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카이저라이히 다큐멘터리 E02. 유럽의 붉은 새벽

https://www.youtube.com/watch?v=WcYygdD71YU

 

Paris, 1919.  

1919년 파리.  


The doors to the historic Hotel Ritz, located in the heart of the city of lights, are wide open. 

빛의 도시 파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호텔 리츠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People run in and out freely, soldiers mixing with girls on the street, red banners and bed sheets hung outside printed with inverted red chevrons, hammers, and torches.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군인들이 길거리에서 소녀들과 어울리고, 붉은 깃발과 침대 시트에는 거꾸로 된 붉은 계급장, 망치, 횃불이 인쇄되어 있었다. 


A year ago, many were still fighting the German invaders in the fields of northern France, sent to die in desperate counter-offensives, untold numbers of men lost to the folly of war. 

1년 전만 해도 프랑스 북부의 들판에서는 여전히 많은 병사들이 독일 침략군과 싸우고 있었고, 필사적인 반격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전쟁의 어리석음으로 목숨을 잃었다. 


Some, finally, had had enough and began resisting the orders sent out by an out of touch high command. 

마침내 진절머리가 난 일부 병사들은 저 높이 있는 상부의 명령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Repression was harsh, and ultimately, futile. 

탄압은 가혹했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When unrest among French workers grew, the bourgeois government sued for peace. 

프랑스 노동자들의 불안이 커지자 부르주아 정부는 평화를 요청했다. 


The war was lost, and a humiliating peace was soaked in the blood of a sacrificed generation. 

전쟁은 패배했고, 굴욕적인 평화가 희생된 세대의 피에 스며들었다. 


The hated 1919 Versailles Treaty would be the herald of an age of revolution. 

혐오스러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은 혁명의 시대를 알리는 전령이 되었다.


The repressed labor and soldier classes of France had finally had enough. 

억압받던 프랑스의 노동계급과 군인 계급은 마침내 참을성이 다했다. 


Strained by reparations and wartime debt, they rose up in a popular revolt to replace the rotten French Third Republic. 

배상금과 전시 부채에 시달리던 이들은 썩어빠진 프랑스 제3공화국을 교체하기 위해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Today, Paris is in the hands of those revolutionaries, signaling the start of an unstoppable tide of liberation. 

오늘날 파리는 혁명가들의 손에 넘어갔고, 이는 멈출 수 없는 해방의 물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Here in the capital of France, where once the idea of monarchy was toppled, this spark of revolutionary fervor will light a signalfire to echo across borders, cultures and horizons. 

한때 군주제 사상이 무너진 프랑스의 수도에서 이 혁명열기의 불꽃은 국경과 문화, 지평을 넘어 울려 퍼질 신호탄이 될 것이다. 


Here, the torch and gear are lit for generations to come. 

이곳에서 횃불과 톱니바퀴는 다음 세대를 위해 불을 밝힌다. 


The end of the war will not bring peace, but the seeds to another war. 

전쟁의 종식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될 것이다. 


France will rise to challenge Germany again one day. 

프랑스는 언젠가 다시 독일에 도전하기 위해 일어설 것이다. 


There can be no doubt about it. 

의심의 여지없이. 


There will be… a second Weltkrieg. 
두번째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다.

 

-

 

 

It is often said that the French Syndicalist Revolution started in the streets of Paris. 
흔히들 프랑스 노조주의 혁명은 파리의 거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In truth, it began in the trenches. 
사실, 혁명은 참호에서 시작되었다.

 

After nearly three years of unrelenting war, and amid the worst conditions imaginable, the first cracks in France’s wartime unity began to appear in 1917. 
1917년, 거의 3년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프랑스의 전시 통합에 첫 번째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In May that year, a series of small mutinies, miraculously undetected by the Germans, broke out along French lines. 
그해 5월, 기적적으로 독일군에게 감지되지 않은 소규모 반란이 프랑스 전선을 따라 잇따라 발생했다.

 

Tired of suicidal offensives, their morale cratered by repeated failures and mounting losses the soldiers refuse offensive orders. 
자살 공세에 지친 병사들은 반복되는 실패와 막대한 손실로 사기가 바닥을 치자 공격 명령을 거부했다.

 

Despite government attempts to suppress the news, trains full of coffins and stories return to the home front.
소식을 억누르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과 사연을 가득 실은 열차는 후방으로 돌아갔다.

 

France is losing the war. 
프랑스가 전쟁에서 지고 있었다.

 

The once unquestionable morale of the French army now lies in doubt, and the idea of looming defeat sends shockwaves through the nation. 
의심할 여지가 없던 프랑스 군대의 사기는 이제 의심 속에 놓였고, 패배가 임박했다는 생각은 전국에 충격파를 던졌다.

 

Four months later, the Union Sacrée, a political truce which has long united France’s right and left wings, finally collapses. 
4개월 후, 오랫동안 프랑스의 좌우익을 하나로 묶어주던 정치적 휴전 협정인 신성동맹(Union Sacrée)이 마침내 붕괴했다.

 

From the front-lines to the home-front, France is divided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start of the war. 
전쟁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최전선에서 후방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분열되었다.

 

Parliamentary control of the army is put into question, and the reigning government, led by the unpopular Paul Painlevé, is forced to resign. 
의회의 군대 통제에 의문이 제기되고, 인기 없는 폴 페인레베가 이끄는 정부는 강제로 사임한다.

 

He is replaced by the fiery Georges Clémenceau, promising a way out of the war.  
그의 자리는 전쟁에서 벗어날 길을 약속하는 조르주 클레망소로 대체되었다.

 

The government can only do so much however, as France sinks ever deeper into wartime debts, and another crushing blow for the morale of the Entente allies is right around the corner. 
그러나 프랑스가 전시 부채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협상국 동맹들의 사기에 또 다른 타격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The year 1918 brings only bad news. 
1918년에는 나쁜 소식만 들려왔다.

 

Russia, a loyal ally of the Entente under the Czar’s government, already shaken by a democratic revolution in 1917, sees the Republican Government of Alexander Kerensky toppled after a popular revolution by the Bolsheviks. 
1917년에 이미 민주주의 혁명으로 흔들렸던 차르 정부 하에서, 협상국의 충실한 동맹이었던 러시아는 볼셰비키의 대중 혁명으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공화국 정부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다.

 

These radical leftist groups gather to form a new People’s Republic, colloquially referred to as Soviet Russia. 
이 급진 좌파 조직은 구어체로 소비에트 러시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민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모였다.

