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필리핀으로 간 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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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식 15cm 곡사포를 인력 수송하는 군인들)

(전략)
(루손 섬 후방에서 주둔 중이던 포병장교 야마모토는 막 파견된 보병부대를 따라서 곡사포를 인력 운반 중인, 관동군 포병장교와 마주친다.)

비가 오는 어둠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4년식 15cm 곡사포 같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횃불이 비춘 것은 밧줄이 연결된 나무 손잡이를 잡고 맥없이 무릎을 꿇은 한 명의 사병 뿐이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사람 형체가 보이더니 부동자세로 나에게 경례를 하는 것이다. 놀란 나는 서둘러 답례를 했다. 상대방이 상급자임은 틀림없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이 근처에 군마를 징발할 만한 곳이 있을까."

"군마요? 으음.... 군마라."

나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말끝을 흐리며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그의 질문이 나의 상식을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 나는 그 장교를 서둘러 숙소로 안내했다.

긴 선창생활과 고된 인력운송 지휘로 그는 초췌해져있었다. 얼굴은 수염과 먼지로 뒤덥혔고 눈만 반짝였다.
그는 상부로부터 선박에 여유가 없으니 현지에서 군마를 징발하라는 명을 받고 왔지만, 도착해보니 군마는 커녕 주민 하나 없었고, 상륙 이래 처음 만난게 당신이라고 말했다.

'또야?'
나는 짜증이 났다. 나는 이런 식의 배반을 겪어왔다. 상부는 식량, 군마, 탄약 모두 현지에서 조달이 원할하다는 약속을 남발했지만, 어느하나 이행되지 못했다.
  
'이 순수한 관동군 장교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할 것이다. 상대를 체념 시키는 역할을 맡기는 싫지만 할수 있는 말은 해둬야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장교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필리핀에는 짐말이 없다. 작은 인력거 모양새의 조랑말 뿐이며, 수십 마리를 연결시킨들 무거운 15cm 야포를 끌지 못한다. 이제는 그 조랑말조차 없다.
  
"물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데..."
그가 애원하듯이 물었다.
나는 물소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물소는 하루 3시간 물에 들어가있지 않으면 금방 약해진다.
둘째, 사료나 건초를 먹지 못하며 생풀 밖에 먹지 못한다.
셋째, 편자가 없어 도로에서 걷지 못한다.
넷째, 현지인이 아닌 이상 조종이 어렵다.
결정적으로, 이 지역의 물소들은 이미 게릴라들이 대피시켰다.

관동군 장교는 신음하듯 말했다.
"최소한 후마라도 구하고 싶은데..."
이것은 운전수가 '적어도 핸들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였다. 후마란, 야포를 끄는 6두의 말 중 균형과 방향을 유지하고 유사시 급브레이크를 줘서 전복을 막는 역할의 말을 뜻한다.

단순히 인력으로만 야포를 끌면 그 모양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병사들이 볼가강의 인부들(미술작품)처럼 연결한 밧줄을 당기면 두 바퀴는 좌우로 흔들리며 번갈아 앞으로 나가는 모양새가 되며 그러다 바퀴가 움푹 파인 곳에 빠지기라도 하는 날엔 날려버릴 기세로 밧줄을 튕겼다.
사실, 인력 운송 훈련은 훈련보단 체벌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포장도로애서 하루가 인간으로서 한계였다.
  
"최소한 후마라도..."
그들이 인력으로 야포를 끌며 지나온 길은, 위치를 알았겠지만, 대전차호와 대전차지뢰로 가득한 험지였다. 아군이 쓸 것이라 생각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지옥의 행진을 겪은 직후였으니 이런 식의 억지도 무리는 아니였다.

"앞으로 대전차덫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그에게 지금까지 여정보다 더 가혹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건널 강에서 야포가 지나갈만한 다리는 모두 파괴 됐으며 공병이 우회로와 임시다리를 놓았지만 우회로는 미끄러운 진흙탕길에 임시다리는 야포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으며, 건넌 직후 나오는 오르막은 게릴라의 사격범위였다.
나는 장교에게 사무적인 태도로 이런 실정을 설명했고 우리 둘은 헤어졌다. 그는 자신의 사고를 정지시킨 듯 했다.

'사고정지'. 일본제국군 병사부터 장교까지 항상 존재했던 마지막 종착역이였다.

《야마모토 시치헤이 저 -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 육군》

 

https://m.dcinside.com/board/war/2177325?recommend=1

 

4개의 댓글

2022.01.21

압도적인 절망

0
2022.01.21
@냥냥왈왈
0
2022.01.21

구 일본군의 "현지조달하라"는 의미 = 나는 작전만 입안했으니 나머지는 니들이 알아서 해라

0
2022.01.23
@호정보요원

은하영웅전설에서 나온거같은데 ㅋㅋㅋ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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