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도시계획가 알랭 베르토(Alain Bertaud)의 2018년 저작
Order Without Design: How Markets Shape Cities
를 발췌, 편역한 내용입니다.
도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이다. 도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이라는 주장은 도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편협해보일 수 있다. 68혁명 기간, 학생들은 '지하철, 일, 잠(Metro, boulot, dodo)'으로만 축소된 삶을 조롱하며 파리의 벽에 이러한 구호를 남겼다. 학생들이 반기를 든 것은 학술적 용어로 노동시장이라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토지 이용과 교통은 노동 시장의 기능을 개선하여, '지하철, 일, 잠' 이상의 도시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 여가 활동을 할 시간이 있는 짧은 통근 시간,
- 직장을 바꾸고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적합한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개방된 노동 시장,
- 사교 활동이나 녹지에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주거지.
따라서 도시의 유일한 존재이유가 노동시장이라는 말이 아니라, 잘 기능하는 노동시장 없이는 도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도시는 일자리 외에도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노동시장의 확대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은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혁신의 전제 조건을 형성한다. 잘 작동하는 노동시장은 심포니 오케스트라, 박물관, 미술관, 공공 도서관, 잘 디자인된 공공공간, 훌륭한 레스토랑 등 도시의 모든 매력적 요소를 가능하게 한다. 도시의 이러한 편의시설은 추가로 전문화된 일자리를 요구하고 더욱 다양한 인구를 끌어들여, 미래의 혁신과 더 흥미로운 도시 생활의 원천이 된다.
대규모 노동 시장은 소규모 시장보다 더 생산적이다
경제학자들은 대도시가 소도시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 대도시는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여 기업이 산출량을 증가시켜 단위당 비용을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한다. 규모의 경제는 대규모 노동시장이 있는 도시에만 가능하다.
많은 연관 활동이 인접하여 이루어지면, 경제학자들이 '지식 스필오버(knowledge spillover)'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 기업에서의 새로운 업무 방식이 곧 다른 기업, 그리고 마침내 도시 경제의 다른 부문에 의해 모방된다. 이는 다양한 기업과 부문의 근로자들 간의 근접성과 긴밀한 접촉 덕분이다. 지식 스필오버는 집적경제의 원인이다(즉, 많은 수의 근로자가 가까이 접촉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가 빠르게 확산되어 생산성이 증가한다).
집적경제는 또한 더 큰 도시에서 경쟁 공급자와 소비자의 근접성으로 인해 거래 비용이 감소함으로써 발생한다.
도시의 부를 공간적 집중과 연결짓는 경제 문헌은 매우 풍부하며 학계에서 논쟁의 여지가 없다. 국가 계정은 대도시의 산출 비중이 항상 그 도시의 인구 비중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9년 세계은행 개발 보고서 'Reshaping Economic Geography'와 같은 해에 발행된 성장과 개발 위원회의 보고서 'Urbanization and Growth'는 대도시에서의 경제활동 공집 집중이 제공하는 경제적 이점을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이론적 및 경험적 논거를 자세히 요약하여 기록한다.
[역주: World Development Report 2009 - Reshaping Economic Geography, The World Bank Publications, 2009.
M. Spence, P. C. Annez & R. M. Buckley, Urbanization and Growth: Commission on Growth and Development, The World Bank Publications, 2009.]
그러나 대도시가 소도시보다 더 생산적이라면, 왜 대도시가 소도시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많은 가구와 기업이 더 생산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대도시 대신 소도시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가?
슐로모 엔젤(Shlomo Angel)은 그의 책 'Planet of Cities'에서 이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를 요약하고 전 세계 도시 규모 분포 문제를 다룬다. [역주: Shlomo Angel, Planet of Cities, Lincoln Institute of Land Policy, 2012] 앤젤은 신뢰할 수 있는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분석을 수행했다. 그의 결론은 기존의 덜 포괄적인 연구 결과를 재확인한다.