 

While pockets of White resistance continue through the motherland, the Soviets move to sign a separate peace with the Central Powers. 
모국 곳곳에서 백군의 저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소비에트는 동맹국과 별도의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움직였다.

 

Strained and pushed to the brink of national collapse, Lenin's new soviet government is forced to cede enormous amounts of Eastern Europe to the Kaiser and his allies. 
국가 붕괴 위기에 몰린 레닌의 새 소비에트 정부는 막대한 동유럽 영토를 카이저와 그의 동맹들에게 양도해야만 했다.

 

The news is met in Berlin with celebrations, and a crushing blow is dealt to the Entente. 
이 소식은 베를린에서 축하와 함께 전해졌고, 협상국은 큰 타격을 입었다.

 

Soldiers at the Western Front shudder, because they know soon the Central Powers will be able to remobilize their enormous Eastern front armies West, skewing the balance of power finally in favor of Germany and Austria. 
서부 전선의 병사들은 곧 동맹국이 막대한 동부 전선 군대를 서부로 재배치하여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유리하게 힘의 균형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몸서리쳤다.

 

Some, however, are inspired by this revolutionary fervor: perhaps an end to the war and a better world are right around the corner after all…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혁명적 열정에 영감을 받아 전쟁의 종식과 더 나은 세상이 곧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ntente powers move to condemn the government of Soviet Russia as her revolutionary nature threatens the very foundation of the European apparatus of state. 
소비에트 러시아의 혁명적 성격이 유럽 국가 체제의 근간을 위협하자, 협상국은 소비에트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움직였다.

 

Germany knows it has inspired something dark and dangerous, but for now, the Kaiser is content claiming this victory and bringing all his armies to bear against the arrogant Western Entente. 
독일은 어둡고 위험한 무언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재로서 카이저는 이 승리에 만족하며 모든 군대를 이끌고 오만한 서부 협상국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In France, crushing news of Russia’s surrender is followed by the failure of General Foch’s “Great Western Offensive,'' which grinds to a halt by the end of June.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의 항복 소식에 이어 포흐 장군의 '서부 대공세'가 실패하고 6월 말까지 중단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France throws the full weight of the French army against German lines, setting the front ablaze from the Argonne Forest to the sea. 
프랑스는 아르곤 숲에서 바다까지 전선을 불태우며 프랑스군의 전력을 총동원해 독일 전선에 맞섰다.

 

A few weeks later, however, the French army has nothing to show beyond an ever-lengthening list of casualties. 
그러나 몇 주 후, 프랑스 군대는 계속 늘어나는 사상자 수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Minor territorial gains are made around Lille, but these come at the staggering cost of over 200,000 lives. 
릴 주변에서 약간의 영토를 확보했지만,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Despite progress by British troops in the Middle East, news reaches France and Britain that Romania and Greece have collapsed, putting an end to the last remnants of Entente resistance in the East. 
중동에서 영국군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와 그리스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프랑스와 영국에 전해지면서 동유럽의 마지막 남은 협상국 저항 세력이 종말을 고했다.

 

Slowly, the formidable alliance crumbles as she is ground down by the Central Powers, bolstered by America’s refusal to enter the war or allow Paris and London to accrue further debt. 
미국이 참전을 거부하고 파리와 런던의 부채를 더이상 늘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중앙 동맹국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면서 강력한 동맹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

 

The government censors could not keep this truth from us. 
정부의 검열은 이 진실을 우리에게 숨길 수 없었다. 

 

We had lost Romania. 
우리는 루마니아를 잃었다. 

 

We had lost Dunkirk. 
우리는 덩케르크를 잃었다. 

 

We had lost Russia, and Greece. 
우리는 러시아와 그리스를 잃었다. 

 

And most of all, we had lost brothers.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형제들을 잃었다. 

 

Slaughtered, by the hundreds of thousands, dead on the fields of Europe… 
수백만 명이 유럽의 들판에서 학살당하고 죽었다... 

 

For what?
뭘 위해서?

 

What could we ever have to gain from this Armageddon?
이 아마겟돈을 통해 우리가 뭘 얻을 수 있겠는가?

 

What hope is left for France as the German hordes stand outside our gates?
독일군 무리가 성문 밖에 서 있는데 프랑스에 무슨 희망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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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econd wave of mutinies begins on the heels of Foch’s offensive, larger than the first, and amid the war’s first major labor strikes, calls for revolution are heard. 
포슈의 공세 이후 첫 번째보다 더 큰 규모의 두 번째 반란이 시작되고, 전쟁 중 최초의 대규모 노동 파업이 벌어지는 가운데 혁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In Paris and Lyon production lines grind to a halt in armaments factories, and metro lines are blocked for a week. 
파리와 리옹의 무기 공장에서 생산 라인이 멈추고 일주일 동안 지하철 노선이 차단되었다.

 

Logistical arteries vital to the war effort are disrupted.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물류 동맥이 중단되었다.

 

For a short while it seems the workers’ voices must be heard, but once again the mutinies are suppressed and the strikes broken, their principal agitators labelled Soviet spies. 
잠시 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란이 진압되고 파업이 중단되자 주요 선동자들은 소비에트 간첩으로 낙인 찍혔다.

 

Although Prime Minister Georges Clemenceau and his Radical Independent Party are convinced that the war can still be won, the protests’ continued suppression disguises a population increasingly pushed to the breaking point. 
조르주 클레망소 총리와 그의 급진독립당은 여전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시위의 계속되는 진압으로 인해 점점 더 한계점에 내몰리는 민중을 숨기고 있었다.

 

By the end of the year, life on the homefront becomes ever more difficult, as French cities are plagued with famine and lack of basic resources. 
연말이 되자 프랑스 도시들은 기근과 기본 자원 부족에 시달리며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Slowly, it becomes clear to broad swathes of French society that victory could come at a price too high to pay. 
프랑스 사회 전반에 걸쳐 승리가 감당하기 힘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The first anti-war protests, led by socialist forces, begin on December 8th. 
12월 8일,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첫 번째 반전 시위가 시작되었다.

 

The government attempts a harsh crackdown, but it doesn’t stop the protesters from widely distributing pacifist pamphlets, copies of La Vie Ouvrière, specially written for the occasion. 
정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하지만 시위대가 이 시위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평화주의 팸플릿인 <새 노동자의 삶(La Vie Ouvrière)> 사본을 널리 배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The wave of protests spreads to other French cities and soon, even the frontlines are contaminated by revolutionary pacifist slogans. 
시위의 물결은 프랑스의 다른 도시로 퍼져나갔고, 곧 최전선마저 혁명적인 평화주의 구호로 오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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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s, ouvriers, brothers!

