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도시계획가 알랭 베르토(Alain Bertaud)의 2018년 저작
Order Without Design: How Markets Shape Cities
를 발췌, 편역한 내용입니다.
이 책은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과 설계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책이다. 시장은 비인격적인 거래 메커니즘으로서, 인간 행동의 결과이며, 시장이 창출한 질서는 도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시장은 가격을 통해 공간적 질서를 생성하는 정보를 전달한다. 가격이 왜곡되면, 시장이 생성하는 질서도 왜곡된다. 도시 계획가들은 설계를 통해 그 질서를 수정하고자 한다. 계획가들이 시행하는 설계 개입은 주로 규제와 인프라 및 공공 공간(public space)의 건설로 구성된다. 계획 규제의 목적은 시장의 통제받지 않은 결과물을 개선하여 시민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 관리에서 이상한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규제를 통해 시장의 결과물을 교정할 책임을 진 전문가(도시계획가)는 시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시장을 이해하는 전문가(도시경제학자)는 시장을 제한하기 위한 규제 설계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이 두 직업군 간의 상호작용 부족이 도시 발전에서 심각한 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의 주요 목표는 도시경제학자의 지식(및 모델)을 규제와 인프라의 설계 및 계획에 적용하여 도시계획을 개선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도시경제학 문헌에 축적된 매우 귀중한 지식이 도시계획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나는 새로운 도시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도시경제학 지식을 도시계획 실무에 도입하고자 한다.
도시계획가는 규범적이다. 즉, 주로 대대로 전승된 경험법칙에 의존하여 실무적 전문성에 기반을 둔 결정을 내린다. 도시계획가는 보통 정량적 표현보다는 정성적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도시계획의 목적을 설명하고자 '지속가능성', '살기 좋음(livability)', '컴팩트함', '회복력', '공정'과 같은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도시계획가는 이러한 정성적 목표를 측정 가능한 지표와 연결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도시계획 전략이 실제로 '지속가능'하거나 '살기 좋은' 도시를 이루었는지 알 수 없다. 정량적 지표가 없는 경우, 이러한 용어는 도시계획안에 도덕적 우월성을 불어넣기 위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반면, 도시경제학은 이론, 모델, 경험적 증거를 기반으로 하는 정량적 과학이다. 도시경제학자들은 주로 다른 도시경제학자들하고만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그들은 용도지역 설정(조닝; zoning)이나 새로운 지하철 노선의 배치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도시계획 부서의 사람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다. 경제학자와 도시 간의 상호작용은 주로 전자가 후자의 데이터를 얻어 분석하는 데 그치며, 도시계획가를 향해 피드백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나는 도시경제학 이론을 도시계획 실무에 적용하면 도시의 생산성과 도시 시민의 복지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알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이 개발경제학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용한 접근법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허시먼의 방법론은 현장에서 현실을 관찰하고, 사실을 분석한 다음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입된 이론과 전문가 의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Development Project Observed'에서 그는 그의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늘 그렇듯이, 세부 사항에 대한 몰입은 모든 종류의 보편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Immersion in the particular proved, as usual, essential for the catching of anything general)'
[역주: Albert O. Hirschman, Development Project Observed, Brookings Institution Press, 1967]
전세계적으로 도시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도시경제학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우리 시대의 주요 문제 중 하나이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있어 도시가 경제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고, 도시에 사는 것이 빈곤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인 시기에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과 무관한 제한적 규제가 도시 토지와 바닥 면적의 공급에 가하는 제약은 심각한 도시 기능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이러한 공급 제약이 무허가 정착촌에 사는 가구에 가혹한 고통을 부과하는 원인이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저소득층 가구가 자신들이 가장 생산적일 도시로 이주할 가능성이 저해된다.
나는 서유럽, 북미, 동아시아의 매우 부유한 도시에서도 많은 도시계획가들이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를 무시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 위치한 도시의 신규 종합개발계획을 많이 검토했다. 그 어느 것도 부동산시장, 토지 가격, 교통비, 통근 시간,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 개념을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계획은 토지와 바닥 면적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 아닌 도시계획가의 설계에 의존해 정해진 특정 인구밀도를 권장했다.
