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머리를 잘라라

 사과 자를 과도가 없는 이 황량한 탑에서는 다소 특이한 방법으로 과일을 먹는다.

광이 비치는 사과 위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가운데를 노리고, 힘껏 치면.

타-악.

보기 좋게 가운데가 열린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한 번에 쪼개지는 반면, 영 안 좋은 날은 손아귀로 마저 쪼개야 한다.

첫 맛은 살짝 신 맛이 나면서도 달콤함과 사과의 풋풋한 냄새가 입 안을 멤돌았고.

그래. 이게 사과지.

 

"날씨 됴~오타."

 

 유일한 창이자 출구인 나무 문을 열면 오래된 꺽쇠의 소리와 함께 숲이 다가왔다.

새벽에 비가 왔는지 습한 냄새와 풀내음까지 바람에 실린 게 느껴지고,

같이 온 시원함도 어서오고.

어제와 오늘은 어머니가 같은 듯, 달라진 구석 하나 없다.

소나무에 사과나무, 너도밤나무 등 갖가지 색을 띠며 열매를 힘껏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 열매를 주워먹는 다람쥐나 사슴따위를 매섭게 노려보는 늑대들이 보일 뿐이었다.

숲 지평선은 길고 긴 산맥이 두루고 있는데, 왼쪽 한 켠에 작은 호수가 작게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어딜가든 호수 대우는 퍽 좋다. 숲에서 깨끗한 물을 먹기는 힘들고, 짐승들도 항상 모이기 때문에

사냥을 하기 좋은 장소이니까.

문제는 그 옆에 뚫린 길로 매일 마차를 모는 인간이 보인다는 것이다.

 

"강한 속박은 강한 육체로 답하는 법."

 

 마차는 점점 탑을 향해 전진하고, 웬수와 결판을 내기 전 마지막으로 방을 훑었다.

사다리도 없고, 추락밖에 없는 이 탑에서 화재는 죽음과 인사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불과 관련된 화기구는 모조리 사라졌다.

오로지 과일이나 야채, 마녀가 나에게 주는 구운 고기밖에 허락되지 않는 식생활.

창의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옷이 많으면 그걸 엮어서 탈출한다고

하루 단위로 갈아입을 옷을 주고 다시 회수해간다.

용변? 그거 참 민망하면서도 웃긴데, 항아리에 용변을 고이 모아놓으면

마녀가 그걸 또 회수해간다.

한 번 엿먹어보라고 도중에 엎기도 해봤는데, 그 뒤로 용변을 만질 때면 나를 노려보거나

묶어둬서 그 뒤로 해본 적은 없다.

 

끼리리리릭-

 

 마차의 바퀴에서 뼈가 갈리는 듯한 녹슨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길고 긴 샛노란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마주 본 머리카랏은 노을에 비친 강줄기처럼 찰랑거리며 그 자태를 선보였고,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왼손 팔 하나로 부여잡았다.

머리숱이 어찌나 많은지, 한 손만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머리카락을 든 왼손을 앞으로 뻗어서 머리 뿌리와 잡힌 머리카락이 팽팽해질 때까지 쭉 당겼다.

두피가 빠질만큼.

엄지를 접은 오른손을 날카롭게 펼치고, 팽팽해진 머리카락을 겨누며 사과를 자른다고 생각했다.

당겨진 두피가 원래대로 돌아온 거 빼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팽팽했던 왼손의 머리카락은 익은 벼처럼 축 늘어졌고, 바닥을 쓸었던 내 뒷머리는

허리를 간지렀다.

 

"라-푼젤! 엄마가 왔단다! 머리를 내려다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내 어미를, 어찌 저 마녀가 입에 담는 것인가.

조심스레 마녀를 향해 내려다보자 그녀는 고운 얼굴을 빛내며 웃고 있었다.

절대 바라지 않을 거 같은 쨍쨍한 파랑 망또와 파란색 깃이 꽂힌 검은색 모자만으로

그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그녀의 똑부러진 외모와 매혹적인 눈 밑 점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

 

"여깄어요, 엄마!"

 

 보고 싶었어요. 어서 죽이고 싶었거든요.

힘잃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려 흩어지자 마녀의 눈은 커졌다.

내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에 한이 서려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 - 말이든 이상한 무언가든 혹은 주술이든 - 튀어나오기 전에

있는 힘껏 마차를 향해 도약했다.

방금 전까지 겨울을 품은 듯한 그녀의 얼굴은 가을 수확에 실패한 농부의 표정이 되었다.

 

"여기, 제가 왔어요. 엄마."

 

 마차의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 파편들이 튀었다.

마차를 끌던 유령 말들은 마차가 부서짐과 동시에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무릎이 굽히면서 대지에 전달된 진동이 다시 내 발등부터 무릎, 허리, 머리까지 올라왔고,

마녀도 함께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다리를 후들거렸지만 이내 평온해졌다.

10년 만이었다.

땅을 밟은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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