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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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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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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목요연한 묘사", 조망가능성

 

 

책 “철학적 탐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아.

 

“철학은 요컨대, 철학적 물음들과 문제들에 대한 투쟁이다. 

철학적 문제는 ‘지성이 언어의 한계로 달려가 들이받음’으로써(119), 언어 수단이 우리의 지성에 마법을 걸어댐으로써 (109), 언어 형식들에 대한 오해함으로써(111), 언어의 표현을 일상적인 사용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 사용에 사로잡혔을 때(116),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낱말들의 사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지 못해서(122) 발생하고, 

철학의 목적은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가리켜주는 것”(309)이며,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철학을 조용히 쉬게 하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철학적 물음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133)을 뜻한다.”

 

철학적 탐구 122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나타나는데, 철학적 문제들이 생기는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내용이 나와 있지만,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확실하게 제시된 것은 122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일목요연한 묘사”야.

 

그런데 이 “일목요연한 묘사”라는 용어 말이야. 번역이 아주 난잡해. 초록색 책인 이영철 교수의 철학적 탐구에서는 “일목요연한 묘사”라고 하고, 보라색 책인 이승종 교수의 철학적 탐구에서는 “통찰”이라고 하고, 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에서는 이것을 “명석함”이라고 했어.

이런 상황은 영어본에서도 그래. 처음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도움을 준 엘리자베스 앤스콤은 이것을 “clear view”라고 했어. 하지만 현재 최신판인 4판에서는 피터 해커가 나서서 이 용어를 “surveyability”라고 번역했지.

 

번역이 이렇게 갈리는 이유는, 이 용어에 슬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야...

 

용어는 Über­sicht­lich­keit라고 하는데, 이 용어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은 다름아닌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 책에서야.

이 용어의 뜻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위에 있는 번역가들이 잘 번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모두 다 이 용어를 번역하는 데 노력을 들였음을 알 수 있을 거야.

잘못을 한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에 가까워.

이 용어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집어넣어서, 한 마디로는 번역할 수가 없게 만들어놨거든.

 

 

이 “일목요연한 묘사”를 대신 “조망가능성”이라고 할게.

우리나라의 비트겐슈타인 수학철학 책에서는 그렇게 번역했기 때문이야.

비트겐슈타인의 “조망가능성”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3가지 이야기를 살펴볼게.

 

 

1 - 비트겐슈타인 전기와 후기의 연결점으로서의 조망가능성

 

조망가능성이라는 용어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하나의 계승이야.

 

논리철학 논고를 보면 비트겐슈타인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

논고 6.45에 나오는 “영원의 관점”이 바로 그것이야.

세계를 한계 지어진 신비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고, 선악의 구분에 휘말리지 않은 채 신의 의지를 따르고, 윤리학과 미학이 하나라고 바라보는 것이 “영원의 관점”이었어.

이 “영원의 관점”을 가진 채로 논고의 명제를 극복한 뒤 세계를 올바르게 보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이 논고의 내용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할 거야. 무엇이 있는지를 하나 하나 설명하면 100쪽의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겠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야. 하나는, 논고의 “영원의 관점”이라는 태도는 신적으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 어렵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 “영원의 관점”이라는 것도 하나의 형이상학이 아니냐는 것.

 

스라파의 비판 이후로 수정 같은 순수성을 버린 비트겐슈타인은 그 이후로 보다 세속적인 “조망”이라는 단어를 이용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모든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의 변화”라는 면을 받아들이게 되었어. 이것이 조망가능성이야.

 

 

2 - 수리논리의 부정으로서의 조망가능성

 

그의 수학철학에서는 “조망가능성”이라는 뜻은 곧 증명을 뜻해.

그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망가능성”이라고 하면서, 일상적인 증명을 무시하는 수학적 태도를 가지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어.

 

이것은 그 당시의 수리논리학과 관련되어 있어.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활동하던 1929년에 수학의 분야 중 가장 뜨거웠던 곳은 바로 수리논리학이었어.

수학의 모든 활동을 공리적, 연역적으로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때였어.

이 때의 상황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힐베르트 프로그램이겠지.

비트겐슈타인은 이 활동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어.

 

비트겐슈타인이 왜 수리논리학을 거부했는지는 이 한 마디를 통해 알 수 있어. “당신은 하나의 이론을 기다림으로써 수학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힐베르트가 제창한 메타수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또 하나의 수학, 하나의 계산술일 뿐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어.

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체스 말을 가지고 체스판 위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할 뿐이지, 체스판 위에서 작은 나무 조각들을 미는 것 자체는 체스 경기에서 비본질적이라고 말하듯, 메타수학을 포함한 수학의 기초에 관한 모든 논쟁은 잘못된 생각에 의거해 있다고 말했어.

힐베르트가 원했던 수학 전체에 대한 정당화, 일관성과 완전성과 같은 정당화 과정은 수학을 하는 데 전혀 필요 없는 일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하게 되었어.

 

이러한 말들은 1930년대 이후의 현대 수학에서 꽤나 잘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해.

수리논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수학자는 거의 없어.

수학 석사 학위를 따도 불완전성 정리에 대해서 전혀 모를 수 있거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증명이야.

이런 면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것이 조금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어.

