

 
글쓰기 강의를 할 때마다, 드라마 대본을 작업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지난 여섯 달간 혼자 파일럿 대본을 완성했다며 그걸 방송사에 어떻게 팔지 조언을 구하는 일이 적어도 한 번씩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 아픈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영영 팔리지 않을 글을 쓰느라 지난 여섯 달을 허비했노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내 말을 못 들은 체하면서 경력이 없는 초보 작가가 파일럿 대본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증거로 내민다. 그러나 그런 일은 소문으로만 무성한 유니콘일 뿐, 현실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소문의 진상을 열심히 파헤치다 보면, 그 초보 작가가 유명 작가의 자식이었다거나 약간의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발표한 작품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생초보 작가가 파일럿 대본을 팔 가능성은 없다.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디어란 그 자체로는 쓸모없으며 그걸 잘 표현해야 가치가 생긴다. 드라마 아이디어도 마찬가지인데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작가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과 대부분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다. 작가가 그 정도의 권위를 가졌다는 것은, 방송사나 스튜디오가 스토리텔러로서 그 사람의 성장을 지켜봐 왔으며 노련한 제작자로서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의 경험을 쌓으려면 프리랜서 작가에서부터 보조 작가, 스토리 에디터를 거쳐, 공동 제작자, 제작자, 총괄 제작자 자리까지 차근차근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자기 프로그램을 만들 영향력이 생기고, 방송사들도 그 작가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이해하고 신뢰해준다.
 
불공정하고 편협한 것 아니냐고 반발심이 든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뉴욕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고 할 때, 조종석에 누가 앉아 있어야 마음이 놓일까? 한 명은 같은 길을 수백 시간 비행한 경험이 있고, 다른 한 명은 다음 주 목요일에 비행 학교에 갓 입학할 사람이다. 후자를 생각할 때 내심 드는 불안을 방송사와 스트리밍 업체도 익히 알고 있기에, 글쓰기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수백만 달러를 주면서 작품을 맡기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 사람이 촬영 도중에 포기하고 손을 떼버리지는 않을까 못내 불안한 것이다. 무엇을 쓰느냐 못지않게 신뢰를 주느냐도 중요하다.
 
작품을 팔 능력을 가진 기성 작가나 제작자를 설득해 협업할 기회를 따내기도 극도로 힘들다. (그 사람이 당신의 친구라면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친구와의 협업은 얼마 안 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으로 끝나기 쉽다.) 드라마 집필은 흔치 않은 기회이자 막대한 보수를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뭐 하나만 삐끗해도 금세 망가지고 만다. 혼자 힘으로 작품을 팔 수 있는 작가나 제작자가 굳이 뭐하러 무명작가의 협업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초보 작가와 일하기 위해 방송사를 설득해야 하고(그래도 방송사는 여간해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혼자 가질 돈을 절반으로 나누기까지 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정말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써서 팔고 싶으면, 다른 누군가가 만드는 작품을 보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그러면서 작업물을 통해 당신만의 특별한 관점을 증명하고, 제작과 글쓰기 기술을 익히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성장하다 보면, 방송사와 스튜디오가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작가인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할 것이다. 그 단계에 이르러서야 파일럿 대본을 팔아 당신만의 작품을 만들 기회가 찾아온다.
 
- <스트라진스키의 장르문학 작가로 살기> (j. 마이클 스트라진스키 지음, 송예슬 옮김)

34개의 댓글

2024.12.09

너무알고싶은 내용이였어요 감사합니다 ^^

0
2024.12.09

문예창작은 차갑다...

3
2024.12.09

아니면 공모전에서 등단 하던가

0
2024.12.09

아니면 다른종류의 문학이나 예술로 인정받고 들어가면 됨

2
2024.12.09

록키 생각하고 썼겠지만 이젠 30년이 지나 팀이 함께 하는 조별과제가 되버렸으니까 ㅋㅋ

1
2024.12.09

완결작 한 편도 없는 작가는 작가라고 할 수 없음 적어도 완결 낸 작품 3~4권은 있어야 한다고 봄

웹소설도 처음엔 글 잘 쓰다가 시덥지 않은 이유 대면서 연중런 ㅈㄴ 때리는 애들 많다

 

1
2024.12.09

얼마전에 장나라나온 드라마 작가도 본업은 변호사인걸로 아는데 뭐 웹툰 경력도 경력으로 봐주는거면 넘어가고

1
2024.12.09
@엔오이

김풍쉐프도 드라마 각본 썼자너~나오지는 못했지만 ㅋㅋ

0
2024.12.09
@엔오이

도제식으로 들어가서 신뢰를 쌓으라는 건데

 

