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6.25 전쟁 짤막 상식 :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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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드립 보니까 한국은 정전협정을 거부해 서명하지 않았다는 잘못된 얘기가 있어 몇 자 적음.

 

 해당 주장은 6.25 전쟁 때 한국은 북진을 고집해 정전협정을 거부했으므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할 처지가 아니라는 맥락으로 읽히는데,

 

 승패 운운은 차치하고 이 논란은 한국의 정전협정 당사자성, 나아가 종전협정/평화협정에서 한국의 자격 논란 같은 쓰잘데 없는 떡밥으로 이어짐.

 

 서명 안했으니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님 → 그러므로 (6.25 전쟁 정전협정의 최종 목표였던) 종전협정, 평화협정에 한국이 낄 자리는 없다 주장하는 아해들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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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두절미하고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맞음.

 

 혹자는 자유진영에선 미국(정확히는 유엔군사령관)만 서명하고 한국은 모습이 없는 데 반해, 공산진영에선 북한과 중국 모두 서명했다는 점을 보이는 대로만 비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나 묻자. 유엔군을 구성한 영연방군, 프랑스군, 튀르키예군, 필리핀군, 태국군 등 그 많은 나라는 왜 서명하지 않았을까?

 

 그야 그 나라들 모두 유엔군사령관이 대표하여 서명했으니까. 그리고 거기엔 한국도 포함돼 있음.

 

 유엔군사령관은 유엔군에 가담한 각국 군대를 작전지휘하였고, 한국군의 경우 1950년 7월부터 작전통제권을 받아 1970년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이관될 때까지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을 작전지휘하였음.

 

 이 상태에서 유엔군사령관과 한국군 사이에서 대리 또는 위임의 법률관계가 발생한다 볼 수 있으며, 당연히도 유엔군사령관의 행위와 행위로 인한 결과는 한국군에게 귀속됨.

 

 쉽게 풀어쓰면 작통권을 유엔군사령관이 가진 이상, 한몸이라는 거지.

 

 그래서 오늘날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임. 이따금 유엔군사령부에서 한국군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한다는 뉴스들이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옴.

 

 이를 연합군이론(Coalition army theory)으로 불리는데, 사례로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콩피에뉴 휴전협정에서 미 원정군사령관이었던 퍼싱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음에도 연합군 총사령관 포슈가 대표로 서명하여 미군의 협정 당사자성이 부정되지 않았었음. 2차 세계 대전 때도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와 이탈리아군 원수 바돌리오 사이 체결된 휴전 협정에서 협정 당사자로 전 교전당사국이 적용된 바 있음.

 

 학계에서는 배재식 교수, 이장희 교수, 백진현 교수 등이 주장한 바 있고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단 다른 주장으로 유엔군의 성격을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해석하여 한국의 협정 당사자성이 유엔을 거쳐 형성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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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라위키 같은 데선 조약에 주체가 명시되지 않은 이상 당사자성을 인정치 않는 국제법을 들어 연합군이론을 배척하지만 이는 정전협정의 성격을 오독하는 것임.

 

 6.25 전쟁의 정전협정은 국가간 조약이 아니라 신사협정에 가까웠거든.

 

 우선 서명자를 살펴보자. 각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라 군사지휘관들임. 유엔군사령관(클라크)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펑더화이)에 이어, 그 김일성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란 직함으로 서명했음.

 

 그 아래에는 군 장성이 수석대표로 서명을 남겼지.

 

 더욱이 이 협정은 조약의 필수 과정인 각국 의회의 비준 동의 절차가 없었음. 그런데도 조약임을 주장할 근거가 있을까?

 

 물론 영문 명칭은 Korean Armistice Agreement고,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조약이지 않느냐고 되묻는 혹자가 있을 법 하겠지만... 그냥 정전협정문 서문을 한번 보는 게 편하겠다.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하는 하기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류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하기 조항에 기재된 정전 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또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 데 각자 공동 호상 동의한다.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 쌍방에만 적용한다.

 

-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서언

 

 정전의 특징은 완전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단계임. 오랫동안 뜨거웠던 머리를 물 한 잔 마시고, 숨 돌리며 식히는 과정임.

 

 기실 6.25 전쟁 정전협정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음.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 즉 평화 협정은 기존보다 한 단계 이상의 정치회담에서 처리키로 협정의 제 4조 60항에 합의돼 있었음. 이에 따라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의제로 올라와 논의되었었고. 파토나서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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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열린 제네바 정치회담은 한국의 정전협정 당사자성을 증명하는 자리였음. 한국 측 대표도 참가하였기 때문. 한국 측 대표는 약 반세기 전 헤이그의 열사들과 달리 빈객으로 내쫓기지 않았음. 아쉽게도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말이야.