친구 여러분, 형제 여러분!


Why do we fight?

우리가 왜 싸워야 합니까?


Why do we die?

우리가 왜 죽어야 합니까?


What happens if we win?

우리가 이기면 어떻게 됩니까?


Will it bring bread to the table?

식탁에 빵을 가져다줄까요?


Improve our lives?

우리의 삶이 개선될까요?


Shorten the workdays?

노동시간이 단축될까요?


We struggle and die in trenches, so we may struggle and die in factories in victory. 

우리는 참호에서 고군분투하다 죽고, 승리하면 공장에서 고군분투하다 죽을 것입니다. 


What has the elite promised us after the war?

전쟁이 끝난 후 엘리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했나요?


Not the nation, not France. 

국가도, 프랑스도 아닙니다. 


What have the elites said they will do for *us*?

엘리트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말했습니까?


I hear silence. 

침묵이 들립니다. 


That is because they have led us to war with vague promises and blagues. 

그들이 막연한 약속과 공언으로 우리를 전쟁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Servir la patrie est une moitié du devoir. 
To serve the homeland is half of duty, but to serve humanity is the other half!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의무의 절반이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나머지 절반입니다!


People of France - let us throw away our weapons and this meaningless slaughter, and focus on improving the lives of the common man. 

프랑스 국민 여러분, 무기와 무의미한 학살을 버리고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집중합시다. 


If the elites want their war, they can fight it themselves!

엘리트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그들더러 직접 싸우라 합시다!


For us, faisons la guerre à la guerre! 
Let’s do war against war!
우리를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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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eve of 1919, France sits on the edge of collapse. 
1919년 전야, 프랑스는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With her armies folding to mutinies and desertion, many analysts fear a single blow may end the war for good. 
반란과 탈영으로 군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많은 분석가들은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전쟁이 영원히 끝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And then, the Germans launch their spring offensive. 
그리고 독일군이 봄 공세를 시작했다.

 

In March of 1919, the German “Spring Offensive” smashes through French lines at St Mihiel, encircling Verdun, and reaches as far as Nancy. 
1919년 3월, 독일의 '봄 공세'는 생미이엘에서 프랑스 전선을 뚫어 베르됭을 포위하고 낭시까지 진격했다.

 

Despite an allied counterattack, Amiens falls by the end of the month, and a wedge is driven between the French and British armies. 
연합군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아미앵은 월말에 함락되었고, 프랑스군과 영국군 사이에 쐐기가 박혔다.

 

As communication and supply lines are cut, all pretense of joint-leaderships ceases, and the British begin a fighting retreat to the sea. 
통신과 보급선이 끊기면서 모든 공동지휘부의 명령이 중단되고 영국군은 바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French forces watch in terror as their British allies turn their heels and make a run for the coast, where they may be transferred safely to the British Isles. 
프랑스군은 영국 동맹군이 대영 제도로 안전하게 이송되도록 해안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공포에 떨며 지켜봤다.

 

France is now truly alone. 
프랑스는 이제 진정으로 혼자가 되었다.

 

The framework of wartime patriotism and propaganda, which for years bridged the nation’s long-standing divisions, begins to collapse. 
수년 동안 프랑스의 오랜 분열을 이어주던 전시 애국주의와 선전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Prominent leftist organizations like the SFIO, France’s socialist party, openly call for an end to the war, and are soon echoed by radical groups within France’s largest union, the CGT. 
프랑스 사회주의 정당인 SFIO 같은 저명한 좌파 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전쟁 종식을 요구했고, 곧이어 프랑스 최대 노조인 CGT 내 급진적 단체들도 이에 동조했다.

 

They are met in parliament by furious accusations of treachery and defeatism, but to no avail. 
이들은 의회에서 배신과 패배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난을 마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Massive strikes attempt to stop the French Army’s desparate attempts at a counter-offensive, which breaks upon the German army driving ever deeper into the French heartland. 
프랑스 군의 필사적인 반격 시도를 막기 위해 대규모 파업이 시도되었고, 독일군은 프랑스 심장부로 더욱 깊숙이 진격해 들어왔다.

 

As a political war is waged in Paris, only a small counter-offensive at the Marne, and a temporary shift of German attention to the rapidly collapsing Italian front, keeps the real fighting a mere 50 kilometers from the capital. 
파리에서 정치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마른강에서의 소규모 반격과 빠르게 무너져가는 이탈리아 전선에 대한 독일의 일시적인 관심 전환으로 인해, 실제 전투는 수도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계속되었다.

 

The sound of German artillery can be heard in the streets of Paris as Clemenceau’s government, blamed for their defeat in the war, resigns. 
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클레망소 정부가 사임하면서, 파리 거리에는 독일군의 포격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Soon this unrest spreads to major cities all over France. 
곧 이러한 불안은 프랑스 전역의 주요 도시로 확산되었다.

 

The French military, despite rapidly collapsing support on the home-front, are convinced that their enemy must be equally desperate; that the German lines, so close to the capital, must represent an opponent overextended and driven to the breaking point. 
프랑스군은 자국 전선의 지원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도 마찬가지로 절박할 것이며, 수도에 매우 근접한 독일군의 전선이 지나치게 확장되어 한계점까지 몰린 상대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Clemenceau’s successor, Gaston Doumerge, makes a frantic national radio appearance calling for "One last push," One last great sacrifice. 
클레망소의 후계자 가스통 뒤메르는 전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마지막 한 번만 더 밀어붙이자", "마지막 한 번의 위대한 희생을 치르자"고 호소했다.

 

The generals’ “Last Offensive” begins on the 22nd of June, aiming to drive the Germans from the Parisian region in order to secure a respectable peace. 
6월 22일, 장군들의 '최후의 공세'가 시작되고 파리 지역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고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French forces muster around Paris, on the verge of despair, in an attempt to break the overextended German lines. 
프랑스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파리 주변에 집결하여 과확장된 독일군의 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Historical irony would later reveal that Doumerge’s gamble was not wrong. 
역사적 아이러니는 훗날 뒤메르제의 도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줬다.

 

The Germans were indeed overextended and exhausted, perhaps as much as the French were, and a successful counter-offensive may have secured a white peace at this point. 
독일군도 과확장되고 프랑스군만큼이나 지쳐 있었으며, 이 시점에서 반격에 성공했다면 백색 평화가 확보되었을지도 모른다.

 

However, labour unrest, rushed morale, and the beginnings of a new wave of mutinies grinds the offensive to a halt after early successes. 
그러나 노동 불안과 사기 저하, 새로운 반란의 시작은 초반의 성공 이후 공세를 중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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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no longer mattered why the war had started, only that it would not stop.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전쟁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중요했다.

