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글

소나기

 

 

소나기

 


밖은 비가 내렸다. 공기가 덥고 습한 8월 여름이었다. 이런 날씨엔 뭐든 쉽게 상하기 마련이다. 집에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데, 아침에 깜빡 잊고 우유주머니에 있는 우유를 꺼내지 않았다가 퇴근 시간에 악취를 풍기는 우유를 만난 적 있었다. 상한 우유를 먹으면 죽을 수 있을까를 종종 생각해보았다. 유리컵에 우유를 따라보았다. 꿀렁꿀렁, 젤리처럼 변한 우유가 유리잔에 가득 찼다. 
아버지는 술을 먹다가 돌아가셨다. 남들은 사고사라고 불렀지만, 내 눈에는 그건 자살이었다. 잘못된 술을 먹었다고 했다. 하혈하다가 탈진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방 안이 악취로 가득해 시체가 부패한 줄 알았다고 했다.
상담실 맞은편 문이 열렸다. 삭발한 남자애 하나가 주춤주춤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입술이 찢어졌는지 피딱지가 붙어있었다. 오른쪽 눈가도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했다.
"싸웠니?"
"제가 먼저 때린 건 아니에요."
"그래."
나는 손에 쥔 차트를 훑었다. 거기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빌려준 책은 잘 읽고 있니?"
"네."
소년의 이름은 준희였다. 박준희. 살인을 저질렀고 3일 뒤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을 거친 후 소년원에 들어갔다.
"담배는 끊었고?"
"노력 중이죠."
준희는 오른손 엄지손톱을 습관처럼 물어뜯었다. 처음 만남 때보단 여유가 있어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준희에게 건넸다. 준희는 거기서 한 개비를 꺼내고 책상 위에 있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선생님."
준희는 담배를 하나 더 꺼낸 뒤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러자 준희는 성냥을 하나 더 꺼낸 뒤 불을 붙여주었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
"조각칼 하나만 구해줄 수 있어요? 안 쓰는 빨랫비누가 있는데 그걸로 조각을 해볼까 해요."
"안 돼."
준희는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이 저번에 궁금하다고 했잖아요. 제가 왜 죽였는지. 기억나죠?"
나는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뒤 준희의 눈을 응시했다. 저 아이는, 새벽에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쳤다. 그런데 돈을 훔치는 도중 노인이 일어났고 저항을 하길래 방에 있던 아령으로 노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했다고 진술했다. 죽을 줄은 몰랐다면서.
"궁금하지." 
노인은 죽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사건의 참혹함을 떼놓고 보면 정말 간단명료한 사건이었다. 강도가 금품 갈취를 목적으로 살인을 저질렀고 강도는 잡혔다. 체포 후 자백도 쉽게 받아냈다. 그렇지만, 수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시체엔 저항 흔적이 없었다. 준희는 저항을 했기에 죽였다고 했는데, 피해자의 몸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있었다. 
"이번에 책을 빌려줄 때는 안에 조각칼을 넣어주세요. 그러면 제가 전부 불게요. 원한다면 녹음하셔도 괜찮아요."
준희는 재떨이에 자신의 담배를 비벼 껐다. 마치, 내가 거부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눈빛이었다.
"소년원 안에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나 보네."
"조각을 할 거예요."
나도 재떨이에 담배를 버렸다.
"하고 싶으면 소년원 나와서 해. 거긴 너 취미생활 즐기라고 있는 곳이 아니야."
내 말투에 화가 났는지, 조금 전 준희에게 보였던 호의적인 눈빛이 사라졌다. 곧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의 분노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빛. 
익숙했다.

 

 

내가 어릴 때, 집에는 술병이 나뒹굴었다. 종종 깨져있을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술에 취한 채로 TV를 보는 게 아버지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녀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청소였다. 
그렇게 죽기 전까지 술만 마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와 아버지 사이의 추억이라곤 기억에 없었다. 그래서 슬프진 않았다. 그저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이 떠올라 괴로울 뿐이었다.
준희에게 그런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그 애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때리고 싶었다. 그 애를 내려다보며 굴복시키고 싶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방구를 들려 조각칼을 하나 샀다.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조각칼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돌을 주워서 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수건이나 얇은 천옷으로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걸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서 책장을 훑어보았다. 그중 죄와 벌을 꺼내 가방에 넣었다. 도스키예프스키 책은 무난하고 두꺼워서 좋았다. 

 

 

다음 주 만남에서 준희에게 책을 건넸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속으로 감췄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 방어 기제인 것 같았다.
"다 읽고 독후감 써와."
준희는 책을 펼쳐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얘기해봐."
준희는 피식 웃으며 천장을 보았다. 
"그 인간, 안 깼어요. 오히려 꽤 깊게 잠들어 있었지."
준희는 성냥을 하나 꺼내더니 불을 붙이고 타오르는 성냥불을 응시했다. 
"술에 취해 있었어. 바닥에 소주병이 존나 많았거든. 냄새도 심했고.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자꾸 욕을 중얼거리잖아요. 개새끼, 쓰레기 새끼, 처 죽일 년. 뭔 꿈을 꾸는 건지는 몰라도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더라고. 어두워서 돈 찾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거슬리게 하잖아. 그 인간, 주둥이만 닥쳤어도 나한테 안 죽었어."
성냥불이 꺼졌다. 준희의 눈가가 붉었다.
"시발 새끼. 분명 자식들한테 버려져서 혼자 사는 새끼였을 거야."
나는 담배를 건넸다. 
"다음 주가 마지막 상담이야. 널 믿고 빌려준 거니, 반납 잘해줬으면 좋겠어."
준희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고개만 건성으로 끄덕였다.

 

 

퇴근 후,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우유주머니 안에서 우유를 꺼냈다. 아깝게 또 우유를 버리게 되었다. 싱크대에 흰 우유를 전부 부었다. 여름은 뭐든지 빠르게 상하고 그와 함께 악취를 동반한다. 아버지도 그랬고 준희에게 살해당한 노인도 그랬다. 준희는 캐리어에 노인을 구겨 넣고 그것을 끌고 다니며 노인의 돈으로 모텔에서 생활했다. 시체는 더운 여름, 악취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준희가 낮에 자리를 비운 사이, 모텔 청소부의 신고로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준희를 처음 만났을 땐, 꽤나 피로해 보였다.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먹던 수면제를 그 애에게 건네주었다. 

 

 

"선생님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마지막 상담 날, 준희는 책상에 턱을 괸 채 내게 물었다.
"양주를 좋아하던 양반이었어. 그런데 그날 섞어마시면 안 되는 술을 섞어먹은 거지. 그래서 죽었어." 
무표정을 유지하며 성냥만을 만지작거렸다.
"조각은 잘 되니?"
준희는 고개를 저었다.
"재미없더라고요. 그래서 버렸어요."
"그래. 책은 어떠니?"
"책도 재미없어서 버렸어요."
나는 알겠다고 했다. 마지막 상담이기에 짧게 끝내기로 했다. 준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 유년시절의 내가, 머뭇거리며 거기 서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창밖으로 소나기가 내렸다. 빗소리에 '나'의 말이 소거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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