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김구를 변론하다 (2) – 친일파가 만든 민족영웅?

"김구는 친일파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친일파 부일배들로 이뤄진 한민당으로부터 수많은 자금을 받았고 그들과 결탁했다. 부일협력 재벌 최창학으로부터 제공받은 김구의 거주지 경교장(죽첨장), 송진우로부터의 900만원, 김연수에게 700만원 등은 극히 일부의 예이다. 더욱이 1962년 김구에게 수여된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대한민국장·건국훈장 1등급)은 친일전력이 있는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이병도, 신석호 등 친일 사학자들이 심사해 결정한 것이다. 이승만이 숨겨진 친일파라면, 김구의 경우 친일파들이 그를 항일독립 통일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김구청문회 1권 서문>>

 

김상구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이번장에서는 김구가 친일파와 결탁했다는 김구청문회의 비판에 대해서 변론해보고자 한다.

 

친일파가 다수인 한민당과 협력하였고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 또한, 친일파 최창학으로부터 경교장을 제공받았다

 

초창기 김구와 그가 이끄는 임시정부 세력은 친일파 청산이라는 대의와 재정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충돌하게 되자 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19451126일 김구는 인터뷰에서 통일하고 불량분자(친일파 및 민족반역자)를 배제하는 것과 불량분자를 배제하고 통일하는 것이 결과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라고 발언하였으며, 중대 문제인 만큼 경솔히 말할 수는 없고 전민족에게 관한 것인 만큼 신중이 해해한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백범 김구 선생 전집 제8권)

 

헌데, 송진우를 필두로한 한민당 세력들(이때 아직 한민당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에게 먼저 건준에 참여하고 협력할 것을 요청한건 여운형이다. 여운형은 김성수, 장덕수와 친분이 있었고,(김성수의 장남 김상만은 김성수가 기거하던 해동농장에 여운형이 자주 찾아왔으며 자신과 함께 냇가에서 천렵을 하며 친구처럼 지냈다고 회고한다. 인촌 김성수 평전에도 여운형과 김성수가 친분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장덕수와 여운형은 신한청년당을 함께 만든 동료였으며,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장덕수가 여운형 장례식장에 찾아와 통곡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조봉암은 일제강점기 시기 군수를 니낸 윤길중을 참모로 두었으며 심지어 친일파 처단을 강하게 부르짖은 박헌영 조차 전향서를 쓰고 식량배급이사를 지낸 이승엽(리승엽)을 자기 측근으로 두고, 심지어 박헌영이 이끌던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에 박흥식이 자금을 댓다는 증언도 있다.(이철승 박갑동 건국50년 대한민국 이렇게 세웠다) 그럼 이들도 다 친일세력과 협력한것인가

 

그리고 1948년도 이후, 한민당과 김구가 이끄는 한독당과의 합당이 무산되자 김구는 친일청산을 확고하게 주장한다

 

"우리 동양의 정치 윤리는 무엇보다도 대의명분을 많이 주장한다. 이 대의명분과 민족정기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민족 질서 혁명 기율은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반역 친일 분자들은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이다." 호남신문1948103

 

"친일 반역 분자들에게 악형을 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긴 수많은 선열들의 영령과 아직도 고통스럽게 살아 있는 독립운동자들은 반민자들을 단호 처단하려는 특위의 활동을 지지할 것이며, 인민들도 이것을 찬양할 것이니 무릇 일을 방해하려는 행위는 청산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194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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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조봉암, 박헌영

이들은 모두 친일파에 속하는 인물들과 친분이 있었거나 심지어 자신의 측근으로 두기도 했다.

 

백범일지는 친일파 이광수가 윤문하였다.