 

Our thoughts turned to the great machine of war, to the ones who had built it; to those who had let it grind a whole generation to dust. 
우리의 생각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기계와 그 기계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기계가 한 세대를 갈가리 찢어놓도록 내버려둔 사람들에게 향했다.

 

What its creators had not foreseen was the machine’s true product: by 1919 the war had turned us into revolutionaries. 
그 기계의 제작자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기계의 진정한 산물 - 1919년까지의 전쟁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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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my attempts to crack down on the mutineers once more, but it is too late: some units are only under nominal control and refuse to budge. 
육군은 다시 한번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일부 부대는 명목상의 통제만 받고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A nationwide general strike heralds the end of France’s Third Republic. 
전국적인 총파업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종말을 예고했다.

 

The only option now is surrender, or collapse.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항복 아니면 붕괴뿐이었다.

 

On August 10th, after weeks of battle, strikes and mutinies, the French government, alarmed by the situation on the home front, admits the situation can’t be controlled anymore and accepts an armistice. 
몇 주간의 전투와 파업, 반란이 이어지던 8월 10일, 프랑스 정부는 국내 상황에 놀란 나머지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휴전을 받아들였다.

 

Belgium, now fully occupied, ceases to have a functional government and has no choice but to go along with the rest of Entente. 
이제 완전히 점령당한 벨기에는 정부 기능을 상실하고 나머지 협상국과 함께 따를 수밖에 없었다.

 

On the 12th of August, 1919, the guns of the Great War finally fall silent. 
1919년 8월 12일, 마침내 대전쟁의 총성이 멎었다.

 

Negotiations for a bitter peace drag on. 
쓰라린 평화를 위한 협상은 계속되었다.

 

With winter approaching, the Treaty of Versailles is officially signed on November 6th.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6일, 베르사유 조약이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Representatives of the French, British, Portuguese, Belgian, Luxembourgish and German nations sign a peace heavily favoring Germany.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대표들이 독일에 유리한 평화 조약에 서명했다.

 

French radical pro-war proponents, now humbled twice by Germany, see their worst nightmares come to bear. 
프랑스의 급진적 친전 지지자들은 독일에 두 번이나 굴복하여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다가온 것을 목격했다.

 

France is pressured to sign the humiliating treaty by Britain, who feared the Republic would end up collapsing on itself, and in turn, weaken the United Kingdom. 
프랑스는 공화국이 스스로 붕괴하여 결국 영국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한 영국에 의해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German diplomats make clever use of France’s wartime debt position and offer to buy French colonies rather than demanding them outright. 
독일 외교관들은 프랑스의 전시 채무 지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프랑스 식민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The French government agrees to sell off her African and Asian colonies for the entirety of her reparations, effectively cancelling any further costs to the peace. 
프랑스 정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를 매각하여 배상금 전액을 지불하여 평화를 위한 추가 비용을 사실상 취소하는 데 동의했다.

 

France, desperate as unrest grows even in the colonies, agrees to sell. 
식민지 내에서도 불안이 커지자 절망한 프랑스는 매각에 동의했다.

 

Parts of metropolitan France are also lost to Germany. 
프랑스 대도시의 일부도 독일에 빼앗겼다.

 

The Briey Basin, Longwy and the western slope of the Vosges are occupied by the Kaiser. 
브리 분지, 롱위, 보주 산맥의 서쪽 경사면은 카이저가 점령했다.

 

These territorial losses are comparatively small, but many are furious. 
이러한 영토 손실은 비교적 적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The citadel of Belfort, symbol of French resistance in the War of 1870 is now under control of the German Empire. 
1870년 전쟁에서 프랑스 저항의 상징이었던 벨포르 성채는 이제 독일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This disgrace would leave deep scars in the French national pride, and slowly fester into an all-consuming desire to crush Germany for once and for all. 
이 치욕은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독일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서서히 곪아 터져 나왔다.

 

France’s humiliation is made even deeper as her colonial empire and overseas possession are carved up. 
프랑스의 굴욕은 식민지 제국과 해외 영토를 빼앗기면서 더욱 깊어졌다.

 

All of Central-Africa and Indochina is handed over to Germany, as well as France’s Chinese holdings and the Moroccan Protectorate. 
중앙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는 물론 프랑스의 중국 영토와 모로코 보호령까지 모두 독일에 넘겨졌다.

 

Germany also demands a demilitarization of the Nancy region, and the destruction of French forts on the Belgian and German borders. 
독일은 또한 낭시 지역의 비무장화와 벨기에와 독일 국경에 있는 프랑스 요새의 파괴를 요구했다.

 

French soldiers are forced to destroy the fortifications of Verdun where they held the Germans in a bloody stalemate for years. 
프랑스 군인들은 수년간 독일군과 피비린내 나는 교착 상태에 빠진 베르됭 요새를 파괴해야 했다.

 

In the end, all the death and destruction were for naught. 
결국 모든 죽음과 파괴는 물거품이 되었다.

 

In this moment of national crisis, a hatred is lit in the hearts of the French people. 
국가적 위기의 순간,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증오가 불타올랐다.

 

Against the German occupiers, certainly, but also against her faltering government, incapable at winning the war, and too proud to end it, selling France to the highest bidder as soon as their positions were threatened by the anger of the masses. 
물론 독일 점령군에 대한 증오였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능력도 없고, 너무 교만해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대중의 분노에 의해 자신들의 입지가 위협받자마자 프랑스를 최고 입찰자에게 팔아넘긴 흔들리는 정부에 대한 증오이기도 했다.

 

-

 

Standing on those hills, made with the corpses of our brothers, we swore expensive oaths. 
우리 형제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그 언덕에 서서 우리는 값비싼 맹세를 했다.

 

We would tear down the incompetence of the Republican government and create a better France to face this dark future. 
공화국 정부의 무능을 무너뜨리고 이 어두운 미래에 맞서 더 나은 프랑스를 만들겠다고.

 

The crimes and humiliation brought upon us by the Boches would never be forgiven, their endless murder would never be forgotten. 

보슈(독일의 멸칭)가 우리에게 저지른 범죄와 굴욕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끝없는 살인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There would come a day of reckoning, where France retook what was rightfully hers, and put Germany to the torch for her arrogance and imperial ambition. 
프랑스가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독일의 오만과 제국주의적 야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That day would come, but first we had to turn our attention to Paris. 
그날은 오겠지만, 우선 우리는 파리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To remove the old government, and to allow for new ideas to rise. 
낡은 정부를 몰아내고 새로운 이상이 떠오를 수 있도록.