 

 여하간에, 한국의 참석과 활동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협정의 다음 단계, 즉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노력을 함께 했으며 다른 당사자들도 이를 인정하였음을 알 수 있음.

 

 그 후로도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로서 활동해왔음. 전술하였듯 유엔군사령부는 오랫동안 한국군이 정전협정을 준수토록 지도해왔음. 특히 협정 초기에 한국이 벌인 온갖 난동을 제어하느라 고생했음.

 

 심지어 북한도 한동안은 한국의 정전협정 당사자성에 딴지를 걸지 않았음. 1990년대 전까지는. 그러다 통미봉남으로 재미보겠다고 한국은 대화판에서 꺼지라는 논리로 당사자성 부정을 들고 나왔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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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미국이 그냥 한국 멱살 잡고 정전협정 지키라고 윽박지른 게 전부 아니냐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전협정의 체결을 두고 미국과 한국은 갈등 끝에 겨우 합의를 맺었음.

 

 한국은 안보확약, 그러니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원했던 것만큼은 아니여도 미국이 줄려던 것 이상(미국의 안보 확약 초기안은 각국 외교장관들이 안보 지원에 관한 성명, 즉 입에 발린 말만 발표하는 수준)을 얻고 앞으로는 휴전 반대, 북진 통일 외치며 뒷구멍으로는 입을 싹 닦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은 후에는 아예 정전협정 준수를 선언함.

 

 미국은 정전협정을 유지할 수 있는 재갈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협정 이후로도 유엔군사령관이 가질 수 있게 되었음. 실제 1955년과 56년에 한국 정부는 제한적 북진 시도(혹은 공갈)를 벌였는데 작통권이라는 아주 질기고 단단한 고삐와 미국의 압력에 끝내 무산됨.

 

 한미동맹 시작부터가 안보-자율성 교환 모델의 한 사례임. 한국은 자율성(군사주권)을 미국에 넘기는 대신,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전보장을 약속해주었으니까.

 

 '스스로 재갈을 문 운명을 그들 스스로가 몰랐을까?'를 생각한다면 북진 안 받아들여졌다고 패배라는 주장이 얼마나 맥락을 거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임.

 

그리고 내가 인용해 지적하게 된 글에 대해 좀 더 쓰자면, 그 글에선 한국이 6.25 전쟁의 목표를 생존에서 북진통일로 바꿨다고 논하는데 상술한 바와 같이 한국은 마지막에서야 정전협정을 받아들였거니와, 이러한 목표 변경은 비단 한국만 한 게 아님.

 

 미국의 경우 개입 초기 목표는 전쟁 상태 이전으로의 회복, 풀어 써서 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주였음. 그러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역전되자 목표가 확대돼 한반도 단독정부 수립, 즉 통일로 바뀌었음. 하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패퇴하면서 출구전략으로 협상을 통한 전쟁 종결(부수적으로 3차 세계 대전으로 확전 방지)를 추구하게 됨.

 

 중국도 전쟁 초기에는 북한의 신속한 승리, 즉 한반도 공산화라는 목표 하에 조기파병을 준비했으나 미국의 개입과 인천상륙작전을 기점으로 불개입으로 노선을 바꿨다가 북한 정권이 멸망하게 된 상황에서 소련과 북한의 요청, 그리고 미국과 세력을 맞대는 상황을 피하려는 등의 목적에서 개입으로 선회함.

 

 이쪽도 미국처럼 전세에 따라 전쟁 목표가 바뀌었는데 개입 초기에는 북한 정권의 존속을 꾀하다 1, 2차 공세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목표를 한반도 공산화로 재차 확대해 신정공세에서 38선 이남으로 진격했음. 허나 유엔군의 반격에 직면하면서 군사적 승리 대신 유리한 교환비를 통해 협상을 유리하게 끄는 걸로 목표가 부분 축소됐고, 야심차게 시도한 춘계대공세가 대실패로 끝나면서 협상을 통한 전쟁 종결을 추진하게 됨.

 

 이처럼 전쟁 목표도 당대 상황과 이에 대한 지도부의 재인식이 있으면 시시때때로 바뀌므로 승패를 논하는 건 뭐, 그 글에서 논하듯 다소 복잡한 건 맞음.

2개의 댓글

9 일 전

나도 잘못알고 있었네 고마워~

1
5 일 전

ㅊㅊ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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