 

이광수는 1947년 도산 안창호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고 도산 안창호라는 안창호의 전기를 저술한적도 있다. 친일행위 때문에 지탄받은 해방 이후에도 그의 소설의 인기가 식지 않고 여전히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인정받던 문단의 거성인 그의 글솜씨를 김구측도 이용한 것이다. 김구가 정말 이광수에게 백범일지 윤문을 부탁했는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신용하는 김구가 백범일지의 윤문은 허락하였으나 윤문하는사람이 이광수인지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김구의 아들 김신은 "춘원은 자신이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버님은 그의 행실 때문에 망설였는데, 누군가가 글솜씨도 있는 사람이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맡겠다니 시켜보라고 했대요. 그가 윤문을 한 것은 사실이나, 아버님이 그걸 알고 맡기셨는지 의문입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최일남이 만난 사람’ <신동아> 1986년 8월호' 즉 김구는 이광수에게 윤문을 맡기는걸 망설였으나 측근들이 이광수에게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는것. )김상구 본인도 김구의 측근들이 이광수에게 윤문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광수가 김구의 백범일지를 윤문하면서 자신의 행적을 교묘히 정당화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김구는 박정희와 친일세력들이 만든 영웅이다. 친일파들에 서훈 자격을 심사받았으며, 김구의 아들 김신은 박정희의 쿠데타에 일조하고 군사정권에 협력하면서 아버지를 민족영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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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 직후 김구를 관통한 총알이 뚫고 나간 창과 그 밖에서 통곡하는 민중들의 모습

 

우선 김구의 장례식때 수많은 인사들이 김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여론은 깊은 애도를 표명하였다. 김구 암살 후 장례식까지 10일 간 다녀간 조문객은 약 120여 만 명으로 추산되며, 장례식이 있던 7월 5일 서울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약 40∼50만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다른 도시에서도 각각 수만 명씩이 모여 고인을 애도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니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으리라. 

 

이후 11년간 이승만 정권에 탄압을 받으며 별다른 추모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다가 4.19혁명 이후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하자 김구를 추모하고 암살의 배후를 밝히려는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이에 대한 연력은 다음과 같다.
 

1960429: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지 불과 3일 후에 한 시민이 백범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를 체포하라는 피켓을 들고 태평로 거리에서 국회 앞까지 1인 시위 (이 인물은 이춘봉이며, 김구의 경호원을 지냈다고 한다.)

같은 날 : 강원도 양구에서 안두희의 집이 분노한 학생들에 파괴.

 

524일 구국사회당 대표 고정훈 김구 암살사건 관련 폭로

 

25:대구 시민 안두희 즉각 처벌하라는 탄원서를 제출

 

28한독당 정당등록 신청

 

612: 이승만 정권 아래 금서 취급 받았던 백범일지 재발간되었다.

 

626: 효창공원에서 김구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열림. 폭우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시민이 모여 추모. 심산 김창숙 선생은 82세의 노구를 이끌고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연단에 서서 선생을 저격 살해한 안두희를 죽이라! 그리고 그 배후조종자인 이승만을 규탄하자!”고 사자후를 토함.

같은 날. 부산 역시 폭우가 쏟아졌음에도 오백명의 추도객이 모여 김구 선생을 추모.

 

27: 한독당이 김구선생의 저격경의를 만인앞에 밝히라는 격문을 발표

 

28: 한독당 및 백범김구선생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등 8개 정당단체가 공동으로 백범김구선생을 살해한 진상을 만천하에 밝혀달라는 요지의 건의문과 아울러 김구 선생 살해범 안두희를 즉시 체포 구속하고 안두희가 석방된 경위와 그 배후를 조사하여 국민앞에 공표하라는 결의문을 관계당국에 제출했다. 백범동지회역시 안두희의 불법적인 석방을 취소하고 즉각 체포 구속할것과 석방 경위 및 배후진상을 밝히라고 결의

 

78: 15개 단체에서 안두희의 불법석방을 취소하고 즉각 체포하고 김구선생 살해의 배후관계와 안두희의 석방경위를 철저히 밝혀 배후의 원흉을 엄단하라는 진정서를 서울지방 검찰청에 제출

 

88: 서울지검 황공렬검사 김구 암살사건 본격 수사 착수

 

26: 군검합동수사반 설치

 

27: 백범 김구선생 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창숙, 국방부에 진정서 제출, 안두희 처단 호소

 

1231: <<아아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백범일지를 기초로 한 김구의 전기영화가 개봉

 

1961417: 은신하며 도피행각을 벌이던 안두희가 김구선생살해사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 김용희에게 붙잡혀 서울지검에 끌려옴.

