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한 바퀴벌레.
다른 벌레는 이만치 징그럽지도 않은데,
유독 바퀴만 보면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지면서 간담이 서늘해져.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큰 실수를 한 것 같으니, 무서울 수 밖에.
달빛만 의존해야 하는 골목길에서 핸드폰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며
바퀴벌레를 피하는 내 모습에 한심함과 무기력함이 절로 느껴지니, 통곡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3여분을 걸으니 껌딱지가 곳곳에 있지만 비교적 깨끗한 아스팔트에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까지.
집 앞 골목과 달리 여기는 빛이 환했다.
아, 태초에 어둠이 있었고 잇따라 빛이 생겼노라.
"저기요?"
낯선 목소리에 바닥만 보던 내 고개는 절로 뒤로 돌았다.
인기척도 없이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깡마른 소녀가 나를 바라봤다.
새벽 한시에, 낯선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네? 왜그러시죠?"
몸을 돌리며 잔뜩 경계하는 내 태도에 그녀는 당황한 듯 입꼬리가 흔들렸다.
"저... 김, 태호씨 맞으신가요?"
튀어나올리 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내이름 석자는, 그 순간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누구시죠?"
"김, 태호씨 맞으시죠?"
언제든 턱을 가격할 수 있도록 왼손은 긴장을 쥐고 있었고, 콩콩이 스텝을 밟을 수 있도록
오른다리는 살짝 물러나 있었다.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대답 여부에 따라, 바로 턱을 친다.
아니 그냥 날린다.
"저는, 바퀴벌레의 왕녀이자 김태호님의 신부이신 바야르님의 시녀 오메르입니다."
"김태호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개소리.
정신병자가 칼을 꺼내기 전에 주먹을 날린다.
5년만에 날린 내 왼주먹은 느리지만 묵직했다.
하지만 진짜는 라이트 스트레이트.
왼손은 잽이다 새끼야.
"저희를 볼 때마다 폭력적인 반응을 선보여서 모습까지 바꾸었는데...
인간은 호전적인 종족이군요."
"아...아아...!!"
미친년은 왼손 잽을 낚아챈 뒤 바로 꺾어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날리기도 전에 나를 무력화 시켰다.
강한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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