나는 도시 규제의 필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규제의 영향을 정기적으로 재평가하여 현실에 무관하거나 심지어 해로워진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 도시 규제의 원래 목적은 종종 잊혀지고, 오래된 전통적 지혜로 전승되면서 그에 도전하려는 시도는 멀어진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계속 변하며, 도시에 대한 규제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변해야 한다.
내가 현업에서 일하는 동안 도시가 자발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에서 패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령, 토지 가격은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감소했다. 토지 가격이 높을 때 가구와 기업은 토지를 덜 소비했고, 그 결과 인구밀도가 증가했다. 도시계획에서 규제의 목적은 거의 항상 인구밀도를 제한하는 것이었지만, 토지 가격이 가구 소득에 비해 높을 때 그들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여 이러한 패턴이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적 및 경험적 문헌이 풍부하다는 것을 몰랐다. 경제학자는 단순한 모델을 사용하여 소득, 교통 비용, 농지 가격과 같은 변수의 변화에 따라 인구밀도가 어떻게 변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일부 독자는 내가 예외적으로 무지한 도시계획가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무지는 오히려 도시계획가로서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도시계획 관련 업계에서 높은 토지 가격은 흔히 비난의 대상이지만, 보통 투기꾼 탓으로 돌려진다. 오늘날까지도 토지 가격과 임대료, 토지 및 바닥 면적 공급을 서로간에 연결지어 생각하는 도시계획가는 거의 없다. 그 결과, 도시의 확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규제를 설계하는 도시계획가는 토지 가격 상승에 놀라며 외부 요인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의 경험
나는 아이티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이동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소도시로 이주하거나 시골 마을에 머무르는 등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생활 조건이 열악한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밀집된 빈민가로 이주했다. 이 결정은 그들이 왔던 농촌 지역의 생활 조건이 더 나빴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포르토프랭스로 이주한 후에도 이주민들이 살아남아 도시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제도권 또는 제도권 밖에서 얻은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티는 복지 국가가 아니었고, 그들의 생존 자체가 그들이 도시 경제에 기민하게 통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나는 인도, 알제리, 예멘의 빈민가 주민들과 자주 대화했으며, 항상 그들이 매우 실용적이고 상식이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도시계획가는 큰 도시로 이동하는 이주민이 농촌의 생활 조건과 도시 빈민가의 생활 조건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독재 하에서 아이티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발로 투표하여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시적 민주주의 형태는 존중되어야 한다. 도시의 크기는 주민들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도시는 도시 빈민가의 고통이 농촌의 고통보다 커질 때만 성장을 멈출 것이다.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주민들뿐이다.
토지 시장과 노동 시장이 없는 도시: 1983년의 중국, 1991년의 러시아
도시계획가는 규제를 신뢰한다. 그들은 기꺼이 최소 구획 크기, 최소 주택 바닥 면적, 최대 건물 높이, 최소 도로 폭 등을 규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를 시행하려고 할 때, 그들은 토지 가격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곤 한다. 도시계획가는 토지 가격을 주택 공급에 대한 주요 장애물로 본다. 정부가 토지 시장을 규범에 기반한 설계로 대체한다면, 주거 비용 문제 해결을 포함하여 좋은 도시계획의 실현 전반에 대한 주요 장애물이 해결되리라 믿는다.
이러한 도시계획가의 꿈 - 토지 할당에서 규정이 시장을 대체하는 것 - 은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에서, 1947년부터 2000년경까지 중국에서 존재했다. 나는 토지 시장이 재도입되기 전에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도시계획가의 꿈이 어떻게 끔찍한 낭비적 유토피아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내부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계획경제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가격이 자원을 할당하는 데 사용되지 않을 때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였다. 시장을 이해하는 데는 시장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도시를 관찰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토지 시장의 부재는 중국 도시와 시장경제 국가의 도시 간에 토지 사용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만들었다. 중국 헌법에 따르면 토지는 '인민'의 소유이며 매매될 수 없다. 다만, 토지 사용권은 때로 기업 및 가구에 할당되었다. 토지 가격이 없는 대신, 다양한 활동에 할당될 토지의 양은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설정한 규정에 따라 결정되었다.