(그러나 재구속할 명분을 찾지 못해서 연금상태에 있다 석방됨)

 

27: 대구에서 안두희의 배후를 철저히 규명할 것을 호소하는 연판운동

 

28: 효창공원에서 백범암살사건배후자규탄대회에 참석한 수천여명의 시민들이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며 가두시위

 

이 모든 것은 박정희를 필두로한 군부세력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기 전의 일이었으며, 이 당시 박정희는 육군 소장으로 부산군수기지사령관, 1관구사령관, 대구 제2군부사령관을 지내던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군인에 불과하였다. , 박정희가 김구를 국민영웅으로 만든게 아니라, 국민들의 김구 추모 분위기에 박정희 군사정권이 편승한 것이라 봐야 한다. 김구의 아들 김신을 끌어들인것은 덤이다.

 

박정희 등 친일세력이 김구를 민족영웅으로 만들었다는 논리대로라면 안중근 역시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건국공로훈장 중장을 수여받았고, 안춘생, 안진생 등 안중근의 친족들이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영달을 누렸고, 안중근의사숭모회의 초대와 3대 이사장을 친일파 윤치영이 지냈고,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차례 안중근 의사 추념식에 참여했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건립하고 두 차례나 휘호를 보내는 등 각종 기념사업을 지원했으니 안중근은 박정희와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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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1) 백범일지와 비슷하게도 춘원이 쓴 안창호 전기 역시 이광수가 안창호의 전모를 온전히 그린 것이 아닌 이광수가 자신의 틀 내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처지와 의도에 따라 춘원화된 도산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는 독립혁명론자이자 무장투쟁론자였던 안창호가 실력양성론자로 오해받았던건 이광수의 안창호에 대한 묘사가 대중에 널리 퍼진 탓도 크다

 

여담 2) 다행히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중 친일파는 없다. 초대 회장 조완구, 2대 곽상훈 3대 박영준은 모두 독립운동가이며 4대 장충식 회장은 독립운동가 장형의 아들, 6대 회장 김신은 김구의 아들, 현 회장 정양모는 정인보의 아들이다.
다만 5대 회장 이수성은 친일파 이충영의 아들, 7대 회장 김형오는 친일파 지희열의 손녀사위다. (이충영과 지희열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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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재임 당시 효창공원내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하는 이수성, '9룡'이라 일컬어졌을 정도로 치열했던 신한국당 대선경선 당시, 한때 이회창의 대항마로서 유력하게 떠올랐던 그가 끝내 대권을 획득하지 못한것은 부친 이충영의 친일논란 때문도 있었다. 심지어 경선중 이충영의 친일행적이 담긴 문서가 일부 의원들의 우편함에 발송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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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 등으로 건립된 안중근의사기념관 개관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관중인 모습.
출처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http://www.economytalk.kr)

 

여담 3) 박정희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를 상당히 흠모하였다. 적극적으로 여러 기념사업을 벌인것은 물론, 말년에는 안중근 의사 탄신 100주년이던 1979년 9월 2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내리고 기념관을 이충무공의 현충사에 버금가는 성역(聖域)으로 조성하려고 계획했다가 암살로 뜻을 이루지못하였다.

19개의 댓글

10 일 전

백범이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라는 것은 너무 나간 주장임.

그러나 누구누구누구 밑에 친일파가 있으니 이들도 어땠다?는 건 백범을 변명할 수 있는 거리가 못됨. 해방정국에서는 누가 주도권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대립이 거셌고, 대부분의 정파가 친일청산보다는 세력확장에 주안점을 뒀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그 중에 백범도 있었고.

4
10 일 전
@poloq

현실적으로 보면 당시 유산계급은 친일파가 많을 수밖에 없었음. 탄압받는 상황에서 돈을 모을수는 없었을 테니까. 즉, 정치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정도는 친일파와 협력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봄. 일종의 타협책으로 '악질적인 친일파들만 배제하자.', '반성하면 용서해주자.'는 의견도 제시됨

0
10 일 전
@이제시작

결국 친일청산 아이콘으로서의 백범은 없다고 봄. 그도 그저 다른 당시 정치인들하고 동일하게 친일파를 저 xxx는 우리 xxx 개념을 가지고 봤다면 제일 맞지 않을까 함. 물론 우남/몽양 등등등

