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열국지] 진나라의 두 재상 이야기

-기원전 594년.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의 군주 진경공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천하의 패공을 꿈꾸었다.

 

-중원을 하나로!

 

눈을 다시 황하 주변의 제후국들에게로 돌렸다.

 

"회맹을 가졌으면 하는데..."

 

진경공은 종종 이렇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패자임을 선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재상 순림보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회맹을 갖는다는 것은 곧 초나라와의 일전을 의미한다. 그의 뇌리에는 아직도 필 땅에서의 패배가 생생했다.

 

'아직 이르다.'

 

그렇다고 자신 없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정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순림보는 우물우물 대답했다. 진경공은 눈썹을 찡그렸다. 순림보의 마음을 환히 읽고 있는 눈빛이었다.

 

"내정이라면 무엇을 말함이오?"

 

"금년에는 우리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순림보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해, 진나라에는 크게 흉년이 들었고 사방에 도적이 창궐했다. 도성 주변만 하더라도 치안이 마비될 정도였다.

 

"도적을 퇴치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민생을 안정시키는 일은 그대의 임무가 아니오?"

 

이 반문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도적을 퇴치하는 일까지 군주인 나에게 의논해야 하는가. 더욱이 도적 때문에 패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회맹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도 그대가 재상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가.

 

순림보가 어찌 그 야유와 조롱을 알아듣지 못하랴. 그 날부터 그는 도둑 잡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순림보는 우선 전국에 방을 붙여 도둑 잡을 사람들을 모집했다. 갖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을 뽑아 도둑 잡는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극옹. 극씨 일족의 한 사람이었다.

 

극옹에게는 특이한 재주가 하나 있었다. 그는 남의 속마음을 쪽집게처럼 알아맞히는 능력을 지녔다.

 

극옹이 도둑 잡는 관리로 뽑혀 시장 거리를 돌아다닐 때였다. 별안간 길 가는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자는 도둑이다!"

 

라고 소리쳤다. 그의 부하들이 그 사람을 잡아서 조사해보니 과연 도둑이었다.

 

순림보가 극옹을 불러 물었다.

 

"너는 그자가 도둑인 줄 어떻게 알았느냐?"

 

극옹이 대답했다.

 

"저는 그자의 눈동자와 눈썹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물건을 볼 때 그자의 눈동자에는 욕심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는 눈에 부끄러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눈썹은 두려움에 꿈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그자가 도둑인 줄 알았습니다."

 

그 후로도 극옹은 날마다 도성 안팎을 돌아다니며 수십명의 도둑을 잡아들였다. 그래서 시정 사람들은 극옹을 악귀처럼 무서워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잡으면 잡을수록 도둑은 점점 늘어만 가는 것이었다.

 

어느날, 조정 대부 양설직이 순림보에게 말했다.

 

"저는 재상께서 극옹을 임용해 도둑을 잡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둑을 다 잡아들이기 전에 극옹이 먼저 죽을 것입니다."

 

순림보가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극옹이 죽는단 말이오?"

 

"주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못 속의 고기를 잘 볼 줄 아는 자는 평생 어부로 지내며, 남의 비밀을 잘 알아내는 자는 그 끝이 불행하다.' 극옹이 아무리 유능해도 어찌 그 많은 도둑을 다 잡아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도둑들이 힘을 합쳐 극옹을 노릴 것이니, 극옹이 어찌 죽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양설직이 이런 충고를 한지 며칠 후, 과연 극옹은 성밖으로 나갔다가 수십명의 도둑들의 습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순림보는 길게 한탄하다가 마침내 울화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진경공은 양설직이 극옹의 죽음을 예언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가 말한 것처럼 극옹은 죽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둑들을 퇴치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양설직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대부 사회를 재상으로 삼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도둑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순림보가 죽었으므로 어차피 그 후임자를 임명해야 했다. 양설직의 말이 아니더라도 조정 내 차석인 대부 사회를 재상으로 올리려던 참이었다.

 

며칠 후, 진경공은 사회를 재상 겸 중군원수로 삼는다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사회는 이상했다. 도둑 잡는 일에는 신경쓰지 않고, 조정 관리들을 다스리는 데만 온 힘을 기울였다. 오히려 도둑에 관한 법률 조항을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아울러 겨울 동안 군대를 엄하게 훈련시키는가 싶더니, 그 이듬해 봄에는 출병을 선언했다.

 

-노적 주변의 적족을 소탕하라.

 

지난해 순림보가 멸망시켰던 노적 주위로는 여러 적족이 살고 있었다. 그 중 갑족, 유우족, 탁진족, 세 부족이 제법 강성했다. 이들은 노적이 진에 의해 멸망하자 자신들의 거처에 불안을 느끼고 수시로 군사력이 약한 주왕실의 영토를 침범해 노략질하였다.

 

-주왕실을 도우리라!

 

이것이 사회가 내세운 출병 목적이었다. 진경공은 사회의 행동을 침묵으로 승낙했다.

 

그 해 봄, 도성을 떠난 사회는 불과 한달만에 갑족,유우족,탁진족 세 적족을 모조리 소탕하고 돌아왔다. 사로잡은 적족의 포로들은 모두 낙양으로 보내 주정왕에게 바쳤다.

 

주정왕은 이러한 사회의 행동에 크게 기뻐했다. '필의 전투' 이후 사라졌던 진나라에 대한 신뢰감도 다시 살아났다.

 

-주왕실은 진나라만을 믿노라. 이번 기회에 사회에게 상경 벼슬을 내리노라.

 

천자인 주정왕으로부터 이 같은 칙서가 내리자 진나라 내에서의 사회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갔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느 사이엔가 도둑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나라 안은 평온해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진경공은 대부 양설직을 불러 물었다.

 

"그대 말대로 사회를 재상에 올렸더니 도둑이 모두 사라졌다. 그대는 이 일을 어찌 미리 알았는가?"

 

그러자 양설직이 대답했다.

 

"대저 꾀로써 꾀를 막는 것은 돌로 풀을 눌러두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돌로 눌러도 풀은 반드시 돌 틈을 비집고 자라납니다. 무법한 자들을 엄한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돌로써 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두 개의 돌은 다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도둑을 없애는 방법은 교화가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에 도둑을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사회밖에 없습니다. 사회는 신용 있는 말을 하며, 의리 있는 행동을 하며, 너그럽되 아첨하지 않고, 청렴하되 소견이 좁지 않으며, 강직하되 반항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습니다. 백성의 어머니인 재상이 이러한데, 어찌 도둑인들 교화되지 않겠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백성중에 요행을 바라는 자가 많으면 그것은 곧 나라의 불행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높은 벼슬을 차지한 사람 중에 어질고 선한 사람이 없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은 사회를 재상으로 천거했던 것이며, 도둑이 사라질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좋고 좋도다."

 

이후로 진경공의 사회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그에게 태부직을 겸하게 하는 한편, 범 땅을 상으로 내려주었다. 그 후 진나라에는 범씨가 번성하게 되는데, 그 시조가 바로 사회인 것이다.

 

 

 

 

 

 

 

 

 

1개의 댓글

2021.03.23

신용없고 쓸데없는 의리에 너그럽지도 않고 아첨에 청렴하지도 않아 소견도 좁아 존나 반항해 위엄도 없어 싸나워

 

누굴 보는듯 하구먼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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