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되었어.’
노인은 한숨을 쉬듯 말하고는 쪼글쪼글한 손을 천천히 들어 자신의 옷섶을 꼬옥 붙들고 있는 딸의 손을 잡았다. 적잖이 나이가 먹은 노인의 딸은 아이마냥 얼굴이 빨개진 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쟈? 으으응. 늙은이 돌본다구 차암 많이 심들었겄구먼?’
‘그런 말씀 하지말어..털구 일어나셔야지 왜 약한 소리를 해..’
사실 그것이 불가능함은 둘 다 알고 있었다. 노인은 일주일 내내 제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다. 횡설수설하던 헛소리마저 이젠 하지 못하고 결국 아주 혼수상태가 되어버려 경련까지 시작된 것이다.
‘막내가 너무 힘들어 해. 백신 맞은게 잘못돼서 이렇게 된거라구. 병원에서 하는 말들 들어보니까 자기 생각이 맞다구.’
딸의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우리 막내는 먼저 서울 올라갔지이?’
‘응. 먼저 서울 올라갔어. 준비해야할게 많으니까 먼저 보냈어.’
‘으으응. 그래여. 어제 마지막으루 인사도 잘 했어여. 그러니까 괜찮어여.’
위급상황을 통보받은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병실에 몰려들었다. 딸은 차마 어떻게 해달라 말조차 못하고 침대만 붙들고 있었다. 그런 노인의 딸을 한 간호사가 부축했다. 병원에서 여러 편의를 봐주었던 막내의 처형이었다.
‘그래두, 막내네 처형이 여기 병원에서 일해서 차암 다행이었구나.’
‘그러게. 덕분에 마지막 가시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어.’
‘우리 막내도 나 땜에 고생 차암 많이 했지여어? 세상에 우리 막내 같은 효자가 없어여어. 우리 딸두 효녀구, 손주놈들두 세상에 이런 손주들이 없었어여.’
‘응, 참 그렇네.’
‘손주애들이 걱정되는구나. 제 앞가림 알아서들 잘 하겠지마는, 으응, 우리 막내네 큰 손주. 고민두 많구 생각이 많은 모양이든데에. 지 애비하구두 투닥거리구. 제 앞가림 하는 것두 보구, 색시 들이는 것두 보고가야 하는데에..세상에 안 어울리게 순하구 착해가지구 그게 너무 걱정이 돼에여.’
‘아이..걱정하지 말어. 생전에 이미 충분히 걱정하셨어. 알아서들 잘 살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 미련없이 훨훨 가셔.’
오열하던 노인의 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막내네 처형이었다. 반쯤 기절할 것만 같은 정신을 붙잡으니 몇마디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내 올케, 전화, 마지막 인사. 노인의 딸은 전화기를 받아들어 그대로 노인의 귀에 대주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 막내 며느리에요,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으신 시어머니셨어요. 편히 가세요, 어머니. 사랑해요.”
노인의 막내 며느리도 오열하느라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할머니, 저에요. 저, 제가 알아서 잘 살구, 앞가림 잘 하구, 이쁘고 착한 색시 만나서 잘 살게요. 그러니까 할머니 편히 가세요, 편히 가세요.”
막내아들네 큰 손주도 같이 우느라 말하기가 힘들어보였다.
“할머니, 그러니까, 한번만 꿈에 들렀다 가주세요. 할머니 직접 뵙고 마지막으로 인사 못 드린게 너무 원통해요, 할머니. 저 그게 너무 원통해요. 그러니까 꿈에 한번만 나와주세요, 할머니.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한번만 얼굴 보고 인사하고 싶어요.”
노인은 대꾸하지 못했다.
“할머니, 편히 가세요, 편히 가세요. 사랑해요.”
전화기는 다시 막내네 처형에게 돌아갔다.
‘봐봐. 얘두 노인네가 걱정하는거 다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구 잘 가시는게 우리 도와주는거야. 그래야 남은 사람들두 마음정리 잘 하구 살지.’
‘으으응. 그렇구나아. 이 노인네가 생각을 잘못 하구 있었구먼? 홍홍홍홍홍“
노인은 소탈하게 웃었다.
‘그래두 우리 손주, 서운해서 어떡해여? 이 코로나가 차아암 문제긴 문제구나아.’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어. 하기야, 우리 막내도 모든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속 많이 썩긴 하더라.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노인네 몇 년은 더 사셨을거라고 너무 속상해 하네. 막내는 막내인가봐.’
‘네가 큰누이니까 잘 보듬어주어. 나야 먼저 가있는 느이 큰 동생 만나서 같이 있겠지마는, 이제 여기엔 느이 둘 밖에 없으니까아. 그러니까 싸우지 말구 사이좋게 자아알 지내야 이뻐여.’
‘그것도 걱정하지 말어. 우리가 잘 알아서 할게. 올라가있는 노인네 속 안 썩이게.’
‘그래여? 그럼 내가 차암 고맙구먼?’
‘다른 손주들도 서운하겠다고 걱정하지 말어. 저저번주 설날 때 와서 다 얼굴 보구 했잖어. 그 때 건강한 얼굴로 밥 같이 잘 먹구 산책 같이 잘 하구 인사두 잘 했었잖아. 그러니까 엄마두 걱정하지 말어.’
노인은 손주들이 한 마지막 인사가 영영 헤어짐이 아니라 ‘또 뵈러 올게요.’라는 다시 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음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어차피 떠나는 길, 아무래도 상관없어 했을까.
의사들이 더욱 분주해졌다. 그 가운데 멈춰있는 사람은 노인과 그 딸 뿐이었다.
‘으으응, 때가 됐나봐여.’
‘가게? 갈라구?’
‘으응. 나 같이 가자구 위에서 데릴러 왔나봐여. 자꾸만, 가자구 그러네.'
‘이번엔 저번처럼 도깨비들이랑 귀신들이랑은 아니지? 그런 놈들이면 또 싸워서 내쫓아버려, 엄마. 그때처럼 병원이랑 다 때려부숴도 되니까 내쫓을 수 있겠다 싶으면 확 내쫓아버려!’
‘아니야아. 부처님들하구, 보살님들하구, 애기스님들하구, 선녀님들하구. 나 갈 때 됐다고 다 와서 같이 올라가자구. 그러는 거야아.’
‘그래? 귀한 분들이 오셨네. 그럼 엄마, 뒤도 돌아보지말구 훨훨 가셔. 미련이고 아팠던거고 다 시원하게 훌훌 털고 훨훨 이쁘게 가셔.’
‘으으응, 그래야겠지이?’
‘잠깐만!’
‘으응?’
‘사랑해 엄마.’
‘아항항항항항’
노인은 그제서야 가벼이 웃었다.
‘우리 딸, 해준게 많지 않구 고생만 시켜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여. 맏딸이라 더 힘들었지이? 그래두, 언제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참 효녀였구만. 노인네 위해서 고생허구, 마지막 가는 길까지 맡아서 배웅해주구. 아이구, 차암 세상에, 이런 효녀가 없구나. 세상에나..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여?’
노인은 잠시 지긋이 딸을 보았다.
‘사랑해여, 우리 딸.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여. 다음 생에 또 딸 삼구 싶구나아.’
노인의 딸은 그제야 눈물을 훔치며 옷깃 붙들은 손을 말없이 흔들었다.
그렇게 노인은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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