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이라고도 하는 6.25전쟁 그 사이의 중요하지만 몰랐던 것들을 조명해보는 비정기시리즈.
시작은 익히 알려진 낙동강 방어선의 서부전선 최남단 전선이었던 1950년 8월의 마산으로 가보겠다.
전후 배경요약
6.25전쟁은 개전 이후부터 50년 8월 이 시기까지 단 한 번도 승세를 점하지 못한채 줄창 털리기만해서 이미 7월말부터 8월초에 미군을 필두로한 유앤군은 각 지역마다 흩어져있던 방어선을 모두 철회시키고 가용되는 남한측 병력 전부를 낙동강 방어선에 집결시킨다.
해당 시기 북측 인민군은 부산까지 함락시켜 완전히 적화통일을 눈 앞에 두고 불을 키고 있었고 유앤군과 국군은 미 본토에서 출발한 증원군이 도착하기까지 방어선을 사수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태에 북한의 최종 목적지 부산에서 30km 이내의 서부관문인 마산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졌고 하필이면 이 마산에 주둔하는 인민군은 정예병 6사단이며 이를 맞서기 위해 포진된 군이 바로 미 8군이 되겠다.
개요
(방호산 소장)
사실 이 마산전투에서의 행운이 하나 있다면 인민군이 즉시 낙동강 방어선으로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전라도 장악과 평정을 우선으로 했다는 점.
인민군의 당초 대전략은 전라도 지역까지 함락시키고 육로에서뿐 아니라 해상으로도 보급선을 연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측 깊숙히 들어온 북한군 주력 부대의 동향은 주로 전라도 지역으로 밀집되게 된다. 또한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동고서저의 남한 지형차의 영향도 있었다.
1950년 여름, 전라도까지 가장 깊이 내려온 인민군 6사단은 6.25전쟁에서 최초로 한강을 도하한데다 방호산이라는 똑똑한 지휘관이 존재하는 정예병력이었다.
이후 6사단은 충남, 호남 지역으로 남하하며 연거푸 후퇴하는 국군을 추격해 섬멸하며 1950년 7월 24일 목포항, 다음날 25일 여수항, 28일에 하동, 29일부터 마산과 낙동강 방어선으로 진격하기 시작해 30일에는 진주 마산간 도로 차단. 대망의 31일에 진주까지 완벽하게 점령한다.
거의 일주일 사이에 전라도 지역 일대를 장악해온 것 ㄷㄷ;;;
약 일주일 남짓의 같은 시간을 국군과 미군의 시각으로 돌려서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낙동강 방어선 편제에 시급했던 국군은 무려 31일 방호산의 6사단이 진주에 도착할 때까지도 북한군의 행방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다. 국군은 연거푸 후퇴를 반복하느라 제대로 북한군을 탐지 및 추적하지 못 하는 중이었고 제대로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어 실질적으로 방어선 역할을 하게 된 것은 8월1일부터다.
허나 그보다 빠른 7월의 시간에도 인민군 6사단은 본격적으로 낙동강 전선 돌파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으니..............
1950년 7월 31일.
- 미 8군은 방호산의 6사단이 진주까지 함락시키고 나서야 인민군이 코앞 지척까지 왔음을 너무나 늦게 인지했고 그들이 이미 주된 전선지대를 우회하여 급습하려는 계획이 있음을 눈치챈다.
-시급하게 상주 방어선 최전선에 있던 25사단 소속 3개 연대를 마산 방면으로 화급히 이동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당연하게도 전선의 25사단은 눈 앞의 적을 둔채 등 돌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사태는 시급을 요하는 상황.
-예비대는 모두 소진했고 방어선에 후퇴하는 국군 병력은 참담한 패잔병으로서 제 구실도 하지 못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미 25사단은 눈 앞의 적의 역습 위험을 감수한채로 상주에서의 전선을 물리고 긴급하게 마산 일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25사단의 마산 도착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8월2일.