'Planet of Cities'는 대도시가 같은 국가나 지역의 중소도시와 평균적으로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도시의 성장률은 지브라의 비례효과 법칙(Gibrat’s law of proportionate effect)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시 크기가 미래 성장률의 지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시의 성장률은 무작위로서, 동일한 기대 평균 성장률 및 분산을 가진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다양한 크기의 도시 분포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대도시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지만, 평균적으로 소규모 도시도 그렇다.
이는 대규모 도시가 소규모 도시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도시는 소규모 도시와 경제적으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활동을 한다. 대규모 도시의 생산성 증가는 소규모 도시의 존재와 성장에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소규모 도시의 경제 성장은 대도시의 혁신과 발명에 의존한다.
더 생산적일 것이란 전망에도 불구하고, 특정 유형의 기업만이 대도시로 이주하여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도시에 위치한 기업은 더 큰 자본과 더 높은 운영 및 유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대도시에서는 토지와 임대료가 소규모 도시보다 비싸다. 이동 거리가 더 길고 '혼잡세(congestion tax)'가 더 높다. 또한 모든 기업이 규모의 경제나 집적경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지가 더 저렴하고 임금이 낮은 소도시로 이주하는 것은 토지, 그리고 전문화되지 않은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는 기업에게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이러한 유형의 기업은 제조 활동을 소도시에 위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제조업체는 디자인 및 마케팅과 같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혁신적인 활동을 대도시에서 수행할 수 있다. 반복적이고 토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활동(제조)은 소도시에서 수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대도시의 이점(혁신, 전문화된 노동)과 소도시의 이점(저렴한 토지 및 노동 비용)을 모두 누릴 수 있다.
일부 서비스는 대도시와 소도시 모두에서 번성할 가능성이 있으며 위치의 이점에 의존하지 않는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이발소, 세탁 서비스는 더 전문화된 기업의 노동력을 따라 어디에나 위치하여, 소규모 및 대도시의 균등한 성장률에 기여한다.
계획가의 대도시 반감과 성장 균형 시도의 문제점
도시는 노동시장이 확장될 때 성장한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일반적으로 위치에서 얻은 비교우위나 숙련된 노동자가 특별히 집중된 결과이다. 도시의 인구성장률은 사전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외생적 및 내생적 상황의 조합에 기인한다.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도시의 중장기 성장률은 대체로 예측할 수 없으며, 이를 신중한 계획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도시계획가와 도시행정가는 전통적으로 대도시의 계획되지 않은 성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는 관리의 복잡성, 농촌 지역에서 온 가난한 이주민의 도시 생활 통합의 어려움, 그리고 '설계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한 본능적 혐오 때문이다. 계획가들은 파리나 멕시코시티와 같은 대도시의 성장을 '암적(cancerous)'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계획가들의 비계획적이거나 비대칭적 공간 패턴에 대한 혐오는 대부분의 도시 계획 접근법에서 매우 명백하다. 일부 계획가는 국가 지도를 보고 일부 지역에는 도시가 많고 있고 다른 지역에는 도시가 적은 이 '불균형'이 기생적인 도시 활동이나 다른 시장 실패로 인한 불평등을 나타낸다고 잘못 결론 내린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정부가 개입하여 불균형을 수정하고 국토계획을 통해 지역 불평등을 제거할 책임이 발생한다.
그러나 국토계획이 도시 간 인구분포를 변경하여 새로운, 계획가가 설계한 공간 균형을 달성할 수 있다는 가정은 잘못되었다. 국가 또는 지역 계획을 수립하면 각 지역개별 도시의 예측 가능한 성장률을 가져오리라는 가정도 명백히 잘못되었다. 불행히도, 많은 국가에서 만연한 이 계획가적 오만은 잘못된 공공 투자와 규제 장벽을 초래하여 도시의 생산성을 감소시켰다. 실제로 도시계획가는 도시 크기 분포와 도시 성장률에 매우 적은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너무 큰' 도시의 도시 경제를 파괴하려는 적극적이고 표적화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그렇다.