 

 

3 - 다채로운 증명으로서의 조망가능성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충분히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수학의 기초의 모든 점들을 얻을 수 있다고 봤어.

수학은 언어가 조금 이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거야.

 

비트겐슈타인에게 증명은, 조망가능성은 이정표를 만드는 행위와 같은 일이라고 말해.

이정표의 특징처럼, 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그것의 목적을 달성하면 이정표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봤고, 모든 가능한 해석 속에서 어떤 해석은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모든 가능한 오해를 제거하는 것은 수학 규칙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이미 이것부터 기존의 수학자나 수학철학자가 말하는 개념과는 달라. 이들은 오해가 없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여기에 더해서, 그렇게 이정표를 만들지 않는 활동은 수학이 아니라고 봤어.

하나는 수학의 일관성이나 완전성을 보이려 했던 힐베르트 등의 수리논리학자였어. 이것은 전에 말했으니까 넘어갈게.

다른 하나는 1+1=2를 보다 기저에 있는 논리를 써서 증명하려고 했던 화이트헤드나 러셀 등의 수리논리학자들이야.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고, 단지 순환논증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어.

 

증명이라는 굉장히 딱딱한 용어를 이정표로 순화함으로써,

증명이란 것에 대해서 우리가 보는 방식을 바꾸도록 우리의 개념을 바꾸게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있어.

 

비트겐슈타인에게 이상적인 수학의 형태는 이정표를 만들고, 이정표가 다채롭게 있는 경우일 때야.

어떤 한 정리가 있을 때, 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증명이 나올 때가 가장 괜찮은 경우라고 봤어.

소수의 무한성 정리가 유클리드의 방법으로 풀려지고, 오일러의 방법으로 풀려지고, 위상수학의 방법으로 풀려지면서 서로 간의 연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수학의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봤다고 보면 돼.

 

 

그의 수학철학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느낌이 나.

가장 딱딱한 수학철학의 용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아주 다채로운 그의 철학이란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야.

수학철학의 내용은 하나 하나씩 보면 아무리 봐도 논란이 많아 보이지만 그 수학철학으로부터 그가 말하고 싶은 거시적인 뜻, 거시적인 풍경화는 분명하기 때문이야.

수학철학은 그가 원했던 “다채로움”을 표현하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볼 수 있어.

 

 

비트겐슈타인의 이 수학철학은, 하지만, 단점이 있어. 

너무나 큰 단점이라서 거의 “비트겐슈타인의 실수”라고 평가받기도 해.

 

첫째로, 글의 스타일 자체가 너무나도 모호하다는 것이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Glock 같은 호의적인 주석가들조차도 “그가 명료성을 위해 쓰여진 곳은 종종 극도의 모호함을 보여줬다”라고 평가했거든?

그가 쓴 수학철학에 대한 내용은 그것을 압도할 정도로 훨씬 더 모호해.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을 보다가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고찰하게 되었어.

니네들도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고 싶으면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을 사서 읽어봐.

 

둘째로, 다른 수학철학자들이 주제로 삼는 내용들을 전부 “철학적 혼란”으로 간주해.

분석철학의 한 분과로 엄연히 수학철학이라는 것이 있어.

그 수학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수학철학을 거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봐.

그 수학철학에서는 다루는 주제가 따로 있어. 전공은 아니지만 “수학은 논리로 환원할 수 있는가?”나, “수학적 공식은 실재하는가, 허구인가?”나, “무한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을 주제로 잘 다뤄.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당신들은 철학적 혼란에 빠져 대답할 수 없는 곳에서 헛돌고 있다는 태도를 취해.

수리논리학의 내용이 수학으로 해결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그런 것을 잘 받아들이지를 않지.

 

셋째로, 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것인데, 수학자들과 수리논리학의 발전을 아주 원시적으로 오해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야.

그는 철학이 수학적으로 변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 “수리논리학에 의해 초래된 재앙”이라고까지 말했어.

그리고 기존의 수리논리학의 내용을 거의 다루지도 않았어.

하지만 수리논리학의 발전은 엄연히 존재했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이후에도 신논리주의의 탄생, 힐베르트의 10번째 문제의 해결 등의 발전이 있었어.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그 자리에서 멈춰선 것밖에는 되지 않았지.

무엇보다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정말 원시적으로 오해했다는 평가를 받았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철학에 있어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논리주의와 형식주의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때문에 사실상 해체당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을 했어.

"my chief contribution has been in the philosophy of mathematics",

"나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수학철학에 있다"라고.

어쩌면 그의 미완성인 문구들 속에서 좋은 수학철학적 발견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거야.

그리고 수학철학에 대한 설명도 여기서 마치도록 할 게.

 

글이 너무 어수선해졌지만, 주목할 요소들은 이런 것이 있어.

증명을 이정표를 만드는 행위로 두면서부터,

조망가능성은 우리가 보는 방식을 바꾸도록 우리의 개념을 바꾸게 한다는 점.

 

그리고 조망가능성은 다채로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

2개의 댓글

요컨대 조망가능성이란

 

1. 언어와 지성의 충돌로 생긴 사고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2. 수학 또한 숫자라는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언어같은거니까 기존의 수학 증명을 할 때의 사고방식에서 변화를 주어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조망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요런 의미? 디게 어렵당

0
2020.10.12

무척 잼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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