0
10 일 전
@poloq

위에서 말했듯. 김구 청문회 저자김상구가 김구 까는 논리대로라면 여운형, 박헌영, 김일성(북한 친일파만 봐도), 조봉암, 김규식(친일파 민규식에게 삼청장 제공 받음) 죄다 까여야함. 김구만 물고 늘어지는건 억지지 

0
10 일 전
@이제시작

그 책의 논리는 나도 부정함. 친일이 만든 영웅은 분명 아님. 그러나, 친일 청산 관련해서 과연 그 당시 정치인들이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을까? 난 행적을 봤을 때 아니란 것이고, 거기에 백범도 포함된다고 생각함.

1
10 일 전
@이제시작

즉 요약하면

대중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독립운동가 -> ok

친일 청산의 아이콘 -> no

능력있는 정치인 -> no

5
10 일 전
@이제시작

그리고 시대 분위기와는 별도로 저 당시 정치인들은 좌냐 우냐 내편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지, 친일은 그 후순위라고 보면 될 거 같음.

0
10 일 전

이런 논리면 우남도 한민당 뒷통수를 거세게 때렸으니 친일세력하고 선을 그었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함. 아, 툭하면 상대편 친일로 몰기는 그의 주 특기이기도 했지.

0
@poloq

+ 그 한민당조차 입으로는 친일청산을 언급했다는 것도 잊지마세여 ㄲㄲ

0

결국 다 친일세력이랑 협력한 것 맞다. 그 박헌영의 공산당조차 지들 입맛에 맞으면 친일했어도 봐줬다. 그게 해방정국

1
10 일 전

치하포사건 만으로도

김구의 인간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1
10 일 전

"극렬하프갓까"하고 이야기해 본 적 있는데 걔는 이순신도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까더라. 하프갓이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유도를 위해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주장핵심이고 부하장병들이 싸운 공을 본인 이름으로 독차지했다고 깜. 그리고 유관순도 까는데 역시 하프갓이 무장봉기 억제할 목적으로 유관순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깜

1
10 일 전

저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에는 몸바쳐 뛰었지만 독립의 방식이나 과정에는 일치하는 의견이 없었음. 그들은 목숨을 걸었다는 점에서 위대한 사람이지만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기 때문

 

각자의 사상기반과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한 건데

사실 안중근도 이상적인 대동아공영권을 꿈꿨던 사람이라 결과적으로는 독립운동이 되었지만 그것도 까면 까일만한 요소가 됨

 

우선 독립운동가를 성인군자로 보는 시각이 틀린 거 같다. 한국의 독립에 돌 하나 얹어준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

0
@국밥햄

그나마 같다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는 민혁당이든 한독당이든 다 같은 의견이였고 이게 일단 목표는 같앗던 점

0
10 일 전

김구가 제일 까이는 이유는 이런것보다 팀킬아냐? 특히 여운형,장덕수,송진우 암살로 미군정이 경고했다던데 그정도면.....

넌 이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1
10 일 전

친일파들이 너무 많았음. 그만큼 일제강점기 35년은 긴 시간이였음. 가끔 독일이나 프랑스의 부역자 처벌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완전히 잘못 되었다 봄. 김구가 친일파 세력의 지원을 일부 받았다 이 자체는 시대상을 감안 해야 한다 봄. 다만 김구가 안준생 암살을 요구할 정도로 친일파에 선을 그은 인물은 아니라 봄. 김립이나 옥관빈 피살사건은 다음에 다뤄주겠지 기다리고 있겠음 잘 보고 간다

2
10 일 전

도리어 현대에 와서 민족영웅 이미지가 많이 퇴색된 거지, 실상은 박정희가 손대기 전에 이미 민족영웅으로 부상해 있었다. 현대 관점에서 치하포 사건 같은 건 도저히 영웅적 면모라고 볼 수가 없지만, 당시에는 그걸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잖냐.

 

현대사에 들어가는 인물이고, 현대적 잣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보니 이제는 영웅화되기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1
@제국치천

임정을 뚝심잇게 지킨 인물

 

항일에 아이콘 정도로 평가하는게 좋을듯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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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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