 

More than a century ago, France was defeated by the Germans, and from her ashes rose a new Republic that brought the Germans to her knees. 
100여 년 전 프랑스는 독일에 패배했고, 그 잿더미에서 독일을 무릎 꿇게 한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했다.

 

We believed that once again our people must rise up, just as our forefathers did in 1789 and in 1871:
우리는 1789년과 1871년에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우리 국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We believed in a new Révolution. 
우리는 새로운 혁명을 믿었다.

 

In this new age, we would force France to live up to her motto of Equality, Liberty, and Brotherhood. 
이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프랑스가 평등, 자유, 형제애라는 모토에 부응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Or perhaps, go further… 
아니면 더 나아가서…

 

-

 

Resentment against the French government slowly boils to a fever point over the second half 1919. 
프랑스 정부에 대한 분노는 1919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최고조에 달했다.

 

The hated Treaty of Versailles brought an enormous economic downturn to France. 
증오스런 베르사유 조약은 프랑스에 엄청난 경제 침체를 가져왔다.

 

Most of her colonial empire has now fallen into German hands, and the coal-rich Northern region was either devastated or occupied by Germany. 
식민제국의 대부분은 독일의 손에 넘어갔고, 석탄이 풍부한 북부 지역은 황폐화되거나 독일에 점령당했다.

 

Even after the war, hunger continues to ravage the beaten nation.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굶주림은 패전국을 계속 황폐화시켰다.

 

In this growing chaos, several political leaders appear on the forefront to voice France’s resentment against her government.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몇몇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프랑스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In massive rallies and speeches, they bash against the Treaty of Versailles, and the archaic structures of governance and position that many say caused France’s defeat. 
이들은 대규모 집회와 연설을 통해, 베르사유 조약과 프랑스의 패배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진 구시대적인 통치 구조와 지위를 비판했다.

 

In this revolutionary atmosphere, several important factions rise up. 
이러한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파벌이 등장했다.

 

The most significant development here is the reformation of France’s largest worker’s union, the CGT or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가장 중요한 발전은 프랑스에서 제일 큰 노동조합인 CGT(노동총동맹)의 개혁이다.

 

In 1919, this union is taken over by its syndicalist wing, called the CSR or Comités Syndicalistes Révolutionnaires. 
1919년, 이 노조는 노조파 계열인 CSR(노조파 혁명위원회)에 인수된다.

 

These radical syndicate socialists tap Pierre Monatte as general secretary. 
이 급진 노조적 사회주의자들은 피에르 모나트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Unlike the reformists that dominated the unions during the war, Monatte is an uncompromising revolutionary and calls for the establishment of a worker's state. 
전쟁 중 노조를 장악했던 개혁파와 달리, 모나트는 타협하지 않는 혁명가로서 노동자 국가 수립을 요구했다.

 

He is met in the political arena by an old ally. 
그는 정치 무대에서 오랜 동맹을 만나게 된다.

 

Secretly, Monatte begins talks with the Socialist Party of France, the so-called SFIO, or 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모나트는 비밀리에 프랑스 사회당, 이른바 SFIO(노동자 국제동맹 프랑스 지부)와 회담을 시작했다.

 

This party, founded by the legendary Jean Jaurès had taken a staunch pacifist stance in 1918, doing much to push for an end to the Great War. 
전설적인 장 조레가 창당한 이 당은 1918년 확고한 평화주의 입장을 취하며 대전쟁 종식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Perhaps less radical than the leadership of the CGT, the SFIO can still count on millions of voters across France and forms an important voice for socialism among the people. 

CGT의 지도부보다는 덜 급진적이지만, SFIO는 프랑스 전역에 걸쳐 수백만 명의 유권자를 확보하여 국민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The CGT and the SFIO quickly see that their interests align, and work together during these troubled years to form an united Leftist front. 
CGT와 SFIO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이 어려운 시기에 협력하여 연합 좌익 전선을 형성했다.

 

At the other side of Europe, observers from these French revolutionaries see the failure of the Leninist Russian Revolution, where the Bolshevik front is now rapidly crumbling due to infighting. 
유럽 반대편에서 이 프랑스 혁명가들의 관찰자들은 레닌주의 러시아 혁명이 실패하고 볼셰비키 전선이 내분으로 인해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Distancing themselves from this failed communist theory, the new French United Left decides to fight for another type of socialism. 
새로운 프랑스 좌파 연합은 실패한 공산주의 이론과 거리를 두고 다른 유형의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This political union of worker’s syndicates and socialist parties in France is soon given a new name. 
프랑스의 노동자 조합과 사회주의 정당들의 정치적 연합은 곧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Syndicalism. 
생디칼리슴(노조주의).

 

For this Syndicalist front, the revolution would not be led by a vanguard, but by the masses, organised locally in councils and unions and supported by a broad front of proletarian organisations. 
이 노조주의 전선에서 혁명은 선봉대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 주도되며, 평의회와 조합을 통해 지역적으로 조직되고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The syndicalist state will not be left at the whims of a sole party, but will be organised democratically with the representatives recallable, and the economy in the hands of unions, reminiscent of the Commune of Paris of 1871. 
노조주의 국가는 단독 정당의 변덕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1871년 파리 코뮌을 연상시키듯이 대표를 소환할 수 있고 경제는 노동조합의 손에 맡기는 민주적 조직으로 구성될 것이다.

 

At this point, it is obvious that the camarades of the CGT and the SFIO don’t fully see eye to eye about the exact organisation of this state. 
이 시점에서 CGT와 SFIO의 동지들이 이 국가의 정확한 조직에 대해 의견을 완전히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But for now, their burning desire to overthrow the bourgeois order is more than enough to keep France’s revolutionary forces united.
그러나 현재로서는 부르주아 질서를 전복하려는 그들의 불타는 열망이 프랑스의 혁명 세력을 단결시키기에 충분했다.

 

Across the border, these events are watched closely by Germany. 
국경 너머 독일은 이 사건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The Kaiser, ever looking for ways to weaken his opponents and strengthen Germany’s grip over Europe, begins funding the French syndicalists in secret.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고 유럽에 대한 독일의 지배력을 강화할 방법을 모색하던 카이저는 비밀리에 프랑스 노조주의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It is a move, he would later come to regret.
나중에 후회하게 될 행동이었다.

 

Bolstered by mysterious foreign benefactors, The CGT and SFIO form a united front and attempt a first takeover of the government by forcing the Republican parliament to her knees with a protracted General Strike. 
정체불명의 외국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은 CGT와 SFIO는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장기간의 총파업을 통해 공화국 의회를 무릎 꿇게 하여 정부 장악을 시도했다.