너무 늦은 인민군 6사단의 파악으로 인해 방어선 봉쇄에는 약 48시간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하단부 마산 지역에 보이는 인민군 6사단과 미국 25사단의 모습)
1950년 8월 1일.
- 진주-마산간의 국도 2호선을 타고 마산으로 진입하는 인민군 병력, 고성을 거쳐서 진동쪽을 이용하는 병력, 중암리를 거쳐 중리를 지나 마산으로 들어가는 병력. 도합 3개의 진로를 통해서 마산을 공격해 들어온다.
- 국군은 마산 현장에서 있던 미 24사단 예하의 19연대, 29연대 / 25사단 예하였던 27연대 / 국군 김성은 장군 휘하의 통칭 '김'부대는 전력이 심히 약화된 상태인채로 3개 진로로 들어온 적과 맞붙게 된다.
허나 국군은 오직 24시간, 단 하루를 견디어낸다면 상주에서 철회한 25사단 본대가 증원을 온다는 소식을 믿고 악착같이 전선 사수에 나선다.
(25사단 본대 도착전 마산에서 지연전을 성공시킨 국군 영웅 김성은 장군)
1950년 8월 2일.
- 놀랍게도 '김'부대와 미군은 제 컨디션도 아닌 상태에서 인민군 정예병력을 맞아 25사단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정말로 전선을 사수해내는데 성공!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7월31일과 8월1일 이후에 우회한 인민군 6사단에 의해 한강과 전라도에 이어 낙동강 방어선마저도 구멍이 뻥하고 뚫려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허나 말했듯이 이들은 전라도 지역을 평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했고 그것이 바로 행운이라고 하는 것!
영웅들의 희생 덕분에 긴급히 최전선에서 빼냈던 25사단 소속 연대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유지되던 마산 전선에 증원되었고 증원 병력을 본 방호산도 공세를 일시 중지. 여기서부터 마산 전선은 교착에 빠진다.
1950년 8월의 첫날과 둘째날은 그야말로 6.25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는 제일 첫 번째 분기로서 시간과의 싸움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날이다. 6.25전쟁 모든 부분에서 손에 꼽게 극적인 순간중에 하나가 바로 이 순간!
"STAND OR DIE!" 워커 장군의 방어전.
(미 8군 사령관이자 6.25전쟁의 손 꼽히는 영웅 월튼 워커 장군)
(6.25전쟁 최후의 방어선 WALKER LINE)
전선이 교착되고 간신히 수습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대전까지 겪은 미 8군의 워커 장군의 방어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워커 장군은 낙동강 방어선의 다른 이름인 워커 라인의 장본인으로 방어에 도가 튼 장군이다.
이미 사전에 맥아더는 워커 장군에게 혹여나라도 낙동강 방어선이 뚫릴 것을 대비한 2차적인 방어선 구축까지도 지시를 해둔 상태였다.
이처럼 울산부터 밀양 마산을 잇는 2차적은 데이비드슨 라인이 하나 더 그어져있는데. 사실 이 데이비슨 라인은 결국은 국군의 패배가 완벽해졌고 제주도와 일본으로 미군과 유앤군이 후퇴할 시간을 버는.....
그러니까 이미 남한 땅에서의 전투는 완전한 패배를 인정해야하는 최후 방어선이다.
그렇기에 사실상 두번째 방어선을 지시한 맥아더도, 그 지시를 받고 방어선을 기획한 워커 장군도 낙동강 전선의 붕괴는 이 전쟁의 패배임을 알고 있다는 소리다.
이 시기에는 미군도 패배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게 정설인 상태지만 워커 장군은 가능성은 열어두되 그걸 선택하지는 않았다.
(워커 장군의 명언이라고 알려져있다.)
8군 사령부에 전달된 명령서의 내용이라고 한다.
해당 내용을 보면 워커 장군은 마산 일대에 집결한 미 8군을 향해 후퇴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미군이 데이비슨 라인을 방패막이 삼아 철수한다면 그 뒤에 부산에서는 전무후무한 끔직한 학살이 있을 것이기에 이 자리에 선 군인들에게 무엇보다 큰 사명을 명령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STAND OR DIE."