도시계획가와 엔지니어는 '필요'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도시 경제학자는 희소 자원의 할당 측면에서 생각한다. 주거 지역의 적정 밀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계획가는 보통 특정 수치로 답할 것이다, 예를 들어, 1헥타르당 150명. 이 추정치는 예를 들어, 최적 크기의 초등학교까지의 도보 거리가 15분 이내라던가, 15분마다 도착하는 버스 운행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 있는 최적 밀도와 같은 기준에 따른 것이다.
같은 질문을 받은 도시 경제학자는 '그때 그때 다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도시계획가를 격앙시킬 것이나, 명백히 옳은 대답이다. 도시의 토지는 희소 자원이며, 그 가격은 특정 위치에서 얼마나 희소한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가격에 따라 토지는 높은 가격이 있는 곳에서는 아껴서 사용되고, 저렴한 곳에서는 더 넓게 사용되어야 한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최적의 인구밀도는 없으며, 밀도는 토지 소비 지표로서 동일한 위치에서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토지 가격의 부재는 도시 구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업이 점유하는 토지는 그 자체로서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 경제에서 그렇듯 새로운 사용자가 매매를 제안함으로서 다른 용도로 재활용되거나 양도될 수 없었다. 중국 도시가 확장되는 동안, 시내 중심지 가까이에 위치한 산업 용도 필지는 용도 변경이 불가능했고, 이를 수행할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경제에서는 특정 사용의 잠재적 임대료가 현재 사용보다 높으면, 해당 부지의 소유자는 보다 수익성 높은 용도로 재개발할 강한 인센티브를 가진다. 그렇게 하여 저층 건물은 고층 건물로, 창고는 사무실 건물로 변모한다. 새로운 사용 하에서 토지의 상승된 가격은 철거 및 노후 건물의 이전 비용을 충당한다. 토지의 용도 변경은 도시계획가의 개입 없이도 토지 가격만으로도 촉발된다. 되려 시장 가격의 역동성은 너무 강력하여 도시계획가는 종종 토지 시장이 촉발한 변화를 늦추기 위해 토지 사용 규제를 부과한다.
계획경제에서는 가격 신호가 없기 때문에, 그 수명을 다한 토지 용도가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계획경제에서 토지 사용 변경은 항상 명백한 직접적 혜택 없이 토지사용권 소유자와 변경을 승인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할 정부 부처 모두에게 비용으로서만 나타난다. 토지 용도변경 지연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조차도 중앙 정부가 투입 비용과는 무관하게 생산 가격을 설정하기 때문에 기업 관리자에게는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계획경제의 도시 구조는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최신 건물과 고층 주거 항상 교외에 새로 개발된 지역에 지어지며, 저층 건물은 도심 가까이에 있다. 시장 경제에서 가장 낮은 토지 가치를 지닐 교외의 인구밀도가 높은 반면, 시장경제에서 가장 높은 토지 가치를 지닐 도심 가까이에서 인구밀도가 낮다. 도시 공간 구조의 비효율성, 노동 시장 이동성의 부족, 규정에 기반한 경제는 기술 변화와 토지 수요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고, 매우 잘 교육받고 숙련된 도시 인구와 풍부한 자연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경제가 붕괴한 한 원인이 되었다.
- 토지가 충분히 사용되지 않거나 위치에 적합하지 않은 사용이 있는 경우, 가격을 통해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 토지 가격이 높은 지역, 특히 교통망이 잘 구축된 지역에서 사용자가 가능한 적은 토지를 사용할 강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 건설 혁신을 자극한다: 토지 가격이 없었다면 초고층 건물, 강철 프레임 구조, 엘리베이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슉슉
재밌다. 계속 올려줘
Avekgiks
책임자들이 통계에 관심떨어지는건 도시계획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