 

Their unifying rally call becomes ‘Tout ça, pour rien?’ or ‘All this, for nothing?’. 
이들의 통합 집회 구호는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인가(Tout ça, pour rien)?'가 되었다.

 

The strikes would fail, but the outrage generated by the Treaty of Versailles rallies the protesters, joined by many who had once been far from revolutionary hopes. 
파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분노가 시위대를 결집시켰고, 한때 혁명적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던 많은 사람들이 시위대에 합류했다.

 

As soon as the German Army leaves Northern France, Lille and most of the coal belt rise up in open revolt and refuse the French Republican Army entry into the region.
독일군이 프랑스 북부를 떠나자마자 릴과 대부분의 석탄 지대는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프랑스 공화군의 지역 진입을 거부했다.

 

The protests rally around the humiliating Treaty, spreading across the nation at breakneck speed, and the situation becomes rapidly untenable for Republican forces. 
굴욕적인 조약에 항의하는 시위는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공화군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By November the 12th, mutineering soldiers and Syndicalist strikers throw up barricades in Northeastern Paris. 
11월 12일, 반란군과 노조주의 파업대가 파리 북동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Armed police and military units are sent in, escalating the situation into insurrection, and finally, revolution. 
무장한 경찰과 군대가 투입되면서 사태는 반란으로 확대되고 마침내 혁명으로까지 번졌다.

 

On November the 20th, protesters and soldiers storm the parliament. 
11월 20일, 시위대와 군인들이 의회를 습격했다.

 

The rebels proclaim the creation of the revolutionary commune of Paris. 
반란군은 파리 혁명 코뮌의 수립을 선포했다.

 

They raise a scarlet banner over the capital, and the government flees to Versailles. 
그들은 수도에 주홍 깃발을 내걸었고 정부는 베르사유로 피신했다.

 

The news reaches the rest of the nation the day after.
이 소식은 다음 날 전국에 전해졌다.

 

Hearing the call of the Paris commune, workers and protesters from Lille organise to seize the city. 
파리 코뮌의 부름을 들은 릴의 노동자와 시위대는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After a short but fierce fight, the strikers succeed in entering the site of the town hall and the Préfecture, and proclaim the creation of the Revolutionary Commune of Lille. 
짧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파업 참가자들은 시청과 현의 부지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고 릴 혁명 코뮌의 창설을 선포했다.

 

Inspired by the revolutions in Lille and Paris, other nearby Communes follow swiftly. 
릴과 파리의 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인근의 다른 코뮌들도 빠르게 뒤를 따랐다.

 

By the start of 1920, French communal forces start skirmishes with the French Republican army all over France. 
1920년 초, 프랑스 코뮌군은 프랑스 전역에서 프랑스 공화군과 교전을 시작했다.

 

Revolutionary Communes are created in Lyon, Limoges and Marseille, while the department of Var, in southern France, also turns red.
리옹, 리모주, 마르세유에서 혁명 코뮌이 만들어지고 프랑스 남부의 바르 지역도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These militias, revolutionary fighting forces of the Communes, are formed of convinced socialists, adventurers and veterans of war. 
코뮌의 혁명적 전투 부대인 이 민병대는 신념에 찬 사회주의자, 모험가, 전쟁 참전 용사들로 구성되었다.

 

Such armed bands will be the forebearer of the Revolution, going from town to town to spread socialist ideals and convince the people that the Republican government is lost. 
이러한 무장 부대는 혁명의 선구자가 되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회주의 이상을 전파하고 공화국 정부가 패배했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By February that year, the loyalist Doumergue Government, now seated in Orléans, launches a large offensive against the growing Red menace, hoping to retake the capital from the Commune of Paris and thus deal a major blow to the Revolution. 
그해 2월, 오를레앙에 자리 잡은 충성파 두메르그 정부는 파리 코뮌으로부터 수도를 탈환하고 혁명에 큰 타격을 입히기 위해 점점 커지는 적의 위협에 맞서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The commune of Paris slowly begins taking over nearby communes to prepare for this attack, forming an organised militia to meet the government in open battle. 
파리 코뮌은 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인근 코뮌을 서서히 점령하기 시작하고, 정부와 맞서기 위해 조직적인 민병대를 결성했다.

 

Militia forces and the government clash at Linas, a key junction in the main road to Paris. 
민병대와 정부는 파리로 향하는 주요 도로의 교차로인 리나스에서 충돌했다.

 

Militia forces ambush the government by flanking them from Rambouillet and the passages near Senart, and government forces are crushed. 

민병대는 람부일레와 세나르 인근 통로에서 정부군을 측면으로 기습하고, 정부군은 격퇴당했다.

 

The victory at Linas is celebrated in Paris as a symbol of the inevitable victory of the revolution. 
리나스에서의 승리는 혁명의 필연적인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파리에서 기념되었다.

 

Paris has taken the initiative, and declares her intent to create a Federation of the Communes of France later that year. 
파리는 주도권을 쥐고 그해 말 프랑스 코뮌 연방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Pressured by reactionary attacks, the other Communes join Paris to create a unified executive board. 
반동 세력의 공격에 압박을 느낀 다른 코뮌들도 파리에 합류하여 통합 집행부를 구성했다.

 

It will take until the fateful date of May 1st 1920, however, to officially ratify the so-called ‘Federation of the Communes of France. '
그러나 1920년 5월 1일이라는 운명적인 날까지 소위 '프랑스 코뮌 연방'을 공식적으로 비준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The new government declares itself the successor of the French Third Republic. 
새 정부는 스스로를 프랑스 제3공화국의 후계자라고 선언했다.

 

She is colloquially referred to as… the Commune of France. 
그것은 구어체로는 프랑스 코뮌이라 불렸다.

 

-

 

Camarades, brothers, friends. 
동지 여러분, 형제 여러분, 친구 여러분.

 

Stand with me now, as we light a torch that will cast light upon the whole world. 
온 세상에 빛을 비출 횃불을 밝히기 위해 지금 나와 함께 서 주십시오.

 

Bear witness to a new form of state, and not just form of governance. 
단순한 통치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목격합시다.

 

France belongs to her people now, a France for and by the worker.
프랑스는 이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의 프랑스입니다. 

 

Hear me, workers of the world.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들으시오.

 

From the blazing light of France to the capitals of the world we submit this to you now. 
프랑스의 타오르는 빛으로부터 세계의 수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금 이것을 여러분에게 바칩니다.

