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군대 전역했을 때인데
대학도 안 다녀서 복학도 안 하고 취직도 할 거 없고
친구들은 다 아직 전역 안 했고
하루하루 잉여생활 하고있을 때였음
난 평생 운동하곤 거리가 멀었는데 그래도 군대에서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군살도 좀 빠지고
싫어도 훈련뛰느라 기초 체력도 좀 됐었을 때였음.
그나마 인생에서 체력이 언제 전성기였느냐 따지면 아마 그 때였을 거임.
새벽에 놀이터에 가서 좀 앉아있었거든
이것저것 생각 정리도 좀 하고
당시 내가 그냥 우울증이 좀 있어서 사람 없는 새벽에 나가서 산책하는 걸 즐겼었음.
놀이터 들어갈 땐 몰랐는데
벤치 앉아서 몇 분 지나니까 인기척이 느껴지더라
어딘지 흘깃흘깃 보는데
이런 구조 복잡한 미끄럼틀 있잖아
이게 조명 없이 그늘져있어서 엄청 어두운데
그 그늘 사이에서 어떤 여자가 스윽 나오더라
솔직히 어둡기도 한데 '술취한 사람인가' 했어 그냥.
그 사람이 벤치 쪽으로 지나쳐가는데
나를 스쳐지나갈 거 아냐 미끄럼틀에서 벤치 쪽으로 지나가는데 난 벤치에 앉아있으니까
품에 뭔가 껴안고있는 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거기까지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어
뭔가 싸한 분위기였지만 그건 그냥 새벽이고 워낙 어두우니까 그런 거겠지 하고 별 생각 없었어
난 가만히 앉아있다가 폰 좀 만지다가
그렇게 한 5분 지났는데
아까 그 여자가 내 앞으로 다시 슥 지나가는 거야
근데 아까 그 여자는 나를 지나쳐서 분명 어딘가로 갔단 말이야
'왜 다시 내 앞으로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솔직히 그 때부터 무서워서 주변을 두리번거리질 못 했어
내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눈 마주치면 왠지 되게 무서울 것 같아서
근데 또 얼마 지나니까 그 여자가 내 앞으로 다시 지나가는 거야
그 때 눈을 마주쳤는데
눈이 엄청 땡그랗고 엄청 빼빼 말랐고
체격은 크진 않은 아줌마였거든
내가 진짜 쫄보라서 그 때부터 몸이 막 얼어붙는 것 같고 그러더라
그래서 벤치에서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뛰기 시작했어
솔직히 아줌마가 달리기로 나를 따라오진 못 하겠지 하는 마음에서
놀이터에서 어느정도 도망치고 뒤돌아보니까 그 여자가 나랑 좀 떨어진 거리에서 멀뚱멀뚱 서있더라
나 쳐다보면서
품에 껴안고있는 것도 명확하게 보였어
고양이 같더라
왜 새벽에 놀이터에서 내 주변을 빙빙 돌았는지
왜 산책도 안 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집 밖엘 나왔는지
왜 고양이는 울음소리도 안 내고 움직이지도 않았는지
지금도 전혀 감이 안 오고 그 사람은 그 뒤로 본 적도 없다
그 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미친 사람은 뭔가 나한테 위해를 끼칠 것 같다거나
저 사람이 덤벼들면 내가 신체적으로 제압하지 못 할 것 같다거나
그런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미쳤다는 게 너무 무섭더라
요약
1. 옛날 새벽에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었음
2. 웬 아줌마가 죽은 고양이 품에 껴안고 나 스쳐지나감
3. 몇 분 지나서 다시 내 앞에 지나감
4. 그 때서야 그 아줌마가 내 주변 빙빙 돌고있다는 거 알고 빤스런함
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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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복이옵니다
넘모 무서워 ㄷㄷㄷ
부멉
환상수첩
마 흑마술 모리나?
무선마우스
이상 시선강간한 가해자의 진술을 마칩니다.
자유의이차선
새벽 놀이터는 존나 무서움
촉법양아치들 없으면 미친사람있음
롤토개망함
미친사람도 거르는 촉법소년!!
닉네임변경12
오랫동안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서 너무슬퍼 밖을 나왔는데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것은 아니었을까..?
我爱北京天安门
그게 아니고 캣맘이 지가 밥주던 고양이 죽은거 보고 범인찾겠다고 안고 댕기다가
야밤에 웬놈이 놀이터에 혼자 앉아있으니까 이새낀가...? 하고 궁각 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