도시 규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계획가적 자만심의 결과로, 20세기 후반에 입안된 많은 지역 개발계획은 대도시 성장을 규제로서 제한하였다. 여기에 더 관리하기 쉬운 소도시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계획된 인프라 투자도 동반되었다. 프랑스의 국토개발계획을 주장한 영향력 있는 1947년 논문의 제목은 다름 아니라 '파리와 프랑스 사막(Paris et le Désert Français)'이었으며, 이는 파리의 성장이 프랑스 지방 도시를 희생시켜 이루어졌다고 전제한 것이었다.
1956년, 인도 정부는 새로운 산업이 '낙후 지역'에 위치하도록 장려하면서 동시에 대도시의 제조업 발전을 막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을 통해 정부는 지역 불균형을 교정하고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의 추가 산업 성장을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후자의 정책은 뭄바이나 방갈로르와 같이 인구가 25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성공적인 도시에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막지 못했으며, 단지 그곳에서 산업을 확장하는 비용을 증가시켰을 뿐이다.
더욱 비극적으로, 이는 희귀한 정부 인프라 자원을 성잠 잠재력이 낮은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는 대도시에 절실히 필요한 공공 투자를 부족하게 만들었다. 인도 주요 도시에서의 현재 열악한 공공 인프라 성능(도로, 교통, 하수, 배수, 전력)은 지난 50년 동안 수행된 잘못된 국가 공간 정책의 결과이다.
소련의 70년 동안, 계획자는 어떤 도시가 성장해야 하고 어떤 도시는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했다. 정부는 사람들의 이동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소련의 광대한 배후 지역의 도시들 중 어느 것도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으로의 기업과 사람들의 자발적인 이주의 결과가 아니었다.
2010년에 컨설턴트로서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나는 건설부로부터 러시아 정부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식별한 60개 도시의 '폐쇄'를 진행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부는 원래 그들의 존재 이유였던 대규모 독점 산업이 떠난 도시의 사회 서비스와 인프라를 계속 지원할 수 없었다.
노동시장은 사라졌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이러한 도시를 폐쇄하면 수백만 명 규모의 또 다른 강제 이주가 일어날 것이었다. 최근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일한 자산이었던 아파트가 값어치가 없어지면서, 소유자는 이주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도시를 폐쇄하는 것은 계획에 기반하여 경제적 기반 없이 도시를 창조하고, 강제 이주나 막대한 보조금을 사용하여 도시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이다.
국가 및 지역에서는 소규모, 중간 규모 및 대규모 도시에서 기업 및 인구 규모의 자연스러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 균형은 사람들이 발로 투표하여 더 성장할 도시로 이동하고 잠재력이 적은 도시나 마을을 떠나는 기업과 가구의 누적된 결정에 의해 형성된다. 비계획적인 개별 결정의 합에 의해 생성된 자발적 공간 균형은 설계 없는 질서(order without design) 원리를 보여준다.
몇 가지 지정학적 예외를 제외하고, 도시계획가는 도시의 위치와 성장률에 직접 개입할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 도시계획가는 소도시의 성장을 대도시의 성장에 불이익을 주어 '장려'해야 한다는, 도시계획 문헌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이러한 유형의 계획가 주도 이니셔티브가 실패하거나 더 나쁜 경우 국가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심각한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할 운명임을 보여주었다.
리페어독
관련 내용을 번역서로 읽으려면 어떤 책이 적당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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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도시의 승리'가 유일합니다.
95년생이면애가아니야
말인즉슨 도시계획은 필요하되 도시육성은 불필요하며 대도시 규제는 성공하지 못할것이란 말인데...
서울집중화를 방관해야한다는 뜻인가...싶네요
결국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이름 아닌가요
완전시장경제가 아니기에 정부개입이 필요하듯이
도시의 개별적 확장주체들이 항상 합리적 결정을 내려도 그것이 전체적으로 볼때는 비효율적이 될수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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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도시의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연구한게 아닌가 싶음
도시공학을 연구하는데 심리학까지 고려하진 않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