 

You have nothing to lose but your chains! 
여러분이 잃을 것은 사슬뿐입니다!

 

The government that claims control over you is corrupt, weak, and frightened by our revolution. 
여러분을 통제한다고 주장하는 정부는 부패하고 나약하며 우리의 혁명에 겁을 먹고 있습니다.

 

They will try to shield the truth from you, and tell you we are radicals, revolutionaries, dangerous rable. 
그들은 당신에게서 진실을 숨기려 할 것이고, 우리가 급진주의자, 혁명가, 위험한 무리라고 말할 것입니다.

 

But the blood in your veins, as does mine, runs deepest red. 
하지만 여러분의 혈관 속에는 저와 마찬가지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You know this in your heart. 
여러분도 마음속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That the only path to salvation is throwing off the yoke of the capitalist, the pope, and the autocrat. 
구원의 유일한 길은 자본가, 교황, 독재자의 멍에를 벗어 던지는 것뿐이라는 것을.

 

That those who feed you lies do so only to keep you complacent. 
당신에게 거짓말을 먹이는 사람들은 당신을 안주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Complacent, because they fear you, workers of the world!
안주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노동자 여러분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For they are few, and we are billions.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수십억입니다.

 

I implore you, workers of London, of Berlin, of Rome, of the whole world. 
런던, 베를린, 로마,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나는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Take up arms against your unlawful repression. 
여러분의 불법적인 탄압에 맞서 무기를 드십시오.

 

Camarades, break your chains! 
동지들이여, 사슬을 끊으라!

 

-

 

By the end of March, Communard forces push past the forests of Rambouillet and into the Republican heartland. 
3월 말, 코뮌군은 랑부일레의 숲을 지나 공화국 심장부로 진격했다.

 

The North of France is consolidated, and other offensives confidently chip away at the Republic’s territory. 
프랑스 북부는 통합되고 다른 공세도 공화국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아 갔다.

 

A final push towards Orléans spells doom for the Republican government’s capital.
오를레앙을 향한 마지막 공세는 공화국 정부의 수도에 파멸을 예고했다.

 

The government, parliament and high command decide to evacuate to Nantes, in the west of France. 
정부와 의회, 고위 지휘부는 프랑스 서부에 있는 낭트로 대피하기로 결정했다.

 

As the government flees West, the resulting chaos and lack of orders means many army regiments and mid-level officers decide to surrender or defect to the Syndicalist cause. 

정부가 서부로 피신하면서 혼란과 명령 부재로 인해 많은 육군 연대와 중급 장교들이 항복하거나 노조주의 대의에 망명하기로 결정했다.

 

By the time the government arrives at their new capital, they learn that most of the country has already fallen to Red forces. 
정부가 새로운 수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라 대부분이 붉은 군대에게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y this point, Doumerge’s panicking government realises the war is lost, and commands field marshals Pétain and Foch to help escort the military and remaining loyalists across the Mediterreanean. 
이 무렵, 패닉에 빠진 뒤메르주 정부는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깨닫고 페탱과 포흐 원수에게 지중해 전역의 군대와 남은 충성파를 호위하라고 명령했다.

 

The government hopes to continue the fight from Algeria, where many loyalist pieds-noirs have managed to fend off all traces of leftist agitation. 
정부는 많은 충성스러운 피에누아르가 좌파의 동요를 막아낸 알제리에서 싸움을 계속하기를 희망했다.

 

Pétain and Foch debate this plan fiercely, agitating for continuing the war in the mainland against what they consider traitorous rabble, but they're overturned. 
페탱과 포흐는 이 계획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며 본토에서 반역자 폭도들에 맞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계획은 뒤집혔다.

 

The government sails South, where they will remain until the end of the war. 
정부는 남쪽으로 항해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게 된다.

 

This motley collection of loyalist armed forces and old government institutions would form the basis of a government-in-exile that would challenge the Commune of France’s legitimacy over Metropolitan France. 
충성스러운 군대와 낡은 정부 기관이 뒤섞인 이 잡다한 집단은 망명 정부의 기초를 형성하여 메트로폴리탄 프랑스에 대한 프랑스 코뮌의 정통성에 도전할 것이다.

 

This new Republican government was shaky at best, and would later collapse under tensions between the pieds-noirs colonists and exiles. 
이 새로운 공화국 정부는 기껏해야 불안정했고, 나중에 피에누아르 식민지 주민과 망명자 사이의 긴장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The instability would lead to a military takeover under Philippe Pétain in 1926, turning the Republican rump state into a thinly veiled military junta.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은 1926년 필리프 페탱의 군사 정권 장악으로 이어졌고, 공화국 정부는 베일에 싸인 군사 정권으로 바뀌게 된다.

 

These troubled remnants would later be referred to as National France. 
이 문제적 잔재들은 훗날 국민 프랑스로 불리게 된다.

 

Whatever loyalists remain in mainland France are now trapped. 
프랑스 본토에 남아있던 충성파는 이제 갇혀 버렸다.

 

Many army elements see the writing on the wall, and begin surrendering. 
많은 군대가 벽에 적힌 글귀를 보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For Communard forces, it is now simply a matter of conquering loyalist holdouts one by one. 
이제 코뮌군에게는 충성파 저항군을 하나씩 정복하는 일만 남았다.

 

The last bastion of the loyalists, Nantes, falls at the end of summer, on September 29th. 
충성파의 마지막 보루였던 낭트는 여름이 끝날 무렵인 9월 29일에 함락되었다.

 

France is now fully under control of the Commune. 
이제 프랑스는 코뮌을 완전히 통제하게 되었다.

 

Celebrations break out when the news reaches Paris.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축하 행사가 열렸다.

 

In a fit of revolutionary fervor, young radicals set the Sacré-Coeur Basilica on fire that evening. 
혁명적 열기에 휩싸인 젊은 급진주의자들은 그날 저녁 사크레 쾨르 대성당에 불을 질렀다.

 

As the church blazes in to the night like a massive bonfire, crowds gather around the collapsing structure as a symbol of the destruction of the old order, and a herald of what is to come. 
교회가 거대한 모닥불처럼 밤새 타오르자 군중은 구질서 파괴의 상징이자 앞으로 다가올 혁명의 전조로 무너져 내리는 건물 주위로 모여들었다.