성공한 웹툰 기반의 작가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잡고 들어감

 

오히려 저 글의 완벽한 예시에 가까움

1
2024.12.09

잔인한 얘기지만 확실히 맞는얘기라고 생각한다

1
2024.12.09

초보작가의 현실

 

0

그 보조작가도 문창과아니거나 남자면 시작하기도 힘들다는 현실...흙흙

7
2024.12.09
@더단백한단백질

ㄹㅇ... 남작가는 넘 힘듬. 적어도 백작가는 되야 함. 후작가나 공작가면 더 좋고 요새는 변경백들도 인기 많으니 노력해보도록

12
2024.12.09
@명륜진사갈비
0
@명륜진사갈비
1
2024.12.09

꾸준함이 반짝이는 천재성을 이길때가 있더라

3
2024.12.09

시청률 킹오브킹 임성한이 10년 수련했다지??ㅋㅋ

0
2024.12.09

강풀은 한번도 안써봤고 처음 써본 거라고 최근에 인터뷰했는데ㅋㅋ 무슨 강풀이 불세출 천재냐

0
@함량

강풀은 드라마는 아닐지언정 다른 분야에서 작가로서의 역량은 입증했잖아. 저 글에서 말하는건 너나 나같은 아무 보증이 없는 지망생이고.

10
2024.12.09
@함량

빠니보틀도 경험 없는데 좋좋소 찍지 않음? ㅋㅋ

0
2024.12.09
@TQQQ59층오우너

시즌 1~3은 빠니보틀이 직접 돈 붓고 제작해서 유튜브 올린거 아니었나?

 

궤가 좀 다른거 같은데

2
2024.12.09
@TQQQ59층오우너

빠니는 자기가 제작자겸투자자인거자나.. 본문 예시랑은 아예 다르지

6
2024.12.09
@함량

특수사례아니냐

0
2024.12.09
@함량

강풀은 원작자였잖니...

5
2024.12.09
@함량

개드립 유저인 메인작가 함량이 중도포기 하고 날랐습니다 하면 메인으로 세운놈이 짤리겠지만

다음플랫폼에서 몇십년동안 웹툰 연재한 강풀작가가 중도포기했습니다 하면 짜르진않음

0
2024.12.09
@함량

강풀은 이미 그당시 몇연타석 홈런 친 웹툰 원작자였는데 너 알면서 그러는거지?

2
2024.12.09
@함량

강풀은 이미 웹툰으로 히트작을 존나게 찍어낸 작가잖아....

0
2024.12.10
@함량

본문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반박부터 하려할 생각만 그득하니까 이렇게 반박당하는거임…

1
2024.12.09

천재면 걍 해도 되는데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라서 보고 배워야지 모

0
2024.12.09

징르문학은 초보작가도 가능해. 내가 옛날에 군대에서 무협소설 많이보고 제대하고 이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어서 조아라에 연재했는데 조회수 10정도나오는데 한달만에 갑자기 몇천떠서 보니까 메인에 걸렸더라. 그리고 바로 출판사 편집장한테 연락오고 그렇게 출판함. 초판 1.2권 동시로 각각 1500부 씩 3천부 찍고 3권부터는 일단 1200부 찍고 상황봐서 좋으면 더 찍기로함. 대충 한달에 한권씩 써서 9권으로 완결냈는데 인쇄로 1600만원 정도 벌음. 퇴근하고와서 하루에 한두시간 쓰면 한컴으로 3~4장 쓰는데 이렇게 만 해도 한달에 1권 나오더라

2
2024.12.09
@다이나비

매일 한두시간 계속 글을 쓴다는 자체가 대단한 거다 ㄷㄷㄷ

1
2024.12.09
@다이나비

저 선생님

실례지만 우린 그걸 "재능충"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탁월한 재능이 있으신 모양인데 계속 쓰시죠

2

업계에 들어가고싶거든, 업계에 발을 담그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

1
2024.12.10

저건 외국 사례고 한국은 좀 다름.

일단 과거에는 단막극 공모전 당선 -> 방송사에서 혹독한 굴림 교육 -> 아침드라마라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막극 제작이 거의 없어져버림.

한국도 보조작가 몇 년 구르면 작가선생님이 빽으로 하나 꽂아주고 그런 관례가 있었는데 지금은 싹 다 사라지고 그냥 작가연수원에서부터 존나 개 쩌는 상위 0.01% 실력으로 빛이 나야 기회가 올까 말까임.

즉 당신의 글쓰기가 어떤 장르에서던지 0.01%의 인정을 받았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니면 나처럼 10년 넘게 빛도 못보고 무저갱에서 헤메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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