싸우거나 죽거나.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은 그야말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워커는 단순히 처맞기만 수동적인 방어로는 전선 유지가 불가능하다는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장군이라고 할 수 있었겠다.
따라서 이 위기를 파훼하기 위해 워커는 선제적인 공격으로 적을 몰아내어서 더더욱 외곽으로 방어선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미친 방어전을 기획한다.
1950년 8월6일
미 8군 소속의 25사단은 마산에 완전히 집결했고 25사단장 킨의 이름을 딴 킨 특임대가 편성된다.
23,080명의 킨 특수임무부대! 이들은 1950년 8월 7일부터 작전을 수행. 1950년 8.13까지 마산 전투와 낙동강 방어선 전투내내 누구보다 최전선에 서던 부대이다.
킨 특수임무부대뿐 아니라 워커 장군은 당시 방어선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마산 일대로 증원시킨다. 워커 장군의 판단은 단순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주 일대까지 밀어붙여서 방어선을 확고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상술한대로 마산 봉쇄선이 닫히고 중소규모에 전투에서 승전보를 챙기던 국군의 사기다.
둘째. 보급로가 길어져 곤란을 겪던 인민군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 판단이었다.
셋째. 북한군의 주력과 초기 대전략인 진주 일대로 치고나간다면 의성 대구등 방어선에 가해지는 북한군의 공세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즉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북한군의 전력을 소모시킴과 동시에 타지역 방어선에 대한 압력까지 완화시키는 위기도의 평균화를 꾀해 낙동강 전체의 방어선 균형을 만들겠다는 대전략이 워커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
1950년 8월 7일.
드디어 마산에는 워커장군의 지휘하에 모인 25사단, 5연대전투단, 1해병여단, 89전차대대, 해병 제1전차대대 등의 병력 증강은 물론 101대의 전차가 증강되며 역공을 가할 준비를 끝마친다.
(마산 전투와 전선의 다양한 사진들)
1950년 8월 7일 AM 06:30분.
- 킨 특수임무부대를 선봉으로 하여 괘방산 일대의 북한군을 대파. 파죽지세로 진격을 시작한다.
이 공세는 6.25전쟁중 치뤄진 유앤군과 미군으로서 첫번째 공격이었으며 그간 작은 중소규모의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닌 본격적인 전투로서 첫 승을 이뤄낸 순간이다. 여기서부터는 미 8군은 마산 진주사이의 각지에서 인민군과 부딪히면서 각기 다른 전황에서 싸우게 된다.
- 제 5연대전투단은 진동리 도로를 따라 고성 방향으로 진출. 하지만 야반산에서 2대대가 고립되는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 해병2대대의 경우는 고지를 점령하지만 극심한 폭염으로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며 더 이상 진격의 어려움에 부딪힌다.
- 해병 3대대와 24연대는 진동리 일대의 감제고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지속중. 8월9일 기어코 고지를 탈취하는 기염을 토한다.
- 35연대는 고립된 5연대전투단과 합류를 대기하다가 8월10일 야간 기습을 받게 된다. 허나 이 역시 11일 새벽까지 이어진 전투중 공군의 도움을 받아 자력으로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 고립된 5연대전투단이 35연대와 8월 12일 합류. 마침내 진주고개로 진격하며 당초 목적의 성과를 보이게 된다.
.
허나 공세는 여기까지였다.
대구의 전황은 심각해질 정도였고 공세에 나섰던 8군의 소모도 만만치 않았기에 예비대가 필요해졌다.
결국 워커 장군도 진주 진출까지 목전에 두고도 심각해진 대구 전선으로 휘하 병단 배속을 해제해 지원을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8월의 끔직한 폭염은 소모될대로 소모된 국군을 재촉하기에는 큰 악재였다.
1950년 8월 12일.
결국 공세로 나섰던 워커 장군 휘하의 부대들은 속속히 후퇴를 개시한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하는 인민군에 의해 또 다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며 특히 거셌던 봉암리에서는 도합 500여명의 사상자와 대포 12문등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1950년 8월 16일.