 

These radicals proclaim that never again the workers will be insulted, and a new, socialist building will be erected where the church once stood. 
급진주의자들은 다시는 노동자들이 모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교회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사회주의 건물이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While the Communard government later condemns this vandalism, at least officially, few in the city seem to be bothered by this wanton destruction. 
나중에 코뮌 정부는 이 기물 파손을 비난했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이 무자비한 파괴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On June the 7th 1920, the Commune of France manages to secure a peace for the border conflict between her and Germany. 
1920년 6월 7일, 프랑스 코뮌은 독일과의 국경 분쟁을 평화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The Commune government promises to respect the territorial changes of the Treaty of Versailles, and is recognised in return by the German Empire as the legitimate French State. 
코뮌 정부는 베르사유 조약의 영토 변경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독일 제국으로부터 합법적인 프랑스 국가로 인정받았다.

 

Germany is contented by this revolution. 
독일은 이 혁명에 만족했다.

 

Thinking her former rival France has now fully collapsed into anarchy, and will never recover to challenge Germany again. 
과거 라이벌이었던 프랑스는 이제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졌고, 다시는 독일에 도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he German Empire hastily signs the treaties, distracted in Eastern Europe and Africa with conflicts resulting from her rapid absorption of colonies. 
독일 제국은 서둘러 조약에 서명했고,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발생한 분쟁으로 혼란에 빠졌다.

 

Only two years after crushing defeat in the Weltkrieg, France appears young and energetic, set against the victorious but groaning German Empire. 
세계대전에서 대패한 지 불과 2년 후, 프랑스는 젊고 활기찬 모습으로, 승리했지만 신음하는 독일 제국에 맞섰다.

 

In those years, France’s defiant revolution spreads across Europe. 
그 몇 해 동안 프랑스의 도전적인 혁명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Berlin watches with trepidation as Italy is torn between republican and Syndicalist factions, and Britain expels the Royal family, declaring a Syndicalist Union of Britain. 
베를린은 이탈리아가 공화파와 노조파 세력 사이에서 분열되고, 영국이 왕실을 추방하고 브리튼 노조주의 연방을 선포하는 것을 두려움에 떨며 지켜봤다.

 

In Germany’s new overseas territories, chaos and pandemonium spread as Germany struggles to control her bloating and expanding empire while still recovering from the Great War herself. 

독일의 새로운 해외 영토에서는 독일이 대전쟁에서 회복하는 동시에 팽창하는 제국을 통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혼란과 공포가 확산되었다.

 

This new age would bring peace for Germany, but a tenuous one. 
이 새로운 시대는 독일에 평화를 가져다주었지만 미약했다.

 

Over the years, revanchist factions would claim dominion over her Western syndicalist neighbours. 
수년에 걸쳐 보복주의 세력이 서부 노조주의 이웃 국가들을 넘어선 지배권을 주장하게 된다.

 

This effectively put an end to Germany’s hopes for a peaceful process of European integration under her rule. 
이로써 독일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유럽 통합 과정에 대한 독일의 희망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Before long, France and Britain would begin rearming and breaking the force limit clauses of the treaties of Versailles.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와 영국은 재무장을 시작하고 베르사유 조약의 무력 제한 조항을 위반하기 시작했다.

 

In 1926, France and Britain host the 5th congress of the Third Internationale. 
1926년, 프랑스와 영국은 제3인터내셔널 제5차 회의를 개최했다.

 

There, they announce the formation of a military alliance between the two syndicalist powers, promising a new world alliance of the workers to oppose the German Empire. 
그곳에서 그들은 독일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새로운 세계 동맹을 약속하면서 두 노조주의 세력 간의 군사 동맹 형성을 발표했다.

 

Germany, from her side, was forced to cobble together what allies she could carve out of her contested territories with Russia.
독일 입장에서는 러시아와 경합하는 영토에서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모든 국가를 끌어모아야 했다.

 

These young Eastern European states, led by German princes and nobles, would form a faction called Mitteleuropa, uniting the monarchies of Europe in a bid to stand against the revolutionary theory of Syndicalism. 
독일 왕자와 귀족들이 이끄는 이 젊은 동유럽 국가들은 미텔에우로파라는 세력을 결성하여 유럽의 군주국들을 통합하여 노조주의 혁명 이론에 맞서게 된다.

 

To complicate matters further, old remnants of the Entente remained in rump states and governments in exile around the world. 
협상국의 옛 잔당들이 전 세계 곳곳의 망명 국가와 정부에 남아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They too, eyed their old territory with hungry eyes, and still had many loyal followers on the mainland. 
그들 역시 굶주린 눈으로 옛 영토를 바라보고 있었고, 여전히 본토에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이 많았다.

 

By the beginning of the 1930s, new battle lines were being drawn in Europe, and in the hearts of populations worldwide. 
1930년대 초, 유럽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전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The world revolution began spreading to America, Russia, Asia and further yet. 
세계 혁명은 미국, 러시아, 아시아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Once more, soldiers manned fortified borders between Germany and France, cannons pointed in all directions. 
다시 한번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요새화된 국경에 군인들이 배치되었고, 대포는 사방으로 향했다.

 

The old grievances of the Great War were never settled, and were now enhanced with revolutionary fervor against the idea of empire and monarchy. 
대전쟁의 오래된 불만은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 제국과 군주제에 대항하는 혁명적 열정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Slowly, the Internationale and Mitteleuropa began preparing for another all-out war, with the Entente biding it’s time.
인터내셔널과 미텔에우로파는 서서히 또 다른 전면전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협상국은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Germany, so confident in her last victory, had grown uncertain. 
마지막 승리에 자신감을 가졌던 독일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Her growth and ambition were taking a toll on the Empire, and rumblings of an American Syndicalist revolution sparked threats of a massive Syndicalist superpower rising across the atlantic.
그들의 성장과 야망은 제국에 타격을 입히고 있었고, 미국의 노조주의 혁명의 소문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노조주의 초강대국이라는 위협을 촉발시켰다.

 

The war would begin with cloak and dagger, as Germany attempted to subvert and secure political allies in conflicts all around the globe. 
독일은 전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정치적 동맹국을 전복하고 확보하기 위해, 첩보와 단검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Everywhere the groaning masses of labourers were rallied into revolution. 
곳곳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혁명으로 결집했다.

 

Even at home, German Trade Unions were inspired into strikes and subversion of the Kaiser’s power. 
국내에서도 독일 노동조합은 파업과 카이저 권력의 전복이라는 영감을 받았다.

 

Seeing these troubles in Europe, the German elites tremble.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문제를 지켜보던 독일 엘리트들은 공포에 떨었다.

 

To secure her future in the world, Germany would have to face a new breed of enemy. 
독일이 세계 속에서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새로운 유형의 적과 맞서야 했다.

 

A red dawn over Europe. 
유럽의 붉은 새벽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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