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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19살 될 때까지 길러본 후기

나는 고양이를 엄청 싫어했었다.

 

어릴때는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누렇고 큰 개를 길렀었다.

집에 같이 살던 삼촌은 그 개의 이름을 관우라고 지어줬지만

나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아 순돌이라고 불렀다.

순한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순돌이의 밥을 한번씩 긴빠이해먹는 동네 도둑고양이들은 내 적이었고

밤에 눈 마주치면 재수없고 꺼림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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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돌이는 늙어서 갔고

살다보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삶이 편안해질때쯤 순한 동물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알아보던 차에

뭐에 홀린 듯이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도둑고양이 출신이다.

그렇게 우리집에 오게되었다.

 

사진만 봐도 정말 사납다.

한 1년정도는 사나웠던 것 같다.

고양이를 처음기르니 몰랐고 실수했던 부분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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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사진은 죄다 이런 식이다.

덤비고 할퀴고 깨물고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뭐에 홀린 듯이 이런 모습까지도 보듬고 사랑해주게 되었다.

 

-빙신 호구가 아닌 이상 이런 모습을 왜-

 

그 말 그대로 나는 빙신 호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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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사진은 잘 없다.

 

아무래도 너무 옛날이라 핸드폰이래봐야 애니콜,싸이언시절이고

쓰런 카메라는 술먹고 박살냈고, 때마침 군머를 다녀오느라..

그 이후에도 사회초년생때는 너무 힘들고 바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집에 오면 기절.

 

어느새 이렇게까지 커버렸다.

얄궂게도 너무 이뻐서 데려왔었던 만큼

커가면서 더 더 이뻐지긴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흘러가고 오늘이 되었다.

 

 

20230303_090417.jpg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은 누구나 나이들고 늙는다.

나도 벌써 내 수명의 절반이상을 살아버렸다.

마찬가지로 동물도 똑같이 늙는데 다만 우리보다 약간 더 빠르게 늙을 뿐이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오래사는 종족 엘프가 나오고

그들이 자기들보다 빨리죽고 빨리늙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묘사가 종종 나온다.

거기에서 나는 다소 공감을 하곤 한다.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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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갑자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을 읽고 한바탕 웃었기 때문이다.

 

 

20230302_122459.jpg

 

열아홉살이 되는 동안 이 아이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병원비 2천만원-

 

이렇게 정리되는 것은 참 서글픈 요약이다.

간질환, 종양, 단순히 죽을뻔했던 반년정도의 투병과 입원

그게 12살~13살때였다.

그때는 정말로 삶의 끈을 놓는 줄 알았는데..

 

퇴원을 하고나서(집고양이 평균수명이 12년 어쩌구, 집에 가셔서 마음의 준비 어쩌구)

사흘을 꼬박 일어나지도 않고 잠만 자던 날이 있었다.

죽음의 병마에 내가 지쳐 거의 다 포기했을때쯤 울고있던 나를 깨운건 이 아이였고

3일동안 밀린 밥을 먹는 건지 배가 동그래질 만큼 밥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6년을 더 살고있다.

 

주변인들의 추측인 바, 이때 저승사자를 물어죽인게 아닐까?

 

 

20230104_220314.jpg

 

참 여전한 미모다.

 

너무 늙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부분들도 분명 있다.

몇년 전부터는 백내장때문에 눈동자가 맑지 못하다.

분명 시야도 흐릿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냉장고도 닌자처럼 뛰어올라가던 이 아이는

이제 식탁에도 몇번이나 주춤주춤하다가 도전하듯 올라야하는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모르겠다.

얼마나 더 살지, 다행히 아직도 식욕이 많고 잘 뛰어다니고 아주 건강하다.

 

다만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

그 날이 단 하루라도 늦게오길 바라며

내가 가진 재주마저 이 아이를 위해 헌신하며 쏟고있다.

아빠는 쉐프다.

 

 

 

뭐 대충 이런식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소화력이 많이 약해져있다.

 

식욕은 여전하지만 열번정도 식사를 하면 서너번 정도는 게워낸다.

나도 몇년 전에 위장과 식도가 좋지 않을때 비슷한 임상이 있었기에

얼마나 쓰리고 고통스러운지 이해하려고 하고있다.

물을 많이 먹이고, 밥먹고 난 뒤에는 배도 쓰다듬해준다.

 

"이렇게 하면 속이 편해질거야. 아빠도 겪어봤단다" 라고 하면

짬밥이 좀 차서 그런가 이제는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고는 눈을 스르르 감고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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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인가, 고양이 세수를 잘 못한다.

그래서 한번씩 눈꼽도 떼어주고 콧구멍도 닦아주고

처음엔 싫어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물티슈를 꺼내들면 호다닥 하고 달려와서 자리를 잡는다.

어? 이거 그냥 편해서 이러는거 아니냐?

난 빙신 호구가 맞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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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이 많이 바빠져서 집을 비워야하는 시간들이 종종 생기거나

집안에 있어도 잘 보살피지 못하는 시간들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9살짜리 어린이(?)가 제 역할을 똑똑히 해준다.

항상 졸졸 따라다니다가 누나가 화장실을 보면 얼른 와서 알려준다.

그럼 내가 가서 바로 치움, 노묘의 건강(환경,위생)관리에 좋다.

누나가 배고프다고 하면 나한테 와서 밥달라고 알린다.

 

지금보니 누나의 만능 리모콘으로 살고있구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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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지금으로부터 5년전 개드립에 오른쪽에 있는 누르렁하게 생긴 우리아이를 올렸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그 아이는 그때에도 누나가 있었으나 함께 올리지 못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의 슬픔을 남에게 강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게 좋아졌고 건강하고

'고양이 수명 기네스북 노려볼까?' 하는 느낌의 희망마저 생겼다.

그래서 그런 기쁜 마음을 개드립에 나누고자 글을 쓴다.

 

오늘처럼 내일도, 내년도 우리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2개의 댓글

2023.03.14
0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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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후기라고 써있어서 떠나보낸줄알고 마지막까지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잖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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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아씨 냥닥붐인데.. 이냥만입니다...

0
2023.03.14

너무 멋지다 ㅠㅠ 훌쩍...ㅠㅠ 오래오래 살자 울 할머니 냥이.. 너무 귀엽냥..

오래오래 천년만년 살아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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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햄볶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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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30년 후기 기다린다

1
2023.03.14

놀랬잖아

나는 오늘도 퇴근하자마자 19세 노묘를 모시고 병원 가야함

근데 야근각 ㅠㅠ

 

0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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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메주 애비냐ㅜㅜ

마음 너무 이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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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메주애비 자주 놀러와서 사진올려줘

메주 너무 이쁘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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