공세를 위해 모였던 지원군들이 타지역로 재배속 재배치 되었고 당초 역습을 위해 만들어졌던 킨 특수임무부대도 해체된다. 당초 목적인 진주 점령을 이뤄내지는 못 했지만 무시무시했던 킨 특수임무부대의 역습은 인민군 4,000여명과 13대의 전차, 감제고지 상실 등 인민군에게는 뼈 아픈 피해를 입히며 낙동강 전선 돌파를 어렵게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겠다.
1950년 8월과 9월까지 45일간 인민군은 다양한 공세를 시도했고 병력 증원을 시켜가며 마산 전선에 부딪혔지만 워커 장군 휘하의 병력들은 몇 번이나 공세를 격퇴시켰고 이는 김성은 장군의 국군 병력이 통영 상륙작전의 발판이되며 번번히 인민군의 전력을 깎아먹는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9월 대공세에서도 킨 특수임무부대는 해체됐지만 킨 소장의 지휘하의 경험 만땅의 제 8군은 후방으로 침투하는등 방어속에서 틈을 보이면 즉시 공세로 나서는 기이한 방어전의 형태로 서부 관문 사수는 꿈적도 않고 버티어낸다.
이 마산 전투에서의 값진 승리는 차후 부산항을 안전하게 확보하며 방어선을 두텁게 하는데 일등공신이었고 여기서부터 남한의 반격의 불씨가 점점 더 크게 번져가며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이처럼 1950년 8월의 여름은 낙동강 방어선 일대에서 죽음을 불사지르고 싸운 국군의 전공이 두드러지는 날이기도 해서 글을 준비해봤다.
요기거리가 됐으면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1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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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말착한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ㅡㅡㅡㅡ
압도적 감사......
콩순이스티커색칠북
전라도 진주를 경상도 진주로 변경 요청ㅋㅋ
너무 재미있고 감사하고 그렇다ㅜ
ㅡㅡㅡㅡ
엥 쓰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착각하고 쓰고있었네 전주 생각하고있었나봄
따도도
3줄요약해줭
우지챠
1.인천상륙작전 이전 낙동강 방어선 뚫리면 바로 한반도 공산화 , 보트피플 될 예정이었음
2.미군과 국군 장군의 하드케리로 낙동강 방어선 취약점 방어에 성공 일부는 역공까지 들어감
3.역공은 막혀서 일단락 됐지만 이 시간벌이로 인해 인천상륙작전 성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영토가 되는데에 큰 공헌을 함
과몰입정신병자
우와 재밌나 생각없이 들어왔는데 제대로 된 글 읽고감
약후탈곡기
잘봤습니다
동탄면도순검사엄준식
언제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태혀니
감사합니다.
모덴군
북한이 저부분에서 꼴받아서 대규모의 PT-76을 보유하고 있는거임. T-34가 물에 둥둥 떠다닐 수 있었으면 바로 적화 되는거니까.
햄스터만보면개추
그저.... 그저..... 그저.....!
자륙지
Ai 요약
1950년 8월의 마산 전투, 낙동강 방어선의 운명을 결정한 7일간
• 1950년 8월, 한국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마산 전투입니다.
• 마산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산을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북한군은 마산을 함락시키기 위해 정예 6사단을 투입했고, 유엔군은 미 8군과 국군을 동원해 맞섰습니다.
• 마산 전투는 7일간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북한군은 마산을 함락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지만, 유엔군은 이를 모두 격퇴했습니다.
• 마산 전투에서 유엔군의 승리는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마산이 함락되었더라면,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부산까지 진격했을 것입니다.
• 마산 전투는 한국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유엔군의 승리는 한국 전쟁의 전세를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 마산 전투는 또한 한국 전쟁에서 미군과 국군의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군과 국군은 서로 협력하여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 마산 전투는 한국 전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고추건조기
개좆같은 빨갱이 새끼들
낙지호롱구이맛
전사는 언제나 감사감사
즐아재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